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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1

        

         

       둘은 서로를 친근하게 대하였다.

       적어도 겉으로는 말이다.

         

       다만 속에 품고 있는 것은 적의는 아니니.

       그 둘의 친밀한 태도 역시 거짓이라 말하기는 힘들었다.

         

       “하하하. 역시 유망주라 불리기 위해서는 그만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 것이로군요. 이거 제 눈이 탁 트이는 듯한 느낌입니다. 정말 대단해요.”

         

       “과찬이십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이거 진짜로 믿음이 갑니다.”

         

       김철수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말입니다. 기대를 품고 있기는 했습니다만 그래도 일말의 불안감이라는 게 있었어요. 그, 기분 나쁘게 들리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직 주술사님은 실적이 없지 않습니까. 다른 곳은 모르겠는데 저희 공무원이라는 사람들은 실적, 정보…. 이런 게 쌓여야만 실력을 인정해주는 그런 묘한 습성이 있어서 말입니다.”

         

       “아. 이해합니다. 보여준 것도 없는데 무턱대고 믿으라고 한다면 그것이 어찌 믿음이겠습니까? 신에게 바치는 신앙도 아니고 증거도 없는데 믿으라고 하는 것은 가혹한 이야기이지요. 저는 충분히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거 점점 마음에 드는군요. 솔직히 이런 말을 하면 약간 혈기가 넘치는 분들은, 음. 여기에서만 하는 이야기지만…. 그 주로 무인분들이 말입니다. 내 실력을 못 믿는 거냐느니, 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거냐며 화를 내곤 하거든요. 그렇지 않더라도 약간 욱하는 그런 느낌이 있기도 하고요.”

         

       그는 평온하게 답하는 진성을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런데 박진성 주술사님은 그런 것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군요. 정말 갓 성인이 되었다고는 믿을 수가 없는 태도입니다. 혹시 어릴 적부터 주술로 인맥을 넓혀왔다거나, 사회적인 활동을 했다거나…?”

         

       “하하하. 제 나이가 갓 성인인데 어찌 인맥을 넓히고, 사회적으로 활동하겠습니까?”

         

       “하하하. 그냥 해본 말입니다.”

         

       진성은 김철수의 질문에 간단하게 답해주었다.

       확답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농담으로 받아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없는 소리를 한 것은 아닙니다. 진짜로 박진성 주술사님에게 믿음이 가기 시작했거든요. 솔직히 주술을 사용하는 것을 눈앞에서 보지는 못했으니 그 실력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러한 태도와 이러한 성숙한 정신을 가지고 계신다면…. 이번 일을 감당할 수 있으리란 믿음이 생깁니다.”

         

       김철수는 그렇게 말하며 종이 뭉치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자료로군요. 아까 전화로 말씀하셨던…?”

         

       “예. 맞습니다. 뭐, 뉴스로 한창 크게 떠들어댔으니 잘 아시겠지만…. 이번에 한국에서 큰일이 있었습니다.”

         

       “등산로에 이상한 괴물들이 나타난, 그 소동 말이지요.”

         

       “예. 뉴스에도 뜨고, 인터넷에서도 난리가 나고…. 아주 골치가 아픈 사건입니다. 여러 가지로 얽힌 탓에 조용히 묻을 수도 없게 되었고, 지금 여기저기 음모론이니 괴담이니 하는 것들까지 엮여가면서 점차 상황이 커지고 있어요.”

         

       김철수는 골치가 아프다는 듯 한숨을 푹 쉬었다.

       그 한숨은 거짓으로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진심이 담겨있는 한숨이었다.

         

       “정부에서는 이 사건을 최대한 빠르게 해결하고 싶어 하고 있습니다. 아니, 완벽한 해결은 바라지도 않으니 제발 이 끔찍한 악순환에서 빠져나가고 싶어 하고 있지요. 소문이 소문을 낳고, 괴담이 괴담을 낳으면서 커지는…. 이 미친 상황에서 말입니다.”

         

       “그렇겠군요. 무릇 이런 이야기에 살이 붙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괴물처럼 커지게 되고, 괴물에 손발톱이 자라나고 날카로운 날이 쥐여 누구를 해칠지 모르는 녀석이 되곤 하니까 말입니다.”

         

       “하하. 비유를 참 멋들어지게 하시는군요. 예, 그 말이 맞습니다. 소문이 커져서 좋은 것이 없어요. 공포라는 것도 뭐 비상 상황에서나 쓸만한 거지, 이런 평화 상태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그저 독일 뿐입니다.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소비를 위축시키고, 나라에 악영향만 줍니다.”

