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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3

       과거 정마대전에서 살아남아 그 명성을 이용하여 소림의 방장 자리에 오르는 데 성공한 범운은 자신을 앞에 두고도 거만한 무인의 모습이 영 거슬렸다.

       

       육신의 경지는 일류 끝자락 정도이고 그 신체도 뛰어나다고 하긴 어렵다.

       

       겉에 보이는 것만을 따지자면 저 여인은 어디에나 있을 법한 무인 나부랭이에 불과하다.

       

       허나 그녀가 보인 것은 다르다. 범운은 가면을 쓴 여인에게서 슬쩍 시선을 떼어 주변을 살폈다.

       

       바닥에 널부러진 소림의 무인이 한 둘이 아니다.

       

       저들 중에서 여인이 지닌 것보다 모자라게 지닌 녀석은 없다.

       

       절정의 경지에 달했을 수준의 내공과 깨달음.

       

       수십 년에 달하는 기간 동안 꾸준히 노력하여 쌓아온 육신.

       

       객관적으로 따져 보았을 때 저들은 여인에게 패해선 안 된다. 그래야 옳다.

       

       허나 저들은 저 여인에게 상처 하나 내지 못하고 패했다.

       

       어째서? 범운이 보기에 이유는 하나였다.

       

       단순히 저 여인이 소림의 무공을 더 잘 다루었기 때문에.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범운은 뒷짐을 쥔 손에 힘을 넣었다.

       

       마료. 분명 이 자는 네 놈이 키운 녀석이겠지.

       

       소림이 아닌 곳에서 소림의 비급을 가르칠 만한 녀석은 그대밖에 없으니까.

       

       하하. 온갖 고상한 척을 하더니 결국 네 녀석도 인간이었구나.

       

       자신을 향한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죽지 아니하는 외부인을 키워 이 곳에 보내다니!

       

       이리 함으로써 우리의 명성과 자존심을 꺾을 생각이었겠지.

       

       그렇지만 말이다.

       

       마료! 성급했구나! 더 시간을 들였어야지!

       

       이 여인이 개화할 때까지 기다렸어야지!

       

       이 여인이 지닌 재능은 진짜다. 여태까지 내가 보았던 그 어떤 외부인보다 뛰어나. 세공을 끝마친다면 분명 천하에 이름을 떨칠 사람이 되리라.

       

       허나 아직은 아니다.

       

       제 아무리 특별한 재능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경지가 부족하다면 한계가 있는 법.

       

       보석은 아직 암석에 감추어져 제 가치를 드러내지 못했으니.

       

       지금이라면 얼마든 저를 꺾을 수 있다.

       

       긴 시간이 지난 후에는 어찌 될지 모르지.

       

       허나 상관없다.

       

       지금 제대로 꺾어놓는다면 훗날이 오는 것이 한참을 느려질 테니까.

       

       그리고 그 때면 아마 나는 이 세상에 없을 터이고.

       

       “건방지구나. 자그마한 재능을 지녔다하여 세상이 네 것 같더냐?”

       

       범운은 짐짓 성이 난 체를 하며 여인을 노려보았다.

       

       “그럼 어디 알려줘 보거라. 세상이 내 것이 아니라는 걸.”

       “좋다.”

       

       범운이 뒤편을 눈짓하자 한 중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십니까. 소승은 양배휼이라 합니다.”

       

       그 자의 이름은 양배휼.

       

       지금 소림에서 가장 촉망 받는 재능을 지닌 자이자 소림의 절기 중 하나인 백보신권을 전수받고 있는 녀석.

       

       젊은 나이에 화경의 벽을 앞에 둔 괴물.

       

       여인이여. 네 놈의 방자함도 여기까지다.

       

       아무리 그대가 뛰어난 재능을 지녔더라도 백보신권까지 손에 넣지는 못했을 터.

       

       소림이 지닌 절기의 앞에 무릎 꿇도록 하라.

       

       범운이 속으로 웃음을 짓는 동안 가면을 쓴 여인은 양배휼의 모습을 위에서 아래로 훑었다.

       

       그리고는 키득거리는 웃음소리를 냈다.

       

       “볼 필요도 없군. 백보신권을 익힌 녀석인가.”

       “그를 어찌.”

       “백보신권을 수련하는 녀석의 체형은 특징적이거든.”

       

       여성은 그리 이야기를 하면서 양배휼의 여러 특징을 이야기했다.

       

       기형적일 정도로 발달된 팔과 등의 근육. 거친 수련 속에서 바위보다 두터워진 주먹.

       

       위력을 견디기 위해 발달한 허벅지 같은 것을 말이다.

       

       “고행의 흔적이 마음에 드는 구나. 자고로 무인이란 이래야지.”

