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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1

       루엘로는 괴물 서커스에 들어온 지 2주가 다 되어 갔지만, 아직 새벽의 고요함이 익숙하지 않았다.

         

       지난 합숙 훈련 덕분에 미노바의 코 고는 소리가 얼마나 살인적인지 알고 있던 원더스타인은 그가 들어온 첫날 밤부터 그에게 음소거를 걸었고, 덕분에 다른 단원들은 불면의 고통을 겪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루엘로는 그들과 반대로 너무 조용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그녀는 아기 때부터 아빠와 함께 살아왔고, 그의 코 고는 소리는 그녀에게 있어서 자장가나 다름없었다. 그게 없으니 그녀는 오히려 다른 작은 소리에 자꾸 신경이 쓰였다. 이불 쓸리는 소리나 바닥 삐걱대는 소리 따위에 반응해서 잠을 깬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우웅……엘라 언니?”

         

       루엘로는 졸린 눈으로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화장대 앞에 앉아 양말을 허벅지 아래까지 잡아당기고 있던 엘라는 그녀가 깬 것을 보고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루엘로 깼니? 많이 시끄러웠어?”

         

       밖은 아직 깜깜했다. 다른 단원들도 모두 잠들어 있었다. 엘라가 특별히 일찍 일어난 것은 먼저 나가 봐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아니……. 내가 원래 중간에 잘 깨는 편이라 그래……. 근데 내가 왜 언니 방에 있는 거야?”

         

       루엘로는 서커스단에 들어온 이후로 클라라와 같은 침대를 쓰고 있었다. 단원 중에 그녀의 머리카락에 깃든 삼손과 편하게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그녀뿐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은 아직도 그를 머리카락에 붙은 악령이라 부르며 불편하게 여겼다.

         

       그녀는 어제 우몬과 함께 야시장을 구경하러 갔다가 너무 졸린 나머지 그의 등에 업혀서 숙소로 돌아온 것은 기억이 났다. 그런데 자신이 어째서 클라라의 방이 아닌 엘라의 방에 누워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아, 그거? 내가 어제 내기에서 이겼거든.”

       “내기?”

         

       루엘로의 머리카락 중 하나가 그녀의 머리 위에 커다란 물음표 표시를 만들어 보였다. 엘라는 그것을 보고 한 번 크게 웃고는 대답했다.

         

       “응. 카드 게임에서 이기는 쪽이 루엘로를 안고 자기로 했어. 상품 대신 말이지.”

         

       그녀의 말에 루엘로는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랑 자는 게 왜 상품이야?”

       “우리 루리가 너무 예쁘니까 그렇지.”

         

       그녀의 말에 루엘로는 부끄러운지 몸을 배배 꼬았다.

         

       “나 별로 안 예쁜데…….”

       “어, 그럼 루리보다 안 예쁜 우리는 못생긴 건가?”

       “그런 말이 아니라…….”

         

       어쩔 줄 몰라 하는 루리를 보며 엘라는 미소를 지었다.

         

       루엘로는 원래 그 나이 애들답지 않게 조숙한 면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병마의 고통에 시달리면서 자신이 얼마 못 산다는 사실을 너무 일찍 받아들인 탓이 컸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알게 모르게 거리를 두는 버릇이 병이 나은 후에도 남아 있었다.

         

       그러나 괴물 서커스에 들어온 뒤로 그녀의 태도는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여전히 부끄러움은 많이 탔지만, 가끔 어리광도 부리고 고집을 피우기도 했다. 그 나이대 애들답게 말이다.

         

       아무래도 10대 단원들이 그녀에게 말을 놓으라고 종용한 덕이 컸다. 어린애일수록 형식에 영향을 많이 받기 마련이었다. 일단 말을 편하게 하자 사람을 대하는 그녀의 태도도 한결 편해졌다.

         

       “언니, 잘 다녀 와……. 난 좀 더 잘래…….”

