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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0

   세 번째 방으로 넘어가는 문의 앞에서 페이비가 위대한 존재를 향해 기도를 올린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을 위한 축복의 기도를.

   

   태어날 때부터 신을 모셔온 성직자가 두 손을 끌어 모음에 따라 그녀의 주변에서 신성이 퍼져 나간다.

   

   온기를 지닌 빛의 한 가운데에 선 페이비의 모습은 그 누구라 할 지라도 그녀가 성녀임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성스러웠으니.

   

   아서와 조이는 물론이고 평소 가만히 있질 못하는 프레이마저도 페이비의 기도 앞에서는 얌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기도가 얼마나 이어졌을까.

   

   어느 순간 어두운 동굴을 가득 채우던 온기가 세 사람의 몸에 깃든다.

   

   편안하단 생각을 하게 만들어주는 따스함.

   

   몸 깊은 곳에서부터 퍼져나가는 활력.

   

   이전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가벼워진 몸.

   

   평소 제멋대로이던 때와는 다르게 정중함을 지니게 된 마력.

   

   축복을 받기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바뀐 몸에 아서가 쓴웃음을 흘린다.

   

   성녀님께 축복을 받는 것이 한 두 번은 아니다만 매 번 감탄을 하게 되는 군.

   

   과거 처음 축복을 받았을 적에는 변화가 너무나도 커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할 지경이었지.

   

   그럭저럭 적응을 한 지금도 바뀐 몸을 제대로 다룰 수 있는가라고 물어본다면 도저히 그렇다고는 말 못 하겠군.

   

   본인은 프레이나 루시 같은 천재가 아니라 모든 부분에서 어중간한 범재인 듯하니 말이야.

   

   옆을 봐라. 통통 뛰어 오르던 프레이가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지 않나.

   

   벌써 어떤 식으로 움직여야 할지 감을 잡은 모양이야.

   

   하하. 저게 진짜 제대로 된 천재지.

   

   본인처럼 모든 부분에서 어중간한 녀석은 범재라 불러야 하고.

   

   아서가 스스로의 재능에 씁쓸함을 느끼던 그 때에 페이비가 눈을 떴다.

   

   “축복은 끝났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성녀님.”

   

   방긋 웃는 페이비에게 감사를 전한 아서는 이내 프레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준비됐나?”

   “응. 완벽.”

   “조이. 그대는?”

   “준비는 진즉에 끝내뒀습니다.”

   “좋아. 어디 한 번 해보자고.”

   

   신호에 맞추어 네 사람이 단번에 문 안으로 뛰어듬에 따라 주변의 풍경이 뒤바뀐다.

   

   풀 한 포기 없는 허허벌판.

   

   그 위에 바글거리고 있는 악마의 형상을 한 골렘들.

   

   본래라면 저들 중에서 표식을 지닌 것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작업이 우선시 되어야 할 터이나 아서 일행은 그 과정을 과감히 생략했다.

   

   쓰러트려야 할 골렘을 바로 찾아낼 방법이 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표식을 찾아낼 이유가 없다 판단했을 뿐.

   

   “가볼게.”

   

   예정해 두었던 대로 조이가 벌판 전체를 대상으로 한 대마법을 준비하고 페이비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한 신성장벽을 구성하는 동안 프레이는 저 한 마

   디만을 남기고서 앞으로 내달렸다.

   

   자신들을 달려오는 프레이를 먹잇감이라 생각한 것일까.

   

   표식을 지니지 않은 여러 골렘들이 그녀를 향해 달려든다.

   

   족히 열은 될 법한 녀석들의 협공.

   

   그를 맞이하게 된 프레이는 아무런 감흥도 없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골렘들의 다리에 절단면이 새겨지더니 앞으로 내달리던 그들의 몸이 다리와 나뉘어 앞으로 고꾸라진다.

   

   아서는 그 풍경을 굳은 눈으로 바라봤다.

   

   내가 예상한 바가 맞다면 골렘의 폭주는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이전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폭주의 조건은 골렘의 핵이 손상되었는가 아니었는가 였으니까. 그러니 다리만을 깔끔하게 베어낸 지금이라면 분명.

   

   “됐다.”

   

   골렘의 폭주가 일어나지 않는 것을 확인한 아서는 웃음과 함께 손을 거머쥐었다.

   

   이럼 골렘을 구분하는 데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그 뿐일까. 무력화된 녀석들을 단번에 일소해 세 번째 방을 공략하는 시간을 단번에 좁힐 수 있지.

   

   자신의 계획이 현실이 되었음에 기뻐하던 아서는 프레이를 돕기 위해 검을 빼어 들려고 했다.

   

   “3왕자님. 가만있어.”

   

   허나 그것을 프레이가 가로 막았다,

   

   “얘네 상상 이상으로 까다로워. 3왕자님으론 무리.”

   “본인이 그대에 비해 검술 실력이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이 정도는.”

