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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1

   아카데미 기말고사 2일차의 저녁.

   

   오늘 치러야 할 시험을 모두 끝마친 나는 아카데미의 식당을 찾아 스스로에게 고생의 대가를 주기로 했다.

   

   정말 힘든 하루였어.

   

   아침부터 시작해서 시험을 세 개나 쳤으니까.

   

   짧은 쉬는 시간 동안 로그 기능에 시험 범위를 때려 박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점심마저 대충 넘기고 책을 읽어야 했을 정도로 바빴다니까?

   

   뭐 고생을 한 덕분에 시험 성적은 꽤 괜찮게 나올 것 같지만.

   

   <벼락치기로 이 정도를 할 수 있다면 그냥 평소에 꾸준히 공부를 하면 되는 것 아니더냐?>

   

   나의 투정을 들은 할배는 꼰대답게 정론을 이야기했다.

   

   물론 평소에 공부를 해두었다면 이 정도로 쫓기며 고생할 이유가 없겠지.

   

   그렇지만 나도 어쩔 수 없었다고!

   

   시험 준비를 해야 할 시간에 허접 변태 주신이 괴악한 퀘스트를 줬단 말야!

   

   난 그 쓰레기의 계시 때문에라도 시험공부 대신 던전 제작에 몰두해야했고!

   

   그러니까 내가 로그 기능을 이용한 건 모두 허접 주신의 탓!

   

   공부를 게을리 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변태 주신의 잘못!

   

   나는 그저 성욕에 충실한 페도 주신에게 휘둘린 피해자일 뿐이야!

   

   <내 살다 살다 자신이 모시는 신에게 잘못을 돌리는 사도는 처음 보는 구나.>

   ‘저는 이래도 돼요! 주신님 때문에 고생한 게 얼마인데!’

   <…으음. 그대가 많은 고생을 하긴 했다만서도.>

   ‘그쵸? 그쵸?’

   

   내가 허접 주신 때문에 한 고생이 얼마고 허접 주신한테 해준 게 얼만데 이 정도 내로남불은…

   

   아! 왔다! 내가 시킨 파르페! 

   

   나는 할배에게 투덜대는 것을 멈추고 종업원이 가져다 준 파르페를 눈에 담았다. 

   

   와아. 오늘은 딸기 파르페인가. 완전 맛있을 것 같아!

   

   상상한 것 이상의 비쥬얼에 환호성을 내지른 나는 재빠르게 숟가락을 움직여 파르페 한 쪽을 파냈다.

   

   바닐라 아이스크림. 초코. 그 위에 딸기까지.

   

   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풍경이란 말인가.

   

   할 수 있다면 언제까지 눈에 담고 싶은 풍경이지만 아이스크림이란 것은 언젠가 녹아내리는 거니까.

   

   이 모습은 내 기억과 위장에 저장해 두도록 하자.

   

   입을 크게 벌려 한 입에 세 가지를 입에 집어넣은 순간 절로 감탄사가 새어 나왔다.

   

   달아!

   

   너무 달고 상큼해!

   

   근데 그게 좋아!

   

   정신줄을 놓아버린 나는 쉴 새 없이 숟가락을 움직여 파르페를 입 안으로 집어넣었다.

   

   와쿠와쿠에요! 너무 맛있어서 손을 멈출 수 없는 거에요!

   

   <하. 그래. 네가 해맑게 웃을 수 있다면 주신께서 잘못하신 걸로 하자꾸나.>

   

   시험기간 특선 파르페의 크기는 탁자 위에서 내 코끝까지 닿을 정도로 거대했지만 그를 먹는 데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평상시에 내가 움직이는 걸 생각해봐!

   

   그 지옥 같은 수련 속에서 태우는 칼로리를 생각해보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렇게 파르페를 격파해버린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숟가락을 내렸다.

   

   흐으. 안 그래도 좋은 음식들로 가득한 식당이 시험기간에는 한 층 더 개쩌는 메뉴들로 가득해지니 너무 좋아.

