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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3

        

       “주물이요?”

       “예.”

         

       진성은 세 번째 가능성을 듣고 놀라는 김철수에게 담담하게 그렇게 말했다.

         

       “옛날부터 산이라는 존재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터전이 되기도 하고, 갈 곳 없는 사람의 최후의 도피처가 되기도 하고, 속세에서 벗어나 도를 얻고자 하는 이들의 보금자리가 되기도 했고, 거대하고 웅장한 모습 때문에 사람들에게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지요.”

         

       무덤덤한 박진성의 태도는 무언가…묘한 느낌을 주었다.

         

       마치 당신은, 그리고 당신의 뒤에 있는 사람은 이 ‘세 번째 가능성’을 택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김철수 비서님은 이런 말 들어본 적 없습니까? 도 닦으러 산에 들어간다. 도사가 되기 위해 지리산이나 속리산에 수행하러 간다…. 뭐 이런 말 말입니다.”

         

       “예. 들어본 적은 있기는 합니다만….”

         

       “그럼 이야기가 더 쉬워지겠군요. 산이라는 것은 김철수 비서님이 알고 계시는 그 예시처럼, 수행을 위한 장소로 많이 이용되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그런 곳에 사람이 몰리면 몰릴수록…. 그 흔적이 많이 남을 수밖에 없지요.”

         

       진성은 그 ‘흔적’이 바로 주물이라고 말했다.

         

       “봉신연의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혹시 들어보신 적 있습니까?”

         

       “아, 예. 들은 적은 있습니다.”

         

       “봉신연의에서는 신통력을 부릴 수 있는 도구, 보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요. 이것은 일종의 아티팩트이며, 일종의 주물입니다. 그리고 옛 주술사들은 이러한 ‘보패’를 만드는 것을 좋아했지요.”

         

       진성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슬쩍 미소를 지었다.

         

       “물론 제가 한국의 주술사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중국과 인접한 나라들은 대부분 그러하더군요. 아마 과거의 한국 역시 도사니, 주술사니 불렸던 사람들이 ‘보패’를 만들었다고 추측할 수 있겠죠.”

         

       “그렇다면 지금 일어난 일이, 그 보패 때문이다?”

         

       “아….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는 잠시 입을 닫았다가 열었다.

         

       “일반적인 사건이라면 구도자나 수행자가 산에 남기고 간 보패에서 소동이 일어난 것으로 추측할 수 있겠는데….”

         

       “…하지만 지금은, 일반적이라고 볼 수 없는 일이지요.”

         

       “예. 그렇습니다. 하나 빼고 전부 일본의 요괴라…. 이상한 일이지요. 산해경이나 요재지이, 그것도 아니라면 한국의 야담(野談)에서 나올법한 것이 나왔다면 옛 주술사들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고려라도 해 볼 수 있겠습니다만, 전부 일본의 요괴라….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함밖에 없습니다.”

         

       톡톡.

         

       진성은 책상을 검지로 톡톡 두들겼다.

         

       “한반도의 나라가 일본과 자주 교류를 한 것도 아니고, 왜구 사이에 주술사가 껴서 들어왔을 가능성도 적고, 하다못해 들어왔다고 한들 남한 곳곳의 산에 들어갔을 가능성은 더더욱 적지요. 그러니 만약 주물로 인한 일이라면….”

         

       “일본인이 제집처럼 드나들던 때가 가장 유력하겠군요.”

         

       “예. 그렇지요. 일제 강점기. 만약 주물이 설치되었다면 일제 강점기의 흔적일 것입니다.”

         

       그는 말을 거기서 멈추더니 소곤거리듯 말했다.

         

       “아니면 그 이후이거나요.”

       “그 이후라….”

         

       김철수는 진성의 말을 듣자 머리가 아프다는 듯 자기 이마를 손으로 감쌌다.

         

       그가 말한 추측 세 가지가 모두 일리가 있었고, 하나하나가 어마어마한 후폭풍을 불러일으킬 거대한 것들이었으니까.

         

       ‘이런.’

         

       김철수는 얼굴 근육을 움직여서 약간 난처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사안이 너무 거대해서 자신과 같은 말단은 감당할 수 없다는 듯 말이다.

         

       물론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했지만 말이다.

         

       ‘후우. 하나같이 엿 같은 일이긴 한데, 뭐 크게 나쁘지는 않군.’

         

       일이 커다란 것은 맞다.

       그 후폭풍도 거셀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건 김철수가 알 바가 아니었다.

