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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1

       한 문파의 패라는 것은 그 문파를 상징하는 물건이다.

       

       그것을 부수어 달라는 이야기는 곧 그 문파에 시비를 걸어 문파의 위신과 명예를 손상시켜달란 이야기겠지.

       

       “어려운 부탁임을 압니다만…”

       “겨우 그거면 되느냐?”

       “예?”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군.

       

       그게 어찌 어려운 일이 될 수 있는가.

       

       본인은 홀로 소림의 존재를 무림에서 지울 수 있는 인간이다.

       

       문패를 부수고 돌아오는 것 정도야 별 어려울 것 없지.

       

       “좀 더 거창한 것을 부탁하리라 생각했다만 담이 작구나.”

       “에. 예? 별 것이 아니라뇨. 그 곳은 소림입니다. 과거에 비해 영락했다 하더라도 정파의 오대 문파 중 하나란 말입니다.”

       “그게 무어 대단한 것이냐?”

       

       마료는 답할 말이 궁한 듯 입을 움찔거렸지만 목소리를 내진 못했다.

       

       이런 대답이 돌아올 거라고는 예상을 못한 거겠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소림이란 단어에 자부심을 가진 녀석이니.

       

       그렇지만 말이다. 본인이 보기에는 정말 별 것이 아닌 것을 어쩌겠느냐.

       

       지금으로부터 멀고도 먼 과거에 본인은 정파를 발아래에 두었다.

       

       정파의 고수라는 작자들이 본인에게 스러졌고, 오대문파랍시고 어깨를 피던 놈들은 자신들의 거처가 불태워지는 것을 보며 눈물을 흘렸고, 무림맹이라는 놈들은 자신들의 명줄만은 남겨 달라 빌어야 했지.

       

       이것이 지금으로부터 수십 년도 더 지난날의 이야기다.

       

       그 때와 비할 수조차 없는 곳에 도달한 본인이 어찌 그를 두려워할까.

       

       “애초에 네놈도 별 어려움이 없으리라 생각하기에 말을 꺼낸 것이지 않나.”

       “…예. 그렇지요.”

       “이제는 소림도 아닌 것에 소림에 자부심을 가지지 말라. 그런 생각을 할 바에야 다른 것을 걱정하는 편이 유용할 터.”

       “…무엇을 말입니까?”

       “생각해 보거라. 본인이 소림을 깨부수고 온다 한들 소림의 위신이 떨어지겠느냐?”

       

       – ㅁㅊㅋㅋㅋ

       – 존나 오만해.

       – 아닠ㅋㅋㅋ

       – 크게 틀린 말은 아니긴 해.

       – 소림이 박살났다고요? 왜요? 화령이 덮쳤다고요? 그럴 수도 있지.

       

       – ㅇㅇ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고개를 들어라 소림! 화령에게 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크게 틀린 말도 아니지 않으냐. 본인의 악명이 과거 무림을 거닐 적보다 낮아진 것은 사실이다.

       

       허나 그렇다 하여 본인이 평범한 무인 취급 받는 건 아니지.

       

       여태까지 벌인 일이 일이니 말이다.

       

       “본인이 소림을 박살냈다 치자. 그렇다 한들 누가 소림을 욕하겠느냐. 무림은 납득할 것이요. 외부인은 소림을 불쌍히 여길 따름일 터.”

       

       소림의 문패를 박살낸다 하여 달라질 것은 없단 이야기다.

       

       기껏해야 소림의 녀석들이 볼멘소리를 낼 뿐이겠지.

       

       그렇기에 본인이 되물은 것이다.

       

       그거면 되느냐고.

       

       소림에 머무르는 녀석들에게 불편을 주는 정도로 만족할 것이냐고.

       

       “다시 물으마. 바라는 것을 말하라.”

       

       무엇을 말해도 괜찮다.

       

       본인은 본인이 한 말을 되돌리지 않을 터이니.

       

       소림이 사라지길 바라느냐? 그대의 앞에 소림이 굴복하기를 원하느냐? 그대의 말과 뜻이 소림이 되는 것을 보고 싶으냐?

       

       그대가 여태까지 겪었던 굴욕 속에서 소망했던 것을 고하라.

       

       그러면 이루어질 터이니.

       

       가만 마료의 눈을 바라보며 답이 나오길 기다렸다만 녀석은 고개를 저을 따름이었다.

       

       “제 부탁은 동일합니다.”

       “어째서?”

       

       영문을 모르겠군. 명패를 부수는 것이 무용함은 이해했을 터인데.

       

       “그 이상을 바라면 소림마저 당신의 것이 될 듯 싶어서 말입니다.”

       

       본인이 화산을 집어삼켰던 것처럼 소림마저 그리 되리라 생각하는가?

       

       흐음. 예상한 수준의 대답이라 영 재미가 없군.

       

       이런 녀석이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다만 본인이 알던 세상과 많이 달라진 곳이니 무언가 변화가 있으리라 여겼거늘.

       

       굳이 따지자면 정답이긴 하구나.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였다면 집어삼켜버릴 생각도 하고 있었으니까.

