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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2

   결혼식 자체는 꽤나 작게 진행됐다.

   귀족이라고는 하나 검소하게 살았던 두 사람이다.

     

   둘 다 가문에서 버려졌다시피 했던 시절이 있던 만큼.

   사치를 부리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크라슈와 비앙카가 식을 올린 건 라헬른 아카데미에 갖춰진 성당에서였다.

     

   “참, 빨리도 결혼하는구나.”

     

   하객으로서 온 아슬란이 크라슈에게 축하와 함께 장난스레 미소 지었다.

     

   “그래, 올해 하기로 약속했으니까.”

     

   자그맣게 준비한 결혼식인 만큼 크라슈는 아는 지인들만 조촐하게 불렀다.

     

   “축하해. 크라슈.”

   “고맙다. 펠레이.”

     

   거기에는 지인으로서 온 펠레이도 있었다.

     

   “너 그보다 괜찮겠어?”

     

   그러는 순간 하객으로서 참가한 바이오렌이 슬쩍 크라슈에게 물어왔다.

     

   그동안 크라슈를 옆에서 봐온 바이오렌은 이 결혼식이 원활하게 진행될지 걱정이었다.

   그도 그럴 게 크라슈를 둘러싼 여성진들이 하나 같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도 마냥 괜찮다고는 못하겠지만.”

     

   크라슈는 어제 일을 잠시 떠올렸다.

     

   「내가 해결할게요.」

     

   결혼을 하자고 한 이후 비앙카는 여자들 쪽과 이야기를 나누겠다며 대뜸 가버렸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할지 불안감은 있었지만.

   평소 비앙카를 아는 만큼 믿어 보기로 했다.

     

   “비앙카에게 맡겼어.”

   “……그걸 아내에게 맡긴다고?”

     

   치정 싸움을 떠올린 바이오렌이 아득한 표정을 지었다.

     

   바이오렌이 상상하는 일까지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마는.

     

   그때였다.

   성당의 문이 갑자기 ‘쾅’ 하니 열렸다.

     

   소란스러운 소리에 그쪽으로 시선이 가자 거기에는 크라슈와 똑 닮은 검푸른 머리카락의 여성이 서 있었다.

     

   그녀는 크라슈와 마주치자 입꼬리를 올리며 특유의 미소를 지었다.

     

   “동생, 누나보다 먼저 결혼해버리다니. 버릇이 고약하구나.”

     

   샬롯 발하임.

   크라슈의 누이 되는 사람이었다.

     

   크라슈는 샬롯을 보자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그래도 누님보다 먼저 할 수 있는 게 하나는 있어서 다행입니다.”

   “야무진 녀석 같으니.”

     

   크라슈에게 다가온 샬롯은 주머니를 뒤지더니 이내 작은 선물 상자 하나를 건넸다.

   샬롯에게 이런 걸 받은 건 처음이라 크라슈의 어안이 벙벙해졌다.

     

   “영원이라는 기원이 담긴 보석이 박힌 작은 단검이야. 집에 장식해두면 부부 사이가 쭉 문제없이 이어진다고 하니 가지고 있으렴.”

     

   검성 답게 선물로 준 것도 단검이었다.

     

   “소중히 하겠습니다.”

   “물론 그렇게 해야지. 나보다 먼저 결혼한 대가는 톡톡히 치러야 하니까.”

     

   그 말을 들은 크라슈가 짧게 웃었다.

   회귀 전에는 그녀가 먼저 결혼했었으니 말이다.

     

   지금쯤 그녀의 결혼 상대는 무얼 하고 있으려나.

   크라슈는 샬롯이 어련히 알아서 할 거라 생각하고 생각을 거뒀다.

     

   “하아, 진짜 당신 너무한 거 알지.”

     

   그러는 순간 크라슈는 익숙한 목소리를 들었다.

     

   크라슈가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는 전 성녀, 아스트리아 스티그마 프리만이 와있었다.

