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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1

       

        

        

        

        

        

       “좌측으로 적이 돕니다. 어딜 가려고.”

        

       “굿 샷.”

        

        

        

        천장에서 끝도 없이 회전하는 사이렌, 그 사이를 간간이 메우는 총성과 폭발음.

        

        하늘을 뚫을 것만 같은 높고 두꺼운 콘크리트 격벽 안에서 벌어지는 전투. 오만가지 잡동사니가 널려있고, 중앙에는 거대한 탑. 그리고 그 주변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계전기와 파이프, 거대한 팬 등이 존재한다.

        

        그야말로 난잡하다고 할 수 있는 공간을 두고 치열하게 벌어지는 교전. 과거랑 똑같다. 마치 옛날로 다시 돌아간 듯했다. 과연 그 점은 대거 팀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을까 – 라고 구태여 자문할 필요는 없었다. 

        

        이들이 적어도 30초마다 한 번씩 내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이쪽을 힐끔거렸기 때문이었다.

        

        실로 과보호였다.

        

        

        

       -[알림 : 냉각 프로토콜에 파쇄 알고리즘 침투 중.]

        

       -[목적 : 단말기 파괴 // 서버 파괴]

        

        

        

       ───드르르륵!

        

        

        

       “정면 기둥 상부에 워하운드급!”

        

       “제가 잡을게요.”

        

        

        

        그와 동시에 엄폐물에서 살포시 총구를 내민다. 빠르게 기동 중인 로렌티나의 뒤를 바짝 뒤쫓는 미니건의 총열이 눈에 보였다.

        

        그렇게는 안 두지.

        

        연신 방아쇠를 당긴다. 순식간에 M110A1의 25발들이 탄창 중 절반 이상이 비었고, 기둥에 매달려있던 워하운드급은 그 순간 자유낙하하며 지면으로 낙하했다. 운이 그닥 좋지 못한 적군 한 명이 십수 미터 위에서 낙하하는 워하운드급에 깔리며 비명횡사한 건 덤이었고.

        

        모토는 간단했다. 적들을 다 죽여버리는 순간 목표를 가로막을 것들은 없었다. 최대한 무인기를 위주로 처리한 뒤, 자잘한 대미지는 기어의 실드로 씹어버리며 더 좋은 엄폐물들을 차지하고, 더 많은 영역을 점유하여 적 세력을 축소시킨다.

        

        저격하기 딱 좋은 지점에 자리를 잡은 오웬스가 지정사수로서 섣불리 고개를 드는 친구들을 날려버리고, 그 사이를 틈타 세 명의 발현자가 최전선을 거침없이 파고들어 마구잡이로 세력을 분단시킨다.

        

        그리하여 로건이 가장 먼저 저들이 애지중지 아끼던 첫 번째 서버에 도달했다.

        

        

        

       “서버 점유 중. 단말기 해킹해.”

        

       “확인.”

        

        

        

        으직!

        

        그와 동시에 인컴에서 들리는 불길한 소리. 사람 한 명이 십수 미터 이상 허공을 날더니 그대로 어딘가에 처박힌다. 그 다음 순간 들려오는 씩씩거리던 로렌티나의 음색. 보아하니 발로 뻥 하고 걷어찼나보다. 원래 사람은 발차기를 맞게 되면 허공을 나는 법이긴 했다.

        

        단말기를 해킹하고 서버를 부순다. 과거에는 혹여나 모를 냉각탑 손상 방지를 위해 지지부진하게 끌었던 첫 번째 목적이 너무나도 손쉽게 달성되었다. 아마 지금쯤 과거에도 이렇게 해야만 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몇 있지 않을까 싶었다.

       

        얼추 정리가 끝난 뒤 이어지는 말.

        

        

        

       “다음은 어디죠?”

        

       “지난 번에는 HLW을 포함한 방사성 폐기물을 훔쳐가려던 녀석들이 많았지. 아무런 짓도 못하게 폐기물은 석관에 넣어버리고, 방해하는 친구들도 같이 넣어주자고. 선임관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문제 없다. 출발하지.”

        

        

        

        물론 반대를 표할 이유가 없었다.

        

        여전히 쓸데없이 화창한 발전소 위를 가로지른다. 그 사이에도 크고 작은 교전이 몇 번이나 있었지만, 나를 제외한 다른 대거 팀은 말 그대로 송곳처럼 파고들어 신들린 듯 적들을 썰어넘겼다. 시종일관 묘한 기분으로 임하던 내가 따라가는 것조차 순간 버거울 정도였다.