       

       [마료의 부탁]

       [소림의 명패를 부수고 돌아오십시오]

       [보상 : 상당한 수준의 내공, 소림의 환단]

       

       퀘스트도 떠올랐겠다 더 이상 여기에 있을 이유는 없겠군.

       

       *

       

       소림이라는 곳은 워낙에 역사가 깊은 지라 유명한 것이 한 둘이 아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소림의 계단이다. 계단을 한 칸 오를 때마다 번뇌를 하나 떨친다는 의미를 지닌 이 곳은 종교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장소다.

       

       정확히는 장소였다고 해야겠구나.

       

       “소림에 방문하세요! 상담만 받아도 환단을 지급해드립니다!”

         

       “요즘 소림은 머리도 안 깎는다면서?”

       “우와 진짜? 정말 대단해!”

         

       “소림의 무공을 배우고 랭커가 될 수 있었습니다!”

       

       소림으로 향하는 계단 앞에 선 본인은 그 곳에 장사치들 마냥 자리 잡은 사람들의 모습에 눈을 끔뻑였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이 곳이 소림이 맞는가?

       

       본인이 장소를 잘못 지정하여 이상한 곳으로 흘러들어온 것인가?

       

       멍하니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자니 옆에서 바루가 내 옷깃을 꾹꾹 잡아 당겼다.

       

       “민가야. 이 곳이 정말 소림이 맞느냐?”

       “…내게 묻지 마라. 당혹스러운 것은 똑같으니.”

       

       – 소림스탕스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소림사## 지금 가입 시 즉시 && 환단 지급! 무공100%증정! 멋진 옷 제공! 지금 즉시…] – ##소림사##…

       

       – ##소림사##…

       – 소림스탕스 새끼들아! 적당히 해!

       – 소림은 정말 최고야! 소림은 정말 최고야!… 

       – 너네만 채팅창 쓰냐?!

       – 이 새끼들은 언제 뒤지는 거야.

       – 뇌절 좀 그만해라. 개노잼이니까.

       – 소림조아!소림조아!소림조아!…

       

       미쳐버리겠군. 계단 앞에서 떠들어대는 장사치들이 본인의 방송에까지 침투하다니.

       

       “적당히 하지 않으면 다신 본인의 방송을 없을 것이야.”

       

       내 어지간한 것은 다 내버려 둔다마는 이 혼란은 견디기가 버겁구나.

       

       적당히 하지 않으면 목을 칠 것이라 선언을 하고 나니 그제서야 채팅창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하아. 시청자들에게 설명을 요구해봐야 헛소리를 봐야 하겠지.

       

       “설아야.”

       <네!>

       “말하지 않아도 알 거라 생각한다.”

       <어… 소림사가 왜 이러냐고 물어보셔도. 게임 초기 때를 제외하면 소림은 항상 이랬는데요?>

       “항상 이랬다고?”

       

       설아가 설명하기를 화룡무인이 시작하고 반 년 정도는 소림이 조용했다고 했다.

       

       허나 그 반년이 지나고 정에 속한 문파들이 유저를 끌어들이기 시작할 무렵부터 소림은 계속 이런 공격적인 홍보 전략을 펼쳤다는 모양이다.

       

       <오만 곳에 끼어들어서 호들갑을 떨다 보니까 처음엔 비호감을 샀었는데 뇌절에 뇌절을 거듭하다 보니 이게 밈이 되어서.>

       “…어쨌든 이게 유효한 효과를 내었고 소림은 이 정책을 유지하는 중이라 그것이냐?”

       <네!>

       

       왜 소림에 자부심을 지녔던 마료가 이 곳을 떠났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소림의 전통을 중시하는 녀석이 어찌 이런 꼴을 보고 가만있었겠는가.

       

       당연히 이게 맞느냐면서 들이박았을 터이고 그게 소용이 없으니 제 발로 절을 떠난 것이겠지.

       

       “중이라는 놈들에 욕망에 물들어 자신들이 추구해야 할 것을 잃어버리다니.”

       

       화룡무인의 무림은 대체 무슨 꼴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하아. 빌어먹을. 그건 그렇다 치고 말이다. 저 놈들은 왜 저리 홍보에 열성인게냐.”

       

       단순히 문파를 더 키우겠다는 의지일 수도 있기는 하지.

       

       근데 보통 무인이라는 놈들은 자신의 무를 떨치는 것으로 문파의 이름을 알린다.

       

       문파의 문 앞에서 방문하는 이들을 붙잡으며 소림에 방문하라 강요하지 않는단 말이다.

       

       이 또한 본인이 가진 구시대적인 생각이더냐?

       

       그것이 아니라면.

       

       <저런 식으로 기여할 때마다 새로운 무공을 알려주거나 좋은 환단을 주거나 하는 식일 걸요? 사람을 데리고 오면 더 많은 걸 주고요!>

       “농을 하는 게지?”

