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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0

     때때로, 인간은 승산이 없는 걸 알면서도 싸워야 하는 때가 있다.

     

     지금이 그렇다.

     황제를 상대로 아무리 가늠해도 황제를 죽일 수 없다.

     목을 베려고 하는 순간, 바로 허공에서 오러를 일으켜 목을 보호할 것이다.

     심장을 찌르려고 하는 순간, 몸을 비틀어 검을 겨드랑이 사이로 찌르게 만들면서 내 얼굴을 붙잡을 것이다.

     머리를 반으로 가르려고 하는 순간, 수직으로 떨어지는 오러 블레이드를 손으로 붙잡고 오러를 깨뜨리겠지.

     그러나.

     싸움이라는 건, 언제나 항상 1:1 대결을 말하지 않는다.

     부ㅡ웅!

     허공을 가른다.

     수평으로 휘두른 칼날이 황제의 얼굴 바로 앞을 스친다.

     피하지 않았다면 바로 눈이 수평으로 베였을 터.

     하지만 황제는 여유롭게 고개를 뒤로 젖히는 걸로 피했다.

     “잔재주를.”

     심지어 오러 블레이드를 휘두르는 순간, 아주 약간 더 오러의 칼날이 더 뻗어나간 눈속임마저도.

     가볍게 피했다면 그 눈속임에 당해 눈이 베였겠지만, 황제는 그것조차 피하기 쉽게 넉넉하게 고개를 뒤로 젖히며 한 걸음 물러났다.

     “자네의 공격은-”

     황제가 말하기도 전.

     와장창!

     나는 이미 유리창을 향해 몸을 던지고 있었다.

     깨진 유리조각의 너머로 어처구니없어하는 황제의 표정이 순간 보였으며-

     ‘역시나.’

     그 황제의 뒤, 문을 박차고 나타난 이들이 보였다.

     4명.

     남자, 여자, 노인, 어린 아이.

     서로 다른 색의 제복을 입고 있는 자들.

     일부러 이렇게 모은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하나하나가 전부 마스터라 얕볼 수 없다.

     ‘황제 때문에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황제의 곁에는 그를 지키는 수호자가 있지.’

     나와 황제의 대화를 듣지는 않았겠지만, 황제를 바로 옆에서 지키는 이들.

     아마도 검이 휘둘러지는 소리와 함께 문을 부수고 들어왔겠지만, 이미 나는 유리창을 깨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젠장.’

     황제가 쫓아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황제의 좌우로 흩어지는 네 명의 마스터가 내가 깨뜨린 유리창을 따라 쫓아온다.

     “그레이 지브롤터, 어째서!”

     

     청년이 나를 향해 외친다.

     “폐하께서 선의를 베풀어주셨는데, 어째서 네가!”

     

     그는 내가 가만히 있으면 황제의 모든 것을 물려받을 수 있음에도, 황제를 향해 검을 휘두른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알게 뭐야.’

     상대할 필요도 없다.

     나는 바닥에 착지하는 동시에 바로 발로 바닥을 박차고 달렸다.

     “놓치지 않는다, 그레이 지브롤터!”

     타다닥.

     나를 따라 착지한 네 명의 마스터들이 그대로 나를 쫓기 시작한다.

     타ㅡ앙!

     귀 옆으로 마탄이 스친다.

     머스킷이 없었는데 어디에서 마탄을 쏘았나싶었더니, 여자가 손에 아주 작은 머스킷을 들고 있었다.

     “폐하의 사랑을 거부하는 어리석은 자, 죽어라!”

     

     저 여자는 나와 황제를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백은공장을 달리면서 순간적으로 스치듯이 얼굴을 확인했지만, 그 눈빛에서 나오는 형형함은 보기만 해도 상당히 불쾌해지는 그런 기분이었다.

     “끌끌끌. 지브롤터, 지브롤터…!”

     머리가 벗겨진 노인은 아무래도 지브롤터에 대한 원한이 있는 게 아닐까.

