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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2

   “대체 어쩌라는 것인지 도저히 모르겠군.”

   

   끝이 보이지 않는 복도에 선 아서가 얼굴을 쥐어 싸매며 짜증 어린 목소리를 낸다.

   

   “단서건 힌트건 뭐건 제대로 된 게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루시 알른.”

   

   던전학 시험 네 번째 방을 공략한 지 어언 반나절 째.

   

   아서 일행은 여전히 앞으로 나아갈 방법을 찾지 못한 상태였다.

   

   처음 최초의 복도와 네 번째 방이 연관이 있을 거란 걸 떠올린 것까지는 좋았다.

   

   두 복도의 차이점을 중심으로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면 언젠가 미궁을 탈출하기 위한 실을 찾게 될 터이고 그를 따라 나아가다 보면 다음 방에 도달할 수 있게 되리라 생각했으니까.

   

   허나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생각했던 실은 시간이 지날 때마다 저 멀리로 도망치기만 할 뿐 일행의 손에 잡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처음 이 방에 진입하고서 반나절 동안 아서 일행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았다.

   

   최초의 복도에 존재하는 여러 가구나 장식, 초상화의 위치에 무언가 있지 않을까 건드려보고.

   

   숨겨진 것이 있지 않을까 싶어 복도를 돌아다니며 디스펠과 정화를 시도해보고.

   

   부수어야 하는 것일까 싶어 복도나 조명을 공격해 보기도 하고.

   

   첫 번째 방에서 액자와 장식품을 가져오려 하고.

   

   끝이 있길 바라며 무작정 내달려도 보고.

   

   앞선 던전 공략 중 놓친 게 있지 않을까 싶어 세 방을 다시금 둘러봤으며.

   

   심지어는 쪽지 뒤편에 적혀 있던 루시 알른의 도발을 직접 읊어보기까지 했지만.

   

   그 모든 시도는 루시를 향한 짜증을 키웠을 뿐 던전을 공략하는 데엔 자그마한 보탬도 되지 못했으니.

   

   졸지에 아서 일행은 무의미하게 반나절을 날린 셈이 되어 버렸다.

   

   “젠장. 도대체 우리가 뭘 놓치고 있단 말인가.”

   

   아서가 머리를 쥐어 싸매며 짜증 어린 목소리를 내는 동안.

   

   프레이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무작정 벽을 자신의 검으로 내리치고 있었다. 이러다보면 언젠가 벽이 부서지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처럼.

   

   페이비는 당장에라도 폭발할 것 같은 아서에게 다가가 그의 분노를 달랬다. 침착을 잃어버리면 오히려 더 깊은 구렁텅이에 빠질 뿐이라 말하면서.

   

   그리고 조이는.

   

   복도 한 가운데에서 멍하니 끝이 보이지 않는 복도의 어둠을 바라보고 있었다.

   

   참 막막하네.

   

   지금 당장 우리들이 떠올릴 수 있는 건 모두 시도해 보았던 거 같은데 왜 희미한 단서조차 찾을 수 없는 걸까.

   

   절로 차오르는 답답함을 찾을 수 없었던 조이는 별 생각 없이 앞으로 발을 내딛었다.

   

   “어?!”

   

   그리고 자신의 발에 걸려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앞으로 나자빠진 조이의 모습에 아서가 한숨을 내뱉는다.

   

   “그런 식으로라도 무거운 분위기를 풀어보려는 거냐? 눈물겨운 희생이군.”

   “…그래도 넘어진 건데 좀 걱정을 해주시죠.”

   “무얼 걱정하란 거냐. 튼튼한 네가 그 정도로 다칠 리도 없잖은가. 아아. 넘어진 충격으로 쫓겨날 지도 모른단 건 걱정해야겠군. 그건 좀 곤란하니까.”

   “3왕자님. 저한테 화풀이를 하는 건 좀…”

   

   위화감.

   

   어찌 보면 아주 사소하고 별 것 아닌 위화감.

   

   허나 아주 작은 단서조차도 간절한 상황이기에 도저히 지나칠 수 없는 위화감.

   

   조이가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다물자 방금 전까지 빈정거리던 아서가 그녀의 눈치를 살핀다.

   

   “…그. 조이. 미안하구나. 내가 말이.”

   “왕자님.”

   “어. 어?”

   “세 번째 방을 다시 공략할 때 이야기인데요. 첫 번째 방하고 세 번째 방하고 닮아있다고 하셨잖아요.”

   “어어. 그랬지. 공격할 곳을 찾아내는 것과 쓰러트려야 할 것을 찾아내는 거니까. 관찰력을 요구하단 점에서 같지 않으냐.”

   “그래서 두 번째 방하고 네 번째 방의 공통점이 있지 않을까라고 추측하셨고요.”

   “그으러긴 했다만. 알잖나. 그 추측이 아무 성과도 거두지 못했음을.”

   

   아서가 저런 추측을 내민 것은 지금으로부터 몇 시간 전의 일이다.

   

   그 때부터 두 번째 방과 네 번째 방의 공통점을 찾아내려 노력한 그이지만 결국 아서의 추측은 아무런 결과도 남기지 못했다.

