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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0

       흑주의 여파는 마왕군 본영까지 닿았다.

       

       잿더미처럼 변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마수들이 수군거렸다. 원자폭탄과는 차원이 다른 폭음이 들렸었다. 정령왕이 한 것인가, 여신이 직접 나서기라도 한 것인가. 진영에선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창천 파스모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겉으로는 태연했지만, 속은 모닥불처럼 타들어가고 있었다.

       

       ‘이건 위험하다.’

       

       파스모는 마왕 쪽으로 눈을 흘겼다. 때마침 마왕은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그가 형체 없는 얼굴을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이럴 줄 알았지.”

       

       마왕은 거뭇해진 하늘을 올려다보며 뒷짐을 졌다.

       

       “하늘이 저리 변해서 캐슬 브라보를 띄울 수 없게 되었다. 다른 항공 장비도 마찬가지야. 이제 우리는 제공권을 잃었다.”

       

       침착하게 상황을 분석하고 추량한다. 마왕이 마왕답게 있을 수 있는 무기였다.

       

       그가 턱 부분의 촉수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일단 호천의 행방을 수습하는 게 우선일 것입니다.”

       

       창천 파스모가 눈치를 보다가 그리 답했다.

       

       마왕은 허리를 곧추세우며 헛기침만 연신 해댔다. 그는 얼굴이 없었기에 행동으로 자신의 기분을 표현한다.

       

       ‘나를 마뜩잖게 여기시는 모양이군.’

       

       파스모는 침을 삼키며 기다렸다. 목덜미에 칼이 들어온 것처럼 스산한 기운이 돌았다.

       

       “흑주가 터졌다면 호천은 확실히 죽었을 것이다. 잔당조차 남지 않은 상황인데 시신을 찾으려고 해도 소용없지.”

       “시간 낭비란 말씀이군요. 그렇다면 당분간 동태를 보며 날이 좋아지기만을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그것도 방법이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사이에 남은 정령왕이 전선에 모습을 드러낸다면 후퇴해야 하지 않겠나?”

       

       마왕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여신이었다. 정령왕은 그 여신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방해물에 불과했다.

       

       “정령계를 직접 노려서 들어갈 수만 있다면 좋겠지.”

       “무모한 방법입니다.”

       “아네. 그러니까 머리를 쓰려는 거 아닌가?”

       

       마왕의 계획은 이러했다.

       

       세 정령왕을 한 곳으로 유인한다. 마왕군의 주력이 정령왕들과 접전을 벌이는 사이, 별동대를 조직하여 후방을 급습한다.

       

       후방에 있는 상천을 흡수한 뒤 그대로 정령계로 진격. 정령왕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에 전쟁을 갈무리한다.

       

       설명을 들은 파스모가 고개를 까딱였다.

       

       “정령왕을 유인하는 역할은 누가 합니까?”

       

       마왕은 씩 웃으며 남서쪽을 가리켰다.

       

       “마침 딱 좋은 미끼가 있지 않나.”

       

       1번 집단군이 위치한 방향이었다.

       

       

       **

       

       

       9월 1일. 민천의 군단은 두 갈래로 나뉘어 진격했다.

       

       요르문간드 본인은 해안선을 따라 나아갔다. 포대를 파괴하며 호천의 남은 해군을 차례로 상륙시켰다.

       

       “모두 여를 따르라. 죽을 각오로 싸워야 한다!”

       

       요르문간드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그녀는 항상 선두에 섰다. 친족인 와이번들을 데리고 육지와 공중을 휘어잡았다.

       

       날 수 있는 용족이 공군으로 배치됐다. 이들이 부분적으로 제공권을 되찾았다.

       

       그러고 나면 지상에 있는 부대가 기동전을 펼쳤다. 정석적이고도 아려한 전술이었다.

       

       지상의 부대는 말 그대로 혼종이었다. 날개 없는 금안족과 수인이 주를 이룬다. 여기에 항복한 인간과 엘프도 포함되었다.

       

       “정말… 전쟁이 끝날 때까지 살아 있으면 원래 살던 곳으로 돌려보내 주는 거 맞죠?”

       

       포로로 잡혔다가 마왕군에 강제 징집된 인간 한 명이 물었다. 한 차례 전투를 끝마치고 돌아온 요르문간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이 끝나면 그대들 또한 우리 공동체에 들어온다. 반항하지 않는 한 안락한 삶을 보장하겠네.”

       “오오!”

       

       인간과 엘프들이 호응했다. 살려준다는데 호감이 갈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요르문간드는 포로를 재활용했다. 이마저도 노약자나 아녀자는 전선에 참여시키지 않았다.

       

       공동체를 아끼는 드래곤의 본능 때문이었다. 현재 인간과 엘프들은 같은 편이 아니지만, 전쟁이 끝나면 마왕령에 편입된다. 전쟁이 끝나기 전부터 민심을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저항하지 않는다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반복한다. 스태프를 버리고 투항하거라!”

       

       진격 사흘째. 요르문간드는 회유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마왕군이 무차별적인 살상만 하는 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당연히 이를 아니꼽게 보는 부하도 있었다.

       

       “민천 각하,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진격한 지 2주가 지났을 무렵.

       

       요르문간드의 부관이 다가와 물었다. 상관 앞인데도 불구하고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고 있다.

       

       “보다시피 항복을 권유하고 있다. 뭐냐. 문제 있느냐?”

       “번거로운 일을 하고 계십니다. 전부 살상해도 문제없을 텐데요.”

       “그랬다간 전쟁이 끝나도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거다.”

       “조금 더 납득 가능한 이유를 주십시오.”

