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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2

       

       

       

       

       

       312화. 아브락사스 ( 2 )

       

       

       

       

       

       성도에는 항상 세 명의 팔라딘이 존재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팔라딘 자리가 잠시 공백으로 유지되는 기간은 있었지만, 그 절대적인 수는 항상 세 명을 유지했다.

       

       세 명의 팔라딘.

       

       하지만, 세간에 활동하는 팔라딘은 항상 두 명이었다.

       

       대표적으로는 라이언하트와 데모닉이 그러했다. 그 둘은 팔라딘의 이름으로 활동했지만, 나머지 한 명의 팔라딘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아는 바가 없었다.

       

       아무도 아는 이가 없다고 하여 얼굴 없는 첫 번째 팔라딘이었다.

       얼굴을 본 사람도 없고, 이름을 들은 사람도 없다. 그저 문서상으로 첫 번째 팔라딘이 존재한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그래서 온갖 괴소문이 돌면서 첫 번째 팔라딘은 비밀스러운 임무를 수행한다고 알려진 건데…’

       

       케니스는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꼈다. 가빠진 호흡을 들키지 않으려 안간힘을 써야 했다.

       그렇지 않는다면 지금 상황도 잊은 채 소녀처럼 비명을 지를 것 같았으니까!

       

       설마 최초의 성녀 케넬름이 첫 번째 팔라딘을 겸하고 있었다니!

       

       그렇다면 첫 번째 팔라딘이 얼굴을 비추지 않았던 것도, 그 누구도 직접 만나본 적이 없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첫 번째 팔라딘은 케넬름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항상 비워뒀던 것이다!

       

       ‘…이게 관례처럼 굳어져서 아무도 몰랐던 건가?’

       

       자그마치 수천 년을 그리했으니 어딘가에서 기록이 끊겼으리라.

       

       아무튼.

       중요한 건 지금 눈 앞에 위대한 최초의 성녀 케넬름이 있다는 사실이다.

       

       “후후. 반가워요.”

       

       “바! 바바바바바, 반가! 마, 만나 뵙게 되어 영광! 입니다!!”

       

       다람쥐처럼 오들오들 떠는 케니스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케넬름이 작은 망치를 움켜쥐었다.

       

       재빠르게 몸의 상태를 관조했다. 

       나쁘지 않다.

       

       지상에 내려온 건 정말 오랜만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망치는 어제 막 잡았던 것처럼 손에 착 감겨왔다.

       

       “…가엾게도. 저에게는 그대의 비명이 들립니다. 고통과 절망에 찬 울부짖음이!”

       

       타탓!

       

       땅을 박찬 케넬름의 잔상에 희미한 별 무리가 감돌았다. 뒤이어 회색 괴물의 위에서 바람처럼 모습을 드러낸다.

       

       꽈앙!

       

       케넬름의 작은 장도리가 마치 운석 같은 굉음을 뿜으며 내리꽂혔다.

       

       《아파아아아아ㅡ!!》

       

       맞은 부위가 움푹 파인 회색 괴물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벼락으로 받은 충격이 채 가시기 전의 타격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모습.

       

       “무력화를 우선으로 하겠습니다!”

       

       케넬름은 종횡무진 괴물의 사방을 누비며 작은 장도리로 괴물을 두들겼다. 한 번의 망치질에 뇌성이 울려 퍼지는 착각마저 들었다.

       

       케넬름이 혀를 찼다. 단번에 기절시킬 작정으로 휘둘렀건만.

       

       “칫. 아무래도 위력이 약하긴 하네요!”

       

       콰과광!!

       

       땅이 깊게 파이며 주변의 건물이 우르르 무너진다.

       앙증맞은 망치의 외형에 어울리지 않는 흉악한 파괴력이 돋보인다.

       

       《죽ㅡ!! 어어!!》

       

       회색 괴물이 고통으로 꿈틀거리는 와중에 반격을 시도했다. 독무와 바람, 무수한 참격과 얼음 따위가 화살처럼 날아든다.

