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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2

     

    정령어 라는 것은 원래 정령이 하는 말을 들을 때의 규칙과, 인간이 소리를 내는 규칙이 달랐다.

    그래서 정령어는 정령사들이 정령이 하는 말을 들을 때 해석하는 방법과, 인간이 자신의 의사를 정령에게 전달할 때 사용하는 방법이 굉장히 다른 언어였다.

     

    그야 그럴 수 밖에 없다, 정령은 물질계의 어떤 소리라도 만들어낼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인간의 성대로는 그 정도로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없으니까.

    따라서 인간은 정령에게 악기라는 도구의 도움을 받아서도 고작 명령어 투의 딱딱한 이야기밖에 건넬 수 없고, 정령도 그런 인간에게 최소한의 도움밖에는 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평범한 정령사와 정령들의 이야기.

     

    루크는 결코 ‘평범한’ 수준의 정령 감응력을 지닌 것이 아니었다.

     

    이 모든 시대를 통틀어 현재 자신보다 정령 감응력이 뛰어난 존재는 없었을 것이라 확신할 수 있는, 그야말로 압도적인 존재.

    심지어 그런 재능을 지닌 존재가 다름아닌 ‘마법사’라는 것은, 그동안 어떻게든 지켜져 왔던 룰을 뒤바꾸어 버리는 셈이다.

     

    감각적인 언어인 ‘정령어’의 이성적인 통찰.

     

    모든 사람들에게 각자 다르게 받아들이는 감정을,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논리로 풀어버리는 것은 본래 있어서는 안 될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반된 재능을 동시에 지닌 루크는 해냈다.

    최소한, 해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지금까지는 자신이 나름대로 정령어의 이성적 해석이 다른 사람에게도 정말로 통용되는 것인지, 루크는 실험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제외한 정령사를 전혀 찾을 수 없었으니까.

     

    자신이 이해한 정보가, 타인에게도 올바르게 인식되는 것인지 알아내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 정보를 교차검증 할 만한 타인이 필요하다.

    하지만 애초에 정령조차도 극도로 희귀해진 현재.

    루크는 정령사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 자체를 품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헬레나가 바로 그 정령사였다니, 이 무슨 기적의 안배인가!

     

    심지어 헬레나는 어떤 음이든 정확히 듣고 거의 완벽하게 따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뛰어난 감각까지 지니고 있었다.

    루크가 허밍을 하면, 헬레나는 무리없이 따라했다.

    일일이 음을 짚어주지 않더라도 상당히 정교하게 말이다.

     

    “헬레나. 너는 절대음감인 것 같구나.”

    “절대음감?”

     

    아마도 헬레나는 어떤 음을 들으면 음의 높낮이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절대음감’까지 타고난 것 같이 보였다.

    하긴, 그만한 정령적 재능이 있다면, 절대음감 정도는 그렇게 이상한 일도 아니리라.

     

    어쩌면, 루크 자신에게도 있는 재능일지도 모르지만, 알 수는 없다.

     

    자신이 어떤 노래의 음계를 듣고 바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절대음감’의 덕분인지, 단순히 ‘기억력이 좋아서’인지 자신은 구분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헬레나가 절대음감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시루드가 놀랐다는 듯이 묻는다.

     

    “그랬어?”

    “몰라……?”

     

    하지만 헬레나도 사실 그런 이야기는 지금 루크에게 처음 들은 상태다.

    원래 태어날 때부터 갖는 재능이라는 것이 으레 그렇듯이, 자신에게는 그것이 너무나 당연해서 특별한 것인지 알 수 없었으니까.

     

    “헬레나, 어떤 노래나 연주를 들으면 그 음이 정확히 머릿속에서 짚어지지 않더냐?”

    “으음, 확실히 그런 느낌이 있기는 해……. 그런데 그게 특별한 건가? 다들 그런 거 아니었어?”

     

    헬레나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야 특별하지. 그것은 아주 희귀한 재능이란다.”

    “그래?”

     

    사실 루크도 비슷한 경험을 겪었던 적이 있었다.

     

    마법사로서 철이 없던 2서클 시절, 루크는 남들은 마법을 쓸 때에 대체 왜 그토록 대놓고 보이게 마법을 쓰는지, 어째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술식을 보고 베낄 수 있다는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루크는 자신이 시전하는 마법의 식을 현장에서 보고 파악할 수 없도록 암호화하는 방식을 어렵게 고안해 냈는데, 의외로 그 방식은 별 호응을 받지 못했다.

