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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1

    ‘비록 악기를 잘 못 다룬다고 해도, 결국 가지고 난 악기인 ‘목소리’를 잘 다룰 수만 있으면 아무런 상관이 없다.’

    바로 그것이 루크의 발상이었다.

     

    “자아. 헬레나, 노래해보자.”

     

    그렇게 루크의 막무가내와 다름이 없는 제안이 시작되었다.

     

    “노래를 하라니……. 지금 여기서?”

     

    헬레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황당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상황 자체가 굉장히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그동안 자신은 제대로 노래를 부를 기회도 없었거니와…….

     

    “숲 속에서? 이렇게 아무것도 없이?”

     

    루크가 노래를 부르라며 헬레나를 데리고 나온 곳은, 루크의 집 근처의 숲이었기 때문이다.

    주변에는 잎사귀가 대부분 떨어진 나무와 연두색과 갈색사이의 어중간한 색상의 풀만 보일 뿐, 뭔가 노래를 위한 어떠한 장치도 마련되어있지 않았다.

    기껏해야 루크가 가지고 나온 첼로 하나가 전부.

    하지만 루크는 오히려 그게 어떤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피해를 끼치는 게 아니면 네가 노래를 어디에서 부르든 무슨 상관이 있지?”

     

    물론 아무리 좋은 노래와 연주라고 해도, 그것을 원치 않는 존재에게는 그것은 단순한 소음공해 이상의 것이 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남들에게 소음으로 피해를 끼치는 것만 아니라면 어디에서 연주를 하고 노래를 하던 상관이 없지 않나?

     

    “나는 오히려 정령이 선호하는 장소가 숲이니, 숲이 더 적합하다고 본다만.”

     

    게다가, 정령 적합도를 측정하기 위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라면 정령이 더 많은 숲 속에서 부르는 것이 올바르기도 하다.

    비록 에이레스는 지금 반딧불이가 없는 시기라서 정령을 직접 부르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지 않은가.

     

    “너무 떨지 말고 자신감을 가지고 아무런 노래나 한번 불러 보거라. 너는 마침 목소리도 상당히 예쁘지 않느냐.”

     

    그것은 진실이었다.

    헬레나의 목소리는 아카데미의 아이들 중에서도 꽤나 맑고 깔끔한 편이라서, 상당히 귀여운 톤이었다.

    목소리도 사실은 타고나는 재능의 영역이었으니, 헬레나는 목소리에만큼은 확실히 재능이 있다고 볼 수 있으리라.

     

    하지만 헬레나는 여전히 고개를 저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치, 칭찬은 고마운데……. 그래도 너무 갑자기잖아! 나, 난 노래 같은 거 해본 적 없단 말이야!”

     

    그렇다.

    노래라는 행위 자체에 그다지 익숙하지 못한 헬레나는 루크의 말에 그야말로 아무런 감도 잡질 못 하고 있었다.

    악기를 좀 다룰 줄 아는 것도 그저 그것이 교양의 일종이라서 배운 것이지, 음악에 뜻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으며, 평소에도 헬레나는 음악을 별로 즐기는 아이가 아니었고, 당연히 평소에 듣는 좋아하는 노래도 없었다.

    부른다고 해 봤자 동요 정도인데, 그게 앞에다 시루드나 정령을 데려다 놓고 부를 만한 노래는 절대 아니었다.

     

    만약 여기서 자신이 ‘아빠 오크, 엄마 오크, 아기 오크’같은 노래를 부르느니, 차라리 아무런 노래도 부르지 않는 것이 훨씬 나았다.

     

    “……?”

     

    마침 헬레나와 시선이 마주친 시루드는 의문스런 표정을 지어냈고, 헬레나는 황급히 시선을 루크에게 돌렸다.

     

    “그, 그냥 나 안 하면 안 될까? 나 사실 정령사에 별 관심 없는데…….”

    “…….”

     

    헬레나의 일관적인 반응에 루크는 턱을 쓰다듬었다.

     

    ‘흐음, 이러면 조금 곤란한데.’

     

    대체 왜 저렇게 부끄러워하는 것일까?

