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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2

       아직 2학년 1학기가 시작되기 전.

        

       법국에서의 사건으로 인해 방학이 아주 많이 단축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쉴 시간이 전혀 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그렇게 시간이 나지 않았으면 내가 여기 오지 못했을 테니까.

        

       정치적인 사안이 학생의 수업보다 우선이 될 수는 없지만, 앨리스는 이 사안을 최대한 남들의 이목을 끌지 않는 선에서 끝내고 싶어 했다.

        

       황제 자리가 비었다는 사실을 숨길 수는 없다. 앨리스가 황태녀의 자리에 오르고 내가 제국의 이인자가 되었으니까. 애초에 개선식을 하는 시점에서 이미 제국민들한테 이야기가 널리 퍼졌고, 귀족들도 다 알고 있으니 뭐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황제의 계획이 무엇이었는지 세간에 공표된 적은 없다. 아마 앞으로도 공표할 일은 없을 거다.

        

       여신의 힘을 강탈해 세상을 지배할 계획을 세웠다? 제국민이라면 그 이야기에 혹하는 이들이 반드시 나올 거고, 그랬다가는 앨리스의 정치적 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 그리고 대다수의 귀족도.

        

       아무리 황제파 귀족이라도 황제의 노예가 되고 싶어 황제를 지지하지는 않는다.

        

       지보를 이용해 세상을 지배하는 황제가 귀족이라고 노예로 만들지 않았을 리가 없으니, 귀족들 처지에서도 황제의 그 계획은 백 퍼센트 지지할 수 없는 계획이었다.

        

       오히려 거의 철권 통치를 하던 황제가 자리에서 내려왔으니 기회를 엿봤으면 엿봤지.

        

       그렇다고 그 황제를 제국 바깥에 두는 것은 곤란했다. 황제 자신이 외국의 정치적인 말로 이용될 일은 없겠지만, 그것을 명분으로 활동하는 반정부 조직이 생길 수는 있다. 황제와 한마디도 나누어본 적 없는 평민 중 일부가 황제의 신병을 물려받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테러단체를 조직하면 골치 아파진다.

        

       결국 우리가 내린 결론은 겉으로 보이기에라도 황제가 무사히 제국에서 지내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야 권력을 ‘물려받은’ 것처럼 보일 테니까.

        

       그렇다고 대대적인 환영식을 벌이며 황제를 맞이할 생각은 없다. 어디까지나 조용히 황제를 데려다 두고, 나중에 누군가 트집을 잡으면 그때 명분으로 세울 수 있도록.

        

       “괜찮겠어요?”

        

       “괜찮습니다.”

        

       짧은 벨부르 방문이 끝나고, 다시 제국으로 돌아가는 날. 기차역에는 샤를로트가 마중 나와 있었다.

        

       열차 자체는 평범한 열차였다. 제국의 이인자인 내가 루테티아에 방문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비공식적인 방문이었고, 임무도 극비임무였으니 열차도 눈에 띄어서는 안 된다.

        

       심지어 지금 시간대는 열차가 운행하는 시간도 아니었다. 완전히 한밤중, 자정은 넘었지만, 아직 새벽이라고 불리기에는 이른 시간. 심지어 달이 뜨지 않는 날을 골랐다.

        

       그래도 결국 기차는 불을 환하게 켠 채 달릴 테니 기차 자체가 보이지 않을 일은 없지만.

        

       다행히 제도와 왕도 사이를 달리는 화물열차는 많다. 오가는 우편물도 있었고. 이 시간에 열차가 달리는 것이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제가 물어보고 싶네요. 이 시간까지 깨어있으셔서 괜찮으십니까?”

        

       “지금 농담하는 거죠? 내가 애도 아니고.”

        

       한겨울의 한밤중. 샤를로트는 두꺼운 겨울용 코트를 입은 채 역에 나왔다.

        

       당연히 샤를로트가 여기 있다는 것도 어디까지나 비공식이다.

        

       “정보가 새어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였지만, 그렇다고 완벽했다고 확신할 수는 없어요. 왕도에나, 제도에나 보는 눈이 있고 듣는 귀가 있으니까. 한참 동안 관리하던 중요 죄수가 사라졌다는 소문은 반드시 퍼지겠죠.”

        

       그러니 열차를 타고 온 거다. 이 세계의 운송 수단 중 열차를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은 비행기 외에는 매우 드무니까.

        

       “알고 있습니다.”

        

       내가 담담하게 말하자, 샤를로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큰일이 일어나지는 않겠죠.”

        

       “그렇다고 방심할 생각도 없습니다.”

        

       나는 그렇게 대답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래, 맞아. 우리도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했고.”

        

       “설령 그런 상황이 벌어져도 맞설 자신은 있어.”

        

       클레어와 레오가 한마디씩 했다.

        

       그레이스 가는 황제가 바뀌어도 여전히 굳건한 황제파였다. 애초부터 그레이스 가는 그런 정치적인 사안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황제의 편을 들어왔다. 그게 지금까지도 그레이스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였고.

        

       “게다가 우리 말고도 열차에 탄 사람은 많으니까.”

        

       그래, 이 둘 말고도 더 있었다. 아주 믿음직한 실력을 갖춘 사람들이.

        

       “……너무 열차 바깥에만 신경 쓰는 것도 위험해요. 열차 안에 탄 인물들도 극도로 위험한 인간들이니까.”

        

       벨부르 왕녀로서 느낀 바가 많은지, 샤를로트는 그렇게 말했다.