        

        이들이 과연 어떤 심경이기에 이렇게까지 열성적으로 교전에 임하고 있는 걸까. 하지만 그리 깊게 생각할 것은 없었다. 이것으로 여태까지 걸어왔던 여행 아닌 여행에 또 한 번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이제는 이런 교전이 더 편안하다고 해야 하나.’

        

        

        

        내가 겪었던 그 4년 8개월간의 시간은 내 인생에 그 무엇과도 바꿔놓을 수 없는 끔찍한, 그리고 그렇기에 절대로 잊어버릴 수 없는 기억을 새겨놓았다.

        

        겪어본 적 없고 겪어서는 안 되는 그 많은 우여곡절이었지만, 이렇게 같이 싸우고 있는 사람들 덕분에 내가 이 자리에 서있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실로 고마운 사람들이다.

        

        물론-

        

        

        

       “이카루스다! 놈들을 막아!”

        

       “당소 빔펠, 적과 조우했다. 현 시간부로 교전에 돌입한다.”

        

        

        

        이 친구들은 전혀 고맙지 않았다.

        

        모퉁이에서 막 튀어나오는 적. 왼손으로 총구를 손으로 잡아 위로 치켜들고 오른손으로는 목을 잡아 그대로 바닥에 내리꽂는다. 으득 하는 소리와 함께 목뼈를 그대로 분질렀다. 그 상태에서 시체를 방패 삼아 총을 난사해댔다. 그 와중 로렌티나는 벽면을 박차고 날아오르며 사격을 피하는 와중이었고.

        

        이 시점에서의 교전은 말 그대로 초인과 일반인들의 싸움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더 이상 그 누구도 보지 않았기에 모든 여력을 해방한 대거 팀은 장애물 사이를 마치 발레리나처럼 넘어다니며 현란하게 기동했고, 적들은 속절없이 무너지며 금세 저장 탱크 근방의 통제권을 넘겨주고 말았다.

        

        그렇다고 살려줄 이유는 없었지만.

        

        

        

       -[알림 : 탱크 제어 장치 조작 중. 봉쇄 프로토콜 확립까지 5초…탱크 봉쇄 종료.]

        

       -[알림 : 방사능 수치 정상.]

        

        

        

       ───치지지직!

        

        

        

        그와 동시에 눈부신 빛이 터져나온다.

        

        로렌티나가 조정 장치에 테르밋을 까던진 것이었다. 순식간에 녹아드는 기기판을 보며 다들 이 양반이 뭘 하나 싶었지만, 그래도 러시아 잔존 세력이 혹여나 기기를 재조작할 수도 있었기에 꼭 틀린 선택은 아니었다. 어차피 소유자는 미국이었기에 추후 다른 기기로 바꿔버릴 수도 있었고.

        

        그렇게 지상에서의 볼 일은 완전히 종료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적들을 전부 청소하고 핵가방을 되찾아오는 것.

        

        지하로 돌입할 시간이었다.

        

        

        

       “최대한 빠르게 달리죠. 적들이 진동 폭탄을 사용하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으니.”

        

       “선임관은 우리 막내나 잘 지켜주세요.”

        

       “너희들 같은 사고뭉치보다는 조용한 녀석이 더 낫지. 여유롭게 뒤쫓을 테니 괜히 먼저 나자빠지지나 마라.”

        

       “여부 있겠습니까.” 

        

        

        

        그와 동시에 두 명이 지하로 달려갔다.

        

        이카루스 기어를 통해 ISO가 핵가방의 예상 위치를 표기해주는 사이, 나와 오웬스 역시 한 발짝 느리게 지하에 발을 디뎠다. 그렇게 얼마 정도 움직이자 과거 대거 팀과 나를 분리시켰던 천장이 보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어떠한 균열도 존재하지 않았다.

        

        복도와 회랑을 타고 몇 번이나 들려오는 총소리. 그러나 그 사이에 섞인 고통스러운 울부짖음 사이에 로건과 로렌티나의 것은 없었다. 하나둘씩 소리가 줄어든다.

        

        인디언포인트 작전을 두 번 이상 해본 적은 없었지만, 확실한 건 과거에 실제로 했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이미 적들이 대강 어디에 있는지, 밀집 지역은 어디인지, 주요 교전 장소와 엄폐물은 어디 있는지를 다들 꿰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작전은 현실에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경이로운 속도로 진행되었다 – 심지어는 적들이 대응책 수립은커녕 제대로 반응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아, 아. 진동폭탄 디퓨징 끝. 핵가방 위치도 대강 파악했습니다. 지금부터 시설 전체에 기폭 방지용 방해 전파를 흩뿌릴 테니 빨리 오시길 바랍니다.”

