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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1

       며칠간 에테르를 돌보던 버멜은 기한이 끝나자마자 부대로 복귀했다.

       

       “잘 돌아왔네. 휴가는 어땠나?”

       “그럭저럭 좋았습니다.”

       “녀석, 재미없기는.”

       

       펙튼 장군은 혀를 쯧쯧 차댔다.

       

       “사내 새끼가 뭘 그리 딱딱하게 구나? 여자친구 만나서 좋다고 말하면 되지.”

       “…그런 사이 아닙니다.”

       “아니긴 뭘 아닌가? 어이구야.”

       

       버멜은 한숨을 쉬며 장군의 곁을 지나갔다. 펙튼 장군은 화를 내려다 말고 머리를 긁적였다. 버멜의 눈동자가 매처럼 사나웠다.

       

       “장군 각하, 금안족과 엘프는 종족이 다릅니다. 그런 눈으로 본 적 없습니다. 업무 외의 대화는 일절 하지 않았고요.”

       “그래 알겠네. 이런 때 농담도 못 하나, 참.”

       

       펙튼은 한결 유해진 목소리로 너스레를 떨었다. 이제 그의 시선은 버멜의 머리 위를 향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대단하군. 휴가를 다녀와서 얻어온 게 대정령과의 계약이라니.”

       

       반투명한 실크 드레스를 뽐내는 미형의 소녀. 바람의 정령왕 에어리얼이 버멜의 주위를 살피고 있다.

       

       단순히 배회했을 때와는 다른 휘광이 뿜어져 나왔다. 버멜이 에어리얼과 공식적으로 계약했다는 증거였다.

       

       “공군께서는 변덕이 심한 정령으로 유명하시지. 저런 분을 어떻게 꼬셨나?”

       “꼬, 꼬시다니요? 그냥 부탁드렸더니 흔쾌히 계약해주신 것뿐입니다!”

       

       버멜이 질겁하며 손사래를 쳤다. 그럴수록 펙튼 장군의 눈매는 가늘어졌다.

       

       “아까 데려온 요호족 꼬맹이도 그렇고, 여자 꼬시는 재주가 제법일세. 종족 상관없이 말이야. 크하하하!”

       

       버멜은 얼굴이 벌게져서 막사로 돌아왔다.

       

       ‘저 사람, 단단히 착각하고 있군.’

       

       막사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였다. 부대 복귀에 맞추어 동료 장병 하나가 버멜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이봐, 친구.”

       

       실실 웃으며 혀를 깔짝이는 모습이 소름 돋았다.

       

       “마도부장관이랑 바캉스는 잘 보냈어?”

       “…이상한 소리 마라, 테안.”

       “이상한 소리는 무슨. 둘이 사귄다는 소문이 장안에 파다한데, 아악!”

       

       버멜은 테안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테안은 데굴데굴 구르며 소리를 질렀다. 그것을 본 다른 장병들이 깔깔댔다.

       

       “마도부장관이랑 무슨 관계인지 정도는 말해줘도 괜찮지 않아?”

       “그냥,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라고.”

       

       입에 게거품을 물고 밑바닥을 청소하던 테안이 끅끅거리며 말했다.

       

       “아, 씨. 이 새끼 이제 보니까 완전 숙맥이었네.”

       “숙맥은 개뿔.”

       “아니면 그 뭐야, 너…….”

       

       테안은 엉거주춤 일어나 버멜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그를 비롯한 동료들의 면상에 당혹감이 어렸다.

       

       테안이 엉덩이를 두 손으로 가리며 물었다.

       

       “…혹시 게이냐?”

       “아니야 이 새끼야.”

       “게이도 아닌데 그런 미녀와 섬씽도 안 해?”

       “하아…….”

       

       버멜은 뒷목을 잡으며 의자에 걸터앉았다.

       

       ‘그 상관에 그 부하라더니.’

       

       펙튼 장군에게 적응한 3군단의 말로가 이러하다. 어째 장병들이 날이 가면 갈수록 마초이즘에 절여지고 있다.

       

       심지어 나이가 비슷하다 보니 놀리는 것도 장군과는 결이 다르다. 부대원들은 그 뒤로도 신이 나서 버멜을 쪼아댔다.

       

       “아니, 진짜 둘이 무슨 사이냐니까?”

       “안 알려준다.”

       

       버멜은 대답을 회피하는 길을 선택했다.

