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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3

       한밤중에 가문을 나선 백우진은 다음 날 정오쯤 정무학관에 다다랐다.

         

       오랜만에 맞이한 학관의 정문을 보고 있자니 정겨운 느낌이 물씬 풍겨왔다.

         

       “어우, 이제는 여기가 집 같이 느껴지냐.”

         

       이미 그의 얼굴이 명함이나 다름없어진 지 오래.

         

       간단한 절차만 거친 후 곧장 학관 안으로 들어선 백우진은 곧장 연무장을 찾았다.

         

       “어디 잘 훈련하고 있나 볼까.”

         

       궁금했다.

         

       과연 그들이 자신이 없는 와중에도 열심히 구슬땀을 흘리고 있을지.

         

       기척을 죽이며 다다른 연무장에는 뜨거운 열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차앗!”

       “끼요오옷!”

       “흥!”

         

       거의 하나처럼 움직일 수 있게 된 신룡조원들이 혈수마녀를 상대로 분투를 이어가고 있다.

         

       경지의 차이가 너무나도 큰 탓에 무엇을 시도해도 먹히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머리를 굴려 가며 새로운 시도를 선보이는 그들의 모습에 눈물이 나올 지경.

         

       ‘다들 잘 컸다, 잘 컸어.’

         

       설수연을 제외한 모두가 초절정에 올라섰다.

         

       당선영은 슬슬 화경에 올라설 준비를 하는 듯했고, 신예화 또한 마찬가지.

         

       제갈연지는 그들의 바로 밑에 다다라 벽을 마주하게 되었고, 구왕수와 장삼은 더욱 초입을 벗어나 서서히 중입경에 다다르고 있었다.

         

       ‘송희연이 초절정이라….’

         

       무엇보다 시선이 가는 건 송희연이었다.

         

       그림자 일족의 살수들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남들에 비해 무공의 경지를 끌어올리는 것이 몇 배는 더 힘들다는 것.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영계(影界)에 자유자재로 잠입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신체적 특성이 불리함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할 뿐.

         

       그렇기에 그들의 쓰임새는 조금 애매했다.

         

       절정에 오른 실력만으로도 영계 잠입을 통해 초절정 고수의 암살까지도 손쉽게 해치울 수 있는 그들이나, 감각의 예리함이 하늘에 닿은 화경의 고수를 상대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기에.

         

       ‘초절정이면 화경을 암살하는 것도 가능하려나.’

         

       아마 혼자서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절정과 초절정 사이의 차이보다 초절정과 화경 사이의 차이가 더욱 극심한 차이를 보인다.

         

       화경을 두고 괜히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초인이라고 부르겠나.

         

       그만큼 그들의 감각은 예리하고, 또 폭넓다.

         

       초절정에 다다른 그림자 일족이라고 해도 그 감각을 속이기란 쉬운 일이 아닐 터.

         

       ‘조력자가 있다면 또 모르지.’

         

       만약 화경 고수의 눈길을 잡아 끌어줄 만한 조력자가 있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영계에 잠입한 송희연의 기척은 거의 전무에 가까웠으므로.

         

       ‘좀 있다가 나갈까.’

         

       그들이 수련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원래는 곧장 그들의 앞에 나타나 회포를 풀고 싶었으나, 그것이 방해처럼 느껴졌다.

         

       몇 시진쯤 뒤로 미룬다고 해서 재회의 기쁨이 덜하지는 않을 테니, 백우진은 차분한 얼굴로 그늘에 숨어 그들의 수련을 지켜보았다.

         

       그러던 도중, 유일하게 백우진의 기척을 알아차린 혈수마녀와 눈이 마주쳤다.

         

       ‘흥, 이제야 왔구나.’

         

       이쪽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그리 말하는 듯했다.

         

       백우진은 웃으며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러자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오른다.

         

       가까이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아채기 힘들 정도로 자그맣고 미약했으나, 그것은 분명 내재 된 기쁨의 발로였다.

         

       은밀하게 눈빛을 주고받는 것도 잠시.

         

       백우진은 선두에 서서 혈수마녀의 공격을 막아서고 있는 당선영과 제갈연지를 보며 수심에 잠겼다.

         

       “끄응.”

         

       그녀들의 반가운 얼굴을 보고 있으니 잠시 잊고 있던 문제 하나가 떠올랐다.

         

       도경과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어 혼인하게 되었음을 그녀들에게 고백해야 한다는 사실을.

         

       “좆됐다….”

         

       그때부터 백우진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덜 맞고 끝낼 수 있을까.

         

         

       * * *

         

         

       급하게 자리를 준비했다.