        

       “아버지는 다소 아쉬워하시는 것 같지만, 저는 막상 이렇게 되니 홀가분하네요. 세상 자체를 적으로 돌렸다가, 자기 발밑으로 끌어내리려고 했던 사내와 그 일당들이 벨부르를 떠나는 거니까.”

        

       “다시는 그런 일을 벌이지 않도록 엄중히 관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굳이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어요. 적어도 합당한 수준의 배상금은 받게 되었잖아요?”

        

       그리고 그 배상금은 제국의 국가 자산이 아니라 황실의 예산에서 내기로 했다. 한 번에 다 내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나눠서.

        

       따지자면 ‘황제가 법국을 박살 내버렸으니 법국을 재건할 비용을 내라’는 명분이었지만, 법국 자체가 거의 기능을 잃어버린 지금 상황에서 그 돈을 받는 대리인은 벨부르 왕실이었다.

        

       일단 돈에 달린 명분이 있으니 함부로 막 쓸 수는 없어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융통하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용도를 바꿀 수 있으리라. 법국이 왕국에 벌인 일도 있으니 ‘법국의 돈’으로 왕도 일부를 ‘고치는’ 것 정도는 허용되겠지.

        

       “황실로서는 다소 뼈아픕니다만.”

        

       “서로 부딪히는 걸 피하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죠.”

        

       제국의 돈이 아닌 황실의 돈으로 사건을 무마했으니 제국 귀족들이 반발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황실의 권한’은 ‘귀족의 권한’이 중요한 만큼 중요하니까. 귀족이 황실에 참견한다는 것은 황실이 귀족가에 참견해도 된다는 소리다. 아니, 오히려 훨씬 심하고 우악스럽게 참견할 명분이 생길 거다.

        

       반대로 왕국 입장에서도, 어쨌거나 돈을 받기는 받았으니 뭐라고 하기는 힘들 거고.

        

       아무리 친구라도 공과 사는 딱 나눠야 한다는 듯 샤를로트는 단호하게 대답하고는 금세 아쉬운 표정이 되었다.

        

       “그럼…… 이제 4월이 될 때까지는 만날 일은 없겠네요.”

        

       앨리스가 황태녀가 되었으니, 샤를로트도 그에 걸맞은 교육을 받게 되었다. 차기 황제가 앨리스였으니, 그 친우인 샤를로트가 왕이 되면 여러모로 두 나라 사이에 이점이 많겠지. 왕국에서도 그걸 고려하는 동시에, 샤를로트가 지나치게 친제국적 사람이 되는 것을 방지하려는 것 같다.

        

       “반대로 말하자면, 4월이 되면 다시 만날 수 있습니다.”

        

       내 대답을 들은 샤를로트는 피식 웃었다.

        

       “그건, 그렇네요.”

        

       샤를로트도 다니던 아카데미는 마저 다니고 싶어 했다.

        

       만약 앨리스와 샤를로트가 모두 황제, 왕이 되고 나면 두 사람이 얼굴을 마주 보는 일은 거의 없게 될 거다.

        

       아주아주 가끔 정상회담 정도는 할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다른 나라에 방문하는 것은 그 뒤에 자리를 잇는 사람이 있지 않은 이상은 힘들겠지.

        

       ……아니지, 그건 모르는 일이다.

        

       어차피 그것도 4년 뒤에나 있을 일. 게다가 샤를로트가 왕이 되는 건 또 언제인지 알 수 없고.

        

       그러니, 지금부터 그런 고민을 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그저, 남은 학창 시절을 맘껏 즐기면 된다.

        

       앞으로 3년이나 남았으니까.

        

       “맞아, 그리고 나나 레오는 개인적으로 다시 놀러 올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되면 반드시 오기 전에 연락부터 해주세요. 루테티아 왕궁은 친구들에게는 언제나 열려있으니까.”

        

       “그거 좋네.”

        

       샤를로트의 말에 클레어는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

        

       “드디어 들어왔느냐?”

        

       열차에 타자, 잔뜩 불만이 서린 노인의 목소리가 나를 반겨주었다.

        

       “어차피 열차가 출발하려면 여러 준비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너는 어째 날이 갈수록 대답이 오만불손해지는구나. 드디어 본색을 드러낸 것이냐?”

        

       뭐,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주변 사람들이 내 웃는 얼굴을 볼 때마다 딱딱하게 얼어버리는 일은 없으니까.

        

       아니, 그건 아닌가? 나와 대단히 가깝지는 않았던 사람들은 아직도 조금 겁을 먹는 모양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처음부터 컨셉 같은 것을 잡지 말 걸 그랬다.

        

       솔직히, 내 예상보다 주변 사람들이 너무 빠르게 적응해버려서 김이 빠질 정도였으니까.

        

       “안에 있는 사람과 대화는 나누어보셨습니까?”

        

       “짧게 나누긴 했지.”

        

       열차에는 황제 말고도 황제의 아이 세 사람도 함께 탔다. 검성은 루카스가 꽤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키워보고 싶은 모양이지만…… 글쎄, 그런 위험한 짓은 하지 말아줬으면 하는데.

        

       “루카스는 이제 스승님보다 실력이 더 좋지 않습니까? 굳이 가르치거나 할 필요는…….”

        

       “인성에 대해서는 조금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만.”

        

       “그렇게 하기에는 스승님의 인성이 그렇게까지 대단하지는—”

        

       빠악!

        

       한순간 별이 보였다.

        

       열차 밖도 아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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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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