        

       “저 둘만 작전에 보내놨어도 어떻게든 깨지 않았을까 싶군.”

        

       “하하, 농담도.”

        

        

        

        물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 양반은 딱히 농담을 즐기는 성격이 아니었다.

        

        다시 나를 포함한 네 명이 합류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으며, 그 넷이 근방의 지하 관제실을 탈취하기까지는 그보다 더 적은 시간만이 걸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작전이 시작된 지 꼴랑 10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목표의 60% 가량을 달성해버렸으니까.

        

        적들의 입장에서는 아무런 일도 안 했는데 갑자기 외부 작전조가 하나둘씩 무전이 끊기더니, 아차 하는 순간 쳐들어온 우리들을 보았을 테고 – 핵가방과 원자력발전소라는 두 개의 단어가 주는 무게감으로 인해 현실에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작전 형태였지만.

        

        

        관제실 화면을 신나게 훑어보던 로건이 몇 번 손을 놀렸다. 외부로 통하는 게이트를 하나둘씩 폐쇄하고 있는 것이었다. 적들의 퇴로를 차단하고 쥐구멍으로 몰아넣는 것이라고 해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 뒤의 일은 뻔했다. 하지만 조금 덜 뻔한 일도 있었는데, 최후의 수단으로 핵가방을 기폭하려고 시도하던 장교가 프래깅을 당해버린 것이었다.

        

        CCTV를 본 마지막 상황은 실로 장관이었다. 기폭장치를 움켜쥔 장교가 권총을 들고 이런저런 말을 하다가, 등 뒤로 접근한 병사 한 명의 사격에 의해 머리가 통째로 날아가 그 자리에 털썩 쓰러진 것이다. 다행히 죽으면서 기폭시키는 않은 듯했지만.

        

        혼란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으나, 대부분 항복으로 가닥을 잡은 듯 바닥 한구석에 전부 총과 수류탄 등을 던져놓는다. 심지어는 옷을 벗고 흰 티셔츠를 탄창을 분리한 총의 총열에 매달아 임시로 백기를 제작하는 병사도 있었고.

         

        

        

       “CCTV가 흑백이라 다행이네요. 컬러였더라면 저 티셔츠의 색깔을 상상하기조차 싫군요.”

        

       “망할, 너 때문에 나도 상상하게 됐잖아.”

        

       “후후, 성공적인 연상기법이죠.”

        

        

        

        전혀 특수부대같지 않은 멍청한 대화를 나누는 둘을 뒤로 하고, 격벽을 개방했다.

        

        대략 50명 가량 남은 병사들이 전원 항복의 의미로 양손을 들어올렸고, 우리는 이카루스 HQ에 연락하여 항복한 러시아군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로부터 대략 5분 가량이 지났을까, 외부에서 대기하던 예비 기동타격대가 우르르 몰려와 손목에 케이블 타이와 포승줄, 그리고 수갑 등을 채우고는 적들을 하나씩 외부로 끌고 갔다. 핵가방은 혹여나 모를 기폭을 방지하기 위해 퓨즈를 제거한 뒤 트럭이 싣고 나갔고.

        

        그렇게 우리들의 여정은 끝이 났지만, 그것이 실질적으로 모든 여정이 끝났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우리 막내, 어디 가나요?”

        

       “제 과거를 잠깐 확인하려고 하는데, 같이 가시겠어요?”

        

        

        

        그리고 그것으로 모든 설득은 끝났다.

        

        대략 5분 가량을 걸어 모든 일의 시발점인 붕괴 지점에 도착했다. 모두가 천장을 바라보며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는 와중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어디로 나가야 되나 했는데, 감청한 통신이 들리더라구요. 적들이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향해 접근한다고. 그래서 혼자라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죠.”

        

        

        

        기어의 에코 기능을 부분적으로 활성화시킨 뒤, 당시 들었던 탄도 방패를 만들어낸다.

        

        마치 박물관 투어를 하듯 계속해서 설명이 이어진다. 그 즈음에도 딱히 멀쩡하다고는 말할 수 없었던 방패는 교전이 이어질수록 빠르게 너덜거렸고, 폐기물 습식 저장소에 도착했을 즈음에는 거의 써먹지조차 못할 상태가 되었다.

