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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3

        

         어느새 다리 한 쪽씩을 비스듬히 서로에게 걸은 상태로 선 두 사람.

         한 쪽이 본격적인 육탄전을 걸어온 시점에서 공중전은 그만두게 되는 게 자연스러운 결과이기는 했다.

         

         지면에 뿌리라도 내린 듯, 자세를 단단히 유지하고 있는 하반신과는 다르게 상반신은 잔상이 보일 정도의 속도로 자잘한 수싸움과 타격 교환을 벌이고 있었으니.

         

         그 과정에서 마침내 칼이 상대방을 찌르는 유효타가 나온 건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그럴 의도가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닐진대, 조작된 승부가 아니고서야 아무도 상처 없이 걸어 나가는 건 불가능했지.

         

         하지만 차라리 피를 봤다면 헬레나도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당황해서 소리친 건 외려 상처는커녕 피 한 방울 안 나왔기 때문, 아마도 명백히 이렇게 참격을 흘려 넘기는 걸 노리고 팔을 뻗은 게 마사나리의 작전이리라.

         

         게다가 평생 햇빛을 안 받은 것처럼 투명하다 못해 혈관이 보이는 그녀의 팔은, 드러나자마자 뱀처럼 헬레나의 어깨를 타고 올라왔다.

         

         그 끝에 있는 손에 잡혀 있는 건 당연히 예의 일본식 전투 단검, 여지껏 손을 섞으면서 가늠한 것보다 길이가 갑자기 길어졌다. 어떻게? 차분히 따지고 있을 겨를 따위는 없다.

         

         당장 뭐든 실행으로 옮겨도 늦을 판이니까.

         

         “흐읍!!”

         

         둘 중 누구의 것인지도 구분이 안 가는, 혹은 양측 모두의 것일 수도 있는 기합이 터져 나왔다.

         

         찌직!

         

         칼을 회수해서 대응하기엔 한참 늦었다. 그렇다면 거침없이 더 밀어 넣는다는 헬레나의 대응도… 10점 만점이라면 9점 수준으로 적중.

         

         어깻죽지 근처에서 옷감의 봉합선을 갈기갈기 찢어발기며 튀어나온 카타나 날이 마사나리의 목젖 바로 앞에서 정지했다. 왜냐하면… 헬레나의 경동맥에도 짧지만 예리한 날붙이가 닿을락 말락 하고 있었기에.

         

         결과적으로 서로가 서로의 목에 칼을 대고 있는 교착 상황.

         구경꾼이 있었다면 동점이라 말했겠지만… 당사자들은 누가 약간이라도 더 빨랐는지 분명 알고 있었다.

         

         타협을 없을 것처럼 달려들던 것에 비해 다소 허망한 결말이지만… 당장 저 위층에서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있던 누군가가 알았으면 이게 최선의 시나리오가 맞다며 기립박수를 치지 않았을까?

         

         “후우…… 후우… 아나스타샤 공이 소인을 일부러 떼어놓으신 걸 보면 사생활과 관련된 손님이실터. 흐읍, 흐으…. 그런 부분을 존중은 해드리나, 대인 관계는 철저하게 파악하란 명이 있던 만큼 못해도 이름을 비롯해 어떤 사이인지 정도만 간략히 청취하고 싶소만.”

         

         “…기가 막히네. 겨우 그거 물어보겠다고 자기 어깨 관절을 뽑아가며 무승부를 노려? 기업 요원은 뭐 아프지도 않아?”

         

         “신경 물질이란 건 틀림없는 맹독이나, 적절히만 사용한다면 의약품과 마찬가지오. 그리고 에나마의 적이라면 몰라도, 구태여 숨기려 하신 걸 보면… 애인일 수도 있는 만큼 이 방법 이외에는 타협점이 없었소이다.”

         

         원래라면 절대 닿지 않았을 팔이 갑자기 늘어난 것처럼 교차한 건 전혀 착각이 아니었다.

         

         에나마 요원은 그런 것도 일부러 훈련하는 모양이 아닐까, 고의적으로 팔을 탈구 시켜 조금이라도 더 빨리, 먼저 위협을 가해서 협상할 권리를 얻어낸 걸 보면.

         

         산소가 모자랐는지 자꾸 헐떡이면서도 묘하게 만족스러운 목소리를 내는 건 그 때문이리라.