       

       ‘뭐 하러 해명을 해? 어차피 올해 지나면 안 볼 것들인데.’

       

       그런 다짐을 한 것과는 별개로, 버멜은 에테르를 다시 한번 떠올렸다.

       

       ‘가까운 사이인 건 맞아.’

       

       둘이서 동향 사람이니까. 애국가를 낭송할 수 있는 건 이 세상에서 자신과 에테르뿐이니까.

       

       그래서 소중히 여겼다.

       

       이 소중하게 여기는 감정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연애 감정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우정이라고 굳게 믿었다.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녔기에 얻은 유대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왜냐하면 그 증거가, 지금 자신의 왼손 검지에 있었으니까.

       

       [‘창공의 반지’ 효과]

       

       [▶ 정령신앙]

       [상위 정령과의 계약 확률 대폭 증가]

       [정령마도의 위력 대폭 증가]

       [마력 폭주가 일어나지 않음]

       

       ‘알고 있던 것과 똑같군.’

       

       자신에게는 창공의 반지가 있다. 정령왕 에어리얼도 있다. 그동안 수련하면서 늘려놓은 마력과 아이템도 있다.

       

       마왕과의 전투, 이길 수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지금까지 최선을 다했다. 이길 수 있으리라고 믿는 것이, 이기는 유일한 방법이다.

       

       “호르데. 장군님께서 찾으신다.”

       

       스태프를 손질하던 버멜은 그 말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막사 밖으로 나가자 자신보다 머리가 두 개는 작은 소녀가 보였다.

       

       보랏빛 머리카락 사이로 난 한 쌍의 귀는 토끼처럼 쫑긋거리고, 꼬리는 가을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살랑거린다.

       

       프레이 폰 파스트렌드. 에테르와 로테의 친구이자, 이젠 자신의 친구이기도 한 요호족 소녀였다.

       

       “능력 검사는 다 받았어. 나도 여기 있어도 된다더라. 잘했지?”

       

       버멜은 대답하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프레이가 주변을 휙 둘러보고는 물었다.

       

       “여기 있으면 정말 신령님을 만날 수 있는 거지?”

       “그래.”

       “거짓된 정보면 나중에 비싼 술 사라고 할 거야.”

       

       프레이는 버멜의 팔꿈치를 툭툭 쳐댔다. 클란시아 25년산으로 부탁해. 그런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미안하지만 내가 술 살 일은 없겠네요.”

       

       버멜은 너스레를 떨며 북서쪽 초소를 가리켰다. 프레이의 고개가 갸웃 돌아갔다.

       

       10리 떨어진 망루가 불타 으스러지고 있었다. 

       

       

       **

       

       

       강한 용족은 브레스를 뿜을 수 있다.

       

       화룡이라면 불길을. 수룡이라면 물대포를. 그리고, 요르문간드와 같은 전룡(電龍)에 속한다면 전기를.

       

       요르문간드는 일반적인 전기룡과는 달랐다. 그녀의 이명은 방사(放射)였다. 말 그대로 방사선을 내뿜는 용이다.

       

       “흐읍.”

       

       ‘방혈’을 사용한 요르문간드는 피거품을 뱉었다. 진득한 타르 덩어리가 땅바닥에 처박혔다.

       

       ‘역시, 계속 쓸 기술은 못 되는군.’

       

       그녀는 피트 기관을 사용하여 주위의 열 분포를 감지했다. 그녀가 내쏜 것은 감마선이었다. 때문에 온 세상이 빨갛게 보였다.

       

       선두에 있던 정령 100여 마리가 노릇하게 구워진 뒤였다. 그 뒤에 있던 11군단의 망루와 초소도 박살 났다.

       

       구웠다는 표현도 모호하다. 방사선에 절여졌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했다.

       

       요르문간드는 산맥을 끼고 소리쳤다.

       

       “여와 대적할 자가 있으면 나와라! 묵사발을 내주겠노라─!!”

       

       혼이 울릴 정도로 장대한 외침이었다. 후열에 있던 정령들이 머뭇거리며 발을 뺐다.

       

       “내가 상대다!”

       

       흙의 정령왕, 노움이 앞으로 나서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요르문간드 네 이노옴!”

       

       노움이 붕권을 내지른다. 대지의 기운을 담은 용렬한 손동작이었다.

       

       쿠우웅! 주변이 진동했다. 요르문간드는 날개를 퍼덕이며 자리를 피했다. 그녀가 있던 자리에 깊은 구덩이가 파였다.