         

       ‘편한 곳에서 손가락만 놀리면서 여론 조작하는 새끼들 엿도 먹이고, 윗사람 새끼들도 대가리는 잘리지 않는 대신 개고생 좀 시키고. 그리고 이 기회에 증거 같은 거 찾아서 일본 놈들한테 큰소리도 좀 쳐주고…. 나쁘진 않겠어.’

         

       김철수는 요원 중에서도 현장에서 발로 뛰는 부류였다.

       그의 특기는 요인 암살이나 잠입 같은 피비린내가 가득 풍기는 일.

         

       김철수는 이러한 자기 일에 충분히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고, 정부가 자신에게 주는 혜택과 보상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만족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만족스러울 수는 없다.

       일이 만족스러우면 동료 중에 눈엣가시가 있는 것이 세상의 이치 아니겠는가.

         

       김철수가 눈엣가시로 보고 있는 것은 여론 조작을 하는 요원들이었다.

         

       김철수는 그들을 이렇게 생각했다.

         

       손에 피도 묻히지 않고, 뛰어다니지도 않고…. 심지어 무공이나 마법을 제대로 수련조차 하지 않은 채 허구한 날 의자에만 앉아서 손가락만 두들기고 전화만 해대면서 무슨 엄청 큰일을 한 것처럼 생색을 내는 작자들.

       게다가 성과를 말할 때는 꼬박꼬박 이름을 올리면서 현장 요원들의 이름을 뒤로 밀리게 할 때면 정말이지….

         

       ‘엿 같은 새끼들이지.’

         

       동료니까 죽여버리고 싶다거나 죽기 직전까지 패고 싶다거나 그런 마음까지는 없다.

       하지만 엿 정도 먹여주는 것 정도야 괜찮지 않겠는가.

         

       김철수는 눈엣가시들이 울상을 지으며 앓는 소리를 낼 것을 생각하며 속으로 웃었다.

         

       ‘그리고 뭐, 현장 무시하고 저런 놈들 예뻐하는 높으신 분들도 고생 조금 하면 현장이 더 중요하다는 것도 알겠지.’

         

       동아줄은 튼튼할 것이다.

       방향성도 없이 함성에 따라 흘러가는 광기의 칼날이 그들의 모가지를 치지는 않을 테니까.

         

       게다가 이런 소동을 겪었으니, 방첩망을 더 튼튼하게 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를 터.

       그렇게 된다면 현장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더 우대받게 될 것은 분명했다.

         

       그러니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만 김철수는 이러한 마음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 미소라도 지으면 이상하지 않은가.

         

       그러니 그 대신에 짜증이 난다는 듯, 곤혹스럽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러한 당혹스러움에 힘을 싣기 위해서 기를 순환시켜 몸의 온도를 살짝 올려 땀이 나게 만들고, 그것을 손수건을 꺼내 훔치는 모습까지 보였다.

         

       진성이 자기 모습에 완전히 속을 수 있도록 말이다.

         

       “이거 제 선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일 같습니다. 이거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한데, 자세한 것은 보고를 올려야 할 것 같습니다마는….”

         

       “예. 알겠습니다.”

         

       “크흠. 솔직히 이렇게 큰일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는 못했는데….”

         

       “아닙니다. 제가 한 말들이기는 합니다만, 입 밖으로 내면서도 이 추측이 참으로 무겁고 무거워 쉬이 논할 수 있는 것이 아님에 도리어 제가 죄송함을 느꼈습니다.”

         

       김철수와 박진성은 그렇게 대화를 마치고 헤어질 준비를 하였다.

       김철수는 간단히 짐을 챙기고 옷매무새를 정돈한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곤 테이블 위를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

         

       “아, 박진성 주술사님. 저 테이블 위에 놓인 것은 참고하시라고 두고 가겠습니다.”

         

       “흐음.”

         

       “일이 어떻게 흘러가던 박진성 주술사님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 분명하니…. 지금 제가 가져가봤자 의미는 없겠지요. 하지만 저 안에는 기밀도 있고, 사람들에게 알려져서는 안 되는 내용들도 있으니 부디 철저하게 관리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겠지요. 저 서류에 적힌 것을 한국 사람이 보면 분명히 대노(大怒)할 것이 분명할 터. 그러니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김철수와 박진성은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 * *

         

         

         

       복귀한 김철수는 박진성과의 만남, 그리고 박진성이 했던 세 가지 추측을 그대로 보고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러한 ‘보고’는 고위공무원들의 골머리를 썩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 세 가지 추측이라는 거, 전부 일리가 있는데 말입니다.”