        

        발로 한 지점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지점에서 실드가 다 부서졌고, 복부에 두 발의 관통상을 입었죠.”

        

        

        

        당시의 감각은 아직도 기억날 지경이었다.

        

        배 전체가 뒤틀리는 듯한 아픔. 순식간에 다리에 힘이 쭉 빠지는 그 느낌은…여태까지 수많은 총상을 입어봤지만, 그 언제가 되었든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고통이었다.

        

        미처 치유할 새도 없이 교전을 이어갔고, 그리하여 바닥에는 길게 뻗은 출혈 흔적이 남았다. 마지막 한 사람까지 전부 죽인 뒤에는 기둥에 기대어 의료용 나노머신을 주입하고, 치유 화학물질을 바닥에 뿌렸다. 그러나 이미 어느 정도 피를 흘린 탓에 머리가 어지러웠었고.

        

        방패는 더 이상 써먹을 수 없었기에 그대로 벽에 세워놓았다.

        

        

        

       “…그리고 나중에나 알게 됐지만 UAV를 통해 감시한 핵가방과는 별개의 폭탄이 하나 더 있었어요. 내용물은 이미 분해되어 타 분대가 운반하고 있었고.”

        

        

        

        당시 상황을 전해듣는 세 명의 표정은 시시각각으로 변해갔다.

        

        사실 어쩔 수 없긴 했다. 그 즈음에서의 작전 진행은 반쯤 불가능했으니까. 목적을 제대로 달성하기도 전에 진동 폭탄이 터져 시설 및 지반이 붕괴할 뻔했고, 그렇기에 회수한 가방만이라도 어떻게든 빼낸 것이었으니까.

        

        그리하여 나는 적들을 기습하여 어떻게든 핵가방을 탈취하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왔던 길로 그대로 돌아가지 못하고 중과부적으로 밀려 막다른 길까지 몰린 것이었다. 당시 내가 맞이했던 숫자는 60명 가량. 물론 무인기까지 있었기에 실제 전력은 그 이상이었고.

        

        꿀꺽 침을 삼키고는, 굳건하게 닫힌 격벽 앞으로 걸어갔다.

        

        

        

       “…이 즈음에서, 당시 제게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를 알려드려야겠네요.”

        

        

        

        그와 동시에, 나는 덤덤하게 모든 것을 설명했다.

        

        나는 본디 이곳의 사람이었으나 영문도 모른 채 바이러스가 퍼진 뉴욕에 떨어졌다는 것을 – 여기까지는 모두가 아는 내용이겠지만 그 뒤는 말해준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말해줘야 할 시간이었다.

        

        마지막의 마지막에 가서야, 나는 현대 물리학으로는 설명 불가능한 방법에 의해 구출되었다는 것을 알려주자, 다들 표정이 묘하게 변한다.

        

        

        현재까지도 나를 구해준 사람들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그게 중요할까.

        

        

        

       ───그그그극!

        

        

        

        문이 열린다.

        

        그리고 형용 불가능한 냉기와 열기, 그리고 내가 복귀하기 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광경이 모습을 드러낸다.

        

        천장까지 치솟은 투명하고 거대한 얼음의 기둥. 현대 물리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얼음은 지금까지도 불가능한 경도와 강도를 유지하며 그 자리를 굳건하게 지킨다.

        

        한편 그와는 별개로, 기둥과 벽면을 할퀴고 간 거대한 불꽃의 검이 있었다. 아무런 연료도 산소도 없음에도 끊임없이 타오르는 불꽃, 그리고 용암 웅덩이.

        

        

        불과 얼음.

        

        내가 마지막으로 보고 온 것이었다.

        

        그리고-

        

        

        

       -[알림 : 제2차 세계선 동기화의 자격을 충족하였습니다.]

        

        

        

        터져나오는 빛무리와 함께 눈 앞이 흐려졌다.

        

        

        

        

        

        

        

        

        

        

        

        

        

        

        

        

        

        

        

        

        

        

        

        

        

       “세상에나.”

        

        

        

        그동안 짓고 있었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그 자리에 있는 셋이 눈을 화등잔만하게 떴다.

        

        로건, 로렌티나, 그리고 공병분대장. VR이 아닌 현실. 유진이 없는 세계…거의 같은 인원과 서로 다른 세계선. 그러나 양쪽이 보고 있는 것은 동일했다. 불가능한 현실이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용인되었다. 현대 물리학이 제대로 작동했더라면 사람 머리 위에 곰의 귀가 자라나지도 않았을 것이었고, 남자가 한순간에 여자로 뒤바뀌는 일조차 없을 터였으니까 –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제3자의 시선일 뿐이었다. 

