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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1

     황제가 전쟁을 선포했다.

     나를 상대로는 온갖 이유를 있는 대로 없는 대로 다 이야기를 하기는 했지만, 선전포고 연설에 있어서는 상당히 달랐다.

     간단하고, 명쾌하게.

     바보라도 알아들을 수 있게.

     누구나 이 전쟁이 정당한 것이며, 제국에 명분이 있으며,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전쟁이라는 걸 이해할 수 있게.

     그 가장 확실한 이유로, 제국은 가식적인 가면을 쓰기를 거부했다.

     ‘선대 황제의 그림자를 그대로 짊어지겠다는 건가.’

     선대 황제는 정복군주였다.

     그에 의해 멸망당한 국가는 두 자릿수를 넘었다.

     그 멸망한 나라들의 폐세자들이 노스트럼까지 흘러들어오기도 했다.

     황제는 그런 선황의, 본인 아버지의 이미지를 뒤집어쓰는 걸 그다지 싫어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아마도 역사서에는 이렇게 기록될 것이다.

     합스베르크 황제. 

     

     노스트럼과 평화의 분위기를 만들고 협상하고 인내하였으나, 노스트럼의 범람하는 황금에 구국의 결단을 내리다.

     ‘결국 전쟁은 일어나는 게 역사의 흐름인가.’

     거짓된 황금이 보여주는 세상에서도.

     매국노 그레이가 있던 세상에서도.

     그리고 지금도, 전쟁은 결국 일어나게 되었다.

     ‘그래. 그럴싸한 이유는 나중에 역사학자들을 주무르면 되지. 진짜 중요한 건 국민을 어떻게 선동하는가.’

     주변에 귀를 기울인다.

     마도구를 통해 전해지는 황제의 선전포고는 금방 끝이 났고, 곧 밖에 나와 있던 시민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가, 갑자기 전쟁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

     

     전쟁 자체에 당황하는 자들.

     “테르시안 제6세기의 시작을 전쟁으로 발돋움하려는 건가….”

     언젠가 다가올 전쟁이 이제 실제로 다가왔다는 것에 긴장하는 이들.

     

    “황금을 우리가 다 얻을 수만 있다면 좋은 거 아닌가?”

     황제의 선전포고에 있던 단편적인 정보로부터 그사이에 제국이 가지게 될 승리 후의 전리품을 생각하는 이들.

     ‘다들 아직 단편적인 정보만 생각할 수밖에 없나.’

     제국인 입장에서는 정보가 부족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게, 뭔가 한두 달 전부터 전시체제를 갖추는 게 아니라 즉시 전쟁 선포를 했기 때문이다.

     준비된 전쟁이 아니다.

     모두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죽었기에, 그리고 노스트럼의 황금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생겨난 일.

     ‘나 때문인가?’

     내가 세인트 지오에 대한 처분을 제국의 도움을 받으려고 했기 때문에 일어난 걸까.

     아니면 어느정도 황제 스스로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가 이렇게 오늘 바로 결정을 내리고 선포한 걸까.

     ‘일단 협곡으로 돌아가자.’

     어느 쪽이든, 제국 전체가 혼란에 빠졌다는 것은 분명하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선전포고가 이루어졌다는 건 거리에 나온 제국 시민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젠장, 우리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야? 바로 군부대 들어가야 해?”

     “미치겠군. 군복이 맞지도 않을텐데…. 으아아, 아니, 그보다 이렇게 갑자기 전쟁을…! 어디 노스트럼이 쳐들어온 것도 아닐텐데…!”

     제국 시민들은 자신들 나름대로 전시체제에 있어 국민들이 해야 할 행동 수칙을 떠올리고 있다.

     그러나 저런 모습, 국민들 스스로 당황하면서 길을 찾고 있다는 게 ‘국가적’으로 준비되지 않은 선전포고라는 증거다.

     황제라면, 이미 한 달 전부터 전운을 감돌게 했을 것이다.

     매국노 그레이의 시대처럼, 신년부터 노스트럼과의 전쟁 분위기를 언론에 흘렸을 것이다.

     군인들로 하여금 예비 병력을 파악하며, 집마다 전쟁 발발 시 행동 수칙을 설파하고, 선전포고 일주일 전부터 병사들이 거리를 돌아다니며 전쟁 분위기를 조성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선전포고가 일어나는 날, ‘드디어 올 것이 왔군’이라면서 국민들 스스로 머스킷을 들고 병사가 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그것이 자발적인 의사든, 아니면 국가 전체의 움직임이라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에서의 징병이든.

     그런 깔끔함이 없다.

     그러므로, 지금의 혼란을 이용하면 나도 제국을 빠르게 빠져나갈 수 있다.

     ‘있으려나.’