    그야 그럴 것이, 만약 누군가 자신에게 정령사의 자질이 있음이 의심되니 한번 노래를 불러보라는 제안을 한다면 루크는 망설임 없이 떠오른 아무 노래나 불러보았을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노래는 딱히 부끄러운 행위가 아니지 않은가?

     

    “으음…….”

     

    심지어 재능이 있어 보인다고 하는데도 저러는 것은 분명 헬레나에게 무언가 자신이 캐치하지 못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

    곰곰히 그 이유를 생각하던 루크는 금세 그 실마리를 붙잡을 수 있었다.

     

    ‘으음, 생각해보니…….’

     

    일종의 집단심리와 비슷한 것인데, 인간은 집단의 일반적인 상황에서 통용되는 틀에서 벗어나는 행위를 꺼리는 특성이 있다.

    그것은,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첫번째’가 되는 것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첫번째’는 앞선 이를 보고 학습할 수 없기에, 모든 정보를 자신이 얻으며 나아야만 한다.

    그것은 당연히 위태로운 일이기에, 미처 생각하지 못 한 문제에 직면하게 되면 당연히 실패하고 만다.

     

    실패할 가능성을 두려워하는 것도 인간이라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과연…….’

     

    그래서, 루크는 생각했다.

     

    만약 ‘첫번째’가 부담스러운 것이라면, 그 짐을 살짝 덜어내기만 하면 그만.

    루크는 근처 그루터기에 앉아 첼로를 움켜쥐며 말했다.

     

    “그럼 내가 먼저 노래를 해 보도록 하지.”

     

    “어? 너 설마 노래도 해?”

     

    ———

     

    루크의 노래가 끝난 후, 헬레나는 그야말로 완전히 압도당했다.

     

    “…….”

     

    ‘말을 잊는다’라는 표현이 아마 정확히 들어맞으리라.

     

    그런 반응은 곁에서 그 노래를 같이 들은 시루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체 얘는 못 하는 게 뭐지?’

     

    루크가 연주를 잘 한다는 것은 예전에 들어본 덕에 이미 알았지만, 노래까지 부를 수 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아니, 첼로를 켤 거면 첼로만 켜지, 대체 노래는 왜 저렇게 잘 부른다는 말인가?

    허밍으로 화음을 맞추는 걸로는 모자랐나?

     

    루크가 자작곡이라고 밝힌 그 노래는 성악과 발라드 그 중간 어딘가쯤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단아한 듯 맑은 고운 목소리가 당당하지만 온화하고, 섬세하지만 직설적인 그 음색이 감싸며 완벽함을 더욱 넘어선 무언가를 보여준 느낌이 든다.

     

    게다가 그 곡의 클래식한 분위기까지 루크의 성격과도 상당히 일치해서, 모든 것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연주이고 노래였다.

     

    만약에 누군가에게 점수를 매기라고 한다면, 다들 너무나 당연히 100점 만점에 100점을 꺼내들 것이라 장담한다.

    이 노래가 100점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 100점이라는 말인가?

     

    가사는 생소해서 무엇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 노래 자체가 품고 있는 감정이 너무나도 가슴에 잘 와닿아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내어버릴 뻔했다.

     

    불과 몇 분 전에 자신은 울보가 아니라고 주장했는데도 말이다.

     

    “어……. 방금 그 노래, 녹음해서 집에 가져가서 들어도 돼?”

     

    시루드가 몽롱한 표정으로 묻자, 루크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당연히 안된다.”

    “왜?”

     

    시루드는 루크의 거절에 굉장히 유감이라는 듯 한 표정을 지으며 묻는다.

     

    “그야…….”

     

    첫번째 이유는 당연히 녹음해서 듣게 되면 목소리와 현의 떨림에 미세하게 실리는 정령적인 무언가가 걸러진, 인간으로 따지면 영혼이 없는 연주가 되어버리기 때문이었으며,

     

    두번째 이유는 왠지 녹음을 하게 되면 자신이 보지 못하는 곳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자신의 목소리를 재생시켜 듣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꽤 소름이 끼쳤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타인의 목소리를 정교하게 저장하여 언제든지 코스트 없이 재생할 수 있는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목소리는 그야말로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녹음을 하게 되면 다른 곳에서 자신의 목소리가 들린다.