       

       케넬름은 달려드는 속도를 늦추지 않으면서 몸 이곳저곳을 살짝씩 비트는 걸로 모든 공격을 피했다. 움직임이 어찌나 교묘한지, 한 편의 서커스처럼 아슬아슬하기 짝이 없었다.

       

       “부디! 이걸로! 정신을! 잃었으면! 좋겠는데요!”

       

       쿵, 콰앙! 꾸구구궁!

       

       성녀의 장도리가 울부짖었다.

       

       “어?”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케니스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환영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케넬름의 주변에 은은한 별 무리가 감돌고 있었다.

       

       저 특유의 오색찬란한 빛무리. 틀림없는 별빛이다.

       

       “…케넬름 성녀님이 별빛을?”

       

       어째서?

       어떻게?

       

       케니스의 머리가 단숨에 혼란스러워졌다. 케니스 자신의 별빛은 어머니인 리아에게서 전해 받은 것이다.

       

       아마 리아도 리아의 어머니에게서, 또 그 어머니에게서… 그런 식으로 대대로 물려받는 식으로 전해진 것이 별빛.

       

       그런데 그 별빛을 최초의 성녀 케넬름이 다루고 있다는 것은, 케니스에게 상당히 혼란스러운 부분이었다.

       

       “야 케니스! 왜 멍때리고 있어! 와씨, 저 여자 뒤지게 잘 싸우네. 얼른 도우러 가야지!”

       

       “아, 아. 네!”

       

       케넬름 혼자서도 회색 괴물을 몰아세우고 있으니, 둘이 가세한다면 승기를 굳힐 수 있을 것이다.

       

       ㅡ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 나나나는!! 먹는, 다! 너희르으으을ㅡ!!》

       

       셋의 합공에 주춤하며 한참이나 밀리던 회색 괴물은 어느 순간부터 서서히 전투의 균형을 맞추기 시작했다.

       

       다루는 능력의 숫자가 빠르게 늘어났다. 땅에서 촉수가 솟아났고, 그림자에서 칼날이 일어났으며, 정신을 뒤흔들어 몸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크으윽! 이 새끼! 어째 움직이는 게 점점 우리랑 비슷해지는 것 같은데!”

       

       프리가의 말대로였다.

       단순하게 힘으로 싸우던 녀석이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기술’이라는 것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길게 끌면 불리할 것 같아요!”

       

       찌르고 베고 휘감는다. 

       피하고 막고 흘린다.

       

       공격과 방어의 단순한 부분에서 점점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녀석은 아무리 상처를 입혀도 천천히 재생하는 반면, 이쪽은 체력의 한계가 존재하는 상황.

       

       추가 지원이 절실했다.

       

       “케니스! 무사했구나! 조금만 더 버텨다오!”

       

       “지금 가고 있습니다 용사님!!”

       

       “프리가!!”

       

       저 멀리서 각자 다른 남성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케니스와 프리가의 얼굴이 단숨에 환해졌다.

       

       데모닉과 한스, 이스칼의 목소리였다. 저 셋이 합류한다면 지지부진한 싸움의 승기를 이쪽으로 굳힐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반면 케넬름의 얼굴은 조금 어두워졌다. 데모닉의 존재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아직 확인과 검증이 필요했지만, 케넬름의 예상이 맞다면 이 괴물의 존재는 데모닉에게 정신적인 충격을 줄 수 있다.

       

       《ㅡㅡㅡ…!! 케, 니스… 내 따…ㄹ… 니…ㄱ!!!》

       

       더듬더듬 어눌한 말을 뱉은 회색 괴물. 케니스가 몸을 흠칫 떨었다. 