         

       김철수는 피곤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게다가 말입니다.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 ‘누가 덕이 없어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 ‘정부의 비밀 실험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같은 음모론이 더해지면…. 하. 누구 하나 모가지 썰리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그리고 높으신 분이 잘리면 그 아래에 있는 사람들 역시 피해를 보게 되지요.”

         

       “그렇겠지요. 대고 있는 줄이 단숨에 잘려 나가는 것인데, 그 피해가 적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야, 진짜 사회생활 하신 거 아닙니까? 이렇게 말하면 20대의 청년들은 공무원인데 위가 잘리든 말든 무슨 피해가 있냐며 의아하게 바라보던데…. 하하하.”

         

       진성은 감탄하는 김철수를 보며 방긋 웃었다.

         

       “그 말이 맞습니다. 진급이고 뭐고 다 포기하고, 정말 공무원 연금이랑 평온한 삶만 바라는 사람이 아닌 이상은…. 반드시 피해가 있을 수밖에 없죠.”

         

       그는 거기까지 말하고 입을 꾹 닫았다.

       그 대신 김철수는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진성을 바라보았다.

         

       말하지 않아도 내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알지 않느냐는 듯한 얼굴로 말이다.

         

       그리고 진성은 이러한 김철수의 기대에 부응해주었다.

         

       “단순히 해수나 괴물 퇴치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중요한 일이라는 말씀이겠군요.”

       “그렇지요.”

         

       김철수는 박진성이 자기 생각보다 더 똘똘한 듯 보이자 기쁜 듯 웃었다.

         

       멍청한 사람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똑똑한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좋은 법.

       귀찮게 부연 설명을 하거나 말을 여러 번 하지 않아도 되는 것만으로도 대화에 재미를 붙일 수 있는 법이다.

         

       “그렇다면 정부에서 저에게 원하는 것 역시, 단순히 퇴치하거나 그런 단순한 것이 아닐 테고 말입니다.”

       “하하, 맞습니다. 박진성 주술사님에게는 더 중요한 일을 맡길 생각이지요.”

         

       김철수는 방긋 웃으며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던 자료에서 사진 몇 장을 꺼냈다.

       그리곤 그것을 박진성이 잘 볼 수 있는 위치에 늘어놓았다.

         

       “괴물의 사진이로군요.”

         

       그 사진은 이번에 출현한 괴물들이었다.

         

       팔이 여섯 개가 달린 거대한 나무.

       사람 얼굴 같은 꽃을 흔들거리는 나무.

       인어와 새를 섞어서 만든 것 같은 괴물.

       스님이라도 되는 것처럼 차려입은 사람 크기의 메기.

       …

       …

       …

         

       사진은 좋은 카메라로 찍은 것인지 하나같이 화질이 좋았다.

         

       “짐작하시다시피 여기 찍힌 것은 이번에 나타난 괴물을 찍은 것입니다.”

       “화질이 좋군요.”

       “예. 요새 인공위성 기술이 좋아져서요. 하하하.”

         

       김철수는 그렇게 말하며 진성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며 물었다.

         

       “혹시 말입니다. 낯이 익은 괴물이 있다거나, 뭐 생각나는 괴물이 있다거나. 그런 것이 있으십니까?”

       “글쎄요. 낯이 익은 괴물이라…?”

         

       하지만 진성의 태도는 모호했다.

         

       괴물에게 그런 표현을 쓰는 게 맞냐는 듯한, 그런 태도였다.

         

       도리어 그는 김철수에게 질문을 던졌다.

         

       “흐음. 혹시 정부에서는 이 괴물들의 정체를 아직도 못 찾은 겁니까?”

       “아, 그렇지는 않습니다.”

       “찾으셨군요.”

         

       진성은 김철수의 표정을 천천히 살펴보더니 방긋 웃으며 물었다.

         

       “그렇다면 저를 찾아온 까닭은 말입니다. 이 괴물들의 정체가 사람들에게 그냥 말하기에는 참으로 꺼림칙한 것들이라 그런 것으로 생각해도 될는지요?”

       “그렇습니다. 꺼림칙하다…라는 표현이 맞겠군요.”

         

       김철수는 진성의 말에 동의하며 종이 한 장을 꺼내서 건넸다.