         

       루엘로는 엘라가 옷을 다 갈아입자 눈을 감고 눕더니 금방 다시 잠들어 버렸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마치 뱀처럼 스르르 미끄러져서 그녀의 머리맡에 똬리를 틀었다. 엘라는 잠시 그것을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등을 돌려 방을 나왔다.

         

       동쪽의 하늘빛이 어둠을 조금씩 서쪽으로 몰아내고 있는 시간이었다. 엘라는 꺼진 가로등이 장승처럼 우두커니 서 있는 어두운 골목길을 따라 기차역을 향해 걸었다.

         

       그녀가 남들보다 일찍 역으로 향하는 이유는 괴물 단원들이 객실에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철도 직원은 다른 손님들에게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그들의 탑승을 거부했다.

         

       그래서 그들은 어쩔 수 없이 화물칸을 이용해야 했는데, 사람이 화물칸에 타기 위해서는 몇 가지 복잡한 절차가 필요했다. 그리고 단원들 모두 역에 몰려가 그 과정을 거치는 것보다 그녀 혼자 먼저 가서 일을 처리해 놓는 게 모두에게 좋다는 생각에 이렇게 미리 움직이는 것이었다.

         

       역 근처에 도착한 엘라는 누군가 자신을 뒤쫓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숙소를 나오자마자 날려둔 구돌이가 울음 신호로 그것을 알려왔고, 그녀의 주머니에 든 찍순이가 수염을 흔들며 그에 동의했다.

         

       그녀가 골목을 돌자마자 벽에 붙어 살금살금 뒤로 간 것도 그 추적자가 누군지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그녀가 막 모퉁이에 다다랐을 무렵, 그녀는 골목을 꺾고 나오는 한 괴인과 마주쳤다.

         

       그것은 귀신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화난 듯 우는 듯 잔뜩 일그러진 얼굴에 머리에는 두 개의 뿔이 나 있었다. 그러나 엘라는 그 모습을 보고 놀라기는커녕 반대로 안심했다. 그 가면은 그녀가 잘 알고 있는 사람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레이나, 여긴 어쩐 일이야.”

       “너 혼자 가면 심심할까 봐.”

         

       레이나가 차갑게 대꾸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새벽 공기만큼 싸늘했다.

         

       그러나 단원들은 그녀가 겉보기와 달리 순진하고 배려심 많은 소녀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의 냉정해 보이는 태도는 그녀의 아버지가 어렸을 때부터 학대에 가까운 교육으로 만들어낸 것에 불과했다.

         

       그것을 알고 있는 엘라는 경계심을 풀고 반가운 미소로 그녀를 맞이해주었다. 그들은 그 나이대 애들다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역을 향해 나란히 걸었다.

         

       “저것 좀 봐. 서커스 열차야.”

         

       엘라가 직원에게 계약서를 검토받는 사이, 화물 정거장에 한발 앞서 들어간 레이나가 십여 개의 선로에 놓인 화차들 사이에 유독 눈에 띄는 화려한 색의 열차 한 대를 가리켰다. 그것은 차량이 대략 스무여 대 정도 되어 보였는데, 겉면에는 서커스단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아는 이름이야?”

       “아니. 적어도 그랑프리 참가자는 아니야. 그런데 이상하네. 전용 열차까지 갖추고 있다면 제법 유명한 곳일 텐데…….”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됐겠지.”

         

       제국에는 열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공연하는 철도 서커스가 발달했다. 그리고 큰 규모의 서커스단은 전용 열차에 전문 기관사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들도 베르그송 상회에 부탁했으면, 충분히 그것을 지원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매번 화물 열차를 계약하느라 고생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그러나 길어봤자 3달 정도 이용할 건데 그런 걸 후원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너무 염치가 없는 일이었다.

         

       “그럼 계약자의 요청에 따라 화물칸을 목적지 도착 전에 중간 개방하겠습니다. 이 시간 이후로 해당 화물칸의 내용물에 대한 일반적인 분실, 파손에 대해서는 철도 측의 책임이 없습니다.”

