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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2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다.

         

       평소에 발길조차 주지 않던 가문으로 돌아오자마자, 그것도 한밤중에 자신을 찾기에.

         

       몹시도 충격적이거나, 중요한 말이 나올 거라는 걸 예상하고 마음의 준비까지 했건만.

         

       그럼에도 지금의 말은 더없이 충격적이었다.

         

       “지금…, 뭐라고 하였느냐.”

       “사파의 여식과 혼인하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혼인하고 싶다도 아니고, 혼인하게 되었다?”

         

       말인즉 허락을 구하는 것도 아니고, 이미 결정된 사안을 통보하는 것이 아닌가.

         

       가벼운 현기증이 인다.

         

       그는 손가락으로 제 관자놀이 부근을 꾹꾹 누르며 이성을 유지하고자 애썼다.

         

       “네가 속한 가문… 아니, 소속이 어디인지를 잊은 게냐?”

       “정파지요.”

       “그것을 잊은 게 아니라면 정파와 사파가 어떤 관계인지를 잊은 게로구나.”

       “견원지간 아닙니까.”

         

       막힘없이 술술 나오는 대답에 백영학은 정신이 더욱 아찔해졌다.

         

       당장에라도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호통을 치고 싶었으나, 꾹 참았다.

         

       지금까지 백우진이 보인 행동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하나 같이 막 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더없이 옳은 행동이었다는 것.

         

       오직 그 사실 하나만을 떠올리며 그는 화를 터뜨리는 것 대신 물음을 택했다.

         

       “누구더냐. 정파의 후기지수와 혼인을 결심한 사파의 여인의 정체가 궁금하구나.”

         

       언중유골(言中有骨).

         

       말에 단단한 뼈가 느껴졌다.

         

       은은한 노기가 서린 말투에도 백우진은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쯤이면 당연히 분노를 터뜨릴 줄 알았는데.’

         

       사흑련주와 도경의 이름을 먼저 꺼내지 않은 것은 일종의 유희이자, 복수였다.

         

       무엇 하나 뒤틀리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의 그라면 사파의 여식과 혼인하게 되었다고 통보했을 때 곧장 분노를 터뜨릴 거라고 예상했건만.

         

       그는 가까스로 침착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내 흥미를 잃어버린 백우진은 그를 놀리는 것을 그만두었다.

         

       어차피 그것 말고도 해야 할 충격적인 말들은 많이 남았으니까.

         

       “사흑련주의 여식입니다.”

       “뭐, 뭐라?”

         

       눈, 코, 입.

         

       어느 하나 커지지 않은 게 없는 그의 표정을 보니 잘못 생각했구나 싶다.

         

       그냥 다짜고짜 사흑련주의 여식과 결혼하게 되었다고 말했더라면 더 놀라지 않았을까.

         

       “사흑련주의 여식이라니, 그게 무슨….”

         

       도무지 믿기 힘든 말이었다.

         

       사파의 여식과 결혼한다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 대상이 사흑련 절대자의 딸이라니.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헌데…, 사흑련주에게 딸이 있었다는 말은 처음 듣는구나.”

       “음, 여기에는 좀 복잡한 사정이….”

         

       백우진은 모두가 사내로 알고 있는 도경이 여자임을 밝혔다.

         

       어차피 곧 있으면 세상 모두가 알게 될 일이기에.

         

       마찬가지로 놀라운 얘기였으나, 백영학의 표정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조금 전의 말에 비하면 이 정도는 버틸 만했다.

         

       “그렇다면 네 말인즉…, 우진이 네 혼인을 정사 연합의 증표로써 희생하겠다, 이 말이냐.”

         

       그의 물음에 백우진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그 반댑니다.”

       “반대라니….”

       “말씀하셨듯 정파와 사파는 견원지간, 웬만해서는 혼인을 허락받을 수 없잖습니까.”

       “정사 연합이라는 중원 무림의 역사에 길이 남을 순간을 이용할 만큼 그 여인을 사랑한다는 말로 들리는구나.”

       “그럴 만한 여인이니까요.”

