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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3

       뭔가 기시감이 드는데.

        

       앨리스와 루테티아에 왔을 때가 생각났다.

        

       그때와 상황은 아주 다르다. 지금은 앨리스 대신 클레어와 레오가 있었고, 열차에 검성도 타고 있었다.

        

       내부가 고급스럽게 꾸며진 황실 전용 열차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대단히 뒤떨어진다고 할 수도 없었지만.

        

       우리는 열차의 한쪽 끝에 몰려 앉아 있었다. 객실 내부에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기사 여럿과 윈터필드 출신 병사들이 함께 타고 있었지만, 모두 우리와는 다소 거리를 두고 객실 앞쪽에서 대기 중이었다.

        

       돌아가는 중에 중요한 이야기를 얼마나 나눌까 싶었지만, 그렇다고 남들이 우리 이야기를 훔쳐 듣는 것이 그렇게 유쾌한 일은 아니다.

        

       “많이 신경 쓰여?”

        

       아까부터 창밖을 가만히 바라보는 나에게 클레어가 말을 걸었다.

        

       “신경 쓰이긴 합니다.”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황제와 그 아이들이 열차에 타고 있는데 어떻게 신경 쓰지 않을까.

        

       그들이 탄 객실은 특별히 개조된 곳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화물칸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방을 하나 더 만들어서 ‘손님’들을 태웠다.

        

       기본적으로 열차가 있고, 그 가운데 방을 하나 더 만들었으니 벽 하나를 뚫고 나와도 다시 벽이 있다. 게다가 방 주변을 병사들과 기사들이 지키고 있었고, 그중에는 검성도 있었다.

        

       바닥과 천장에는 두꺼운 강철을 넣어 일반적인 힘으로는 절대로 뚫지 못하도록 대비했고.

        

       그러니 불안하진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신경이 쓰였다.

        

       “조금 전에 제국 국경을 넘었잖아. 너무 긴장할 거 없어.”

        

       “제국 국경을 넘었으니 오히려 긴장해야 합니다.”

        

       “……참, 이런 면은 변하지를 않네.”

        

       언제나 조금은 긴장을 한 채 지내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여기 오기 전에도 여러 번 확인 했잖아. 나는 잘 모르지만, 앨리스의 말대로라면 굳이 황제 편을 들면서 구하려는 귀족도 없을 것 같던데? 너무 위험한데다가, 사실 황제는 귀족들에게 여러모로 미움받고 있었다니까.”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황제에게 충성하는 이들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이 열차에 사람을 채울 때도 고심했다. 단순히 황실을 호위하던 기사들로만 채운다면 그중 황제에게 아직도 충성하려는 이가 있을지 모르니까.

        

       기사들의 충성은 돈으로 사는 것이다. 일반적인 기사는 받는 만큼 일하고, 당연히 돈을 주는 이에게 충성한다. 애초에 황제 자리에 누가 앉건, 지나치게 비합법적이지만 않으면 굳이 그들이 나서서 현 황제, 혹은 차기 황제를 배신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사람 모이는 곳이면 어디에나 자기 자신에게 취한 채 움직이는 이들이 있는 법이다.

        

       돈에 굴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무조건 옳은 일이며, 한 번 충성을 맹세한 이가 있다면 죽어도 따라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이가 있을지 모른다.

        

       당장 검성만 하더라도 돈이니 뭐니 하는 것들에 연연하지 않는 이상한 이가 아니던가.

        

       대놓고 티를 내지 않아도 영웅이 되고 싶어 하는 이가 있을 수 있으니, 사람을 채울 때 정말로 신중해야 했다.

        

       결국 그레이스 가를 비롯한 충성파 가문에서 일부 사람을 빌리고, 황실 기사 중에서도 믿을 수 있는 이를 골라 섞은 뒤, 거기 검성까지 데려다 놓는 것을 택했다.

        

       병사들이야 뭐 애초에 황실 사병이 아니라 제국군이니까. 물론 여기서도 사람을 가려내긴 했지만.

