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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0

        

       그렇기에 정부는 박진성에게 사람을 보냈다.

         

       꽤 기대를 품고서 말이다.

         

       다만 그 기대라는 것은 ‘유망주’의 한계를 넘지 않는바.

       직접 무거운 몸뚱이를 끌고 보내는 대신, 지금 상황에서 가장 적합한 사람을 보내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 * *

         

         

         

       번화가에 있는 건물은 싸늘한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을 오싹하게 만드는 이 느낌은 터의 문제도 기온의 문제도 아닌, 그 건물 자체가 품고 있는 분위기였다. 텅 비어버린 유리창, 태풍을 대비한 것인지 X자로 유리창에 붙여져 있는 테이프, 그리고 사람의 시선이 닿기 쉬운 곳에 있는 네 글자.

         

       임 대 문 의.

         

       네 글자는 직접 붓으로 쓰기라도 한 듯 현란한 글씨체로 적혀 있었다.

       다만 특이한 것은 그 붓글씨가 쓰인 종이가 왠지 모르게 누런빛을 띠고 있는 얇은 종이였다는 것이며, 본래라면 있어야 하는 연락처가 적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치 임대를 진정으로 바라는 게 아니라, 그냥 요식행위로 붙여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 뒤편으로 보이는 것은 먼지가 그득한 텅 비어버린 공간.

       먼지와 채 가져가지 않은 자재가 뒹굴고 있는 공간은 보기만 하더라도 왠지 모를 오싹함을 느끼게 했다.

         

       가만히 보고 있자면 저 안에 어둠이 꿈틀대면서 움직이는 듯한 것은 눈의 착각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공포에 질린 뇌가 만드는 환각인가.

         

       텅 비어버린 건물이 풍기는 그 싸늘한 느낌과 왠지 모르게 건물 자체가 주는 음산한 느낌.

         

       그 두 가지는 일반 사람들에게 한밤중에 이 건물 앞을 지나가는 것을 꺼리게 했다.

         

       분명 번화가에 있으며, 주변에 차량도 많이 다니고, 통행인도 많으며, 곳곳에 새벽까지 영업하는 곳이 넘쳐났음에도 말이다.

         

       그리고 지금.

       사람들이 모두 꺼리는 곳에 발을 디딘 이가 있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서 튀어나온 남자는 골목길의 어둠을 휘감은 것처럼 존재감이 한없이 없었다. 걸을 때마다 내쉬는 숨이 아니라면 귀신이 아닌가 오해할 정도였다.

       정장과 구두를 신고 있는 남자의 외형은 아주 평범했다.

         

       대한민국의 중년 남성 회사원의 스테레오 타입 그 자체.

         

       낡은 구두, 일하면서 구겨진 정장, 살짝 늘어진 어깨, 피곤함에 찌든 얼굴.

       얼굴마저도 길거리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얼굴이었다.

         

       과장 조금 더해서, 길 가던 사람 아무에게나 보여주면 ‘어? 내가 아는 사람이랑 닮았네?’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듯한 얼굴이었다.

         

       그렇다.

       보통이었고, 평균이었으며, 평범했다.

         

       길을 걷는 사람도, 차를 타고 가는 사람도, 건물 어딘가에서 야근하다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사람도, 가게에서 일하다가 담배를 피우러 잠깐 밖에 나온 사람도.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만큼 남자는 평범했다.

         

       남자는 일상 속의 풍경이었고, 항상 존재하는 배경의 일부였으며,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관심 밖의 존재였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그 남자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남자가 뚜벅뚜벅 걸어가서 싸늘한 기운을 풍기는 건물의 앞에 섰어도.

       노크를 하는 듯 유리문을 두들겼음에도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도.

         

       그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남자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는 것에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이것이 올바른 일이며, 상식이라는 듯 당당하게 행동했다.

         

       하지만 그렇게 당당했던 남자의 태도에 금이 가게 되었다.

         

       철컹.

         

       남자를 당황케 하는 것은 눈앞에서 일어나는 기묘한 일이었다.

         

       유리문 너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기를 끌어올려도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사람도, 유령도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무언가가 움직였다.

         

       ‘뭐지?’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기척은 거의 없다.

       기계도 아니고, 생물에 가깝다.

       뱀처럼 바닥을 기어 다니는 것 같은데 뱀은 아니고, 체온 역시 없다.

       싸늘한 기운을 품은 채 살아서 꿈틀거리며, 기를 끌어올려야만 간신히 그 형상이 보일까말까 할 정도로 은밀하다.

       그것들은 꿈틀대면서 천천히 문을 향해 다가왔고, 끝에 자라난 가시를 이용해 자물쇠를 천천히 풀었다.

         

       덜컹.

         

       그렇게 자물쇠를 푼 무언가는 사슬을 휘감더니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찰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사슬은 바닥에 떨어졌고, 꿈틀대던 무언가는 그것으로 자신들의 할 일이 끝났다는 듯 다시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어둠?

       아니, 어둠으로 갔다고 표현하기에는 뭔가 달랐다.

       어둠이라기보다는 땅속으로 스며든 것 같은, 땅속 어디론가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

         

       남자는 이러한 기묘한 광경을 보자 어이가 없다는 듯 탄성을 뱉었다.

         

       ‘더럽게 기괴하군.’

         

       남자는 문의 잠금이 풀렸음에도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그의 기감이, 그의 본능이 저 안은 호랑이 굴이라면서 속삭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니 호랑이의 굴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부족하다.

         

       저 안은 호랑이의 입과 같았다.

             

       ‘주술 유망주라더니, 과연.’

         

       남자는 본능이 보내는 경고에 감탄했다.