         

         진짜 죽일 생각으로 싸우는 거였다면 목을 비틀어서 피할 수 있는 헬레나와는 달리, 마사나리는 꼼짝없이 통째로 꼬챙이가 되는 만큼 승리라 볼 수도 있었지만. 전투에 들어가기에 앞서 경고의 의미를 담겠다고 다짐한 건 어디까지나 헬레나 본인이었으니까.

         

         아무래도 그런 부분에 있어서 그녀는 태생적으로 고집 부릴 성격이 못되는 만큼 깔끔하게 승복했다. 일달은.

         

         ……절대 ‘애인’일지도 몰라 알아서 자중했다는 마사나리의 주관적 해석에 은근히 마음이 동한 게 아닙니다? 진짜로?

         

         “헬레나 발렌타인, 그리고 손님 같은 게 아니라 가족이야. 그 애의 언니라고. ………아직은.”

         

         “과연, 송구했소. 헬레나 공. 일정을 지체하게 만든 점도 사죄드리겠소이다. 인근 피해에 관해선… 충분히 경비 처리될 테니 안심해주시길.”

         

         여태까지 각을 세운 건 다 뭐였나 싶으리만치 쉽게, 정말 시원스럽게 물러난 마사나리가 빠진 어깨를 다시 우드득우드득 잡아 맞추며 태연자약하게 인사했다.

         

         경찰 일하면서 겪어본 스토킹 범죄와는 차원이 다른 깔끔함에 정색하고 딴지를 걸었던 헬레나가 더 무안할 지경이랄까. 기업형 스토커라는 건 이렇게나 유도리가 있는 존재였구나 하는 감상을 품게 되었다.

         

         어쨌거나 여동생 주변에 계속 붙어있을 거라는 점에서 좋은 말을 하긴 어려웠지만!

         뭐, 나름대로 경호원이라는 시각으로 접근한다면 이 정도 실력자가 항상 함께 한다는 건 썩 괜찮을지도.

         

         “…아니, 잠깐만. 그게 작별 인사였어?”

         

         삐끗, 칼을 거두고 잘도 전투의 여파에 휘말리지 않은 자기 바이크에 기댄 채 있던 헬레나의 몸이 휘청였다.

         

         시간을 빼앗아서 미안하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어떤 얘기를 가져오려나, 너무 개인적인 걸 물어보면 어떤 변명으로 넘길까 고민하며 기다리고 있었는데.

         

         찢어진 옷자락을 동여맨 마사나리는 제대로 된 자기 소개는커녕 정말 이름과 무슨 관계인지 증언해준 걸로 충분하다는 것처럼 훌훌 지상층으로 떠나가버렸다.

         

         한때 그래도 수십 단위의 경찰 분대를 굴리고, 배속된 부하들을 호령하던 그녀의 입장에서 보자면. 저건 기업에서 붙인 감시자라기 보단… 군기가 너무 바짝 들어간 신입 사원에 가깝지 않나.

         

         “그러고 보니, 정작 자기 이름은 밝히지도 않고 튀었네….”

         

         정말 찝찝한 것투성이다. 여동생이 눈치 없이 구는 것도 있고, 딱 몸이 달아오르려던 찰나에 멋대로 결착을 짓고 도망가버리는 에나마 사냥개도 그렇고.

         

         나중에 기회가 되면 아나스타샤에게 저게 정확히 뭐하는 요원인지, 왜 뒷골목 양아치 마냥 이레즈미 운동복을 입고 다니는지 좀 추궁하도록 하자.

         

         그렇게 다짐하고선 이만 바에 들렀다 돌아가려고 엔지니어 플라자를 빠져나왔는데 이게 웬 걸? 아무래도 스토커 피해를 걱정해야 했던 건 자신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크흠, 어흠흠! 여어~ 헬레나! 의뢰 복귀가 좀 늦었네?”

         “…….”

         

         정수리 근처가 살짝 반들거리는 덧니 용병.

         자칭 할렘가의 카리스마, 통칭 대머리남 큐볼이. 자기 패거리와 함께 간이 주차장에서 페일 에일 바로 들어가는 골목을 점거한 채로 헬레나를 맞이했다.