         

       백우진의 단단한 마음이 백영학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일부 덜어내는 데에 일조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문제가 될 것은 없어 보인다.

         

       오히려 혼인을 통해 얻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명성은 명성대로 챙기고 사흑련이라는 거대한 뒷배경을 손에 넣게 될 터.

         

       무심코 상념에 빠진 그의 귓가로 백우진의 말이 들려왔다.

         

       “허락을 받고자 말씀드린 게 아닙니다. 조만간 기별이 갈 테니 놀라지 마시라는 뜻으로 알려드리는 것일 뿐.”

         

       백영학은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입 안이 쓰다.

         

       아비의 의사는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 인륜지대사와 자식의 차가운 태도가 썩 아프다.

         

       그것이 자신의 선택으로 인한 결과물임을 알기에 더더욱.

         

       “…무슨 뜻인지 잘 알았다. 기별이 전해지면 네가 원하는 대로 하마.”

         

       더없이 씁쓸하고, 안타까운 일.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알고 있다.

         

       이미 되돌리기엔 너무나도 먼 길을 와버렸음을.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서로의 앞길에 방해되지 않도록 적당한 거리감을 둔 채로 살아가는 것뿐이라는 것을.

         

       “할 말이란 그것으로 끝인 게냐.”

         

       그것은 물음임과 동시에 바람이었다.

         

       짧으면서도 짧지 않은 대담을 통해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하나하나가 제 가슴을 시리고, 쓰리게 만드는 것들.

         

       달게 받아 마땅한 일임을 알면서도 달갑게 받아들일 수 있을 만한 재질의 것이 아니었기에 충격적인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길 하고 바랐으나.

         

       백우진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분가(分家)할 예정입니다.”

       “…….”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백영학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어느 정도 예상했고, 동시에 가장 나오지 않기를 바랐던 말이 마침내 그의 입에서 나오고야 말았다.

         

       백우진이 가문 내에서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생각하면 답은 금세 나온다.

         

       분가라고 말을 하긴 했으나, 사실상 연을 끊자는 말과 다름없다는 것을.

         

       고민 끝에 그가 꺼낸 말은 다름 아닌 확인이었다.

         

       “심사숙고하여 내린 결정이냐.”

       “예.”

         

       사실 고민이고 뭐고 할 게 없었다.

         

       애초에 가문에서 천덕꾸러기 취급받으며 살아왔는데 남아 있는 게 더 이상한 것 아닌가.

         

       “네 뜻이 그러하다면…, 그런 것이겠지.”

         

       그가 힘겹게 말을 내뱉었다.

         

       평생 외면해온 자식이다.

         

       그런 그의 선택을 말릴 명분도, 자격도 백영학에겐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작은 바람이 있다면 그가 세우게 될 가문의 터와 장원 정도는 마련해주고 싶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뒤늦게 부성애가 폭발한 것인지, 아니면 고작 20대의 나이로 아비인 제 경지마저 뛰어넘은 괴물 같은 재능을 지닌 자식과의 연을 조금이나마 이어두고 싶은 것인지.

         

       뜬금없이 바람이 치솟았으나, 그것을 입 밖으로 내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다.

         

       자신을 그토록 괴롭혔던 둥지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보금자리를 만들고자 하는 자식에게 고통을 안겨준 아비가 만들어준 장원 위에다 가문을 세우라는 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가문을 세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각오하고 있습니다.”

         

       제 손으로 하나의 구성체를 만드는 일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세심하게 전부 신경 써야 하는 마당에 심지어 자신은 가족의 사랑이란 걸 제대로 느껴보지 못한 고아 아닌가.

         

       안 그래도 힘든 일을 남들보다 두 배, 세 배는 더 힘들게 이루어내야 할 테지.

         

       그래도 상관없다.

         

       사랑하는 이들과 평생 함께 보낼 수만 있다면 그 정도 어려움쯤이야.

         

       “앞으로 이곳에 올 일은 거의 없을 겁니다.”

         

       백우진이 마지막 말을 전했다.