         

       화물칸의 자물쇠를 열어준 역무원은 기계적으로 계약서의 내용을 읽고는 자리를 떠났다. 원래 사람이 타면 안 되는 화물칸에 사람이 태우기 위해서는 이렇게 중간 개방이라는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엘라와 레이나는 차량에 올라 짐들의 배치를 바꿔서 그럴듯한 자리 몇 개를 만들어 보았다.

         

       “이 정도면 2, 3시간 정도는 버틸 수 있겠지?”

       “자리보다 추운 게 문제일 거 같은데.”

       “옷을 좀 두껍게 입을 수밖에.”

       “여기서 외풍이 들어오는 것 같은데. 저기 있는 상자를 옮겨서 이곳에 두면 어떨까?”

         

       엘라와 레이나는 구석에 있는 커다란 상자를 들어 바람이 들어오는 곳 앞에 두었다. 그러나 레이나가 마지막에 그것을 내던지듯이 손에서 놓는 바람에 그 충격으로 옆에 쌓아놓은 짐들이 우르르 쏟아지고 말았다.

         

       “야, 조심했어야지!”

       “네가 나보다 키가 너무 작아서 그렇잖아.”

       “흥. 네가 너무 큰 거겠지!”

       “……꼬맹이 엘라.”

       “어쭈?”

         

       두 사람은 장난스러운 말을 주고받으며 쓰러진 짐들을 수습했다.

         

       “뭐 깨진 거 없지?”

       “응. 그런데……여기……사람 뼈가 한 무더기 들어 있는데?”

       “스벤의 짐이네. 그 영감은 종종 자기 뼈 바꿔 끼우는 묘기를 하거든.”

       “이 구조는……여자 골반 같은데…….”

       “……개인의 취향은 모른 척해 주자고.”

         

       그렇게 짐들을 정리한 두 사람은 마지막으로 저 멀리 쏟아진 트렁크를 세우기 위해 다가갔다.

         

       “잠깐, 이건 원더스타인 단장님 짐 아냐?”

         

       지금까지 개인 짐은 각자가 챙기는 것을 원칙으로 했기에 엘라는 한 번도 원더스타인의 트렁크에 뭐가 들었는지 본 적이 없었다.

         

       혹시 뭔가 위험하거나 수상쩍은 물건이 있는 것은 아닐까?

       호기심이 동한 엘라는 짐을 트렁크에 넣는 척하며 안을 뒤적거려 봤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별로 대단한 것은 없었다. 자잘한 옷가지와 여행 중에 얻은 것으로 보이는 잡동사니들뿐이었다.

         

       그때, 레이나가 낡은 포장지로 쌓인 꾸러미 하나를 집어 들며 말했다.

         

       “넥타이다.”

       “뭐?”

       “선물 받은 거 같아. 근데 포장도 안 뜯었네.”

         

       엘라는 재빨리 그녀의 손에 든 물건을 바라봤다.

       익숙한 색의 상자였다. 그 안에 비치는 물건의 형태 역시 익숙했다.

         

       추억의 먼 저편에서 그녀는 그것이 무엇인지 속삭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 정도 색깔이 무난하고 좋겠다.’

       ‘아니, 나는 좀 더 밝은색이 좋겠어.’

       ‘왜?’

       ‘그분이 입은 옷이 다 검은색이었거든. 하나라도 밝은색이었으면 좋겠어.’

         

       레이나의 손에 든 그것은 1년 전, 베가스의 상점가에서 그녀가 원더스타인을 위해 샀었던 선물이었다.

         

       “이게 왜……?”

         

       엘라는 그게 어떻게 여기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것은 그녀가 원더스타인을 따라 마을을 떠나던 날, 분노와 절망감에 휩싸여 마구 구겨서 내다 버렸던 물건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그의 트렁크에 들어 있었다.

       어째서?

         

       “이게 뭔지 알아?”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던 엘라는 레이나의 질문을 듣고 정신을 차리고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몰라.”

         

       그녀는 방금 떠올린 어처구니없는 장면을 머릿속에서 지우며 그런 것을 상상한 자신을 저주했다.