     

    그 이유를 묻자, 마력시가 없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런 마법식이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고 어찌나 당황했던지.

    어차피 마법의 식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굳이 암호화를 한들, 불필요한 공정이 추가될 뿐 아무짝에 쓸모가 없었던 것이다.

    자신은 태어날 때부터 마나가 보였으니, 당연히 다른 사람들도 그러하리라고 지레짐작해 발생한 오해였다.

     

    아마 헬레나도 자신이 지적하기 전에는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왔겠지.

    “뭔가 대단한데, 절대음감이라니.”

     

    시루드가 감탄하며 말하자, 루크는 씨익 웃으며 생각했다.

     

    ‘앞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주 편해지겠어.’

     

    그렇게 헬레나가 정령어에 흥미를 붙이게 하는 것에 성공한 루크는, 잠시 휴식을 갖기로 했다.

    잇다른 보컬 트레이닝에 헬레나도 꽤나 지쳐 보이는 것 같기도 했고 말이다.

     

    —————

     

    다시 루크의 방.

     

     

    시루드가 투덜댔다.

     

    “그나저나, 마법은 이제 진짜 완전히 잊혀졌네.”

    “그, 그러게…….”

     

    시루드의 한탄스러운 투덜거림에 헬레나는 미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처음에는 마법 배우러 왔다가, 어느 순간 깨닫고보니 음악공부를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고야 말았다.

     

    그 때, 루크가 돌아와서 말했다.

     

    “너무 걱정 말거라, 마법 실험도 너희들이 원한다면 할 수 있으니.”

    “글쎄, 그러기엔 헬레나가 너무 지친 것 같은데.”

    “하하, 그런가.”

     

    흔들거리는 초점, 제멋대로인 걸음걸이, 확실히 시루드의 말 대로였다.

    지칠 법도 하다.

    정령어는 꽤 높은 정신력을 요구하니까.

     

    루크는 지친 헬레나를 위해 새로운 차를 꺼냈다.

     

    “자, 마시거라. 피로도 풀릴 거고, 목에 좋은 성분도 넣었단다.”

    “으응, 고마워.”

     

    헬레나가 가볍게 감사를 표하며 차를 두 손으로 받아들고 홀짝이기 시작했다.

    레몬을 넣었는지, 차의 향기에 상큼한 레몬향이 어우러져 아주 인상적인 맛이 났다.

     

    “근데 진짜 맛있다, 이거. 뭘 넣은 거야?”

    “그렇지? 자몽의 즙을 조금 넣었단다. 네가 좋아하니까.”

    “…….”

     

    루크의 상큼한 웃음을 바라보던 헬레나는 미묘한 표정으로 시선을 피했다.

     

    ‘네가 좋아하게 만든 거면서…….’

     

    그것은 예전에 루크가 자신이 ‘단 걸 싫어한다’고 했던 걸 기억하고는 카페에서 일부러 달지 않은 음료를 주문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사실, 이전의 헬레나는 자몽을 절대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야, 당연하다.

    아이의 입맛에 자몽은 그저 쓰기만 할 뿐이니까.

     

    하지만, 지금은 어째서일까.

    그저 너무 맛있기만 하다.

    과연, 이게 바로 친구라는 것일까?

    헬레나는 자신의 사소한 것까지 기억해준 루크에게 마음 한켠이 포근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홀짝.

     

    “…….”

     

    어쩌면…….

    이게 루크의 사랑하는 방식일지도.

     

    그렇게 생각하니 살짝 미안하기도 하다.

    어쩐지 자신도 뭔가를 주고 싶은 느낌이 들어서, 헬레나는 루크를 향해 물었다.

     

    “루크, 그런데 너도 인형 좋아해?”

    “인형? 그건 왜 묻지?”

    “아니, 저기 침대에 있는 인형을 보니까, 문득 생각이 나서.”

    “그래?”

     

    루크는 헬레나의 표정을 살짝 살폈다.

    다행히 인형을 탐낸다거나 뭔가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정말로 궁금해서 물어본 듯한 표정.

     

    그래서 루크는 가볍게 대답했다.

     

    “뭐어, 좋아한다면 좋아하는 편이지.”

    “흐음, 그래?”

    “그럼 헬레나, 너는 인형을 좋아하나?”

     

    헬레나는 밝게 미소를 지었다.

     

    “응, 정말 좋아해.”

    “역시 좋아하는구나.”

    “응!”

     

    헬레나는 항상 불만이 있다는 듯이 인상을 쓰고 있어서 귀여운 얼굴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 아이였다.