         

       일단 상대 기분이라도 맞춰주면 열 대 맞을 거 아홉 대로 줄어들지 않을까.

         

       장소는 어쩔 수 없이 늘 사용하던 하오문의 객잔을 이용하기로 했다.

         

       폐쇄성이 짙은 정무학관의 특성상 이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대신 각종 소품을 이용해 방의 분위기를 완전히 뒤바꾸는 시도를 진행했다.

         

       안팎으로 드나드는 하오문도들을 닦달하여 분위기 좋은 소품들을 조달하고, 각자 살면서 먹어보았던 음식 중 가장 맛있었던 것을 선정하여 구해오라 말했다.

         

       권력 남용 아니냐고?

         

       맞다.

         

       그런데 어쩌란 말인가.

         

       이미 썩어버릴 대로 썩어버린 용사에게 권력 남용쯤은 아주 사소한 일탈에 불과해진 것을.

         

       “이야…! 좋다, 좋아.”

         

       그렇게 꾸며진 방은 백우진으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낼 정도였다.

         

       수십의 하오문도를 닦달한 덕에 아주 멋들어진 분위기가 완성되었다.

         

       일렁이는 등불이 자아내는 은은한 조명 아래 드리워진 낭만적인 분위기는 웬만한 죄는 그냥 웃으며 넘어갈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마냥 웃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내 죄가 웬만해야 말이지….”

         

       그의 죄는 웬만한 수준에서 그치는 가벼운 죄가 아니기 때문.

         

       이렇게 완벽하게 준비하고도 맞지 않고 넘어가는 건 불가능하다 여겨질 정도.

         

       “의복도 잘 갖춰 입었고.”

         

       오랜만에 치렁치렁한 옷으로 몸을 감쌌다.

         

       움직이는 건 영 불편한데 멋은 확실하게 살더라.

         

       귀티 나는 얼굴이 더해지니 여인들이 품고 사는 연애 소설을 찢고 나온 공자 같은 느낌.

         

       이 정도면 제아무리 두 사람이라고 해도 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테지.

         

       마지막으로 내부를 점검하고 있을 때, 밖에서 점소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공자님.”

       “왜.”

       “아가씨들께서 오셨는데, 바로 모시면 되겠습니까?”

       “어, 그래. 얼른 모시고들 들어와.”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한다.

         

       얻어터질 시간이 가까워져 올수록 심장이 조여드는 듯하다.

         

       이윽고 들려오는 나긋한 발걸음 소리가 그의 귓가에 천둥처럼 들려왔다.

         

       드르륵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어머.”

       “와아, 백 공자…!”

         

       한껏 차려입은 백우진의 모습에 놀란 표정을 짓는 두 사람.

         

       “흐응…, 오늘따라 멋지게 차려입었네?”

       “너무 머시써….”

         

       당선영도, 제갈연지도.

         

       새삼 백우진의 외모에 감탄하고 말았다.

         

       누더기를 걸쳐도 숨겨지지 않던 외모인데 마음먹고 꾸민 상태에서는 오죽할까.

         

       ‘역시 얼굴이 개연성이었어.’

         

       백우진은 그것을 재차 깨닫고서 나긋한 미소로 두 사람을 맞이했다.

         

       “잘들 지냈어?”

       “아니.”

       “아뇨?”

       “…….”

         

       거의 즉답으로 들려오는 부정에 백우진의 말문이 막혔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분이 좋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왜 이렇게 냉랭할까.

         

       당선영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했다.

         

       “훌쩍 떠난 남편이 돌아올 생각을 안 하는데 우리가 잘 지낼 수 있었을까…? 서. 방. 님?”

         

       서방님이란 단어가 원래 이렇게 짜릿하면서도 섬뜩한 것이었던가.

         

       ‘실수다.’

         

       으레 건네는 인사 한 줄로 실책을 범하게 될 줄이야.

         

       백우진은 당황 섞인 표정을 애써 수습하고서 그녀들을 자리로 이끌었다.

         

       “이, 일단 앉을까?”

         

       두 사람이 백우진의 맞은편에 앉아 마침내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헤에…, 원래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뭔가 분위기가 야릇한 거 같아요, 언니.”

       “그러게. 당신, 혹시…?”

         

       당선영의 의심 섞인 눈빛이 백우진에게로 쏟아졌다.

         

       무언가 낌새를 눈치챈 걸까.

         

       이내 그녀가 야릇한 표정으로 혀를 달싹인다.

         

       “설마 두 여자를 한 번에 품을 생각은 아니겠지?”

       “꺄악…! 백 공자, 변태에…!”

       “…….”

