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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0

       넓게 펼쳐진 기감의 끝자락에 감지된 기척 위에 착지한 백우진.

         

       천라추성단, 그리고 도굉과의 일전으로 한층 더 선명해진 감각이 사방을 꿰뚫었다.

         

       아주 교묘하게 상대를 원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작은 인위적인 한 자락의 흐름마저도.

         

       “아주 개나 소나 진법이야.”

         

       자연의 흐름을 이토록 뒤바꿀 수 있는 건 오직 진법뿐.

         

       다행히도 높은 수준의 진법은 아닌 듯했다.

         

       인위적인 흐름을 자아내는 시발점이 이토록 선명하게 느껴지는 것을 보면 말이다.

         

       “…내가 이상한 건가?”

         

       아니, 어쩌면 제 감각이 이상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무당산에서 영기를 더욱 선명하게 느낄 수 있게 된 뒤로 조금씩 감각이 변화하고 있다.

         

       오로지 자연지기에만 예민하게 반응했던 몸뚱어리가 이제는 천지만물에 흐르는 모든 기운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자연지기에 대한 감응력이 가장 뛰어난 편이지만, 다른 감응력들이 무섭도록 그 뒤를 쫓고 있다.

         

       깊게 파인 골짜기를 어떻게든 메꾸려는 것처럼.

         

       카가각!

         

       퍼걱!

         

       날카로운 검 끝이 땅 밑을 파고들 때마다 진법을 구성하는 핵들이 터져 나갔다.

         

       과반수의 핵을 잃어버린 진법은 빠르게 힘을 잃었다.

         

       그리고 그토록 감추고 싶어 했던 본래의 흐름을 드러냈다.

         

       진법이 걷히고 처음 반응한 것은 다름 아닌 후각.

         

       “…피 냄새.”

         

       코끝을 징징 울리는 피 냄새에 인상을 와락 구기는 백우진.

         

       검을 쥔 그의 손등에 핏줄이 돋아났다.

         

       “대체 여기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한두 명 죽는다고 해서 날 수 있는 냄새가 아니었다.

         

       못해도 수십에서 수백은 같은 자리에서 죽고 또 죽어야만 날 수 있는 죽음에 근접한 냄새.

         

       그것이 백우진을 더없이 분노케 했다.

         

       “하….”

         

       답답해진 가슴을 달래기 위해 그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며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의 목숨을 끊는다는 건 꿈자리를 더없이 뒤숭숭하게 만드는 일이다.

         

       아무렴 제 손에 피를 묻히는 일인데 찝찝하지 않을 리가.

         

       그런데 이번만큼은 피에 흠뻑 취한 상태에서도 두 발 뻗고 편히 잠들 수 있을 듯하다.

         

       이제부터 그의 손에 묻을 피는 인간의 것이 아닌, 인간의 거죽을 뒤집어쓴 짐승의 것이기에.

         

       그는 주변을 오가며 발끝으로 땅을 두드렸다.

         

       그러다 어느 한 곳에 멈춰 서서 발 하나를 높이 들어 올렸다가 이내 강하게 내리꽂았다.

         

       천마군림보의 기세가 고스란히 담긴 발 구름.

         

       쩌저저적!

         

       내리꽂은 발을 중심으로 땅거죽이 들썩인다.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거세게 흔들리던 땅이 움푹 꺼져 그를 땅 밑의 공간으로 인도했다.

         

       후두두두둑!

         

       쏟아지는 흙먼지와 함께 도착한 곳은 곳곳에 피가 가득 묻어나 있는 스산하고, 조악한 땅굴.

         

       갑작스레 땅이 무너져 내리면서 벌어진 사태에 구불구불한 길의 앞뒤로 수십의 기척들이 맹렬한 기세로 이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

         

       그들이 가까워질수록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이게 과연 사람의 몸에서 날 수 있는 피 냄새인가?

         

       백우진은 통탄했다.

         

       “네놈은 누구냐!”

         

       가장 앞서 달려온 이가 강렬한 적개심을 내비치며 그의 정체를 물었다.

         

       “저승사자다.”

         

       이름 따위는 중요치 않다.

         

       인간으로선 해선 안 될 짓을 저지르고도 뻔뻔하게 숨을 쉬고 있는 놈들에게 자신이 어떤 형벌을 내릴 것인가가 중요할 뿐.

         

       때마침 속속들이 도착한 혈교의 주구들에게 백우진의 스산한 음성이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네놈들을 저승길로 안내할.”

         

       이를 들은 한 녀석이 코웃음을 쳤다.

         

       “하, 갑자기 웬 미친놈이….”

         

       그는 말을 채 내뱉기도 전에 목이 달아났다.