         

       분가까지 허락받은 이상, 그가 이곳에 올 일은 없을 것이다.

         

       설령 있다고 해도 백무혁이 가주의 자리를 물려받은 이후에나 방문하지 않을까.

         

       그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할 말은 모두 전했으니 이곳에 더 이상 남아 있을 이유가 없어졌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가볍게 목례한 뒤 곧장 돌아서려던 백우진은 심장 한쪽을 시큰거리게 만드는 미약한 통증에 눈살을 찌푸렸다.

         

       매정하게 돌아서는 자신을 욕하는 것만 같았다.

         

       억지로 발을 떼는 그의 등 뒤로 백영학의 나지막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간 고생 많았다. 남은 삶은 더없이 행복하기를 바라마.”

         

       그 말을 듣자마자 심장에 전해지는 시큰거리는 통증이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했다.

         

       별다른 대꾸는 하지 않았다.

         

       늦어도 너무 늦은 말이었다.

         

       그 말에 뜨겁게 눈물을 흘릴 순진무구한 둘째 아들은 이미 죽은 지 오래기에.

         

       중원 전역에서 전운(戰雲)이 고조되기 시작하던 어느 날의 밤.

         

       백우진은 깊은 고요 속에서 하나의 케케묵은 인연을 정리하고서 새로운 길에 올라섰다.

         

         

       * * *

         

         

       전쟁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던 혈교주가 중원 전역에서 날아드는 급보에 분통을 터뜨렸다.

         

       “이런 빌어먹을!”

         

       좋지 않은 소식들이 연달아 뒤를 이었다.

         

       적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 년간 이어온 개미굴을 발각당해 제물과 교인을 모두 잃지를 않나, 열렬히 치고받고 싸우다 간신히 협의점에 도달해야 할 정파와 사파 놈들은 갑자기 죽이 척척 맞아떨어지기 시작하질 않나.

         

       덕분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땅 밑까지 탐색 범위를 늘린 하오문과 정사 연합 때문에 제물의 수급은 더욱 힘들어졌고, 상대해야 할 적은 하나의 덩어리로 똘똘 뭉치기 일보 직전인 상황.

         

       거기에 또 하나의 첩보가 날아들었다.

         

       이토록 일이 수월하게 풀리기 시작한 데에 백우진이 엮여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는.

         

       “또, 또 그놈의 백우진!”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차라리 일황이나 삼존쯤 되는 이가 대업을 막아서고 있는 거라면 분통이 터져도 이해는 할 수 있을 텐데, 고작 후기지수에게 이백 년에 걸쳐 쌓아 올린 대업을 자꾸만 어그러뜨리고 있으니, 미치지 않고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용할 지경이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불길한 확신이 머리를 치켜든다.

         

       혈교의 대업을 방해할 대적자가 삼존도, 일황도 아닌 백우진이 될지도 모른다는.

         

       아니, 백우진이 사라져야만 대업을 완성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게 된 순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좌호법.”

       “예, 교주님.”

       “중원 전역에 퍼져 있는 교인들에게 집결 신호를 보내라.”

       “……!”

         

       고개를 숙인 채 부복하고 있던 좌호법의 얼굴에 희열이 차올랐다.

         

       그 말인즉, 지지부진한 전쟁 준비를 끝마치고 마침내 본격적인 싸움에 돌입하겠다는 뜻.

         

       드디어 웅크리고 있던 몸을 펼칠 수 있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하기에.

         

       교주가 말을 이었다.

         

       “정무학관을 피로 씻을 것이다. 백우진을 비롯한 정파의 간악한 놈들의 피로 성전의 성대한 시작을 선포할 것이니, 그리 준비하도록 하라.”

       “교주님의 명을 받듭니다!”

         

       정무학관을 뒤덮고 있는 하늘에 암운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당분간은 이제 또 낮에 연재가 이루어질 듯합니다.

    한 번 시간이 밀리니까 이제는 새벽 지나 낮이 되어야 글이 써지네요;;

    독자님들의 너른 양해바랍니다.

    그럼 저는 다음 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셔요. (_ _)

    다음화 보기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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