     “…….”

     그리고 마지막.

     ‘아는 얼굴이네.’

     제국 8신장 중에서 가장 거슬리던 어린 꼬마아이.

     저주가 풀리기 이전의 멘테 경과 비슷한 체구를 가지고 있지만, 흑마법의 저주를 깨뜨리지 못하고 마스터가 된 상태에서도 저주를 품은 채로 지내는 자.

     ‘그래봤자.’

     분명 상대는 마스터 넷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오직 합스베르크 황제를 죽이기 위해서 검을 단련해왔다.

     “황제에게 가서 똑똑히 전해라.”

     나는 뒤에서 날아오는 마탄과 참격, 암기를 피하며 네 마스터를 향해, 그리고 그들의 뒤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황제를 향해 분명히 말했다.

     “쓰레기도, 재활용 할 수 있다고.”

     나는 백은공장의 울타리를 단번에 뛰어넘어, 평지를 달렸다.

     * * *

     30분 뒤.

     “죄송합니다, 폐하.”

     그레이 지브롤터를 쫓아 달렸던 이들 중 청년이 돌아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죄송하기는.”

     황제는 무언가 편지 같은 걸 쓰면서 느긋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평안한 그의 얼굴에는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다는 기색이 역력했고, 그 바람에 청년은 잠시 얼굴이 붉어졌다.

     “아인.”

     “예, 폐하.”

     “그레이 지브롤터를 상대로 1:1로 싸운다면 이길 수 있겠던가?”

     “……직접 해봐야 알 것 같습니다.”

     황제의 질문에 아인이라고 불린 청년은 쑥쓰럽다는듯 볼을 긁적였으나, 자신감을 내비치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

     “수배령을 내릴까요?”

     “아니. 괜히 수배령을 내려서 역사에 빌미를 제공할 필요는 없지. 그레이 지브롤터가 선전포고 직전, 제국에 잠시 있었다는 순간의 정보조차도 말이야.”

     황제가 손목시계를 손가륵으로 가볍게 툭툭 건드렸다.

     “가만히 놔두게. 대신 제국 전역으로 지시를 내려. 불순분자는 잡아들이라고.”

     “경계만 강화하면서 정작 잡지는 않으실 생각이십니까? 설마, 도망치게 하시려는…?”

     “원래는 비행선으로 데려다줄까 하는 것도 생각해봤는데, 도망치는 순간 깨닫게 되었지. 그건 그냥 나의 바람이었다는 걸.”

     황제가 팔짱을 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레이 지브롤터는 알았던 것이야. 내가 전쟁에 있어 가장 큰 변수…자신을 어떻게해서든 이 제국에 묶어두려고 한다는 것을. 나조차도 그레이 본인이 대화를 나누다가 도주한다는 선택지를 내리고 나서야 파악한 내 본심을, 그는 이미 검을 뻗기도 전에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야.”

     “그렇다면 더더욱 붙잡아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괜찮아. 제국 내에서 아무리 용을 써도 잡을 수 없을 테니. 차라리 노스트럼, 그리고 지브롤터에서 싸우는 게 낫지.”

     황제가 자신의 목을 움켜쥐는 시늉을 했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는 곳까지 몰아넣고 난 뒤에야, 그레이 지브롤터는 물러서지 않고 검을 휘두를 것이야.”

     “제가 막겠습니다.”

     “자네가?”

     “제 몸을 던져 심장이 찔리는 한이 있더라도, 폐하께서 반드시 그를 사로잡을 기회를 만들겠습니다.”

     아인의 말에 황제는 피식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래. 그 기세를 잃지 말도록. 나의 첫 번째 검이라면 말이지.”

     “예, 폐하.”

     “좋아. 프란츠에게서 보고는?”

     “변화는 없습니다. 말씀하신 세이레네 영애만 확보한 뒤, 백작가에 있는 모든 이들을 죽였다고 합니다.”