         

       그 종이에는 이웃임에도 멀고 먼 사이인 어떤 나라의 글자가 가득 적혀 있었다.

         

       이와나보우즈, 아마비에, 난쟈몬쟈, 진멘쥬….

         

       누가 보더라도 한국의 것으로 보이지 않는 이름들과 그 옆에 적혀 있는 히라가나와 가타카나 표기까지.

         

       누가 보더라도 일본의 것들이었다.

         

       그나마 유일하게 한국의 것이 있다면 ‘은수자’ 하나뿐.

         

       “그렇군요. 하나만 빼고 죄다 일본의 요괴라…. 이거, 일본 주술이나 일본 주물에서 나온 녀석들이로군요.”

       “예. 게다가 한국의 것으로 추정되는 하나도 애매한 것이, 일제 강점기 시절에 일본이 가져간 것일 가능성도 있어서…. 아주 곤란한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저에게 의뢰하실 것은 이 주술의 출처가 어디인지, 정말 이 괴물의 출현이 일본과 관련이 있는 것인지 살펴보는 것이 되겠군요.”

       “예. 맞습니다. 그리고.”

         

       김철수는 다른 자료를 꺼내서 진성에게 내밀었다.

         

       “또 하나. 이 괴물들을 ‘무사히’ 퇴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주셨으면 합니다.”

         

       김철수가 두 번째로 내민 종이에는 여러 세균과 바이러스의 사진과 학명이 적혀 있었다.

         

       “이 괴물들이 말입니다. 죽기 전에 아주 끔찍한 것을 뿌리고 가더군요.”

       “흐음.”

       “이질 같은 전염병은 물론이고, 식물에 치명적인 마름병이나 땅에 악영향을 주는 미생물까지…. 하나같이 심각하지는 않지만, 골치 아프게 하는 것들이더군요.”

         

       진성은 그 자료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습니다. 이런 경우들이 꽤 있지요.”

         

       “꽤…. 말입니까?”

         

       “예. 본디 주술이라는 것은 기복과 액막이 용도로 자주 사용되곤 하였는데, 그때 많이 사용한 방식이 바로 액을 특정 물건이나 식물, 생물에 모이게 한 다음 정화하는 방식이었지요.”

         

       진성은 진지한 얼굴로 설명을 이어갔다.

         

       “액을 한껏 머금은 제물을 정화하는 방법은 여럿이었습니다. 물 위에 띄워서 멀리 보낸다거나, 불에 태워버린다거나, 죄인에게 준 뒤 같이 추방해버리거나, 땅속에 묻거나, 새의 다리에 묶어서 보낸다거나…. 하지만 그 방식에는 차이가 있되,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지요.”

         

       팔랑.

         

       진성은 종이를 허공에서 한 번 흔들고는 테이블에 놓았다.

         

       “그것은 바로 제물을 남겨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제물을 남겨두지 않는다….”

       “비유를 들자면…. 그렇군요. 유해 폐기물이 있다고 해봅시다. 이 유해 폐기물은 남겨두면 두고두고 사람에게 악영향을 미치고, 환경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겠지요. 이것을 긁어모아 한데 모으는 것이 바로 제물에 액을 모으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모은 ‘좋지 않은 것’은 반드시 처리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렇게 모은 유해 폐기물은 어떻게든 없애야 하지요. 불에 태우건, 다른 나라로 보내건, 땅에 묻어버리건 말입니다. 그냥 한곳에 모아놓고 ‘아, 모아놨으니 됐겠지.’ 하며 내버려 둔다면 그게 무슨 어리석은 일이겠습니까?”

       “그렇군요.”

       “그냥 모아만 놓으면 비바람이나 태풍에 다시 먼 곳으로 퍼질 수도 있고, 지나가던 사람이 멋모르고 접촉했다가 피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그것도 아니면 유해 폐기물이 땅에 스며들거나 지하수에 스며들어서 큰 피해를 줄 수도 있지요. 그러니 모인 유해 폐기물을 안전하게 폐기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제물을 없애는 것 역시 그와 같다는 말이지요?”

       “예. 그렇습니다.”

         

       진성은 그렇게 말하곤 사진 하나를 가리켰다.

         

       “제가 액막이에 관해서 설명한 것은, 이 주술이 그것과 비슷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추정했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성질이라면?”

       “액(厄), 부정(不淨), 오탁(汚濁)…. 사람에게 해가 되는 것을 품는, 제물로서의 성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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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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