       

       고개를 주억거리는 여인의 얼굴에는 자그마한 긴장도 느껴지지 않았다.

       

       기이한 일이었다.

       

       어지간한 이는 접할 수도 없는 소림의 절기를 배운 상대다.

       

       육체도 경지도 내공도 무공도 어느 하나 앞서는 것이 없을 터인데 어찌 저리 당당할 수 있는 것인가.

       

       이미 패배를 예견하고 체념한 것인가?

       

       아니다.

       

       허세를 부리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다.

       

       저 자는 양배휼을 상대로 패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 뿐이다.

       

       가만 그 광경을 바라보던 범운은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불안감에 침을 삼켰지만 이제와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수많은 이들의 시선이 집중된 상황이다.

       

       지금 이 순간 범운이 말을 더해봐야 의미를 가지기 못한다.

       

       불안감에 말을 거둘 바에는 차라리 양배휼을 믿는 것이 옳다.

       

       그래. 이 생각이 맞다. 소림의 수제자를 내가 믿지 아니한다면 누가 저를 믿겠는가.

       

       “처음으로 사람다운 녀석을 만나 기분이 좋구나. 자. 덤비거라. 세 수까지 양보해 주겠다.”

       “소저. 소승을 너무 무시하지 말아 주시길 바랍니다. 저는.”

       “재잘재잘 시끄럽구나. 무시당하기 싫다면 스스로를 증명하면 될 일이다.”

       

       양배휼은 손가락을 까닥거리는 여인의 모습을 보고는 묵권을 보내더니 자세를 취했다.

       

       백보신권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백보 너머의 거리까지 권의 위력이 닿을 수 있기에 백보신권이라 불리는 것이다.

       

       이 권을 익힌 자는 거리를 제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

       

       권의 거리도 괜찮다. 검의 거리도 상관없다. 창의 거리도 넘을 수 있고 심지어 활의 거리조차 넘볼 수 있으니.

       

       백보신권을 익힌 자는 그 어떤 전장이라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여태까지 여인이 보여준 바에 따르면 그녀는 권사다.

       

       그런 그녀에게 굳이 권의 거리를 허용할 필요는 없다.

       

       그리 판단을 내린 양배휼은 한참은 떨어진 거리에서 권 위에 기를 덧씌웠다.

       

       아지랑이처럼 일렁거리는 권기는 그가 완숙한 절정이며 여태까지 끝없는 수련을 거듭했다는 증빙.

       

       이것이 덧씌워진 백보신권은 평범한 권과는 격을 달리하니.

       

       이로써 거만함을 조금이라도 덜길 바라오 소저!

       

       허나 안타깝게도 의지를 담은 권은 아무런 결과도 내지 못했다.

       

       가면을 쓴 여인이 똑같이 권을 내지르자 그 충격이 상쇄된 것이다.

       

       그 광경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본 양배휼은 너무도 당혹스러워 입조차 열지 못했다.

       

       권이 상쇄된 것에 놀란 것은 아니다.

       

       그것도 분명 기이한 일이긴 했으나 방금 전 양배휼이 본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백보신권?”

       

       여인은 백보신권을 사용했다.

       

       소림에 속하지 않은 자가 소림의 절기를 사용한 것이다.

       

       잘못 보았을 리가 없다.

       

       양배휼이 백보신권을 수련한 기간이 얼마인데 저를 잘못 보겠는가.

       

       자신보다도 능숙하게 백보신권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고서 배워야 할 것만 같은 그 광경을 어찌 잘못 보겠냔 말이다.

       

       “어찌 당신이 그것을.”

       

       저 여인은 도대체 무얼 하는 존재인가.

       

       소림의 수많은 무공을 완숙했을 뿐만 아니라 백보신권마저도 사용할 줄 알다니.

       

       기이한 일이다.

       

       어찌 저런 괴물이 일류의 경지에 머무르고 있단 말이더냐.

       

       저만큼 많은 무공을 완숙할 때까지 수련했다면 그에 따라 쌓인 내공도 깨달음도 정도 이상일 터인데 어찌하여.

       

       부들거리는 양배휼의 입술을 본 여인이 또 다시 웃음소리를 냈다.

       

       “대답해 줄 것이라 생각하느냐. 중아. 쓰잘데기 없는 기대를 할 바에야 남은 두 수를 신경 쓰는 편이 옳다고 생각한다만.”

       

       그 말을 들은 양배휼은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다시 자세를 취했다.

       

       우선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내가 하수임을 인정한다.

       

       수단과 방법을 고른다면 패할 것임을 받아들인다.

       

       그런 후에 최선의 수를 강구한다.

       

       여인은 아직 내게 두 수가 남았다고 선언했다.

       

       그러니 그 두 수 안에 승부를 낸다. 그러지 못하면 패배할 터.