   “봐.”

   

   프레이는 아서의 말을 끊어버리면서 골렘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다리를 노리는 것이 명백한 움직임.

   

   아서는 그녀의 검이 보여준 궤도를 본 순간 그녀가 목표를 이루리라는 것을 한 치도 의심하지 않았다.

   

   허나 그건 아서의 착각이었다.

   

   검이 닿기 직전 골렘이 갑자기 몸을 비튼 것이다.

   

   다리가 아닌 자신의 핵이 베어나가도록.

   

   “신경 안 쓰면 이런다니까.”

   

   프레이는 그를 예상하기라도 한 것 마냥 중간에 자신의 검을 멈췄다.

   

   그에 따라 골렘이 몸을 비튼 것은 오히려 자신의 틈을 내어준 셈이 되어버렸고 재차 움직인 그녀의 검이 골렘의 팔과 다리를 잘라 녀석을 무력화시켰다.

   

   “그러니까 3왕자님은 가만있어. 나 혼자서도 충분해.”

   

   여느 때와 같은 프레이의 무심한 어투에 아서가 검손잡이를 꾹 잡았다가 이내 놓았다.

   

   마음이 불편한 것은 별개로 프레이가 이 일의 적임자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알겠다. 본인은 만일의 사태만을 대비하도록 하지.”

   “응. 부탁.”

   

   아서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나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조이가 마법을 완성했다.

   

   자신의 주변에 그려 두었던 네 개의 마법진을 엮는 것으로 만들어 낸 기적이.

   

   현재 조이가 구현할 수 있는 최대치의 마법 중 하나가.

   

   “켄트 영애!”

   “알겠어.”

   

   그녀가 프레이의 이름을 부르기 무섭게 저 앞에서 날뛰던 프레이가 일행의 옆에 도착했고 그를 기다렸다는 듯 페이비가 즉시 일행의 주변을 신성장벽으로 감싼다.

   

   “준비 끝났어요! 조이!”

   “알겠습니다! 모두 눈 감고 귀 막아요!”

   

   어느 비 오는 날 저 멀리에서 떨어져 소리만으로 생명에게 두려움을 전하던 재앙이 악마를 심판하듯 벌판에 내리 꽂힌다.

   

   눈꺼풀 너머로도 느껴지는 압도적인 광량.

   

   장벽의 너머로 전해지는 경외로운 충격.

   

   청각을 지워버릴 것만 같은 굉음.

   

   이 모든 것이 벌판을 스치고 지나간 후.

   

   벌판에는 번개가 스치고 지나갔단 흔적이 남았을 뿐 이외의 어떤 것도 찾아볼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이 정도 위력을 기대한 건 아니었다만.”

   

   조이의 마법이 만들어낸 풍경을 눈에 담은 아서는 헛웃음을 흘렸다.

   

   벌판을 일소해달라 부탁한 게 나긴 하다만 이건 너무 과하지 않은가. 이 위력의 절반만 되었어도 충분했을 듯 하다만.

   

   한 소리를 하기 위해 옆으로 고갤 돌린 아서는 창백하게 질린 조이의 얼굴을 보고서 상황을 깨달았다.

   

   “조이. 네 녀석 설마 이 위력을 예상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냐.”

   “…그게 어려운 마법이다보니.”

   “심지어 마법에 휘둘리다 모든 마력을 날려버리기까지 하다니.”

   

   대체가 이 녀석은 왜 중요한 순간에 미끄러지는 것인가!

   

   이래서야 오늘 하루 동안 그대가 짐덩어리로 변모하지 않나!

   

   아서의 입술이 떨리는 것을 본 조이는 품 안에서 부채를 꺼내 얼굴 절반을 가린 후 그 위로 슬며시 페이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도움을 청하는 어린애 같은 눈짓이었지만 페이비는 평소와 다르게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엔 저희까지 위험에 처할 뻔 했습니다. 조이.”

   “…이럴 수가.”

   “당신의 실력이 발전한 건 알겠지만…”

   

   믿었던 이에게서 시작된 잔소리에 조이가 다급히 아서 쪽에 눈길을 주었다.

   

   방금 전까지 그대에게 화를 내던 자에게 구원을 바라는 것이냐.

   

   하아. 너무도 실없어서 무어라 할 마음조차 들지 않는 군.

   

   “성녀님.”

   “…아. 죄송합니다. 3왕자님. 조이를 혼내야 한단 생각에.”

   “아뇨. 잘 하고 계시단 말씀을 드리려했습니다. 녀석이 정신을 차릴 때까지 잔소리를 해주시죠.”

   “아아. 그럼 기꺼이 배려를 받겠습니다.”

   

   페이비의 미소를 본 조이의 눈가가 떨린다.

   

   “페이비? 제가 지금 탈진한 상태라.”

   “괜찮습니다. 조이. 편한 자세로 쉬면서 제 조언을 마음에 새겨주시기만 하면 되니까요.”