   

   평소에도 이런 식으로 메뉴를 구성해주면 참 좋을 텐데. 현실적인 한계 때문에 그럴 순 없겠지?

   

   당분으로 기운을 차리는 데 성공한 나는 기지개를 키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아드리를 만나러 가볼까. 그 녀석한테 적당히 하라고 말을 해둬야…

   

   음?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식당 안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내 쪽에 꽂혀 있단 사실을 깨달았다.

   

   학년과 성별을 가리지 않고 쏟아지는 따가운 시선에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칠 뻔 했다.

   

   뭐야?

   

   평소엔 얽히기 싫어서라도 내 눈을 피하던 사람들이 오늘따라 왜 날 노려보는 거냐고.

   

   어어. 혹시 오늘 힌트가 지급된 건가?

   

   그거 때문에 잔뜩 열이 받아서 날 노려보고 있는 거라면 진짜 큰일이야.

   

   첫 번째 힌트부터 분위기가 이러면 이 다음 힌트 때는 더 난리가 날 테니까.

   

   ‘뭐야♡ 그렇게 놀림을 당했으면서 또 힌트 받으러 온 거야?♡ 혹시 숨겨진 취향에 눈을 떴어?♡ 매도 당하는 게 좋아진 걸까?♡ 으엑~♡ 징그러~♡’

   

   라는 문구로 시작되는 힌트를 본다면 안 그래도 열 받아 있던 사람들이 날 향한 증오를 쌓지 않겠냐고.

   

   끔찍한 미래를 상상하던 나는 잔혹한 현실에 체념하고서 다시금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파르페를 하나 더 시켰다.

   

   어차피 여기서 뭘 하건 간에 저 눈빛들이 바뀌진 않을 거다.

   

   그렇다면 그냥 맛있는 거 더 먹어서 스트레스를 풀 테다.

   

   따가운 시선 속에서 추가로 시킨 파르페를 깔끔하게 해치운 나는 아드리의 저택 쪽으로 향했다.

   

   최근 비시의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살고 있는 아드리이지만 그녀의 근원은 결국 저택의 지박령.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저택의 안에서 신성을 내보내면.

   

   – 야! 너 지금 나 정화시킬 생각이냐!?

   

   짜잔. 이렇게 아드리를 불러낼 수 있답니다.

   

   ‘안녕하세요. 아드리.’

   “푸하핳. 깜짝 놀라서 튀어나오는 것 좀 봐. 완전 추해.”

   

   – 내 목에 칼 들이밀어 넣고 한다는 소리가 그거냐!? 이 미친년아!

   

   나름 피해가 안 가게 조절해서 신성을 퍼트린 건데 너무 과민반응 하는 거 아냐?

   

   아드리 너 정도 되는 사령이 이 정도로 정화될 리 없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잘못한 게 없는 듯 해 고갤 갸웃거리고 있으려니 어깨를 부들부들 떨던 아드리가 이내 차디 찬 한숨을 내뱉었다.

   

   – …그래서 뭐 하러 온 건데.

   

   ‘자제를 부탁드리러 왔어요.’

   “적당히 하란 말을 전하러 왔어. 할망구. 네 손녀가 귀여운 건 알겠지만 너무 주책이잖아.”

   

   비시가 머리 싸매는 걸 보고 훈수하고 싶은 건 알겠어.

   

   그치만 적당히 해야지. 비시가 아서네랑 똑같이 네 번째 방 공략 중인 건 너무하지 않냐?

   

   비시 파티의 전력을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잖아.

   

   – 아. 던전 이야기하러 온 거였냐.

   

   아드리는 스스로도 짐작 가는 부분이 있는 듯 시선을 피하며 뒷목을 주물렀다.

   

   – 그치만 말야. 네가 만든 던전 너무 어렵잖아.

   

   ‘어렵나요? 그게?’

   “어렵다고? 그게? 크흡. 할망구 너 내가 상상한 것보다 더 허접한 지능의 소유자였구나?”

   

   아니. 아드리 네 입에서 어렵단 말이 나오면 안 되지.