         

       주술 유망주라는 박진성이 만들어놓은 요새에 감탄했고, 그에게 경고를 날릴 정도의 함정을 사방에 깔아놓은 박진성의 실력에 감탄했다.

         

       남자는 정부가 기대하는 것보다 박진성이 더 대단한 주술사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천천히 유리문을 밀었다.

         

       끼이익.

         

       유리문은 낡은 경첩이 내는 소음과 함께 천천히 열렸다.

         

       하지만 유리문이 열렸다고 한들 안의 풍경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텅 비어버린 공간.

       조명조차 켜져 있지 않은 공간은, 당장 귀신이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아니, 정말로 귀신이 튀어나올 수도 있겠지.’

         

       박진성이 강령술에 조예가 있다면, 침입자를 격퇴하기 위해 귀신이 튀어나오도록 만들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도대체 뭐가 함정인지 모르겠군.’

         

       남자는 본능이 사방을 조심해야 한다며 경고를 보내는 것을 느끼며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겼다.

       오랜 훈련 덕분인지 그가 움직이는 것은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 아주 평범한 발걸음이었지만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에는 주의를 기울이는 느낌이 가득 묻어나오고 있었다.

         

       남자는 조심조심 움직여 엘리베이터로 향했고, 진성이 기다리고 있을 최상층을 눌렀다.

         

       삐익.

         

       엘리베이터 역시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어딘가에서 시선이 느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감시카메라인가?’

         

       그렇게 남자는 덜컹거리는 엘리베이터 움직이는 소리를 들으며 최상층에 도착했다.

         

       띵동.

       [ #$%#층에 도착하였습니다. ]

         

       스피커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앞부분이 뭉개져서 듣기는 힘들지만, 최상층에 도착했다는 메시지와 함께 엘리베이터의 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렇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보인 것은 고급스러워 보이는 탁자와 의자.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젊은 남자였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큰 키에 마른 몸, 그리고 토끼를 닮은 듯한 인상의 남자였다.

         

       정부에서 주술 유망주로 불리고 있는 남자.

       생각보다 실력이 있을 것 같은 한국 토종 주술사.

         

       박진성이었다.

         

       “이쯤에 오시리라 생각했습니다. 이리 앉으시지요.”

       “아, 실례하겠습니다.”

         

       진성은 정중하게 남자를 자리로 안내했다.

         

       그리고 둘이 자리에 앉게 되었을 때.

       그때 자기소개가 시작되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자세한 소속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만…. 정부에서 일하고 있는 김철수라고 합니다. 현재 비서로 일하고 있으니, 김 비서라고 불러주셔도 됩니다.”

         

       남자는 진성에게 명함을 내밀며 소개를 했다.

       그가 내민 명함은 특별한 것은 없었다.

         

       가장 위에 ‘국회의원 김가광.’이라고 적혀 있었고, 그 아래에는 ‘비서 김 철 수’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회관 주소와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

         

       진성은 그 명함을 보자 방긋 웃음을 지었다.

         

       ‘김철수라.’

         

       자세한 소속은 말해줄 수 없다.

       정부에서 일하고 있다.

       ‘현재’ 비서로 일하고 있다.

         

       거기에다가 김철수라는 흔하디흔한 이름까지.

         

       이 모든 것을 조합하면 나오는 것은 단 하나였다.

         

       ‘요원이군.’

         

       진성의 눈에 보이는 ‘김철수’라는 남자는 거짓이 가득했다.

       아니, 거짓이 아닌 것이 없었다.

         

       얼굴의 자연스러운 맥이 툭툭 끊겨 있으니 성형을 한 것이요.

       이름을 말하고 있음에도 그 이름에 힘도 존재감도 없으니 그 이름은 거짓이요.

       입고 있는 옷과 행동거지가 분위기와 일치하지 않고 있으니 이 역시 연기요.

       안에 흐르고 있는 기운과 목소리의 성질이 다르니 목소리 역시 손을 댄 것이로다.

         

       하지만 진성은 김철수의 거짓됨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진실함이 없다고 하여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으니까.

         

       형상을 숨기기 위해 다른 것의 터럭을 뒤집어썼다고 하여 본질이 달라지지는 아니하며, 얼굴을 숨기기 위해 가면을 썼다고 한들 가면이 얼굴에 달라붙게 되는 것은 아니다.

       연기는 옷에 불과한 것이며, 옷을 입었다고 타박을 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는 법.

         

       하여 김철수가 두르고 있는 거짓은 다른 이에게 보이기 위한 옷이나 다름없는 것이요, 진성이 사용하는 말투와 표정과 몸짓 역시 다른 이에게 보이기 위함이니.

         

       “나랏일에 도움을 주고 계시는군요. 이거 귀한 일을 하는 분을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박진성이라고 하는 하잘것없는 주술사입니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하하하. 하잘것없다니, 그럴 리가요. 정부에서 박진성 주술사님에게 얼마나 기대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젊은 나이임에도 이렇게 재능을 빛내고 계시지 않습니까?”

         

       김철수는 거짓을 사용하고.

         

       “아닙니다. 세상에 대단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교만하겠습니까? 교만이라는 것은 곧 만족하게 됨이요, 만족하게 되는 것은 제자리에 머무르게 됨을 말합니다. 제자리에 머무르게 되면 달리는 법도 잊어버려 쳇바퀴를 돌게 될 뿐이니 마땅히 목표에서는 멀어지는바, 교만과 오만한 태도를 버리고 겸손하고 또 겸손해야 하는 것이 구도자의 올바른 태도가 아니겠습니까.”

         

       박진성은 진실을 숨기거나 왜곡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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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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