         

       전혀 생각지도 못한 답에 정신이 멍해지는 백우진.

         

       그는 뒤늦게 자신이 꾸민 방의 분위기를 면밀히 살펴보았다.

         

       은은한 조명 아래 흐르는 낭만적인 분위기는 확실히 그런 쪽으로도 생각해볼 만한 여지가 충분해 보였다.

         

       ‘나쁘지 않을…, 아니, 아니지.’

         

       기왕 이렇게 된 거, 확 거사를 치러버려…?

         

       문득 떠오른 생각을 애써 지워내며 미혹에 빠질 뻔한 정신을 다잡는 백우진.

         

       그러나 미처 끄지 못한 한 톨의 불씨가 그의 가슴을 은은하게 지폈다.

         

       ‘언젠가는 꼭…!’

         

       사내로서 다다를 수 있는 행복의 한계에 도전해 보리라.

         

       …물론 이 자리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면의 얘기겠지만.

         

       “크흠, 일단 식사부터 하자고.”

       “후후…, 아니라곤 안 하네.”

       “백 공자…, 전 아직 마음의 준비가아…!”

       “…아니, 밥 좀 먹자고.”

         

       다행히 놀림당하는 건 거기까지였다.

         

       그 뒤부터는 그간 만나지 못했던 사이 그들에게 있었던 이야기를 들으며 식사를 즐겼다.

         

       대부분은 수련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다.

         

       당선영과 신예화의 비무 전적이라던가, 장삼과 구왕수가 점점 서로를 닮아가고 있어 골치라던가….

         

       시시콜콜하면서도 어머니가 읽어주는 전래 동화처럼 듣기 편한 이야기들.

         

       방에 내리쬐는 은은한 조명처럼 흐르는 분위기 속에서 식사가 거의 끝마쳐갈 즈음.

         

       “그러는 당신은 지금까지 뭘 한 거야?”

       “맞아요. 백 공자가 뭐 했는지도 알려주세요.”

       “어, 음.”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약간의 희망이 생겼다.

         

       지금 같은 분위기라면 죽을 때까지 맞지는 않겠다는 일말의 작은 확신이.

         

       “음, 얘기하자면 조금 긴데….”

       “괜찮아. 당신 이야기라면 사흘 밤낮으로 들어도 좋아.”

       “저도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저런 마음씨 착한 여인을 둘이나 부인으로 두었으면서 또 다른 부인을 들이다니!

         

       이 어찌 파렴치하면서도 짜릿한 일인지!

         

       ‘그래, 빨리 자수해서 광명 찾자.’

         

       그녀들이라면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줄 것이다.

         

       적어도 자기들 손으로 죽일지언정 자신을 내치지는 않으리라.

         

       굳게 마음을 먹은 백우진이 입술을 뗐다.

         

       “사실은 내가…!”

         

       모든 것을 한 호흡에 뱉어내기 위해 숨을 크게 들이마신 채 말을 쏟아내려 할 때.

         

       드르륵!

         

       별안간 문이 열리더니, 다급한 표정의 하오문도가 큰 목소리로 백우진의 말을 잘라냈다.

         

       “크, 큰일입니다!”

       “…아.”

         

       허망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백우진.

         

       이쯤 되면 온세상이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천천히 숨을 고르며 생각을 정리한다.

         

       그들도 알고 있다.

         

       자신이 이 분위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그걸 알면서도 기별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는 건 그만큼 큰일이 벌어졌다는 뜻일 테지.

         

       백우진은 최대한 온화한 표정을 하고서 급히 달려온 하오문도에게 물었다.

         

       “무슨 일인데.”

       “혈교가 마침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위치가….”

         

       숨을 헐떡이던 그가 마른침을 삼킨 뒤,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저, 정무학관입니다.”

       “…….”

         

       백우진을 비롯한 세 사람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진짜 큰일 났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너무 늦어서 죄송합니다.

    어제 정말 낮부터 하루종일 글을 잡고 있었는데, 정말 어마어마하게 안 써지더군요.

    차라리 무슨 일이 생겨서 글을 못 쓰게 되면 공지로 바로바로 말씀드리는 편인데,

    제가 꼭 안 써지는 글을 붙잡고 시간을 날리고 있을 때면 금방 써서 연재하면 돼, 하고 오기를 부리는 사태가 되어버립니다;;

    그러다 보니 완성까지 일언반구 말씀도 못 드렸네요.

    사죄의 말씀과 더불어 1월 내로 연참을 통해 모자란 부분 벌충하도록 하겠읍니다.

    그럼 저는 다음 편으로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_ _)

    다음화 보기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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