         

         근처에서 한숨 자고 온 건가, 아니면 설마 장장 열 몇 시간을 주점에 죽치고 앉아서 여태 퍼 마시며 버티고 있던 건가.

         

         그때 칼집으로 후려갈긴 턱주가리가 멀쩡한 걸 보면 못해도 근처 약국이나 병원은 들렸다 돌아온 것 같은데 말이지.

         

         사실 일주일짜리 장기 의뢰가 다행히 얼추 하루만에 잘 마무리되었다는 걸 슈나이더가 직접 떠벌렸을 리도 없거늘.

         

         지박령 마냥 술집에 들러붙어서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자신을 무작정 기다렸다 하니 이걸 참 질렸다 해야 할지, 이번엔 다른 때와 다르게 그렇게까지 들러붙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해해야 할지 감이 잘 안 왔다.

         

         그치만 어느 쪽이든지 간에 불쾌한 건 매한가지.

         

         이런 걸 생각하면 조금 불편하더라도 헬멧을 쓰게 강제했던 경찰 수칙이 옳지 않았나… 문득 그리워진다. 거긴 적어도 바이저 안에 들어있는 게 누군지 우연히 알게 되어도 밖으로 티는 안 냈으니까.

         

         “…무슨 일인데. 큐볼. 혹시 내 손맛이 너무 약해서 그새 까먹었어? 이 참에 정신 좀 차리라고, 조절 안 하고 한 대 갈겨줘?”

         

         “큐볼이 아니라 스틸볼이라고 내가 씨바 몇 번을…! …어흠!! 아니, 아니지. 화내면 안 되지.”

         

         “…?”

         

         딱히 빚진 것도 없고, 꿀리는 건 더더욱 없겠다.

         주저없이 발작 버튼을 누르고 평소처럼 가볍게 한 대 때려줄 준비를 마친 헬레나였지만, 상대는 웬일로 곧장 지랄하는 대신 이성적인 태도로 자세를 바로 갖췄다.

         

         다른 사람이라면 드디어 철이 좀 들었나 싶었을지라도 상대는 얼간이 큐볼.

         

         뭔가 듣는 것만으로도 짜증나는 얘기를 꺼내려고 이러는 건 아닐까 심히 걱정했지만. 정말 뜻밖에도 그의 입에서 나온 건 똑바로 된 사과였다.

         

         “그… 있잖냐. 내가 여태 볼 때마다 집적거리면서 귀찮게 군 걸 좀 사과할까… 하고.”

         

         “갑자기 웬?”

         

         “시발, 솔직히 너도 거리낌 없이 두들겨 팼으니까! 금전적으로 보상을 하겠다는 건 절대 아닌데! 일단은 미안하다고 말해두려고 이 몸이 친히 기다리셨다는 얘기다! 어??”

         

         쑥스러운 말과 함께 손이 슬쩍 내밀어진다.

         

         어쩌면 기적의 물리 치료가 드디어 결실을 거두었을지도 모를 노릇이다.

         

         그래, 일각에서는 학대라 표현되더라도. 황무지에서 주운 들개나 여우조차 체벌을 동원해서 교육하면 성과가 나오는데 사람이라고 어찌 영원히 변치 않을 쏘냐.

         

         오랜만에 느끼는 뿌듯함이 그녀의 전신을 감돌았다.

         때려죽여도 업무 지침을 외우기가 힘들다며, 첫 달 근무 급여가 0 크레딧이 나왔던 부하를 나중에 한 자릿수 번호를 부여받는 부사수급 인재로 키워낸 기분이라 할까.

         

         의심스러운 정황은 있어도, 사람이 기껏 개과천선하겠다는데 초를 치는 말을 하는 것도 도리는 아니니 악수 정도는 받아줄까…하고 생각한 그 순간에.

         

         거나하게 취한 동료 용병의 친절한 참견이 있었다.

         

         “히끅…! 어? 어어?? 얌마, 스틸볼! 어떻게, 연애 사업은 좀 잘 되가냐!! 아까 뭐 역시 여자는 좀 나긋나긋한 맛이 있어야 한다며 언니 쪽은 너무 사나우니까, 말이라도 잘 받아준 동생을 한 번 노려보겠다고 아까 중얼거리지 않았냐?!”