    그런데 헬레나가 저렇게나 활짝 웃는 모습을 보이게 되다니.

    그건 아주 놀라운 변화였다.

     

    ‘어째서 이렇게 갑자기 변했을까?’

     

    그에 루크는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헬레나는 자신과 같은 취미의 동료를 만난 것이 아주 즐거운 것이 아닐까?

    어쩌면 동질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과연…….’

     

    루크는 스스로의 추측에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에 있지 않았다.

     

    ‘그런데 결국 인형 이야기를 하게 되는군…….’

     

    마법을 가르쳐 준다고 불렀으니 인형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고 계획한 것이 무색하게도, 인형은 결국 대화의 주제가 됐다.

    그래도 뭐, 썩 나쁜 상황은 아니었다.

     

    루크는 씨익 웃으며 헬레나를 계속 바라보았다.

    그러자, 헬레나가 문득 깨달았다는 듯이 화들짝 놀라며 외쳤다.

     

    “……아니, 인형 얘기지 물론!”

    “그래, 인형 이야기 맞다만?”

    “……아, 그래? 난 또…….”

     

    헬레나는 부끄럽다는 듯이 시선을 피했다.

    대체 뭘 좋아한다고 생각한 걸까?

     

    루크는 그것도 궁금했지만, 지금은 사실 그런 자잘한 것 보다는 다른 것을 물어보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럼 헬레나, 혹시 품질 좋은 인형을 구할 수 있는 곳을 아느냐? 인형을 많이 사고 싶은데. 수제라면 더 좋고……. 내가 그런 건 잘 몰라서 말이다. 어디서 구매를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

     

    공장에서 찍어내듯 생산한 인형과, 장인이 직접 정성껏 손으로 만들어낸 인형은 리빙아머로 만들 때 그 차이가 아주 컸다.

    케이트를 만들 때 얼마나 우여곡절이 많았는지를 떠올려보면 참으로 그렇다.

    반면 리브는 고급 원단을 사용한 수제 인형이었기 때문에, 고작 하루만에 비교적 손쉽게 리빙아머를 그 몸에 안착시킬 수 있었다.

     

    따라서, 루크는 자신의 ‘인형 군단’의 재료로 고급 수제 인형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문제는, 어느 인형점의 수준이 고급이라고 할 수 있는지 전혀 모른다는 것.

     

    검색을 해 보아도 온갖 광고문구로 점철된 인형점만 나오니 신뢰성이 부족하고, 자신의 주변에는 평소 인형에 관심이 있는 사람도 없어서 물어볼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다.

    그런데 헬레나가 인형을 좋아한다면, 어쩌면 헬레나는 자신의 기준에 걸맞는 인형점을 알려줄 수도 있으리라.

    루크의 말에 시루드가 의심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너 인형으로 대체 뭘 하려고?”

    “뭘 하냐니.”

     

    당연히 아린세이아의 리빙아머를 옮겨 제작할 생각이었다……만, 시루드에게 그것을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루크는 조금 완곡하게 돌려말했다.

    일부러 더욱 더 아이 같은 몸짓과 목소리로.

     

    “그저, 이 아이들이 외로워하지 않도록 친구를 많이 만들어주고 싶을 뿐이야.”

    “……어, 그래?”

     

    시루드는 루크의 말과 행동에 커다란 충격을 받은 듯,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헬레나는 그런 루크의 말이 굉장히 마음에 든 모양이다.

     

    “그래! 시루드, 왜 그래? 루크도 여자애인데, 방에 겨우 인형 두개로는 부족하지!”

     

    시루드는 결국 아무말도 못 했다.

    자신이 여자애 방에 익숙한 것도 아닌 이상, 여자아이인 헬레나가 주장하는 것을 반박할 근거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그냥 납득하기로 했다.

     

    “그, 그런가?”

    “그래!”

     

    헬레나는 들떠서 잠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수제 인형……. 하나 아는 곳이 있긴 한데.”

    “그……. 혹시  인형점의 이름을 좀 알려줄 수 있겠느냐?”

    “아아, 메를린 인형점인가, 그랬을 걸? 여기가 아주 부드럽고 귀여운 인형들이 진짜 많아!”

     

    헬레나는 흥분한 목소리로 빠르게 메를린 인형점의 장점에 대해 말했다.

    앨리스씨도 거기에서 샀으니 말이다.

     

    헬레나의 추천에 루크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메를린 인형점이라……. 고맙군, 내 기억해두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루크의 임기응변에 곁에서 들은 리브랑 케이트 동시에 정색…
    말잇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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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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