   

   “아뇨. 어쩌면 그게 맞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여태까지는 말이다.

   

   “허?”

   “그래요. 맞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여태까지 느꼈던 이질적임이 모두 맞아 떨어져요.”

   

   자신만의 사고에 빠진 조이는 주변의 시선이나 목소리 같은 것은 신경 쓰지 않고 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무작정 바깥으로 내뱉었다.

   

   평소 완벽하려 노력하는 귀족 영애인 조이이기에 쉬이 찾아보기 어려운 마법사 특유의 괴짜스러움.

   

   “이 방 전체가 환각이라면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다고요!”

   

   그녀와 오래 알고 지냈던 아서는 그녀가 덜렁대는 것만큼이나 번뜩일 때가 있음을 알기에 가만 그녀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이 방이 다른 세 방에 비해 이상할 정도로 넓은 이유? 간단하죠! 저희가 보는 이 곳이 가짜니까!”

   

   “이 곳의 벽이나 장식이 손상되지 않는 것도 저희가 늑대를 쓰러트릴 수 없었던 것과 비슷하다 생각하면 설명이 돼요!”

   

   “알른 영애께서 단서도 남겨두지 않은 이유? 그 자체가 단서니까! 다른 곳에 있는 단서가 없단 사실 그 자체가 이질적임이 되니까!”

   

   신이 나서 목소리를 내던 조이는 이내 다른 세 사람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려있음을 깨닫고는 다급히 부채를 꺼내 살짝 붉어진 얼굴을 가렸다.

   

   “계속 말해라. 3왕자의 명이다.”

   “그. 처음의 복도 마지막에 있던 걸 기억하십니까?”

   “그래. 그 곳에는 요람이 있었지. 미궁에서 빠져나가기 위해선 출구를 찾아야한단 어이없는 쪽지와 함께.”

   “요람은 아기가 잠을 자는 장소잖아요? 그 위에서 끝난 복도가 다시 이어졌다는 건 분명.”

   “…꿈! 지금이 복도가 꿈이란 것이군!”

   “그렇습니다. 저희는 지금 꿈에 갇혀 있는 거겠죠.”

   “이 곳이 꿈이라면 그 쪽지의 의미도 명확하다! 미궁에서 빠져나가기 위해선 출구를 찾아내야 한다! 그렇다면 꿈에서 빠져나가기 위해선 어찌해야 할 것인가!”

   

   커다란 충격. 기상과 함께 벌떡 몸을 일으키게 될 만큼의 충격.

   

   “그럼 설마 루시 알른이 던전을 탈출하는 법을 일부러 알려준 것도!”

   “자해를 통해 이 방을 통과하는 걸 미연에 방지한 거겠죠. 공략을 방해한 것임과 동시에 힌트를 준 거기도 해요.”

   “그 뒤편에 도발적인 언사를 남긴 것은 그 쪽지를 주었단 것에서 기이함을 느끼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나! 하하! 단순히 우리를 놀리기 위함인 줄 알았거늘 이유가 있었단 말이냐! 뭐 됐다! 어떤 이유건 상관 없다! 중요한 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명확해졌다는!…”

   

   이 방의 해답에 도달한 아서는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닫고 조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곳에는 부채 너머로 짓궂은 미소를 지고 있는 조이가 있었다.

   

   “자. 일어날 시간이에요.”

   “잠시. 조이. 내 다시 한 번 사과하지. 방금 전 그대에게 화를 낸 건 무척 미안하게 생각하네.”

   “저. 조이. 저도 얼마 전에 잔소리해서 미안해요. 다 조이를 걱정해서 한 말인 거 아시죠?”

   “잘은 모르겠지만 나도 엄청 미안해.”

   “후후. 여러분들. 왕자님. 제가 이런 데에 사적인 감정을 담을 사람처럼 보이시나요?”

   “지금 그대의 눈빛에 사적인 감정이 가득 담겨있지 않나! 잠! 멈춰라! 그래! 나는 직접 깨어나겠다! 그러니!”

   “성녀님. 혹시 뭔가 잘못되면 나 살려줘.”

   “으음. 그 때 제가 괜찮다면 노력하겠습니다.”

   “시작하겠습니다.”

   “멈추라고 하지 않으냐아아아!”

   

   *

   

   아드리에게 조심하란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도 주변 눈치를 살피고는 있어!

   

   다른 사람들의 따끔따끔한 시선에 속으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단 말야!

   

   근데 그럼 뭐 해!

   

   메스가키 스킬이 날 억까하는데!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첫 힌트를 본 사람들이 꼴 받아서 두 번째 힌트를 보지 않길 기도하는 것밖에 없다고!

   

   절로 차오르는 억울함에 투덜거리며 아카데미에 돌아온 나는 방으로 향하려다 말고 던전학 시험이 치러지는 곳으로 몸을 돌렸다.

   

   <언젠가 터져버릴 폭탄이라면 그냥 미리 터트려버릴 생각이더냐?>

   ‘…저를 그런 쓰레기로 만들지 말아주실래요.’