     “영지에서의 반란은?”

     “아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아직…새벽 6시밖에 안 되었으니까요.”

     “그런가. 하긴. 백작령 사람들 입장에서는 어처구니가 없겠군. 자고 일어나니까 제국군이 백작령을 활보하고 있고, 하늘에는 비행선이 떠 있고, 백작성은 제국군이 점령하고 있으니.”

     황제는 펜을 내려놓으며, 스스로 첨삭한 연설문을 집어들었다.

     “그렇다면, 성명을 해야겠군. 왜 제국군이 세이레네 백작령을 갑자기 점거했는지 말이야.”

     “…….”

     “고민이 많았어. 어떤 명분으로 전쟁을 일으켜야할까. 실질적인 명분이 따로 있다는 건 모든 제국인들이 다 주머니사정 때문에 알고 있지만, 적어도 겉으로 드러내는 표현은 어느정도 정제가 되어야 하거든.”

     “역사에 남을 명분으로서.”

     “그래. 그랬는데…마침, 좋은 명분이 생각났거든.”

     황제는 첨삭을 마친 연설문을 앞으로 뻗은 뒤, 품에서 네모난 마석을 하나 꺼냈다.

     “우리는 인간과 대화하기 위해 계속 시도를 했으나, 돌아오는 것은 짐승의 손톱 뿐이었다.”

     “…….”

     딸칵, 하는 소리를 내며 마석의 뚜껑이 열렸다.

     그리고 곧 그 안에서 푸른색의 불꽃이 흘러나왔다.

     “노스트럼이라는 짐승을 상대로 우리는 평화롭게 지내려고 했으나, 짐승이 곳곳에 털을 날리고 변을 뿌리고, 심지어 사람을 상대로 손톱을 휘두르는 걸 넘어 기어이 사람을 물려고 한다면 이야기는 다르지.”

     “미친개는 도살한다, 그겁니까?”

     “그걸 최대한 정제하여 표현하자면, ‘노스트럼은 너무나도 야만적이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야.”

     “…조금, 명분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만.”

     아인의 말에 황제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연설문에 불을 붙였다.

     “그게 초고였다네. 그런데 그레이 지브롤터와의 이야기를 통해, 나는 생각이 달라졌어.”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다른 거 있나.”

     황제는 책상 한 쪽에 놓인 황금을 집어들었다.

     “모든 것은 오늘을 위한 연기였던 것이야.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것은 그저 이 날을 위한 수싸움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지.”

     “저기….”

     “궁금하면, 얌전히 연설을 듣기나 하게. 내가 그레이 지브롤터와 이야기를 나누며 깨닫게 된 것을.”

     황제가 황금을 손으로 우악스럽게 구기며, 의자 등받이에 걸쳐둔 코트를 집어들었다.

     “전쟁에 무슨 명분을 외치든, 결국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 * *

     황야를 달리고, 숲을 가로지르며, 전력으로 달렸다.

     “후, 후아, 하아.”

     

     이토록 빠르게 장거리를 달린 게 얼마만인지 모를 정도로 숨이 가쁘다. 

     어렸을 때, 정확히는 회귀 전에 수련을 할 때 아버지가 갑자기 발목에 족쇄를 채우고 ‘백작성에서 협곡까지 30분 안에 왕복으로 다녀와라’라고 했을 때보다도 더 빨리 달렸다.

     하지만 그래야 한다.

     지금은 왕복이 아닌 편도라고 해도, 제국의 끝에서 협곡까지 달려야 하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도시가 보인다는 것.’

     도시가 있다면 일단 더 이상은 달릴 필요는 없다.

     약간의 편법과 범죄에 손을 대기는 해야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수단과 방법을 고르기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다.

     ‘전형적인 제국 지방 도시군.’

     멀리 건물들이 보인다.

     제국에 직접 와본 이들만이 알 수 있는, 천편일률적인 갈색 벽돌집들이 보인다.