   

   학생들 기준으로 만든 곳을 네가 어려워하면 어쩌자는 거야.

   

   – 내가 어렵다는 게 아니라!

   

   ‘그리고요…’

   “그리고 할망구. 나이 들어서 깜빡깜빡하는 거 같은 데 그거 시험이거든?”

   

   그 던전은 어디까지나 기말고사의 시험이라고.

   

   어렵지 않으면 변별력이 없어서 곤란하잖아.

   

   ‘아시겠나요?…’

   “네 주책은 네 존재감 없는 들러리 손녀한테도 민폐야. 치매 걸린 게 아니라면 알아들을 수 있지?”

   

   – 하아. 알겠어. 자기 힘으로 하게 내버려 둘게.

   

   생각한 것보다 이야기가 쉽게 풀렸네. 좀 고집을 부릴 줄 알았는데.

   

   – 할 이야기는 그걸로 끝이야?

   

   ‘어. 넵.’

   “그런데? 왜 외로워? 말동무라도 해줄까?”

   

   – 시간이 남는다면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긴 해.

   

   ‘뭔데요?’

   “뭔데? 말해봐. 일단 들어는 줄게.”

   

   뭐가 궁금하기에 아드리가 먼저 말을 걸려 그러는 거지? 얘 나랑 이야기하는 거 별로 안 좋아 할 텐데.

   

   – 예술 교단의 사도가 만들었다는 장신구가 뭐길래 애들이 다 호들갑을 떠는 거냐?

   

   귀족이니 거상이니 하는 녀석들이 장신구 하나 때문에 목숨을 걸고 난리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아드리의 말에 웃음이 샜다.

   

   ‘보여드릴까요?’

   “굳~이 부탁한다면 보여줄 수도 있는데?”

   

   – …쯧. 그래. 부탁할게.

   

   던전 공략의 보상으로 줄 물건은 이미 아카데미 측에 건네준 지 오래라 보여줄 수 없다.

   

   그렇지만 변태 사도 녀석이 날 위해 만들어 준 장신구는 내 수중에 있지.

   

   둘의 모양새가 다르긴 하지만 이것도 변태 사도가 만든 장신구다.

   

   사람들이 왜 여기에 눈이 머는지 느끼기엔 충분할 거다.

   

   인벤토리에서 장신구를 꺼내 내밀었더니 아드리가 입을 벌린 채로 굳어버렸다.

   

   저 심정 이해해.

   

   나도 이걸 처음 봤을 때 너무 놀라서 변태사도가 열성적으로 하는 설명이 귀에 들어오지 않을 지경이었거든.

   

   – 머리핀…인가?

   

   ‘맞아요.’

   “낡은 할망구도 이 정도는 구분하는 구나? 맞아.”

   

   변태 사도가 내게 건네준 것은 트윈테일을 묶을 때에 리본 대신에 쓸 수 있는 머리핀이다.

   

   화려하지 않음에도 고급스럽다는 걸 절로 알 수 있으며. 과하게 눈에 띄는 건 아니지만 내 머리카락에 묻히지 않고 자신이 이 곳에 있음을 조곤조곤 알리는 이 머리핀은 이런 물건을 잘 모르는 나조차 고급스럽단 걸 느낄 수 있는 물건이었다.

   

   오죽했으면 내가 겨우 바니걸 차림 한 번으로 이런 귀한 물건을 받아도 되는 거냔 생각을 했을까.

   

   물론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괜히 여지를 주면 그 변태 사도와 까마귀 여신이 무슨 미친 소리를 지껄일지 알 수 없었으니까.

   

   – 이건 널 위해 만들어진 거구나.

   

   ‘그걸 보는 걸로 알 수 있어요?’

   “그렇게 생각해? 확신할 수 있어?”

   

   – 물론. 이 머리핀에 담긴 고민을 보면 자연스레 알 수 있지.

   

   살아있을 적에는 나름 이름 있는 귀족 집안의 여식이었다며 아드리가 어깨를 으쓱였다.