         

         불행히도. 골목 쪽 창가 테이블에선 큐볼 패거리만 보이고 주차장 안쪽에 있던 헬레나는 영 눈에 안 들어왔는지, 반쯤 비워진 술병을 휘적거리며 하는 말은 너무 설득력이 넘쳤다.

         

         “!? 이 씨발, 닥쳐 개미친 새끼야! 그걸 하필 여기서 냅다 말해버리면 어떡해!!”

         “엉? 아, 뭐야. 늑대도 같이 있었냐! 으하핳!! 히끅! 야, 미안하다 미처 못 봤어!”

         

         “…두 번째,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하는데 내 동생을 건드리지 말라는 말. 기억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그러는 거지?”

         

         얼마나 놀랐는지, 부정하기도 전에 냅다 딸꾹질하는 술친구의 목을 조르려고 창문으로 달려드는 큐볼의 추잡한 꼴을 좀 보라.

         

         허면 이 꼬라지를 코앞에서 직관한 헬레나의 심정은 어떻겠나?

         

         안 그래도 심란하던 참에 딱 적당히 터프하고, 몇 대 맞는다고 상해죄를 들먹일 걱정도 없는 동종업계 종사자들이 우르르 몰려 있다.

         

         아예 버르장머리를 고치던, 비록 희망사항이지만 아나스타샤와 자주 같이 드나들게 될 여기 술집을 다신 못 오게 반죽음을 만들던 둘 중 한 개는 무조건 해야 하지 않을까? 음음, 분명 그럴 것이다.

         

         “아잇, 씨발. 스틸볼 대장! 늑대가 개빡쳤잖아요!!”

         “에헤이… 조졌네 이거.”

         

         여느 때처럼 나자빠지게 되더라도 걸린 -혹은 대장이 걸어버린- 시비를 피해서야 용병으로 먹고 살기 어렵다. 지는 걸 아는 싸움이더라도 한 번 개겨보는 근성은 발휘할 줄 알아야 하는 법이다.

         

         …같은 패거리로 지내려면 어쩔 수 없은 연대 책임이기도 하고.

         

         하여간 이런 술집 싸움(Bar fight)이나 막싸움에 무기를 꺼냈다간 돌이킬 수 없게 되는 만큼, 다들 무지막지한 파워와 철권으로 유명한 헬레나에게 맞고 날아갈 각오로 어깨를 풀고 있었는데.

         

         “엉??”

         

         큐볼 패거리 쪽에 난데없이 어두컴컴한 그림자가 졌다.

         

         어디까지나 비유적으로, 얻어터질 예정이라 앞날이 어둡다는 표현이 아니고 그냥 물리적으로 어마어마한 덩치의 괴한에 의해 거리 쪽 불빛이 싹 차단되어서 기다란 음영이 진 것이었다.

         

         

         “사람이 지나가는데 비킬 줄도 모른다면 멀리 좀 꺼져라, 이 버러지 같은 놈들. 길 한복판을 처막고선 무슨 시답잖은 시간 낭비를 하는 거냐?”

         

         

         흡사 산이 말하고 있다해도 믿을만한 육중한 저음.

         큐볼의 초라한 대머리와는 결이 다른 폭력성을 드러내는 듯한 깔끔한 스킨 헤드와 울퉁불퉁한 힘줄.

         마지막으로 입가엔 웬만한 성인도 아령 대용으로 써도 될 것 같은 무게감을 자랑하는 복합형 방독면이.

         

         그리고 그 뒤편에 보이는… 엄청 초록초록하고 껄렁한 인간과 안색이 창백한 남자 삼인조가.

         

         하베스트 플래닛 전투 경찰(HPPD) 사이에서도 꽤나 유명했던 문제아 삼인방이 왜 지금 갑자기 여기에 나타난 걸까?

         보통 용병이 메트로폴리스 단위로 활동하는 걸 고려하면 여차해서는 시 경계를 넘을 일이 없는데 말이다.

         

         이 자리에서 아마 유일하게 그들을 알아본 헬레나는 자신이 알고 있는 하나뿐인 연결고리를 잠시 떠올렸다.

         

       

       

         ………에이, 설마. 그건 아니겠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인기 스타네요~

    그런데 살짝 큰일 났습니다. 허리가 뒤지게 아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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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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