   

   이게 한 번 터지고 말 폭탄이면 그냥 맘 편하게 터트린 후 폭발을 감당했을 테지만 이건 그런 게 아니잖아요!

   

   이건 지진이라고요! 한 번 쿠쿠궁쾅 한 다음에도 계속 영향이 남아서 쿠궁거리는 거라고요!

   

   <많이 피곤한 게야? 언어능력이 퇴화했구나.>

   ‘하여튼! 심술부리러 가는 거 아니에요!’

   <그럼 왜 거기로 가는 게냐? 좋은 꼴을 보긴 어려울 텐데?>

   ‘…궁금하잖아요. 지금 어디까지 공략했을지.’

   

   내가 마지막으로 확인을 한 건 첫 시험을 치러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그 때는 이미 네 번째 방이 공략된 상태였지.

   

   순위표에 쿠르텐이나 세실을 제치고 아서 파티의 이름이 맨 위에 적혀 있는 거 보니까 좀 뿌듯하더라.

   

   저게 내가 키운 애들이에요! 라고 누구한테 자랑하고 싶을 정도였어.

   

   물론 자랑을 할 데가 없어서 마음속에 기쁨을 묻어둬야 했었지만.

   

   뭐 어쨌건 아침에도 네 번째 방에 도달했던 아서 일행이다. 지금쯤이면 다섯 번째 방에 도착했을 터.

   

   <공략 했을 지가 궁금한 게 아니라 네 번째 방을 뛰어넘었을 때의 감상을 듣고 싶을 뿐이겠지.>

   ‘…할아버지는 절 너무 잘 아신다니까요.’

   

   할배의 말이 맞다.

   

   난 단지 네 번째 방을 넘어섰을 때 그들이 어떤 감상을 들려줄 지가 궁금할 뿐이다. 그 부분은 여러모로 신경을 써서 만들었으니까.

   

   엎드려 절받기가 될지라도 칭찬을 듣고 싶어!

   

   잘했다고 인정받고 싶어!

   

   <네 마음은 잘 알겠다만 말이다. 과연 그 녀석들이 네 번째 방을 넘어섰을까?>

   ‘그렇지 않겠어요?’

   

   네 번째 방의 기믹이 다소 막막해 보이는 건 사실이지만 방법을 알아채기만 하면 짜증이 날 정도로 쉬운 곳이잖아요.

   

   지금까지 붙잡고 있을 만큼 어려운 곳은 아니라고 보는데요.

   

   <글쎄다.>

   ‘할아버지는 너무 다른 사람들을 과소평가하는 버릇이 있다니까요.’

   

   소울 아카데미의 썩은물이었던 내가 너무 눈에 띄어서 그렇지 나의 주변에 있는 이들이 지닌 재능은 결코 허술하지 않다.

   

   수련의 방법을 바꾸자마자 급격하게 성장하는 이들을 보라.

   

   조이는 이미 2학년 중반에 들어서야 쓸 수 있는 여러 마법진을 조합한 마법을 펼칠 수 있게 되었고.

   

   프레이는 오러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되었으며.

   

   페이비 같은 경우에도 요한 주교에게 배움을 얻으며 급격히 성장을 하는 중이다.

   

   이들에 비해 성장이 느린 아서조차도 검과 마법 양 쪽을 수련하기에 약간 더딘 모습을 보일 뿐.

   

   그 둘 모두에서 아카데미 1학년 수준을 가뿐히 넘길 만큼의 성과를 보이고 있지.

   

   모니터 너머에서 캐릭터를 살피던 썩은물로써의 내가, 그리고 그들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것을 옆에서 봐 온 지금의 내가 보증할 수 있다.

   

   이들은 천재다. 자신의 재능으로 반짝이는 이들이다.

   

   그런 이들이 설마 아직까지 네 번째 방을 넘어서지 못했을까.

   

   <그대가 주변 사람을 과대평가한다고 생각하진 않고?>

   ‘전혀요.’

   

   한 치 망설임 없이 고개를 저었더니 할배가 부드러운 웃음을 흘렸다.

   

   <참. 그대는 실로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구나.>

   ‘…그게 무슨 소리에요?’

   <그런 게 있다.>

   

   아니. 저기요. 할배. 어린 아이 대하듯 그러지 말아주시겠어요?

   

   너는 몰라도 되는 이야기야. 라는 그 태도 굉장히 열 받거든요?

   

   할배의 입에서 제대로 된 설명을 듣고야 말겠단 오기가 생겨났지만 안타깝게도 그 오기는 어떤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다.

   

   <호. 여아야. 저들이 그대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은 모양이구나.>

   ‘…그러게요.’

   

   소울 아카데미 던전학 시험장의 순위표. 최초 공략을 향한 경쟁 심리를 부추기기 위해 설치해 둔 수많은 이름이 적혀 있는 판.

   

   그 곳의 맨 위에 적혀 있는 것은 다른 누구의 이름도 아닌.

   

   [아서 파티 : 현재 5층 공략 중]

   

   내 친구의 이름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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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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