   

   저기에 뭐라고 대답해줘야 할지 모르겠네. 무슨 말을 꺼내도 메스가키 스킬에 의해 번역되면 패드립이 될 것 같단 말야.

   

   – 한 번 낀 걸 보여줄 수 있어?

   

   아드리의 부탁을 들은 나는 잠시 고민을 했다.

   

   지난 번에 이 장신구를 꼈을 때 난리가 났었거든.

   

   변태 사도는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착용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눈물을 흘리고 있고.

   

   그 옆에 따라 붙었던 얼빠여우는 어느새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서는 언제 챙겨놓은 건지 모를 목줄을 앞에 내민 채 대가리를 박고 있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변태 사도랑 얼빠 여우 두 쓰레기가 문제였던 것 같긴 하네.

   

   살아서 산소를 낭비하는 것조차 아까운 두 축생하고 아드리를 비교하는 건 실례일 테니 한 번 껴볼까.

   

   직접 트윈테일을 하고 다닌 지도 1년이 다 되어 가는지라 머리핀을 끼는 내 손놀림에 망설임은 없었다.

   

   그렇게 머리핀을 차고서 아드리의 앞에 내 얼굴을 들이밀었더니 녀석이 또 다시 입을 헤하고 벌렸다.

   

   뭔데. 심술궂은 말을 좋아하는 이 녀석이라면 장신구에 비해 착용자가 못 낫네. 마네킹이네 뭐네 이야기를 할 거라 생각했는데 왜 아무 말도 없는 거야?

   

   한 쪽 눈썹을 내린 채 가만 기다리고 있으려니 아드리가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쓸어 내렸다.

   

   – 야.

   

   ‘네?’

   “왜.”

   

   – 그거 어지간하면 하고 다니지 마라.

   

   그야 나도 이 장신구가 지닌 가치를 아니까 어지간히 중요한 자리가 아니면 안 끼고 다닐 생각이긴 한데.

   

   이 녀석의 반응은 내가 생각하는 거랑 약간 다른 것 같단 말이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머리핀을 빼자 아드리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니까 뭐냐고.

   

   장신구 찬 내 모습이 어떻길래 그러는 건데.

   

   – 부탁을 들어줬으니까 나도 한 가지 조언을 해줄게.

   

   ‘조언이요?’

   “조언? 할망구가 나한테?”

   

   – 아카데미의 방학이 올 때까지 좀 조심하면서 지내도록 해. 던전학 시험을 공략하는 놈들 사이에서 널 조져버리고 싶단 의견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으니까.

   

   힌트에 뭘 적어 놓은 건지 모르겠지만 그걸 본 사람들은 하나 같이 나에 대한 욕지거리를 내뱉는다는 이야기에 절로 쓴웃음이 지어졌다.

   

   내가 만든 던전을 진심을 다해 공략해준단 건 분명 기뻐해야 할 일이지만, 정작 그 목적이 날 참교육하기 위함이란 사실을 생각하면 도저히 마음 편히 웃을 수가 없어.

   

   빌어먹을 메스가키 스킬! 왜 넌 만날 나를 억까하려고 드는 거야!

   

   설마 이것도 허접 주신의 계략인가?!

   

   던전의 모두를 규합시켜서 날 참교육 시키려 드는 거구나!

   

   야! 이 페도 변태 주신아!

   

   아무리 그래도 내가 네 사도인데 참교육 당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억까하는 게 말이 되냐!

   

   – 뭐. 그런 멍청이들이 아무리 뭉쳐봐야 별로 달라질 건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그 분노가 어디로 튀어나갈지 모르잖아?

   

   ‘…조언 감사합니다아아.’

   “흐흥. 걱정해 주는 거야? 외톨이 할망구. 겉으로 틱틱대면서 속으로는 내가 안전하길 원했구나? 풉. 답잖게 부끄럼이 많기는.”

   

   – …내가 다시는 조언해주나 봐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로 아드리 급의 사령이 아니었다면 루시가 흩뿌린 신성에 이미 정화 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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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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