        

        눈 앞에 이런 광경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그리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기나 하겠는가.

        

        

        

       “이게 도대체 무슨….”

        

       “위험합니다. 가까이 다가가지 마시길.”

        

        

        

        공병여단장이 어처구니없단 표정을 지었고, 로건이 덧붙였다.

        

        그 말대로였다. 몇 주를 넘어 한참의 시간이 흘렀는데도 녹지 않는 얼음과 끊임없이 타오르는 불. 접촉하기라도 했다간 무슨 사단이 발생할지 누가 알겠는가.

        

        그리하여 로건과 로렌티나만이 그 안으로 조심스럽게 발을 디뎠다. 마치 다른 행성에 위치한 기지에라도 온 것만 같은 기상천외한 광경. 먹먹한 감정을 다시 곱게 접어넣은 두 명이 조준사격 자세를 취한 채 주변을 이곳저곳 탐사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몰라도, 주변에는 그 외의 특별한 점은 없었다. 통째로 얼어버렸거나, 얼음기둥이 몸을 관통했거나, 혹은 잿더미가 되어버린 시체만이 있을 뿐.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두 명의 생각은 유진의 시체가 온전하게 남아있는지의 여부로 향했다.

        

        끔찍한 예측이었지만 잿더미가 되어버린 시체 사이에 유진의 것이 섞여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뭐가 됐든 결과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유진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고, 더 이상의 수색은 무의미했다.

        

        

        

       ‘…그저 에코 두 개와 방패, 그리고 바닥의 혈흔만이 네가 남긴 전부라니.’

        

        

        

        그제야 힘이 탁 풀렸다.

        

        로렌티나 역시 비슷한 결과에 도달했고, 둘은 조준사격을 그만두고는 멍하니 천장을 쳐다볼 뿐이었다. 공상과 생각의 정리가 끝나면 더 이상 이곳에 볼 일은 없겠지.

        

        그리 생각하며, 둘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아니.

        

        옮기려고 했다.

        

        

        

       ───!

        

        

        

        끊임없이 타오르며 공기를 가열시키던 불이 한순간에 꺼진다.

        

        계속해서 냉기를 뿜어내던 얼음이 무언가 달라졌다. 손조차 댈 수 없을 정도의 냉기가 아니라 말 그대로 원래대로의 얼음으로 되돌아간 듯한….

        

        그리고 그 순간, 막다른 곳의 끝부분에서 빛이 일렁인다. 처음에는 관측 가능했지만 점차 눈으로 직시조차 불가능한 광량으로 – 한순간 총을 치켜들었지만, 이내 그런 부류가 아니라는 것을 짐작한 로건과 로렌티나는 황급히 공병여단장에게 피신하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공간 전체를 환하게 뒤덮을 정도의 빛무리가 일렁이며-

        

        

        

       -피잉!

        

        

        

        한 명의 인영이 모습을 드러낸다.

        

        제법 난처한 표정을 지은 채.

        

        

        

       “말도 안 돼.”

        

        

        

        누군가가 그리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런 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믿을 수 없었지만 그렇기에 절실하게 믿고 싶은 광경. 유진이 눈 앞에 있었다. 그 뒤로 공간이 일렁이며 두 명의 인원이 더 걸어나오고 있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머릿속이 마구 휘도는 사이, 누구보다도 살아있었길 바랐던 막내가 쓴웃음을 지으며 덧붙였다.

        

        그녀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두 번째 세계선 동기화가 이런 거라고는 안 알려줬었잖아요.”

        

       “그게 뭐가 중요한가요. 리바운드 준비나 하시길.”

        

       “리바운드요?”

        

        

        

        그리고 그 순간,

        

        

        

       “유진-!”

        

       “케흑!”

        

        

        

        그 누구보다도 앞서 달려간 로렌티나가 눈물을 펑펑 흘리며 막내를 껴안았다.

        

        유진의 공식적인 생환이 확실시되는 순간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기습연참빔!

    참고)해당 소설은

    1부 완결 / 외전 / 2부 연재 순으로 구성될 예정입니다

    2부에는 과거 유진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를 다룰 겁니다

    완결까지 한참남았으니 걱정뚝하셔도됩니다

    다음화 보기


           


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귀환했지만, 총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Score 4.1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Just the fact that I came back couldn’t be the end of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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