   

   그렇게 조이가 페이비와 즐거운 설교 시간을 보내러 간 후 아서는 미간을 찌푸린 채 앞으로에 대한 생각을 했다.

   

   파티의 포대 역할을 해줄 녀석이 무용지물이 되어버렸으니 오늘 이 이상 던전을 진행하는 건 힘들 것이야.

   

   대안을 생각 하자꾸나.

   

   여태까지 루시 알른 그 녀석이 만들어낸 던전의 특성상 네 번째 방 또한 기량보단 기믹을 파악하고 분석하는 능력이 더 중요할 터.

   

   일단 머리를 박아 단서를 찾고 바깥에서 분석을 진행하는 식으로 가면 속도는 느려지겠지만 크게 뒤처지진 않을 것이야.

   

   그리 판단을 내린 아서는 페이비의 길고도 긴 설교가 끝나고 혼이 나간 듯한 조이와 어딘가 상쾌해 보이는 페이비가 돌아오고 나서 다음 방으로 향했다.

   

   “…여긴 던전 시작 부분에 자리하던 복도이지 않은가.”

   

   던전의 네 번째 방은 던전에 진입했을 때 볼 수 있던 복도와 비슷했다.

   

   바닥에 깔린 카페트나.

   

   우중충한 조명이나.

   

   벽의 색깔 같은 것이 말이다.

   

   다만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복도에 장식되어 있던 여러 물품들이 자취를 감추었다는 것이겠지.

   

   “조이. 분석을… 못 하겠군. 마력을 모두 소모한 상황이니.”

   “…죄송합니다.”

   “됐다.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 경험하는 셈 치면 되니까.”

   

   아서 일행은 던전에 진입할 때 그랬던 것처럼 복도의 끝이 나올 때까지 나아가보기로 했지만 안타깝게도 복도의 끝을 보는 데엔 실패했다.

   

   중간에 위협적인 적이 나온 것은 아니었다. 목숨을 위협하는 함정이 나온 것도 아니었다.

   

   길이 몇 갈래로 나뉘어 어디가 어딘지를 찾을 수 없게 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복도가 끝나지 않았을 뿐.

   

   “걸음을 멈추고 단서를 찾아보지.”

   

   이 이상 앞으로 나아가는 게 무의미하다 판단내린 그들은 복도 이곳저곳을 뒤지며 무언가 단서를 찾아내려 노력했다.

   

   카펫을 뒤지고.

   

   벽이나 바닥에 무언가 장치가 되어있는지를 살피고.

   

   심지어 벽이나 바닥, 조명을 공격해보기까지 했지만 아서 일행은 그 어떤 단서도 찾아낼 수 없었다.

   

   차라리 늑대 같은 괴악한 것이 나타나주길 바랄 정도로 막막한 상황에 아서가 미간을 찌푸린다.

   

   루시 알른.

   

   그 녀석의 성향 상 답도 없는 미로를 만들어두진 않았을 것이다.

   

   두 번째 방만 해도 그렇다.

   

   그녀는 의도적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할 부분을 잔뜩 집어넣었어.

   

   늑대가 환각이란 걸 알아차릴 수 있도록 말이다. 분명 이 방에도 무언가 단서가 있을 터인데.

   

   “시작 때 보았던 복도를 다시 보러가고 싶군. 이 곳에 단서가 없다면 분명 거기에 단서가 있을 테니.”

   

   지금 생각해보니 왜 내가 그것을 놓치고 있나 싶다.

   

   루시 알른 그 철저한 녀석이 아무 의미 없이 그 복도를 만들어 두었을 리가 없잖은가.

   

   “그를 위해선 던전을 빠져나가야 할 터인데.”

   

   탈출을 위해 자해라도 해야 하는 가 아서가 고민하던 그 때. 목소리를 듣기라도 한 것처럼 그의 앞에 종이 한 장이 생겨났다.

   

   [던전에서 탈출하고 싶다면 아래의 절차를 따라 목소리를 내 주세요.]

   

   이런 상황을 예상해 탈출을 위한 방법도 만들어 둔 것이냐.

   

   역시 루시 알른이라는 생각을 하던 아서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종이 뒤 쪽을 살폈다.

   

   그 심술궃은 녀석이라면 이런 예상치 못한 곳에 무언가 단서를 남겨두었을 가능성이.

   

   [혹시 뭔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어?♡ 자신의 번뜩이는 관찰력을 칭찬하고 싶었어?♡ 푸하핳♡ 진짜 멍청하네♡ 기말고사에 그런 걸 넣어둘 리 없잖아♡ 편법을 좋아해선 언제까지고 허접한 채로 살아야 할 걸?♡]

   

   종이를 꾸깃꾸깃 구긴 후 자신의 화염마법으로 태워버린 아서는 다시금 루시에게 굴욕을 안겨줄 것이라고 다짐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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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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