     

   정갈한 성녀 차림의 옷을 입은 그녀는 크라슈를 불만스럽게 노려보고 있었다.

     

   “나한테 주례를 보라니, 진짜 최악이거든?”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좋은 축복을 내려줄 수 있는 건 너잖냐.“

     

   그녀는 이번 결혼식에 주례로서 이곳에 왔다.

     

   처음에 결혼 소식을 듣자마자 아스트리아의 정신은 아득해졌었다.

     

   어느 정도 늘 염두에 두고 있긴 했지만, 좋아하는 남자가 결혼한다고 하니.

   그녀로서는 사고가 정지해도 할 말이 없었다.

     

   크라슈도 그런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어 주례를 맡긴 건 어떨까 싶었지만.

   크라슈와 함께 왔던 비앙카가 대뜸 멍하니 있던 아스트리아를 끌고 가 버렸다.

     

   「……할게.」

     

   그 뒤 나타난 아스트리아는 주례를 맡겠다고 하였다.

   비앙카에게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한 거냐고 바라보았지만 대답해 주지 않았다.

     

   “후우, 정말 오늘만 참는 거야.”

     

   기다랗게 숨을 내쉰 아스트리아는 흥하고 고개를 돌렸다.

   전 성녀라고는 하나 아스트리아의 축복이 있다면 분명 결혼 생활은 잘 이어지겠지.

     

   “크라슈, 결혼 축하해.”

   “하링, 와줬구나.”

     

   곧이어 하링과 몇몇 이들이 연이어 나타났다.

     

   “기어코 저질렀구나.”

     

   제국의 4황녀 시즐리는 앞날이 걱정된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전 아직 포기 안 했어요!”

     

   포세우스의 아홉 번째 왕녀 카란디스는 불굴의 의지를 태웠다.

     

   “와아, 축하해요.”

     

   세계 최고의 해주사 락로드의 제자, 도르마는 꽃다발까지 가져오며 격한 축하를 보여주었다.

     

   “축하한다.”

     

   신창의 동생, 글렌 다이아나는 덤덤히 축하의 말을 전해주었다.

     

   “비앙카한테 잘해주세요.”

     

   비앙카의 동년배 친구가 되어준 쥬논 가의 여식, 달레아도 축복해주었다.

     

   그들은 모두 크라슈가 라헬른 아카데미에서 쌓아온 인연이었다.

   크라슈는 모두의 축하에 미소 지어 감사 인사를 전했다.

     

   “신부 입장합니다.”

     

   그 순간 성당 입구 쪽에서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크라슈가 그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곧 멈칫하였다.

     

   거기에는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비앙카가 있었다.

   그녀의 백색의 머리카락과 함께 이루어진 기다란 웨딩드레스는 비앙카의 미모를 한껏 끌어 올렸다.

     

   그 광경을 두 눈에 직접 새긴 크라슈가 멍하니 넋 놓자 비앙카가 성당 안쪽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그녀의 뒤에는 크라슈의 시녀인 알리샤가 그녀의 긴 웨딩드레스 치맛자락을 들어 이동을 돕고 있었다.

     

   뒤따라 미래의 연금성주 달링과 아슬란의 시녀, 리리나가 슬쩍 성당으로 들어오는 게 보였다.

   보아하니 비앙카의 드레스와 화장은 둘의 작품인 것 같았다.

     

   “크라슈 님.”

   

   

   

   

     

   비앙카가 어느새 크라슈의 옆에 다가와 섰다.

   그녀는 평소와는 다른 화장을 한 얼굴로 입가에 살포시 미소를 머금었다.

     

   “예쁘네.”

     

   크라슈가 무심코 말을 내뱉자 비앙카가 살짝 부끄러운 듯 웃었다.

   그마저도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흠흠, 그럼 지금부터 신랑 크라슈 발하임과 신부 비앙카 하덴하르츠의 결혼식을 진행 하겠습니다.”