         

       “추측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현실성이 높은 것들입니다. 특히 ‘재앙을 버리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을 경우’에 대한 추측이 너무 와닿는군요.”

         

       “흐음. 솔직히 일본 놈들이라면 저런 짓을 하고도 남을 것들이기는 해요.”

         

       그들이 알고 있는 일본이라면 박진성이 말한 추측을 그대로 행했어도 이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앙을 다른 나라에 버리는 거?

       하고도 남을 놈들이다.

         

       “솔직히 너무 가능성이 넘쳐서 문제입니다.”

       “예. 재앙을 품은 제물을 다른 나라에 버리는 것…. 그 정도야 뭐 어려운 일은 아니지요.”

         

       사이 좋은 나라라면 모를까, 일본과 한국은 그렇게 사이가 좋지 않았다.

       게다가 땅으로 이어진 것도 아니고 중간에 바다라는 장벽으로 가로막혀 있기까지 하다.

         

       그 말은….

         

       “솔직히 잠입해서 버린다거나, 하늘에서 떨군다거나 그런 번거로운 짓 할 필요도 없이, 그냥 바다에다가 흘려버리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렇지요.”

         

       그냥 쓰레기를 바다에다가 흘려버리듯, 제물을 바다에 버리기만 하면 끝이다.

       그러면 일본의 손에서 떠난 것이니 죄책감이나 책임도 없을 것이고, 해류(海流)가 알아서 적절한 곳에 제물을 갖다 놓을 터.

         

       “솔직히 우리를 노린 것인지 아닌지는 모릅니다.”

       “그렇지요. 위에 쓰레기통이 있으니까요.”

         

       게다가 이렇게 버리는 것에 큰 부담도 없는 것이, 한국에는 커다란 쓰레기통이 있었다.

       괴뢰 집단이 거대한 똥을 싸놓고 사라진 탓에 지금까지 수습이 되지 않고 있는 죽음의 땅이 말이다.

         

       부정이 넘쳐흐르고, 악령과 악귀가 창궐하는 땅.

       사람이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는 죽음의 공간 말이다.

         

       제물?

       재앙과 액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뭔 문제인가.

       북한 땅에서 그 정도 재앙과 액은 강에다가 잉크 몇 방울 떨군 수준일 텐데.

         

       “북한 쪽으로 흐르는 해류에 버리려고 했다가 한국에 도달했다….”

         

       “가능성이 있지요….”

         

       “흐음. 이 경우라면 일본 놈들은 온 힘을 다해 잡아떼겠군요.”

         

       게다가 잡아떼기도 쉬웠다.

         

       일본에서 해류를 타고 한국 땅에 도달했다?

       그렇게 도달한 것이 사람이나 동물을 홀려서 내륙으로 이동한 뒤 문제를 일으켰다?

         

       만약 한국에서 항의한다면 일본에서는 이렇게 답하리라.

         

       『 그것이 일본에서 왔다는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

         

       바다를 타고 온 것인데, 그것이 일본에서 온 것인지 어디 이름 모를 섬에서 떠내려온 것인지 어떻게 아냐며 책임 소재를 회피하려 할 것이고, 한국이 격분하면 ‘한국이 괜히 트집을 잡아서 평화를 사랑하는 일본을 핍박한다.’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치고 다니리라.

         

       그리고 두 번째, 테러할 의도를 품고 보냈을 가능성?

       그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은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걸 일부라도 인정하는 순간 ‘평화를 사랑하는 일본’이라는 캐치프레이즈는 박살이 나게 되는 것이었으니까.

       정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사건을 묻을 것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자작극마저 벌일 가능성이 있었다.

         

       음양사를 부려서 일본 내부에 한국 요괴를 불러서 소동을 일으킨 다음 피장파장의 논리를 내세운다면?

       그것을 시작으로 온갖 궤변을 지껄이며 한국을 진흙탕으로 끌고 간다면?

         

       그렇게 된다면, 사건은 결국 흐지부지되게 되리라.

         

       그나마 제일 나은 것은 세 번째.

         

       주물일 가능성이었다.

         

       “솔직히 세 번째 추측일 경우가 제일 좋기는 합니다.”

         

       “그렇지요. 증거가 명확하니 우리가 떠들기도 좋고.”

         

       “주물을 가지고 협상을 할 수도 있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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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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