        

       “그리고 혹시라도 제국 내에서 황제의 신병을 원하는 이가 있다면—”

        

       “참, 걱정도.”

        

       내 말을 클레어가 중간에 가로채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 밤중에 움직이는 기차를 어떻게 멈추겠어? 일부러 계획을 촉박하게 세웠잖아. 연막도 여러 개 세웠고. 상대가 미리 준비할 수 없도록 그렇게 열심히 계획을 세웠는데 대체 어떻게 열차를 멈추고 황제만 데리고 가겠어?”

        

       “…….”

        

       글쎄, 어떨까.

        

       사실 클레어도 나를 안심하게 하려고 저렇게 말하고는 있지만, 지금도 허리에 검을 차고 있었다. 만약의 사태가 터진다면 바로 검을 뽑아 대응할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조용히 우리 대화를 듣고 있는 레오도, 당연히 조금 긴장한 채 자리에 앉아 있었고.

        

       이 두 사람은 걱정하지 않는다. 분명히 그런 상황이 터져도 잘 해낼 거다. 실력 하나는 확실한 애들이니까.

        

       하지만 나는—

        

       능력을 잃은 내가, 과연 그 상황에 제대로 움직일 수 있을까?

        

       홀스터에 넣어둔 권총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며, 나는 조용히 생각했다.

        

       *

        

       그리고 불길한 예상은 언제나 맞아떨어지는 법이다.

        

       “무슨 일이죠?”

        

       “아, 그것이…….”

        

       조금 날카로운 내 목소리에 차장이 식은땀을 흘렸다.

        

       잘 가던 열차가 멈추어 섰다. 급정거는 아니었다. 속도가 빠르게 줄어들긴 했지만, 경험 많은 차장은 열차가 탈선하지 않도록 신중하게 멈춰 세웠다.

        

       “저 앞에, 길을 막은 사람이 있어서 멈췄습니다.”

        

       “사람? 이 시간에?”

        

       “그, 그렇습니다. 일단 보이는 걸로는 술에 취한 사람 같습니다만, 우선은 병사분들이 가서 확인하기로 했습니다.”

        

       나는 창밖을 보았다. 밖은 완전히 어두컴컴했다. 하늘에 별이 잔뜩 보이긴 했지만, 열차 주변을 밝히기에는 별빛이 모자랐다. 보이는 것은 열차 가까운 거리, 창문을 통해 나간 빛이 비치는 곳뿐이었다.

        

       그래도 숲속은 아니다. 넓게 펼쳐진 평원 같았다. 내가 열차를 타고 루테티아에 가는 길에 봤던 그 평원 같았다.

        

       “일단 창문에서 떨어지도록 하죠.”

        

       창문에 커튼을 치고, 창문에서 떨어졌다. 기왕이면 실루엣조차 볼 수 없도록, 일어나서 의자 사이의 복도로 몸을 옮겼다.

        

       클레어는 이번에는 별거 아니라는 듯 행동하지 않았다.

        

       누가 봐도 상황이 이상했으니까.

        

       주변에 마을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시골 마을이라 가스등이 없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불빛이 전혀 보이지 않을 수는 없었다.

        

       내가 총을 꺼내 들고, 클레어와 레오가 검을 뽑아 들었다. 우리의 움직임에 맞춰서 객실에 타 있던 기사들과 병사들도 각자 무기를 들고 일어났다.

        

       “화, 황녀님……?”

        

       “적의 공격일 수 있습니다. 차장은 이 객실 안에서 대기하는 것으로 하죠. 열차 안의 민간인들을 모두 병사와 기사들이 있는 객실로 모아주실 수 있으십니까?”

        

       내 말에 병사 한 명이 빠릿빠릿하게 “예, 알겠습니다!”하고 대답하더니 바로 움직였다. 같은 분대의 사람인지 두 사람이 더 붙어 셋이 움직이는 것을 보면, 비상시에는 이렇게 행동하도록 미리 짜여 있었던 모양이다.

        

       “그, 그렇게 위험한 상황입니까?”

        

       이런 상황을 처음 겪어보는 듯, 차장은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며 물었다.