         

       자신이 죽는 것조차 깨닫지 못한 듯, 코웃음을 치고 있던 표정 그대로였다.

         

       툭!

         

       데구르르….

         

       느릿하게 땅바닥에 떨어져 내린 동료의 목이 제 발치에 굴러오고 나서야 그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했다.

         

       “모두 전투 준비!”

         

       스르릉!

         

       스릉!

         

       잔뜩 긴장한 이들이 칼을 뽑아 들었다.

         

       “죽여라!”

         

       세상의 향취를 모두 지워내려는 듯, 맹렬히 타들어 가는 피 냄새가 조여온다.

         

       백우진은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이 코끝으로 느끼고 있는 것은 단순히 냄새로 그치는 것이 아님을.

         

       이것은 그들이 지닌 혈기(血氣)였다.

         

       몸뚱어리에서 나는 게 아닌, 피를 먹고 키운 기운이 자아내는 역겨움 그 자체.

         

       끔찍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혈교가 중원을 지배하는 순간, 이 역겨운 혈향이 세상 곳곳에서 피어오른다는 것 아닌가?

         

       “아, 그건 안 될 일이지.”

         

       이런 피 냄새 구덩이 속에선 아무리 좋은 술을 마셔도 기분이 좋아질 리가 없다.

         

       사혈을 노리고 들어오는 지독하리만치 잔인한 검들을 쳐내며 날갯짓을 시작한다.

         

       백우진은 너울거리는 한 마리 나비가 되어 도산검수(刀山劍樹)를 누볐다.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는 아름다운 움직임.

         

       그것은 장송곡이었다.

         

       서걱

         

       넋이 나간 채 목이 달아난 이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한 곡조.

         

       서걱

         

       아름다운 칼끝이 향하는 곳마다 목에서 떨어져 나간 머리가 하늘을 날고, 덮개 잃은 몸뚱어리에서 피의 분수가 솟구친다.

         

       그러나 그곳에는 한 줌의 혈향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백우진이 움직일 때마다 그의 전신에서 달큰한 술의 향취가 퍼져 나와 코끝을 찔러 마땅한 모든 역겨움을 뒤덮어 버렸기에.

         

       한바탕 춤사위가 끝난 뒤, 길 위에 서 있는 이는 고작 두 사람.

         

       “…….”

         

       한 사람을 백우진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그의 칼이 아직 다녀가지 않은 혈교의 주구였다.

         

       동료들의 시체 더미 속에서 홀로 숨 쉬고 있는 사내는 깨달았다.

         

       ‘일부러 살려두었다.’

         

       언제든 제 목 또한 취할 수 있음에도, 일부러 살려두었음을.

         

       더부룩한 속을 한 모금 술로 달랜 백우진이 사내를 향해 손짓했다.

         

       “안내해. 사람들을 가둬둔 곳으로.”

         

       그러자 사내가 검을 강하게 앞으로 내밀며 기개를 드러냈다.

         

       “네놈의 명령 따위…!”

       “명령으로 들렸어?”

         

       푸슛!

         

       별안간 날아든 빛줄기가 그의 신체 일부를 훼손시켰다.

         

       사라진 것은 검을 쥐고 있던 다섯 개의 손가락 중 하나인 소지.

         

       “크어억…!”

         

       고통에 울부짖는 사내를 향해 백우진의 차가운 음성이 떨어졌다.

         

       “이거 협박인데.”

         

       그는 비로소 제 눈앞에 나타난 두 개의 선택지를 보았다.

         

       고통 속에 서서히 죽어갈래, 아니면 고통 없이 단칼에 죽을래.

         

       어느 쪽이 덜 절망적인가를 생각하면 이미 답은 나왔다.

         

       “아, 안내하겠소….”

         

       그는 힘없이 고개를 떨궜다.

         

         

       * * *

         

         

       개미굴처럼 이어져 있는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 도착한 넓은 공간에 뇌옥이 늘어서 있다.

         

       조악하게 지어진 뇌옥 안에는 피골이 상접한 수십 명의 사람이 갇혀 있었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는 그들의 몇 배나 되는 백골이 산처럼 쌓여 있다.

         

       “…….”

         

       썩어가는 뼈의 상태를 살펴보면 죽은 지 못해도 수십에서 수백 일은 흐른 듯하다.

         

       말인즉, 이 개미굴은 아주 오래전부터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는 뜻.

         

       백우진의 검이 번뜩이자, 사람들을 가두고 있던 뇌옥이 전부 잘려 나갔다.

         

       쿠구궁!

         

       소란이 일자, 벽에 붙어 앉아 멍하니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하나둘씩 몸을 일으켜 밖으로 빠져나왔다.