    단지 ‘간단한 조작’만으로 말이다.

     

    따라서 목소리를 녹음해서 가져가게 되면, 루크는 마치 자신이 팔려나가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것도 간단한 조작으로 아주 간단히.

     

    ‘그래서야 마치 싼 값에 팔려나가는 잡스러운 노예와 같지 않은가?’

     

    그것은 대마법사인 자신에게는 아주 부끄러운 일이다.

    그래서, 루크는 당당하게 말했다.

     

    “부끄러우니까.”

    “…….”

     

    당당하게 부끄럽다고 주장하는 루크의 모순적인 말과 행동에 시루드는 오묘한 감정을 느꼈다.

    루크는 대체, 머릿속이 어떻게 되어 먹은 걸까?

    과연 자신이 루크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오기나 할까?

     

    시루드의 예측은 회의적이었다.

     

     

    아직까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헬레나에게 루크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아무튼, 헬레나.”

    “으. 응?”

    “어때, 이제 긴장이 좀 풀렸지? 이제 너의 차례다.”

    “아니, 전혀…….”

     

    루크는 그런 노래랑 연주 다음에 불러야 하는 사람 생각도 좀 했으면 좋겠다고, 헬레나는 생각했다.

     

    “진짜, 안 하면 안되는 거야?”

     

    그러자 루크는 제 옆에 앉은 시루드를 가리키며 묻는다.

     

    “여기 이렇게 시루드도 기대하고 있는데? 정말 아무것도 안 할건가?”

    “…….”

     

    헬레나는 시루드의 응원하는 듯 주먹을 들어보이는 제스쳐를 보곤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역시 시루드는 실망시키기 싫었다.

     

    ‘진짜, 내가 억지로 한다……..’

     

    여기까지 왔는데 안 하면, 정말 의미가 없지 않겠는가.

     

    ——-

     

    결국 헬레나가 마지못해 부른 노래는 루크와는 장르가 다르다고 해야 하나, 따지자면 가요, 그중에서도 댄스곡에 더 가까운 것이었다.

    부끄러워서 부를 수 없는 동요를 제외하면, 그동안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조금이라도 들어봤던 노래가 그런 종류들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헬레나가 고른 노래들이 하필이면 전형적인 ‘듣기에는 귀에 박혀서 좋지만, 내가 부르기엔 어려운’ 곡들이었다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생각보다 노래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 고역이기는 했지만, 다행히 처음 부르는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크게 눈에 띄는 음이탈 없이 노래를 마칠 수 있었다.

    이런 것을 보면, 확실히 헬레나는 재능이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아무리 노래를 무사히 다 불렀다고 해도 역시 부끄럽긴 했다.

     

    하여튼, 결국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어떻게든 노래를 마친 헬레나는 이제 파이리스와 시루드의 감탄을 듣고 있었다.

     

    “와아, 언니도 대단하다! 진짜 재미있는 노래였어!”

    “그래, 진짜 잘 부르던데?”

     

    파이리스야 어떤 노래든 자신에게 적대적인 감정이 가득한 것만 아니라면 대부분 좋아하니 대충 넘기더라도, 시루드의 칭찬은 진심이었다.

    루크랑 헬레나를 비교를 하는 건 당연히 실례겠지만, 그걸 감안해도 헬레나는 음정을 꽤 정확하게 잡아낼 줄 알았기 때문에 상당히 듣기 좋았다.

    그래서 시루드는 자신이 느낀 바를 아주 정직하게 말했다.

     

    “되게 귀엽더라, 노래 부르는 목소리가.”

     

    시루드의 말에 헬레나는 화들짝 놀랐다가, 가까스로 표정을 되돌리며 중얼거렸다.

     

    ‘내가 귀엽다니……!’

     

    헬레나는 표정이 무너지는 것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우쭐대는 모습으로 팔짱을 끼곤 외쳤다.  

     

    “흥. 그거야 당연하지! 이제 알았어?”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루크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요즘의 노래가사는 꽤나 파격적이로구나…….’

     

    아니면, 자신이 너무 보수적인 것일까……?

    루크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노래도 생각해보면 야한 가사인 것들이 꽤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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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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