        

       “예, 적어도 정상적인 상황은 아닙니다.”

        

       나는 바로 대답하고 발을 옮겼다. 우리가 있던 자리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있던 병사들과 기사들 사이로 걸어 객실의 끝까지.

        

       객실의 가장 앞자리, 기차의 선두와 가까운 곳으로 간 나는 객실 문에 난 창으로 바깥쪽을 보았다. 건너편에서도 병사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걸로 봐서는 차장의 이야기를 듣고 바로 전투를 준비하기 시작한 모양이다.

        

       “술에 취한 남자가 얼마나 먼 거리에 있었습니까? 멀었습니까?”

        

       “아닙니다. 열차의 제동거리가 있으니 그렇게 멀지는—”

        

       탕.

        

       객실의 벽 너머에서도 선명하게 총소리가 들렸다.

        

       탕, 탕.

        

       그리고 두어 발 더 들리던 총소리는,

        

       …….

        

       그대로 끊어졌다.

        

       “…….”

        

       침묵.

        

       귀를 기울여봤지만, 더 들리는 소리는 없었다.

        

       다음 순간, 열차 안의 사람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병사들과 기사들을 그냥 무턱대고 실어둔 것은 아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몇 번이나 훈련했다.

        

       사실 촉박하게 일정을 잡으면서도 결국 뒤로 조금씩 밀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황실의 병사만으로 꾸려진 이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병사들과 사병들의 움직임은 다르다. 똑같이 검을 쓰는 이들이더라도 주로 이어받은 유파마다 또 움직임이 다르다.

        

       같은 나라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연합군의 형태였다. 다행히 사이가 극도로 나쁜 가문은 없었지만.

        

       그러니 합을 맞추려면, 그리고 유사시에 완벽하게 움직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상황인지 생각한다면 훈련을 게을리할 수는 없었다.

        

       “대체 어떤 놈들이지?”

        

       클레어가 미간을 찡그린 채 물었다.

        

       “그건 직접 만나봐야 알겠죠.”

        

       객실 안에서 자세를 잡는 병사들을 보고 다시 뒤로 돌아온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저 사람을 다시 자리에 앉히려는 이들일까?”

        

       “……그 또한 직접 보지 않는 한 확신할 수 없습니다.”

        

       이번에는 레오의 말에 대답했다.

        

       탕, 탕.

        

       우리가 대화하는 사이에, 바깥쪽에서 총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주로 우리 쪽에서 쏘는 소리 같았다.

        

       그리고 외치는 소리가 몇 번 겹치더니—

        

       쿵, 하고 뭔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적어도, 적이 폭탄을 쓸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 다행입니다.”

        

       나는 그렇게 말했다.

        

       뭐, 설치해놨을지는 모르지. 하지만 분명 열차가 그전에 멈춘 것이리라. 아니면 황제를 어떻게든 살려서 데려가고 싶거나.

        

       상대가 어설픈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운이 좋은 것인지. 그 둘 다인지.

        

       “우리도 준비하도록 하죠.”

        

       내가 그렇게 말하자, 클레어와 레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우욬 님,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예, 그렇습니다. 소설의 이야기가 끝나도, 그 소설 속의 캐릭터의 수명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캐릭터들이 모두 살아있는 엔딩을 맞이한 이상, 그 캐릭터는 소설이 끝나고도 계속 살아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캐릭터들이 어떻게 살아갈지, 어떤 행복을 느낄지는 모두 독자 여러분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에 달렸습니다. 작가가 말하지 않은 부분은 미처 설명하지 못한 곳일 수도 있고, 일부러 비워둔 곳일 수도 있는 법이지만, 소설이 끝난 뒤의 부분은 후자에 해당하니까요. 영원히 글을 쓸 것이 아닌 이상, 실비아의 진정한 뒷이야기는 저의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에게 달려있습니다. 부디 여러분께서 상상하실 뒷이야기에서 실비아가 행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물론 아직 후일담과 외전이 남아있지만요! 그 남은 이야기들도 잘 부탁 드립니다. 다시 한 번 후원 감사합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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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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