       <아뇨. 제가 화령님한테 왜 거짓말을 하겠어요.>

       

       그렇겠지. 설아의 이야기를 듣던 나는 머리가 아파오는 걸 견디기 버거워 이마를 꾹 눌렀다.

       

       – ㅇㅇ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왜 소림에서 다단계가 이루어지고 있는 거야?]

       

       – 땡중들이구나.

       – 씹ㅋㅋㅋ

       – 혼란스럽다.

       – 이 정도면 차라리 천마신교가 정상인 거 아냐?

       – 그건 아닌 듯.

       – 갈! 다단계보단 강자존의 세상이 낫거늘!

       

       어째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심연을 보는 듯한 느낌이구나.

       

       이럴 줄 알았더라면 마료에게 부탁할 것이 있느냐고 묻는 게 아니었다.

       

       그냥 혼자서 찾아와 뒤엎어버렸어야 했다.

       

       네놈들 같은 땡중이 어찌 소림을 자처하냐면서 문파 자체를 박살내었어야했어.

       

       그랬더라면 지금처럼 가면을 쓴 채 정파의 오만한 초출을 연기할 필요도 없었을 터인데.

       

       “저기요! 소림에 가입하시려고 찾아오신거죠?!”

       

       한숨을 내쉬고 있으려니 호객을 하는 군중 중 하나가 내 쪽으로 다가와 소리를 쳤다.

       

       탐욕으로 가득한 시선을 보고 있자니 절로 곰방대에 손이 갔다.

       

       가면을 쓰고 있지만 않았더라도 이미 곰방대를 입에 물었을 것이야.

       

       “제 이름으로 추천서를 내면.”

       “아닙니다! 이 사람보다 제 이름이 더 잘 먹힙니다.”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손님 분이 곤란해 하시잖아! 내가 데려가겠…”

       “지옥도가 따로 없구나.”

       

       서로의 이익을 위하여 처음 보는 이를 낚아 먹으려는 꼴을 보던 바루가 헛웃음을 흘렸다.

       

       그녀의 의견에 동의하는 바였다. 아귀들이 사는 지옥이 있다면 이 곳이지 않겠는가.

       

       저 모습을 더 보고 싶지 않았던 나는 바루의 허리춤을 붙잡아 그녀를 어깨에 얹은 후 허공으로 뛰어 올랐다.

       

       “위에서 아래를 보니 더 가관이로군.”

       

       한 걸음을 걸을 때마다 번뇌를 떨쳐내야 한다는 계단 위에는 수많은 탐욕들이 들어서 있었다.

       

       얌전히 계단을 올랐다면 얼마나 많은 손길을 뿌리쳐야 했을는지.

       

       그렇게 허공을 밟고 올라 정문에 도착한 나는 발로 문을 걷어차 박살을 내버렸다.

       

       “아주 정중하구나. 이런 녀석들에게는 수준에 걸맞게 대해 주어야지.”

       

       소림에 방문했을 적에는 나를 질책했던 바루다만 지금은 달랐다.

       

       그녀는 내 행동에 고개를 끄덕이며 오히려 나를 부추기고 있었다.

       

       바루가 보기에도 이 곳은 상당히 기형적인 구조를 이룬 모양이었다.

       

       소림의 안이라 하여 바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본인이 기억하는 소림은 수련을 거듭하는 이들로 가득한 땀내나는 장소였거늘 이 곳은 그렇지 않다.

       

       다른 이들에게 보일 것만을 중시한 곳. 깔끔하고 아름다우나 무인이 있을 장소로는 보이지 않는 곳.

       

       하. 웃기는 군. 본인이 뭉개버렸던 화산조차도 수련을 하는 모양새는 취했었는데 이 곳은 그런 흉내조차 내지 않는 것인가.

       

       유저에게 그저 보정에 따르라 이야기를 하는 것이란 말이더냐.

       

       좋다. 어디 한 번 그대들의 수준을 보자꾸나.

       

       “바루야. 귀를 막거라.”

       “흠? 갑자기 왜 그러느냐?”

       “고함을 칠 것이거든.”

       

       그리 이야기했더니 바루가 두 손을 들어 자신의 두 귀를 가로 막았다. 머리 위에 쫑긋하고 나있는 귀를 틀어막는 모습이 영 귀여워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본인의 방송을 보는 그대들도 마찬가지다. 고막을 지키고 싶다면 소리를 줄이건 귀를 막건 둘 중 하나는 하거라.”

       

       경고를 마치고서 시선을 돌린 나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

       

       “썩어빠진 소림에 비무를 신청하러 왔다! 겁이 나는 것이 아니라면 얼굴을 비추어라!”

       

       내공이 담긴 소리는 그 자체로 하나의 무기가 된다.

       

       육신의 경지가 미천하여 소리만으로 건물을 무너트리지는 못한다만 그래도 진동을 일으키는 정도는 할 수 있지.

       

       본인의 고함소리를 들은 것일까. 닫혀 있던 건물의 안에서 벌레마냥 무인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당혹과 분노가 서린 얼굴이 보기 좋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딴 건 소림이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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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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