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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2

        

         ……끼긱!

         

         “후우….”

         

         가벼운 한숨.

         그리고 멀리서 실외 자동 재생 광고의 음향이 새어 들어오는 걸 제외하면 완벽하게 고요하던 주차장에, 신발과 지면이 비벼지면서 생긴 소음이 울려 퍼졌다.

         

         다리는 넓게, 어깨는 굳게.

         시선은 현란한 후드티 안쪽에 숨은 눈동자에 고정.

         편하게 뒤쪽에 메고 있던 칼집은 조용히 버클을 풀러 허리춤으로.

         

         간격 안에 함부로 들어올 거라면 각오해라.

         아까 전에 경매장에서 내보인 위압은 뜨뜻미지근한 무언가처럼 보이게 만드는, 궤가 다를 정도로 짙은 적대감이 흘러 넘쳤다.

         

         물론 죽일 수는 없었다. 아나스타샤가 어떤 식으로든 합의를 봐서 평화 협정을 맺는데 성공했다고 말했으니까.

         하지만 남의 집안을 염탐하는 흉내까지 내는 건… 어디 한군데 잘려 나가도 할 말이 없는 음침한 짓거리가 아닌가.

         

         마침 에나마 소속이라 했겠다. 웬만한 상처는 다 치료할 수 있는 응급 키트나 의료 보험이 준비되어 있을 테니, 약간 험한 꼴을 한 번 당해보는 것도 정신 차리는데 용도로 나쁘진 않으리라.

         

         “……이거 곤란하구료. 소인은 당사자의 확답이 필요한 내용이 좀 있는지라.”

         

         반면 자랑스러운 에나마 특수 요원이지만 졸지에 악질 스토커 딱지를 받은, 마사나리는 반감은 이해하나 상대가 이리 비협조적이어서야 어떻게 답을 얻어낼까… 고민하는 투로 중얼거리며, 벽에 기대고 있던 등을 떼고 똑바로 섰다.

         

         자연체 상태로 앞으로 두 걸음, 아슬아슬한 거리를 유지한 채로 정지.

         아찔한 줄타기를 하고 있음에도 호흡은 평온했으며, 자신의 얼굴을 가려주는 효과도 물론 있겠지만 역으로 시야를 방해하기도 하는 펑퍼짐한 옷을 애써 정돈할 생각도 별로.

         

         그야 심적으로 거슬린 것과 가상 적의 실력을 인정한 결과라지만, 가시를 있는 대로 곤두세운 헬레나에 비해 훨씬 여유로운 그 태도는 일견 강자의 여유처럼 너그러워 보였으나.

         

         …와중에도 느긋하게 팔짱을 끼는 척하며 어느새 뽑아 든 주력 전투 단검을 시야각에서 은근히 감추고 특유의 급가속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은, 만약의 승패를 장담하기 어려워 그녀도 꽤나 긴장하고 있다는 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서로가 서로의 실력을 가늠하고 한껏 경계는 하고 있지만. 정확히 바닥을 단정하긴 어려워서 피차 망설인다는 느낌이랄까.

         

         그런 두 사람의 기묘한 공통점이라면… 둘 다 그렇게 기가 막히게 호전적인 주제에, 막상 아나스타샤에게 이걸 들키고픈 마음은 없어서 각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지하 주차장에서 마주칠 때까지 용케도 참았다는 것 정도?

         

         각자 ‘싸워서 쟁취한다.’라는 투쟁적 면모가 강한 것 이상으로.

         

         비슷하게 칼밥 먹고 사는 호기로운 인간들이 똑같이 한 사람의 눈치를 엄청 본다는 게 퍽 우스웠지만… 뭐 어쩌겠나? 아나스타샤가 기분 상한 모습을 상상하면 마음 한 구석이 굉장히 불편해지는 것을.

         

         아마 아는 이 중에 그녀의 부탁이나 당부를 정면에서 거절하고도 아무렇지도 않아 할 위인은 없으리라 생각된다. 사탕이라도 하나 더 쥐어 줬으면 줬지 어떻게 걔를 낙담시켜.

         

         허나 들키지만 않으면 실망할 것도 없다는 건 동서양을 막론하고 옛날부터 지금까지 바뀌지 않은 무적의 논리.

         

         어차피 싸움을 길게 볼 생각은 양측 모두 없으니, 단기 결전으로 경고를 남기면 충분하겠다는 계산 하에 헬레나는 대범한 도발을 감행했다.

         

         “어떻게든 듣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 번 힘으로 얻어 보시던가…!! 그 애를 인격체로 취급하지도 않는 놈들이 어딜 감히 보호자 행세를 하려 들어?”