     

   그러자 둘의 꽁냥거림을 길게 보기 힘들었던 아스트리아가 냉큼 식을 진행 시켰다.

     

   평소 그녀의 성격을 생각하면 많이 참아준 거였다.

     

   진행된 식과 함께 크라슈의 옆에 비앙카가 섰다.

   크라슈는 비앙카의 손을 살짝 맞잡자 비앙카가 깍지를 껴왔다.

     

   식을 진행하자 아스트리아의 표정이 자애로운 성녀 모드로 바뀌었다.

     

   “두 사람의 앞길에 신의 축복이 담기길 저 아스트리아가 진심으로 기도하겠습니다.”

     

   그녀는 정말로 자신의 진심을 담아 크라슈와 비앙카의 결혼식을 축복해주었다.

   역시 세상에서 가장 성녀란 자리에 어울리는 그녀다웠다.

     

   “그럼 두 사람 맹세의 키, 키스르을 해주세요.”

     

   마지막에 가서는 성녀 모드가 붕괴하기는 했지만 어떻게든 참아 내었다.

     

   그 사이 크라슈가 힐끗 시선을 옮기자 거기에는 검은 까마귀와 시체 쥐 한 마리가 있었다.

   크림슨가든과 에벨아스크도 나름 참가를 해준 것이었다.

     

   둘에게는 다음에 고맙다 전하면 되겠지.

   둘에게서 시선을 뗀 크라슈가 앞을 보았다.

     

   그러자 눈이 마주친 비앙카가 살짝 붉그스러운 얼굴로 천천히 눈을 감았다.

     

   다른 이들 앞에서는 보인 적 없는 애정 행각이라 조금 부끄러움이 들기도 했으나.

   비앙카를 언제까지고 기다리게 할 수는 없었기에 크라슈는 비앙카의 볼을 한 손으로 감쌌다.

     

   그러곤 고개를 낮춰 그녀의 입술에 자기 입술을 포개었다.

     

   “결혼 축하해!”

   “결혼 축하해요!”

     

   입맞춤하자 모두의 축하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 퍼졌다.

   크라슈가 입술을 떼자 살며시 떠진 비앙카의 눈이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이날만을 기다려 왔다는 듯 비앙카의 눈에는 행복감이 깃들어 있었다.

   그 눈을 마주한 크라슈도 같은 기분이었다.

     

   “이로써 두 사람은 영원의 약속으로 이어졌습니다. 앞으로 나아갈 두 사람의 길에는 축복만이 있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아스트리아가 식을 끝마쳤다.

   이로써 크라슈와 비앙카는 결혼하게 되었다.

     

   비록, 해결할 문제들이 여럿 있기는 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두 사람의 결혼에는 축복만이 깃들었다.

     

     

   * * *

     

     

   결혼식이 끝나고, 크라슈는 하객들과 간단한 파티를 즐겼다.

     

   기껏해야 최근 서로 안부를 듣고, 식사를 하는 것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크라슈는 많은 것들이 채워지는 기분을 느꼈다.

     

   마치,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을 채운 느낌에 가까웠다.

     

   크라슈는 자신에게 기대어 앉은 비앙카를 보았다.

   솔솔 불어온 가을바람이 그녀의 머리칼을 간질이고 지나갔다.

     

   크라슈는 손을 들어 살짝 흐트러진 비앙카의 앞머리를 정리해 주었다.

     

   “크라슈 님, 이제 또 한동안 멀리 떠나시겠죠.”

     

   크라슈는 차마 부정하지 못했다.

   지금 그에게 따라오고 있는 문제는 한둘이 아니다.

     

   아우라 쪽 내단을 해결하고 나면 창제무신을 완벽하게 다룰 수 있도록 익혀야 한다.

     

   더불어 제국 쪽에 간 시그린이나 또다시 사라진 아서, 아벨라와 익시온의 문제까지.