       

       “세상의 균형을 수호해야 할 용족이 어째서 아직도 마왕군에 있는 게냐!”

       “균형? 웃기는 소리를 하는구나.”

       

       요르문간드의 입꼬리가 뒤틀렸다.

       

       “여는 금안과 수인이 자유로운 세상을 보고 싶다. 너희 정령들이 이끄는 차별적인 세상이 아니라!”

       “마왕에게 단단히 속아 넘어갔군!”

       

       노움이 사선으로 짓쳐 들어왔다. 요르문간드는 아공간에서 제어봉을 꺼내 휘둘렀다. 일태도에 산맥이 신음했다.

       

       “마왕이 승리한 미래에는 파멸밖에 없다!”

       

       콰앙! 노움이 하늘을 올려 찍었다.

       

       무기를 노린 공격이었다. 요르문간드의 스태프에 금이 갔다. 요르문간드는 혀를 차며 제어봉을 버렸다.

       

       ‘역시 맨손이 제일 편하군.’

       

       요르문간드 또한 노움처럼 손끝에 힘을 모았다. 날카롭게 벼려진 기운이 한 점에 집중됐다.

       

       [삼중항(三重項) ─ 초식(初式)]

       

       [구안와사(口眼喎斜)]

       

       민천의 팔이 월도처럼 휘어 들어갔다. 움직임을 쉬이 예측할 수 없는 투로가 그려졌다.

       

       부우웅!

       

       그녀의 주먹이 노움의 몸통을 향하는가 싶더니, 얼굴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

       

       노움은 고개를 젖혀 공격을 피해냈다. 간발의 차이였다.

       

       ‘잘못했으면 얼굴이 뒤틀릴 뻔했군…!’

       

       1천년 전. 노움은 요르문간드와 붙은 기억이 있었다.

       

       저 ‘구안와사’라는 기술은 예나 지금이나 위험하다. 한 번 맞으면 제아무리 정령왕이라도 무사할 수 없다.

       

       “왕이시여! 저희가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때 상급 정령 열댓 마리가 요르문간드의 후방을 노리고 들어왔다.

       

       “너희들로는 안 된다! 건드리지 마라!”

       “으랴아아아─!!”

       

       불, 물, 땅, 바람. 네 가지 속성의 마법이 민천을 향해 쇄도한다.

       

       요르문간드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녀의 허리가 활대처럼 휘어졌다. 옆트임 사제복 사이로 드러난 각선미를 과시하며 마법을 현란하게 피해낸다. 그 모습이 마치 공중곡예를 하는 전투기와도 같았다.

       

       “어리석구나.”

       

       어느새 정령들의 뒤를 점한 요르문간드.

       

       [구안와사(口眼喎斜)]

       

       그녀가 다시 한번 같은 기술을 사용한다.

       

       “커헉…!”

       

       뻐억, 하는 소리가 나더니 정령 한 마리가 야산으로 꺼졌다.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었다. 동료 정령들이 당황하며 갈팡질팡했다.

       

       그러는 사이에 하나둘씩 땅으로 처박혔다. 모두 같은 기술을 맞았다. 노움이 소리를 버럭 지르며 요르문간드를 노려봤다.

       

       “네 이녀석…! 감히……!”

       “이것도 참으로 웃기는 일이군.”

       

       요르문간드는 코웃음치며 주먹을 까딱였다.

       

       “예나 지금이나 상대방과의 격차를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 많구나. 여의 심안(心眼)에는 시야각이 없다는 걸 모르느냐.”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르던 먼지가 잠잠해졌다. 투웅! 요르문간드에게 얻어터졌던 정령들이 다시 하늘로 올라왔다.

       

       “…생각보다 멀쩡한데?”

       “그러게.”

       “이제 보니 허세였어.”

       

       민천에게 맞은 정령들은 괜찮은 모양새였다. 얼굴이 살짝 돌아간 걸 제외하면 그럭저럭 움직일 수 있었다.

       

       “마수 주제에 봐주고 있어!”

       

       아무것도 모르는 정령들이 재차 돌진해 왔다. 이번에는 정면과 측면에서 날아온다. 그 모습을 본 노움이 질겁했다.

       

       “마법을 쓰면 안 된다! 돌아와라! 돌아……!”

       

       파바박!

       

       요르문간드를 향해 마법을 시전하던 정령들의 머리가 일제히 터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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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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