         

         “……외부인에게 지적당할 만큼 그분을 험하게 모신 기억은 전혀 없소만. 기어코 험한 꼴을 보는 게 본인이 정한 질의응답의 조건이시라면야.”

         

         최근에 어느 정도 원만한 합의를 봤다고는 말했지만 헬레나가 사고하기에 아샤와 에나마의 비틀린 관계는 여전했다.

         

         명색이 이사라는 인간이 사적으로 일터에 쫓아다닌다는 것도 그렇고, 감시하듯 특수 요원을 옆집에 알 박기 한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실험체’ 같은 거부감 드는 단어로 차마 그녀를 지칭하고 싶지 않아서 얼버무리기는 했지만, 연구소에서 시작된 인연이 언제까지고 무사히 이어지리라는 건 너무 천진한 생각이 아닌가.

         

         특히나 에나마는 최근 후계 문제에 관해 계열사 간 마찰이 시끄럽기로 유명한 메가 코프.

         

         누군가 흑심을 품고 이용하고자 한다면 너무 불리한 위치에 있으니, 차라리 무관심을 유지해주는 게 도움이 될 텐데… 결과적으로 그녀의 눈에 이 자식들은 영락없이 배려가 부족한 예비 범죄자들로 비춰졌다.

         

         뭐,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마사나리야 뜬금없는 억지를 핑계로 싸움이 걸린 모양새지만. 이것도 다 보고에 사용할 데이터라 여긴다면 썩 나쁠 건 없었다.

         

         다만… 얼마나 힘 조절을 해야 하는지, 과연 그걸 신경 쓰면서 제압까지 이어갈 수 있는 전투가 될지 확신이 안 설뿐.

         

         “잠시, 실례하겠소.”

         “!!”

         

         타앙—!!

         

         팔짱을 풀고 감추어둔 단검을 드러내며 시선을 날 쪽으로 유도, 동시에 자연스레 내려간 손은 번개같이 트레이닝복 밑을 더듬어 권총을 뽑아 들고 발포.

         

         21세기 기준으론 속사 기록을 우습게 갈아치울 속도로 발사된 총알이 노리는 곳은 헬레나의 귓전, 명중했을 때 간담은 서늘해질지언정 아무것도 없는 빈 허공이었다.

         

         야구로 치면 견제구의 성격이 강한, 어디까지 반응하나 떠보기 위한 수였으나. 반대로 헬레나는 총구의 위치를 보고 이미 아무 위험이 없음을 짐작한 상태였으니.

         

         오히려 어디서 간을 보냐는 것처럼 탄환과 교차하듯이, 몸을 낮추고 앞으로 뛰쳐나갔다.

         

         살벌하다 못해 파괴적인 발 구름에 콰드득! 하는 파열음과 함께 포장된 바닥이 압축되며 심지어 살짝 내려앉기까지 하는 광경은 얼마나 힘이 들어갔는지, 또 그녀의 신체 강화율이 이것저것 따지고 있을 수준이 아니라는 걸 짐작하게 해주었다.

         

         쩌엉!

         

         초격은 억지에 가까운 올려 베기.

         흡사 지면을 도려내는 것처럼, 무지막지한 불꽃을 튀기며 긁으며 솟구친 칼날을 시간에 맞춰 수비 동작으로 전환한 단검이 간신히 수직으로 찍어 눌렀다.

         

         상반신이 공격에 무방비하게 노출된다.

         아래에서 위로 베는 동작은 처음부터 팔꿈치가 펴져있어서 거리가 너무 뻔하다.

         마찬가지의 신체 구조적 이유로 힘이 제대로 실리지 않아 실질적인 위협을 가하기가 어렵다.

         

         여러가지 논리와 시전자에게 특출 난 이득을 없다는 것을 이유로 실전에서 기피되던 공격법이란 이름이 무색하게 파멸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미리 준비하고 막아낸 마사나리의 양다리가 지면에서 붕 뜬 걸로도 모자라, 근력에서 밀린다는 걸 선뜻 인정하고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면 천장에 처박힐 만큼 위력적이었으니까.

         

         “크읍! 이건 좀?! 심히 어처구니가 없구려!!”

         

         “내가 뭐 주사위 던져서 공무원직을 따냈던 건 아니거든…!!”

         

         티끌만큼도 상하지 않은 카타나 재질이 받쳐준 게 1할이라면. 아나스타샤가 네오 헤이븐 대표 초인이라 극찬을 마지않던, 유저들이 주저없이 플레이어로서 선택 가능한 근접전 최강 동료라 꼽는 어마어마한 재능과 노력이 9할.