         

       백우진은 그들을 향해 외쳤다.

         

       “모두 나오시오.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소.”

         

       훤칠한 사내의 굵직한 음성을 들은 사람들은 그제야 깨달았다.

         

       고통의 순간이 비로소 끝났음을.

         

       죽지 않고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게 되었음을.

         

       “사, 살았어…!”

       “으아아! 살았다아아!”

       “흑, 흐흑…, 조금만 더 버텼으면 됐는데.”

         

       누군가는 기뻐했고, 누군가는 먼저 떠나간 이를 그리워했다.

         

       기쁨, 슬픔, 분노.

         

       온갖 감정이 뒤섞인 눈물을 쏟아내는 그들을 보며 안타까워하고 있을 때.

         

       그를 이곳까지 안내한 사내가 산통을 깼다.

         

       “이곳까지 데려다주었으니 이제 약속을 지키시오.”

       “…아, 약속.”

         

       그러고 보니 선택지를 주었더랬다.

         

       그것은 분명 약속의 일종이니, 지키는 수밖에.

         

       백우진은 곧장 놈의 목덜미를 쥐었다.

         

       그리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이들에게 소리쳤다.

         

       “밖으로 나가기 전에 그대들이 해야 할 일이 있소.”

         

       의아한 시선으로 쳐다보기 시작한 사람들 앞에 백우진은 제 손에 쥐고 있는 사내를 들어 보여주었다.

         

       “복수.”

         

       ‘복수’라는 단어에 그들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마치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악귀와도 같은, 악만 남아 빛나는 두 눈.

         

       그것을 맞이한 사내가 몸을 크게 떨며 허공에서 버둥거리며 백우진을 향해 울분을 토해냈다.

         

       “야, 약속이 틀리지 않소!”

         

       그러자 백우진은 그럴 리가 없다며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내가 분명히 선택지를 줬잖아.”

       “그, 그렇소. 분명 고통스럽게 죽을 건지, 단칼에 베여 죽을 건지 선택하라는…!”

         

       속사포처럼 쏟아진 말에 백우진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고개를 저었다.

         

       “어, 아닌데? 내가 준 선택지는 그게 아니었는데.”

       “그, 그게 무슨…!”

       “내가 준 선택지는 말야.”

         

       백우진의 손이 번개같이 움직여 사내의 마혈을 짚어냈다.

         

       갓 잡은 활어처럼 펄떡거리던 사내의 몸뚱어리가 빳빳하게 굳어 축 늘어졌다.

         

       “내 손에 고통스럽게 죽을 건지, 아니면 네가 납치한 사람들의 손에 죽을 건지 정하라는 거였어.”

       “이 미친 자식…!”

         

       사내가 욕지거리를 내뱉자, 백우진은 피식 웃으며 받아쳤다.

         

       “미친놈한테 미친놈 소리 들으니까 기분 더럽다, 야.”

         

       아니면 극찬인가?

         

       너스레를 떠는 백우진을 향해 사내가 울부짖었다.

         

       “어, 어째서 나란 말이냐! 다른 놈들은 다 목을 날려놓고서 어째서 나만…!”

         

       억울하다는 투로 말하는 사내를 향해 백우진이 차게 웃으며 친절히 답을 해주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들른 마을에 네놈의 흔적이 남아 있었거든.”

         

       저항하는 사람들을 거침없이 끌고 간 큼지막한 족적.

         

       그것은 분명 제 손에 쥐여 있는 놈의 것이었다.

         

       “고통을 그 몸뚱어리에 아로새기며 속죄해라, 짐승아.”

         

       그리고 다음 생에는 모기로 태어나 내 피를 빨러 오거라.

         

       “손바닥으로 아주 짓뭉개 죽여줄 테니.”

         

       내세까지 저주한 뒤, 백우진은 손에 쥔 것을 털어냈다.

         

       가볍게 허공을 날아간 몸뚱어리는 비쩍 마른 생존자들의 틈바구니에 떨어졌다.

         

       “으, 으…, 으아아아악!”

         

       참회인가, 분노인가.

         

       쉬이 이해하기 힘든 비명을 들으며 백우진은 다시 땅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가까운 마을의 하오문도를 통해 서찰을 남겼다.

         

       [땅 파면 혈교 나옴, 개꿀.]

         

       “……?”

         

       대체 어쩌라는 건지.

       

       하오문주는 이 서찰을 받고서 자세한 풀이가 담긴 새로운 답장을 받기까지 꼬박 이틀을 고민 속에 살아야만 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럼 저는 다음 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_ _)

    다음화 보기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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