   해결할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최흉의 씨앗들도 본격적으로 커지고 있다.’

     

   세상은 평화롭게 흘러가는 척을 하면서도 서서히 어긋나고 있었다.

     

   그걸 해결하려면 몸이 몇 개가 있더라도 부족했다.

     

   “멀리 가도 내가 따라갈게요.”

     

   그러는 순간 비앙카의 말을 들은 크라슈가 그녀를 돌아보았다.

   비앙카에게서는 굳은 의지가 느껴졌다.

     

   “크라슈 님이 아무리 멀리 가더라도 난 따라갈 거예요. 크라슈 님의 아내니까요.”

     

   믿음직한 아내였다.

     

   “멀리 가지는 않을게.”

   “그럼 고맙고요.”

     

   다른 이들이 따라 올 수 있는 길을 개척하는 게 크라슈의 목표였다.

   당연히 따라올 수 있게 해줘야지.

     

   “크라슈.”

     

   그렇게 비앙카와 단란한 시간을 보냈을까.

   크라슈는 안쪽에서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크라슈가 있던 곳은 성당에 배치된 테라스였다.

   그런 만큼 자기를 부른 인물을 보잘 거기에는 하링이 서 있었다.

     

   “둘 시간 방해해서 미안해.”

   “아냐. 괜찮아.”

     

   이런 쪽에 눈치 없는 하링이 아니다.

   구태여 자신을 불렀다면 전해야 할 사항이 있다는 소리일 터.

     

   그러니 크라슈는 말해도 괜찮다고 하링을 보자 그녀가 조심히 입술을 열었다.

     

   “크라슈 몸에 생긴 내단을 빼내는 거, 아버지께서 도와줄 수 있을 거 같다고 하셔.”

     

   독왕, 하우란 라그렌.

   하링의 아버지 되는 사람이었다.

     

   이번 회차에 한 번 마주한 적 있는 그는 하링을 무척이나 아끼는 아버지였다.

     

   아무래도 내단 쪽에 가장 조예가 깊은 것은 그녀의 아버지이니.

   하링이 그사이에 연락을 넣어 봤던 모양이었다.

     

   “잘된 일이긴 한데.”

     

   크라슈는 왜 하링이 쭈뼛거리는 지를 눈치챘다.

     

   “무언가 조건을 붙였구나.”

   “응.”

     

   하링이 크라슈와 비앙카의 시선을 피하며 난처한 기색을 보였다.

     

   하우란을 직접 본 적 있는 만큼 크라슈는 대충 짐작이 갔지만.

   일단은 하링의 입으로 직접 묻기로 했다.

     

   “무슨 조건이었어.”

   “그게, 그.”

     

   하링이 비앙카를 눈치 보며 조심스럽게 말하였다.

     

   “나랑 둘이서 오라고.”

     

   쭈뼛거리며 대답한 그녀는 마지막에는 거의 기어가는 목소리였다.

     

   한동안 침묵이 맴돌았다.

   하링이 굳이 여기서 이 말을 꺼낸 건 비앙카에게도 직접 알리기 위함이 있었겠지.

     

   크라슈에게만 전했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을 일일 텐데.

   이러나저러나 자기 욕심부터 못 차리는 그녀다웠다.

     

   비앙카가 잠깐 하링을 바라보았다.

   그러던 그녀는 이내 크라슈를 돌아보더니 말하였다.

     

   “다녀오세요.”

     

   비앙카의 허락이 떨어졌다.

     

   크라슈도 비앙카를 살짝 걱정하듯 돌아보자 비앙카는 어깨를 폈다.

     

   “안주인 역할이요.”

     

   참으로 귀여운 안주인이었다.

   크라슈는 비앙카의 머리를 헝그러뜨려 주었다.

     

   그러고는 이내 쭈뼛거리던 하링을 돌아봤다.

     

   “좋아. 가자.”

     

   라그렌 가문으로 떠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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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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