       

       부관은 숨을 씨근거리며 제 상관을 보챘다. 얼굴이 붉어진 것이 화가 난 듯했다.

       

       “저희는 동족을 죽인 저 간악무도한 놈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쓸어버리고 싶습니다.”

       

       그녀의 부관도 용족이었다. 즉, 민천의 부관은 사적으로는 그녀의 친족이기도 했다. 당연히 리바이어던의 친척이기도 했고.

       

       “해룡의 복수를 해야 합니다.”

       

       해룡 리바이어던은 상천 에테르에게 죽었다. 그리고 지금, 에테르는 엘프국에 붙었다.

       

       “엘프들을 죽이고 나아가다 보면 전 상천이 있겠지.”

       “그러니까 드리는 말씀입니다! 포로를 두면 물자와 인력만 낭비할 뿐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수도까지 나아가서…!”

       “이보게, 서펜트.”

       

       요르문간드는 손을 휘적거렸다. 몇 번 허공을 춤추던 그녀의 손이 부관의 머리에 얹어진다.

       

       “여 또한 상천에게 복수하고 싶네. 동족을 죽이고 배신한 자를, 어찌 사랑하겠는가?”

       

       만약 그럼에도 사랑한다면 자신은 성인일 것이다. 또한 그 행위 자체는 관용일 것이다.

       

       요르문간드는 스스로 생각했다. 자신은 그 정도로 성정이 좋지는 못하다고. 그러니까 용인 동시에 마수였던 것이라고.

       

       하지만.

       

       “지난 두 주를 생각해 보게나. 상천은 흑주를 떨어뜨리지 않았네. 배신했을지언정 일말의 양심은 남아 있다는 소리이지.”

       “…그렇다면?”

       “도박은 성공했다네.”

       

       그제야 부관은 상관의 의중을 알아챌 수 있었다.

       

       “포로를 인질로 쓰고 계셨군요.”

       “그렇네.”

       

       요르문간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양측 모두 핵무기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네. 적어도 우리는 상천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지. 그러면 뭐가 남았겠는가?”

       “재래식 전력입니다.”

       “아니, 하나 더 있지.”

       

       부관인 서펜트가 고개를 갸웃했다. 요르문간드는 보이지 않는 눈을 끔뻑거리며 동쪽을 짚었다.

       

       정령왕의 군세가 몰려오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1번 집단군은 정령들과 마주쳤다. 정령들은 그동안의 설욕을 씻으려는 듯 마수들을 일격에 해체해 나갔다.

       

       “부관, 상황 보고하라.”

       “캉트 해안선 방향으로 수군(水君) 시큐엘이, 동북쪽 산맥 방향으로 지군(地君) 노움이 전선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두 마리나 왔는가.”

       

       쾌진격에 제동이 걸리는 순간이었다.

       

       상황은 가면 갈수록 악화되고 있었다. 잘 훈련받은 정예군이 버티고 있었지만, 정령 상대로는 밀리는 감이 없잖아 있었다.

       

       정탐을 계속하던 부관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말했다.

       

       “하, 한 마리 더 있습니다.”

       “구체적인 방향을 읊어라.”

       “적군 3군단이 위치한 곳입니다.”

       

       요르문간드가 눈살을 찌푸렸다.

       

       “3군단이라면 펙튼이 지휘하는 부대다. 성가신 놈들이군. 정예 중에서도 정예라고 할 수 있으니. 그런데 정령왕까지 있다고?”

       “공군(空君)인 에어리얼입니다. 저 치녀가 우리 진영을 갉아먹고 있습니다.”

       

       동남풍이 요르문간드의 귓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에어리얼이 일으킨 순풍이었다.

       

       “정신이 오염되는 것 같군.”

       

       요르문간드가 등날개를 퍼덕였다. 날갯짓 한 번에 주변 나무들이 세차게 흔들렸다. 소슬하고 적적한 가을바람이었다.

       

       민천의 입가에 고소가 맺혔다.

       

       “정령왕들이 여를 죽이려고 안달이 난 모양이로구나. 좋아, 받아주지.”

       “나가시려는 겁니까? 안 됩니다. 너무 위험합니다!”

       

       요르문간드는 만류하는 부관을 밀쳐냈다. 그녀가 균형 잡을 때 쓰는 지팡이를 짚으며 발을 내디뎠다.

       

       “각하, 이상하지 않습니까? 각하를 잡으려고 정령왕이 셋이나 모였습니다. 마왕님을 잡으러 가도 모자랄 판인데 말입니다.”

       “저들도 아는 게지. 본래 전투 수준만 놓고 따지면 여가 더욱더 강하다는 것을.”

       “대전쟁 당시 시각을 잃어버리지 않으셨습니까? 외람되오나 각하께선 저들을 모두 받아낼 수 없으십니다.”

       “대신 피트가 있네.”

       

       비록 맹인이라지만 요르문간드에겐 눈이 하나 더 있었다. 열원을 감지하는 기관인 피트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고, 죽음은 두렵지 않다. 1천하고도 5백 년을 살아왔는데 아무렴. 다만 여가 두려운 것은, 미래를 보지 못함에 있겠지.”

       

       요르문간드는 묵묵히 앞으로 나아갔다. 열기관을 통해 정령 백여 마리의 움직임을 포착했다.

       

       정령들이 용렬한 기세로 다가왔다. 요르문간드의 위치는 늘 최전방이었다. 다들 자신의 목숨을 노리려고 혈안이 되어있었다.

       

       민천이 슬쩍 입을 벌렸다.

       

       “죽어라.”

       

       [삼중항(三重項) ─ 종식(終式)]

       

       [방혈(放血)]

       

       용의 아가리에서 광풍이 뿜어져 나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마데스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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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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