       

       회색 괴물의 몸 곳곳이 울룩불룩하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몸 내부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끼리 싸우는 것처럼 몸 곳곳이 튀어나왔다가 늘어나기도 했으며,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도, 도도도도망ㅡ쳐…!》

       

       이윽고 거대한 괴성을 터뜨린 회색 괴물이 차마 반응할 틈도 없이 땅을 박찼다. 잔뜩 압축된 바람과 참격, 불꽃과 얼음 따위가 추진제처럼 작용해 녀석의 등을 떠밀었다.

       

       “도망친다! 잡아!”

       

       이를 악물고 외친 프리가의 도끼가 허공을 가르며 날아간다. 제대로 맞는다면 성숙한 용의 비늘조차 부술 수 있는 그녀의 도끼였지만, 맞지 않는다면 그 자체가 무용.

       

       회색 괴물은 공중에서 기괴하게 몸을 뒤틀며 도끼를 피했다. 공처럼 날아간 괴물은 커다랗게 찢어진 균열로 몸을 쏙 던졌다.

       괴물이 들어가기 무섭게 균열은 스르륵 상처가 사라지며 이내 완전히 사리지고 말았다.

       

       “이런 젠장! 빌어먹을. 또 놓친 건가!”

       

       또 한발 늦은 데모닉이 씩씩거리며 분을 토했다. 감히 리아를 욕보인 녀석의 살점을 갈가리 찢어 놓아야 속이 풀릴 것 같다.

       

       그렇게 한참을 분풀이하던 데모닉은 그제야 케니스의 몸을 살폈다. 다행히 다친 곳 하나 없이 멀쩡했다.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구나 케니스. 처음 이 녀석을 놓쳤을 때는 정말 큰 일이었는데, 네가 근처에 있었다니. 그리고 같이 싸워주신 이분께서는ㅡ”

       

       문득 케넬름의 존재를 확인한 데모닉이 몸을 흠칫 떨었다. 케넬름의 붉은 머리카락과 꿀색 눈동자는 케니스의 것과 매우 흡사했다.

       

       둘을 나란히 세워두면 나이 차이가 조금 나는 자매 혹은 어머니와 딸처럼 보일 지경이다.

       

       허나, 데모닉의 눈동자가 거세게 떨리는 것은 비단 외형 때문만이 아니다.

       

       ‘저 붉은 머리카락과 황금빛 눈동자, 거기에 면사포와 작은 망치를 무기로 사용하는…’

       

       성도의 자랑으로 여겨지는 성인들의 수많은 초상화. 그중 제일 안쪽에 걸려있는 한 장의 초상화가 있었으니.

       

       최초로 신의 축복을 받아 인간의 시대를 열었다고 전해지는 최초의 성녀, 케넬름이었다. 팔라딘이 돼서 이를 알아보지 못한다면 혀 깨물고 자결해야 했다.

       

       “어, 어떻게…? 그대는, 아니 당신께서는 진정?! 이, 이런 일이 어찌…?!”

       

       드물게도 당황한 데모닉이 덜덜 말을 떨었다. 

       초상화랑 똑 닮았다.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자아. 우선 침착하게 숨을 마시세요. 크게 호흡하고, 옳지. 천천히 내쉬는 겁니다.”

       

       “스읍ㅡ 후우… 스읍ㅡ 후우…”

       

       케넬름이 차분하게 데모닉을 다독였다. 덕분에 금세 진정한 데모닉이 얼굴을 붉혔다. 답지 않게 추태를 보였으니, 뒤늦게 수치심이 몰려왔다.

       

       “…흠, 크흠. 고, 고맙네. 우선 그대의, 아니 당신의? 선배님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를 표합니다.”

       

       데모닉이 만신전의 예법으로 감사를 표했다.

       

       “별말씀을요.”

       

       케넬름이 우아하지만 조금 낡은 예법으로 이를 받았다. 

       

       “저, 저기! 혹시, 정말로 성녀 케넬ㅡ으읍!”

       

       뒤에서 눈을 반짝반짝 빛내던 케니스가 무언가를 물어보려 할 때, 케넬름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케니스의 입을 막았다. 당황한 케니스가 케넬름의 손을 탁탁 치기 시작했다.