       

       양배휼은 이를 악물고 여인에게로 내달렸다.

       

       백보신권이란 것은 백보 멀리까지 닿을 만한 위력을 지닌 권격을 날리는 것.

       

       그만한 위력을 지닌 권격이 피부에 닿는다면 어찌 되겠는가.

       

       거대한 바위조차도 가루로 만들 위력이 사람에게 직접 전해진다면 분명 생명을 위협하리라.

       

       허나 양배휼은 힘조절을 하지 않았다.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닿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상대방이 외부인이니 죽어도 다시 살아날 것을 알았기에.

       

       온 힘을 다해 권을 내질렀다.

       

       지금의 양배휼이 할 수 있는 최선.

       

       필살의 의지를 담은 일권.

       

       “으음. 확실히 나쁘지 않아.”

       

       그 일권이 만들어 낸 결과는 아무것도 없었다.

       

       여인이 한 박자 늦게 내지른 일권이 어째선지 양배휼의 권이 내질러지는 것보다 먼저 그 권에 도달하여 충격을 상쇄시켰으니까.

       

       “이 따위 곳에서 자라난 녀석치고는 꽤 괜찮군.”

       

       여인의 목소리에는 긴박함도 다급함도 뭣도 없었다.

       

       양배휼의 모든 것을 보고서도 그녀는 여전히 위에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자. 이제 한 수가 남았다만 더 할 것이 있느냐?”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귀를 통해 전해진 순간 양배휼은 이 상황이 꿈만 같아서 웃을 수밖에 없었다.

       

       *

       

       그나마 봐줄만 했던 권사를 박살낸 후로도 본인은 여러 무인을 상대했다.

       

       그들 모두가 소림의 절기를 사용하는 자였으며 절정 이상의 무인들이었다.

       

       세상 어디를 가더라도 고수라 평가받을 수 있는 이들.

       

       여러 무인들에게 존중 받아 마땅해야 하는 녀석들.

       

       허나 그 모두가 본인의 아래에서는 무력할 뿐이었다.

       

       지닌 경지가 높으면 무얼 하느냐. 가진 내공이 많으면 무얼 하느냐. 육체가 강건하면 무얼 하느냐.

       

       그것은 무기일 뿐이다. 아무리 날카로운 검이 있더라도 어린 아이의 손에 들리면 장난감이 되듯.

       

       아무리 좋은 조건들이 모여 있다 하더라도 무공을 다루는 실력이 미천하면 그 어떤 것도 이룰 수 없으니.

       

       본인을 쓰러트리고자 나섰던 모든 이들은 본인에게 상처 하나 입히지 못한 채 바닥에 널부러져야만 했다.

       

       “지루하군.”

       

       내기를 폭주 시킬 일조차 없을 줄이야.

       

       수준이 떨어질 것이라 생각하긴 했다만 이 정도로 허술할 줄은 몰랐다.

       

       아무리 정마대전을 거치며 고강한 무인들의 목숨이 스러졌다 하더라도 정도가 있지.

       

       이 정도까지 영락하면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는다.

       

       차라리 화산이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될 줄은 몰랐구나.

       

       그 곳은 복수를 위해 칼날을 갈기라도 했으니까.

       

       여기는 그저 영달과 탐욕을 위해 모든 것을 망쳐버리지 않았는가.

       

       “슬슬 끝을 낼까.”

       

       바닥에 널부러진 땡중들을 밟아가며 앞으로 향한다.

       

       그 곳에 있는 것은 여태까지 자리를 지킨 녀석.

       

       과거 본인의 아래에 추한 꼴을 보여 간신히 목숨을 부지했으며,

       

       지금은 어떤 수를 썼는지 모르겠으나 방장의 지위에 도달한 녀석.

       

       “남은 것은 그대 뿐이다.”

       “이럴. 이럴 리가.”

       “어찌할 테냐. 네 녀석이 본인에게 주제를 알려줄 것이냐?”

       

       네 놈이 사용하는 무공이 무엇인지 안다.

       

       네 놈의 성향과 수준이 어떤 지도 안다.

       

       거기에 맞추어 주마.

       

       정확히 네 놈이 싸우는 방식에 맞추어서 움직여 박살을 내주마.

       

       자존감을 박살내어 일어날 생각조차 못하게 해주마.

       

       그러니 답하라.

       

       겨루겠다고.

       

       소림의 자존심을 지키겠다고.

       

       자신이 왜 방장에 섰는지 알리겠다고.

       

       자.

       

       어서.

       

       “…명패를 가져가시지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

    HW화이트님 25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바루의 까까비로 후원을 해주셨는데요!
    이 까까비는 화령연초재단으로 횡령 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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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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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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