     소란을 틈타 적당히 값비싸 보이는 건물의 차고로 향한다.

     벽돌로 이루어진 창고 가운데, 유독 창문이 높게 달려있고 벽돌 한쪽이 철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위에서 아래로 슬레이트가 내려오듯 굳게 닫힌 문으로 된 곳이 하나 있다.

     “으아아! 전쟁이라니! 출근은 어떻게, 아니, 상회가 문제가 아니잖아…! 펜 대신 총을 들어야 한다니…!”

     “젠장, 노스트럼의 그 야만인들을 상대로 총으로 싸울 수 있나? 놈들은 맨몸으로 총탄을 튕겨내면서 검을 휘두르는 인간 백정들이라고 하던데…!”

     “…….”

     혼란에 빠진 사람들의 틈 사이를 지나, 인기척을 최대한 죽이고 창고처럼 보이는 곳에 잠입했다.

     ‘있다.’

     다행히, 내 예상대로 기대하던 물건이 창고 안에 있다.

     ‘풍석엔진 덕분에 이미 상용화되었군.’

     노스트럼 왕국에서는 보는 것조차 드물지만, 제국에서는 이런 공업도시의 부유층 창고에서 볼 수 있는 물건.

     마도바이크.

     상용화된 수준을 넘어 개인의 자산 및 취미의 영역까지 들어간 건지, 겉 부분이 붉은색으로-

     ‘그냥 붉은색도 아니고, 아버지 색깔인데?’

     선홍빛, 제국식으로 말하자면 ‘크림슨 칼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붉은 페인트가 칠해져 있다.

     어떤 이가 바이크에 이런 색을 칠했는지는 몰라도, 일단 원하던 바를 찾아냈다면-

     덜커덩, 덜커덩.

     “…….”

     몸을 숨긴다.

     창고의 벽 안쪽, 천장에 달린 마도 형광등이 빛났을 때도 소리가 난 방향에서 사각이 될 곳으로 몸을 숨긴다.

     끼이익.

     “젠장, 젠장!”

     문이 거칠게 열리는 소리와 함께, 한 남자가 다급한 목소리를 내며 안으로 들어왔다.

     “이게 무슨 끔찍한 일이야…!”

     갈색 머리칼의 중년 남자는 여행용 가방에 무언가를 아무렇게나 쑤셔 넣은 채, 다급하게 자신이 들어온 창고 입구 쪽을 바라보며 뭔가를 찾고 있었다.

     “젠장, 이렇게 끌려갈 수는 없어…!”

     잘그락, 거리는 소리를 내는 작은 무언가.

     “전쟁이 끝날 때까지만 잠적하면 되는 거야…! 그래, 저기 남쪽으로 간 다음, 바다를 건너서 섬에 들어간다면…!”

     찾았다.

     “고작 노스트럼의 야만인들이랑 싸우려고 내가 지금까지…어?”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누구….”

     퍼ㅡ억.

     가볍게 주먹을 뻗는다.

     명치에 정확하게 찔러넣자 남자는 표정이 비틀리고, 곧 눈을 까뒤집으며 그대로 축 옆으로 쓰러졌다.

     잘그락.

     나는 남자의 옆에 떨어진 작은 물건을 집어 들었다.

     

     황금을 깎아 만들기라도 한 건지 아니면 도금을 한 건지, 열쇠는 전체가 황금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물건 좀 빌리는데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는 없겠어.’

     나는 창고를 다시금 확인했다.

     창고의 입구 쪽에 설치되어 있는 수정구가 하나 있기는 했지만, 저런 걸 세세하게 신경 쓸 겨를은 없다.

     애초에 저기에 내 모습이 찍힌다고 하더라도, 그게 제국신문을 통해 퍼진다거나 하지도 않을 것이다.

     ‘나를 돕지는 않을지언정, 최소한 내가 혼자 알아서 협곡으로 돌아가게는 해준다는 거니까.’

     황제는 나를 사로잡지 않았다.

     자기가 계획하는 전쟁에 있어 내가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할 거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 정작 아래에 있는 장군들만 보냈을 뿐 나를 직접 잡으려고 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건-

     ‘억측이야. 그럴 리가 없지.’

     만일 황제가 내가 생각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면, 그런 생각을 하고 실행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죽일 명분이 선다.

     “전쟁영웅….”

     나는 열쇠를 꽉 움켜쥐며, 마도바이크의 열쇠 구멍에 정확하게 꽂아 넣고 비틀었다.

     구구구구.

     엔진 소리가 크게 울린다.

     동시에 손잡이를 붙잡자마자, 손잡이 끝에서 바로 내 피부를 향해 마력이 흘러들어온다.

     역탐지.