         

         16살 개척촌을 떠나 인근 메트로폴리스로 상경, 17살에 전투 경찰 시험 합격 후 취직.

         그리고 20살, 경찰내 신체 능력 종합 평가 1위 달성 후 취미와 훈련을 겸해 단련하며 살다가… 용병 업계로 흘러 들어오기까지.

         

         온갖 즐길 거리로 넘쳐나는 하베스트 플래닛에 살았다기엔, 현대인의 눈으로 보기에도 재미가 없어도 너무 없는 삶을 보냈다지만… 그만큼 모의전과 실전이 두루 각인된 육체는 헬레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쾅!!

         

         파쿠르를 하듯 마사나리가 수직 기둥을 박차고 회피 기동을 하면 헬레나도 본능적으로 최단 경로를 골라 동일한 방식으로 뒤따른다.

         

         칼날끼리 부딪히는 타이밍을 노려 각도를 틀어 빗겨내려 하면 억지로 맞물리는 각도를 절묘하게 찾아 도망치는 발을 묶으려 든다.

         

         물어볼 질문이고 나발이고. 아무리 임플란트가 있다해도 자신처럼 철저하게 설계되어 감각적인 활용법을 알지 않는 이상 불가능해야 할 곡예를 망설임 없이 펼치는 모습은, 유전 데이터를 채취해서 본사에 보내는 걸 먼저 진지하게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마사나리는 생각했다.

         

         더군다나 목표물을 조용히 처리하거나 교전 범위를 억눌러서 상대를 잡는 데에는 장병기보단 이쪽이 더 익숙해서 선호해온 무기이나, 리치 차이로 얻어맞는 구도가 나올 줄 알았다면 이런 경무장이 아니라 제대로 된 제식 장비를 갖추는 게 더 나았을 뻔했고!

         

         “흐읍…!”

         

         흘러 넘치는 아드레날린, 미친듯이 흐르는 혈류.

         피가 끓어올라 신체 기능이 정지하고 세포가 괴사하지 않으려나 싶은 상태에서 숨을 들이마시니, 역으로 벌어진 입에서 하얀 연기 같은 게 뿜어져 나왔다.  

         

         마사나리의 몸이 공중에서 순간 회전하여 진행 방향을 갑작스레 반전한다.

         

         승부를 볼 거라면 가속 상태에서 최대한 빠르게. 부족한 길이는 헬레나가 좁혀오는 속도까지 역으로 이용한다는 마인드로 밀착 싸움에 돌입했으니.

         

         “읏!? 거 더럽게 빠르네 진짜!!”

         

         부웅…! 헬레나의 카타나가 처음으로 거칠게 허공을 갈랐다.

         

         착 들러붙듯이, 눈 깜짝할 새에 간격을 좁혀온 마사나리가 얽혀 들어오자 칼의 궤적은 물론 자세까지 덩달아 어그러진다.

         

         움직임을 파악하지 못한 건 아니다. 사실 유전적으로 완성되어 호르몬 분비마저 조절하는 개조 인간의 부스트를 따라간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까우니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눈으로 뒤쫓는 것과 유령처럼 덮쳐 든 상대를 손으로 붙잡는 것엔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있는 법.

         

         이미 대판 싸우기로 마음먹었다면 백 번 ‘열심히’ 하는 것보다도 한 번 ‘잘’ 하는 게 당장 필수적이었기에, 그녀는 이를 악 문 채 무리한 가속도를 유지해가며 팔다리를 휘둘렀다.

         

         정면으로 마사나리가 달려드는 걸 보고 무릎차기! …야심 차게 노렸지만 빗나갔다. 복부 정중앙을 노렸는데 몸을 뒤로 팍 꺾어가며 아슬아슬하게 회피하는 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

         

         옷자락이나 머리채 등을 붙잡으려고 뻗어오는 팔은 카타나 손잡이를 받치고 있던 손을 떼 후려치는 걸로 견제.

         근력은 이쪽이 훨씬 앞서지만 저만한 스피드로 달려드는 인간이 잡고 늘어지면 버틸 재간이 없다. 무조건 피해야….

         

         “…!! 미친! 너, 이게 무슨!”

         

         그때, 돌연 호흡이 흐트러진다.

         

         부우욱—!!

         

         이유는 간단, 내질러진 카타나가 펑퍼짐한 마사나리의 옷자락을 아무런 저항없이 쭈욱 가르며 들어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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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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