         

       그럴 리 없잖아. 아마 내가 착각한 거겠지.

       마차 구석에 던져두고 잊어버렸다든가.

         

       엘라는 구겨진 상자를 다시 트렁크에 넣는 레이나를 보고 몰래 가져다가 버릴까 고민하다가 포기했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때의 물건 따위.

         

       내부 정리를 마친 두 사람은 열차 바깥에 나와 아까 본 서커스 열차를 좀 더 자세히 관찰했다. 그곳에는 두꺼운 외투를 입은 덩치 큰 장정들이 경계심 가득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열차에 짐을 싣고 있었다.

         

       “왜들 저렇게 긴장해 있지?”

       “몸은 잘 단련된 거 같은데.”

       “글쎄. 동작이 너무 딱딱해. 곡예사라기보다 군인 같네.”

         

       얼마 안 있어 열차는 기관차와 결합하더니 정거장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것이 선로 저편으로 사라져갈 때쯤, 원더스타인과 단원들이 역에 도착했다.

         

         

       ***

         

         

       정부 요인의 이동 계획은 항상 기밀에 부쳐졌다. 정치적 목적의 순방이나 행사 참여 같은 경우는 일정이 미리 공표된다고 해도 요인이 언제 어떻게 그곳에 갈지는 밝히지 않는 게 순리였다.

         

       그래서 역무원들 사이에서는 일정표에 없는 열차가 정차 없이 역을 통과한다면, 그곳에 셋 중 한 명이 타고 있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떠돌았다. 황제, 교황, 그리고 황태자.

         

       황실 근위대의 분대장 드미트리 마카로프는 자신들이 탄 열차가 지나치는 역을 바라보며, 그곳 직원들이 제발 그 소문을 떠올리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다. 그것은 황태자 호위 임무를 맡은 책임자로서 가지는 투철한 보안 의식의 발로라기보다 주군의 체면을 걱정하는 신하의 충정으로 인한 것이라고 봐야 했다.

         

       물론 현재 황태자의 측근이라 자처하는 많은 충신이 그의 체면이 조금 더 떨어지길 바라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들이 타고 있는 이 서커스 열차라는 재기발랄한 아이디어도 그들 중 한 명이 낸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마카로프는 그것이 황태자를 위한 괜찮은 조언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

         

       황실 근위대에는 고위 귀족들의 둘째나 셋째 자제들이 많았다. 그들은 누구보다 가문 내에서 눈칫밥을 많이 먹은 인물들이었다. 명망 높다는 것이 마냥 좋은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특히 그보다 명망이 모자란 사람이 힘을 쥐고 있을 때 말이다.

         

       병석에 누웠던 황제께서 기적적으로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그 소식을 안주로 삼은 제국 신민들의 술맛이 상당히 썼음을 마카로프는 짐작할 수 있었다. 보수적으로 잡아도 70%, 그러니까 적어도 농노들은 그랬을 것이다. 황제가 쓰러지신 이후로, 대리청정을 맡은 황태자가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개혁들이 모두 백지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황태자를 바라보는 황제의 눈길이 심상치 않았다. 황태자가 동부 순방이라는 명목으로 급히 황궁을 빠져나온 것도 그래서였다. 그날의 움직임은 군사 작전에 버금갈 정도로 긴박했었다.

         

       마카로프는 지금만큼은 황실 극단의 광대들을 응원할 수 있었다. 그들이 평소에 하던 것처럼 황제의 귀에 거짓을 불어넣어 주길 바랐다. 황태자가 추진한 개혁들이 모두 실패했다고 조롱해주길 바랐다. 그의 평소 행실이 황제의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우스꽝스럽게 흉내 내주길 바랐다. 그의 행보에 불만을 가진 귀족들이 황제가 돌아오길 그리워했다고 아첨해주길 바랐다.

         

       황태자는 지금 우습게 보여야 했다. 마카로프는 주군이 동부 순방의 이동 수단으로 서커스 열차를 선택한 것이 썩 괜찮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점점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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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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