     아마도 탑승자의 마나 파장을 확인하고 주인이 아닌 사람이 탔을 때 일어나는 일은-

     애애애애앵ㅡㅡㅡ!!

     시끄러운 경보.

     도둑질당하는 상황이라고 열심히 시끄럽게 울어대고 있지만, 마도 바이크에 내장된 마도구로서의 성능은 딱 거기까지.

     부릉.

     나는 페달에 발을 올렸다.

     차고의 문은 굳게 닫혀있지만, 나는 바이크 옆에 놓여있는 길쭉한 막대를 집어들고 바이크를 조작했다.

     ‘노스트럼이었다면 어땠을까.’

     만일 내가 제국인이었고 노스트럼에서 탈출하는 그런 상황이었다면, 마구간에 몰래 잠입한 다음 말을 훔쳐다가 달리고 그랬겠지.

     하지만 제국에는 말이 없다.

     말 대신, 말의 역할을 대신하는 이륜마도구동차가 있을 뿐.

     ‘배워두기를 잘했다니까.’

     노스트럼의 것이든 제국의 것이든, 결국 뭐든지 배워두면 써먹을 곳이 있는 법.

     서걱!

     나는 파이프를 휘둘러 차고의 문을 베어낸 다음, 그대로 바이크를 몰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애애애앵ㅡㅡㅡㅡ!

     도난 경보에 다급하게 움직이던 사람들이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봤으나.

     “…….”

     나는 그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바로 상체를 숙이며 손잡이를 향해 역으로 마나를 불어넣었다.

     구구구.

     마도 엔진이 굴러가는 소리가 점점 거칠어지더니.

     콰ㅡㅡㅡㅡ앙!!

     폭발하는 듯한 배기음과 함께, 바이크의 바퀴가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어, 저ㅡ”

     스쳐 지나가는 제국 시민들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들리는 것이 있다면 마도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제국의 행정관들이 긴장한 목소리로 내뱉는 말뿐.

     -제국 여러분. 전시체제에 따라 행동하여 주십시오. 이성적으로….

     이성적으로, 라.

     전쟁이라는 행위 자체가 비이성적인 행위의 온상인데, 과연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이성적으로 판단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타고 달리는 이 바이크의 주인 또한, 어쩌면 제국시민 답다고는 할 수 없어도 인간적으로는 이성적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전쟁으로부터 도망친 개인.

     전쟁이 일어난다면, 누구나 전쟁으로부터 도망치기를 바랄 것이다.

     그저 불운한 것은 하필이면 내가 선택한 차고의 주인이었다는 것 정도.

     기절한 이후 도망치지 못하고 그대로 제국군으로 징집될 남자에게 짧게 묵념한 뒤, 나는 그에게 마음속으로 약속했다.

     ‘바이크 값은 전쟁을 멈추는 걸로 갚는 걸로.’

     전쟁을 막기 위해, 그는 가장 큰 도움을 내게 준 사람 중 한 명으로 내 기억 속에 남게 될 것이다.

     대신.

     이건 약속 못 하겠다.

     애애애애앵ㅡㅡㅡㅡ!!

     “역시나.”

     온전하게 돌려줄 것이라는 약속은.

     “멈춰라, 거기 너!”

     나의 뒤.

     바이크가 아닌 사륜으로 굴러가는 강철의 마차가 나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미치겠군.”

     노스트럼 사람들은 알고나 있을까.

     강철 장갑을 두른 마차가 이미 제국에서는 상용화되어, 제국의 포장도로를 달린다는 걸.

     “나중에 돌아가면, 누아르나 레타르에게 꼭 말해줘야겠어.”

     그리고 그 조수석에서 군복을 입은 자가 나를 향해 머스킷을 겨누고, 그대로 쏜다는 것을.

     

     타ㅡㅡ앙!

     마탄이 머리 옆을 스쳤다.

     그러나.

     ‘속도, 최대로.’

     멈출 수는 없다.

     뒤에 제국군이 따라붙든, 아니면 앞을 제국군이 가로막든.

     ‘협곡까지 전력으로 달린다.’

     기억에 따르면, 이 속도로는 분명-

     “멈춰라, 나는 제 12방위대의-”

     까ㅡ앙.

     나는 정면에서 마도 자동차를 내 옆으로 붙이려는 자의 헬멧을 향해 파이프를 휘두른 뒤, 흔들리는 바이크의 자세를 잡았다.

     “노스트럼이었으면, 말 다리에 치여 죽었을 거다.”

     제 12방위대의 누군지도 모를 이가 바닥을 구른다.

     헬멧과 제복, 그리고 안전장치 덕분에 그는 바닥에 쓰러지며 데굴데굴 구를 뿐이었다.

     “……후.”

     뒤.

     점점 더, 쫓아오는 병사들이 많아지는 건 착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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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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