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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3

    <313 – 이사장의 만찬3>

     

    자리를 파하자.

    그만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라.

    10층의 숙박실로 돌아가 느긋하게 잠을 자도 좋다.

    이사장의 입에서 나올 해방선언만 애타게 기다리는 학생들.

    혁명을 갈구하는 노동자처럼 뜨거운 시선에도 이사장은 조금의 초조함도 느끼지 못했다.

    일개 학생들의 눈치를 볼 정도로 권력이 없는 것도 아니거니와 개인의 심지가 얕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는 호기심을 느꼈다.

     

    ‘매스각키 황녀를 제외하면 유이하게 이 자리의 진가를 깨우쳤군요.’

     

    원하는 요리는 무엇이든 먹을 수 있는 기회.

    수집이 곧 힘이 되는 세상의 진리를 깨우치지 못한 이들은 실감하지 못할 기회다.

    오직 막대한 권력을 움켜쥔 자들만이 세상의 섭리와 이치를 이해한다.

    다양한 경험.

    풍부한 컬렉션.

    이 세계에서는 수집가로서의 역량이 곧 개인의 강함과 연결된다.

    칼을 열 번, 백 번, 천 번 휘둘러도 강해지지만 다음에 강해지기 위해서는 만 번을, 십만 번을, 백만 번을 거듭 휘둘러야 한다.

    그 수고를 음식 몇 종류를 먹는 것으로 대신할 수 있다면.

    아주 진귀한 요리 하나를 먹는 것으로 칼질 천만 번을, 일억 번을, 십억 번을 대신할 수 있다면.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미련하게 칼질 하나에만 매달릴 리가 없다.

     

    ‘동종의 수집품이 중첩되면 가치가 상한다.’

     

    칼질도 휘두를수록 실력이 느는 속도가 더뎌지듯이 음식도 먹을수록 힘이 더해지는 속도가 더뎌진다.

    그러니 한 번뿐인 기회라면 먹지 못한 음식을 먹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이름조차 모를 음식을 먹을 수는 없다.

    모르는 것은 주문도 할 수 없으니까.

    그런데 이 아이는 아주 당돌하게도 주문을 했다.

     

    “만년수액을 달여 만든 <만액용약탕> 주세요!”

     

    백 년을 산 나무에는 요정이 깃든다.

    천년을 산 나무에는 아주 벌떼처럼 가득하다.

    하물며 만년이면 고깔모자처럼 뾰족한 귀를 지닌 엘프놈들이 어디선가 꼬여들어서 세계수니 뭐니 헛소리를 하며 가까이 오지도 못하게 막는다.

    그런 만년 묵은 나무의 수액을 달이고도 탕이라 부를 정도의 양이 남으려면 보통 많은 수액을 채집해서 될 문제가 아니다.

    발상조차도 불경하기에 엘프나 요정들이 알려주었을 리도 없고, 감히 실현할 수 없기에 엘프가 아니라도 발상조차 닿지 못할 요리다.

    그래서 재미있었다.

     

    “그 요리는 시간이 필요하군요. 재료를 갖추고 조리하기까지 얼마면 되겠습니까?”

    “3일이 필요합니다.”

     

    비서실장의 대답에 이사장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오크노디를 달랬다.

     

    “뛰어난 창의력은 그 자체로 감탄을 사기 마련입니다. 경이로운 발상을 치하하는 의미에서 3일 뒤에 <만액용약탕>을 내놓더라도 그 전에는 다른 유니크 요리를 대접해드리죠.”

    “와, 유니크가 두 배! 원 플러스 원!”

     

    그 대신 내어준 요리는 월간미식회에서 내놓은 후원자 전용 음식.

    멀쩡한 요리에 나이프를 대자마자 요리에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안 그래도 싸했던 연회테이블에서는 이제 누군가가 지르는 비명과 훌쩍이는 소리마저 들렸다.

     

    “대체 오크노디에게 뭘 준 겁니까?”

    “월간미식회의 후원상품인 <비탄의 스테이크>입니다. 물론 수량이 한정된 유일급 요리이기에 여러분에게까지 드릴 수는 없습니다.”

    “오크노디. 그거 먹지 마.”

     

    지젤마저 정색하고 이사벨까지 화를 냈다.

    눈치를 보던 그들조차 이건 아니다 싶을 정도로 심상치 않은 음식.