     타ㅡ앗.

     사람들이 보지 않는 틈을 타서 바로 도시로 진입한다.

     노스트럼과 달리 성벽이나 울타리 같은 건 없기에, 적당히 도로를 따라 새벽부터 조깅을 하는 사람처럼 달리며 도시로 들어와 골목 사이로 스며든다.

     개성이라고는 전혀 없이, 오직 정해진 양식에 정확하게 규격을 맞춰 지어진 집.

     직선이 교차하는 도로에 맞게 지어져, 간판이나 창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직선으로 이루어진 건물들.

     삶의 여유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오직 속도와 효율만을 추구하는 그런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건물들이 있는 도시 속으로 나는 숨어들었다.

     ‘여기는 어디지?’

     제국어를 읽는다. 

     가장 가까운 건물에 새겨진 제국어는 ‘티에라리온 시티’라는 제국식 행정체계가 적혀있었다.

     ‘이사벨라 황태자비의 영지로부터 떨어진 공업도시인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와본 적이 있다.

     아마도 이 근방에서 제국의 비행선이 대량으로 개수되는 공장이 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아. 알립니다. 티에라리온 시티의 시민 여러분. 티에라리온 시티에서 전합니다.]

     마나의 파장과 함께, 음성이 도시 전체에 퍼지면서 내 귀에도 흘러들어왔다.

     [잠시 후, 황제 폐하의 선언이 있을 예정입니다. 시민 여러분들께서는 하던 일을 멈추고, 황제 폐하의 선언에 귀를 기울여주십시오.]

     방송이 흘러나오자마자 건물 밖으로 시민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뭐야…? 폐하께서 도대체 무슨…?”

     “신년 기념사라도 하시는 거 아니야?”

     “어휴. 안 그래도 황금 때문에 난리인데, 연설해봐야 무슨….”

     “어쩔 수 없잖나. 황금이 물처럼 쏟아지는 곳이라는데.”

     제국의 황제를 향해서도 신랄하면서도 이해한다는 시민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안녕하신가, 테르시안 제국의 시민들이여.]

     황제의 선언이, 도로 곳곳에 설치된 음성증폭기를 통해 도시 전체에 퍼진다.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죽었다.]

     “…….”

     도시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순간적으로 ‘누구?’라고 반문하는 이도 있었지만, 그 질문은 그 이름에 해당하는 사람이 누군지 몰라서 묻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여전히. 노스트럼 왕국에서는 지금도 땅에서 황금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누군가는 말했다.

     적어도 사람이 황금으로 솟아나는 그런 마법은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죽으면 끝나는 게 아니냐고.

     [이대로라면 협곡을 넘어, 황금이 제국의 모든 땅을 덮어버리겠지.]

     그렇지 않았다.

     황금은 지금도 늘어나고 있다.

     [전쟁이다. 이것은 우리가 황금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생존투쟁이다.]

     무한에 가까운 황금.

     [황금에 파묻혀 익사하기 전에, 우리가 모든 황금을 통제할 것이다.]

     그 황금을 정복하는 것이 곧, 노스트럼을 정복하는 것.

     [나를 따르라. 제국이여. 황금이 그곳에 있다.]

     제국력 100년 1월 1일.

     [노스트럼의 황금 평원도, 황금의 드래곤도 전부 우리의 것이 될 것이다.]

     합스베르크 폰 테르시안 황제가 전쟁을 선포했다.

     [제국은 이번에야말로 노스트럼을 차지할 것이다.]

     대륙의 모든 황금을 통제하기 위하여.

     [제국이여. 총을 들어라. 황금은 그대들의 것이다.]

     황금을 빼앗기 위해서.

     [그리하여, 우리는 나아갈 것이다. 드래곤의 기적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세상이 아닌, 지혜로 역경을 극복하는 인간의 시대로.]

     황제가 선언한다.

     [상식이 통하는 시대로.]

     비상식의 종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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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전명 : 상식배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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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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