       

       “어머. 저는 그냥 지나가던 떠돌이 수행자입니다. 이 망치는… 그냥 주운 거예요. 넬이라고 불러줘요.”

       

       “……알겠습니다.”

       

       진짜 최초의 성녀 본인이 맞는 것인지, 맞다면 수천 년의 시간을 넘어서 어떻게 이곳에 있는 건지, 그리고 방금의 회색 괴물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는지.

       

       묻고 싶은 말이 산처럼 쌓여있는 데모닉이었지만, 일단 눈앞의 까마득한 대선배께서 정체를 숨기는 걸 원하시니 데모닉은 이에 장단을 맞추기로 했다.

       

       “저 사람이 도대체 누군데 그래? 칼, 넌 알아?”

       

       “글쎄…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고… 머리카락 때문인가?”

       

       “저런 분을 봤다면 잊을 리가 없는데 말이죠.”

       

       다른 이들은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은 표정으로 수군거렸다. 사도라는 이들이 최초의 성녀도 못 알아본다니.

       

       덕분에 비밀 유지는 쉽게 될 것 같기는 했지만…

       

       데모닉은 이걸 좋아해야 할지, 아니면 화를 내야 할지 고민했다.

       

       “흐어어어. 어, 어디냐아! 그 빌어먹을, 쿠엑! 괴물은 어디야!”

       

       “후으윽, 허읍, 퀙!”

       

       “파, 팔라딘… 후욱, 님!”

       

       상황이 거의 끝나서야 저 멀리서부터 성기사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쉬지 않고 달린 까닭에 몸에서 아지랑이가 올라오고 땀을 한가득 흘리고 있다.

       

       한참이나 늦게 나타나는 모습에 데모닉이 눈을 찌푸렸다. 

       

       ‘체력 훈련을 더 빡세게 굴려야겠군.’

       

       고작 풀 플레이트 아머만 입은 채로 성도의 끝과 끝을 달리는데 이렇게 힘들어하다니. 성도의 위상이 땅에 떨어질 노릇이다.

       

       “참 빨리도 오는군. 귀관들 덕분에 우리가 아주 편하게 녀석을 상대했어. 어찌나 빨리 오는지, 아주 그냥 저 멀리서부터 거북이가 기어 오는 줄 알았지 뭔가.”

       

       싸늘한 데모닉의 말에 성기사들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입이 달렸지만 무어라 말을 할까. 그들도 최선을 다했지만, 사도와 데모닉의 수준이 너무 압도적인 것이다.

       

       꾸깃.

       

       케넬름이 눈을 잔뜩 찌푸렸다.

       

       다리를 삐딱하게 짚더니, 한 손으로 장도리를 덜렁덜렁 흔들었다.

       

       “쯧.”

       

       “…!”

       

       데모닉에게는 그 작은 소리가 천둥이나 다름없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의 앞에 있는 이 여인은 자그마치 최초의 성인이자 최초의 성녀! 데모닉이 감히 연배로 비빌 수 없는 거대하고 까마득한 대선배!

       

       더불어 인간의 시대를 열었다는 위대한 위인!

       괜히 최초의 성녀라고 불린 것이 아니다.

       

       “요즘 만신전이 많이 편해졌나 보네요.”

       

       데모닉의 몸에서 식은땀이 주륵주륵 흘렀다.

       

       “쯧. 나 때는 이렇지 않았는데 말이죠.”

       

       데모닉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하나였다가 다섯으로 쪼개지고, 다시 하나가 되는…!! 이는 마치 사혼의 구슬과도 같은…!! 어쩌면 퍼즐의 모습…!! 신이 막 분해가 됐다가 합쳐지고 조립이 된다니…!! 저는 잘 모르겠지만, 신학자와 그 휘하의 조교들이 정말정말 좋아할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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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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