     

    “왜요?”

    “그런 거 먹지 않아도 될 만큼 맛있는 요리로 내가 만들어줄게.”

     

    오크노디는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로 접시를 내려다보았다.

     

    “그래도 유니크 요리는 귀한데…”

     

    그 대범한 반응이 알려주고 있다.

    오크노디는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

    그것이 아무리 비도덕적인 음식이라고 하더라도.

    수집가로서의 제약이 없다.

    강함의 폭이 누구보다 크다는 증거였다.

    재능의 잠재력만큼 취향의 수비범위도 중요하다.

    수비범위가 넓을수록 편식이 적다.

    수집품의 종류가 많아진다.

    다양한 수집품은 강함으로 이어진다.

    선을 넘을수록 수집가의 강함은 더욱 커진다.

     

    “한 입 먹어보고 생각할래요!”

     

    기어이 스테이크를 콕 찍은 포크를 입으로 가져가는 오크노디.

    이빨이 고기에 닿기 무섭게 육즙과 함께 비명이 꺄아아아 터져나왔다.

    오크노디가 아닌 그녀의 이빨에 씹힌 고기에서 나온 비명이었다.

     

    ‘삼키십시오. 그리고 증명하는 겁니다. 당신의 성장가능성이 이렇게나 뛰어나다고!’

     

    그로서는 정말 흔치 않게도 타인에게 기대감을 담아 쳐다보는 이사장.

    권력자는 믿음을 가지지 않는다.

    그것이 얼마나 허망한 행위인지 알고 있기에.

    권력자는 믿는 대신 족쇄를 채운다.

    따르지 않으면 목이 조여지고 괴로워지니까.

    믿는다면 누군가의 선의나 자유의지가 아닌 목줄이 채워진 대상이 느낄 고통을 믿었다.

    그런 그가 오크노디를 믿었다.

    자신을 파파라고 부를 정도로 터무니없는 발상.

    도무지 행보를 종잡을 수 없는 기상천외함.

    이 모든 것들이 기대감을 심어주었다.

    이 아이라면 할 수 있다고.

    자신과 같은 유일한 존재가 될 수 있다고.

    한계에 달한 그의 수집품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다줄 유니크한 인재가 될 것이라고 말이다.

    이사장의 기대를 한 몸에 사로잡은 오크노디.

    그녀는 그 기대에 답했다.

     

    “므에에에.”

     

    한입 씹은 스테이크를 접시에 죄다 흘려버리는 것으로.

     

    “저런. 편식입니까?”

    “파파도 장난이 심했어요. 소리만 나는 게 아니라 진짜로 영혼이 들어 있잖아요!”

    “그래서 더욱 각별하지 않습니까. 영혼이란 특별한 존재. 그러니 소울푸드Soul Food는 세상에 하나뿐인 유일한 음식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 식이면 인육도 도감수집에 들어가죠! 도감수집이 아무리 중요해도 선을 넘으면 마계의 마족들과 다를 바 없잖아요.”

    “유감이군요. 아직 어린 아이에게는 너무 이른 음식이었던 걸까요.”

     

    오크노디는 접시를 비웠다.

    먹어치우는 것이 아닌 휴지통에 버리는 것으로.

     

    “음식은 받은 걸로 칠게요.”

    “알겠습니다. 그래도 삼일 뒤의 식사에서는 편식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좋겠군요.”

    “당연하죠! 만액용약탕은 영혼이나 인육으로 만든 요리는 아닌걸요.”

     

    오크노디가 선은 넘지 않았다고 안도하는 학생들.

    퍽 웃긴 모습이었다.

    과연 그럴까?

    세상이란 아는 만큼 보이기 마련이다.

    오크노디가 바란 만액용약탕의 제조를 위해 탈취해야 할 만년수의 수액.

    그걸 채집하기 위해 재단에서 얼마나 대규모의 병력을 동원할지 저들은 짐작도 하지 못한다.

    재단을 막으려고 나설 엘프와 요정들이 죽어나갈 숫자를 들려주거든 차라리 비탄의 스테이크를 먹으라고 할 정도로 죽을 생명의 자릿수가 달라진다.

    그래도 저들은 만액용약탕을 먹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요리를 만들 대가를 알지 못하기에.

    그러니 이것은 편식이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비명은 뱉어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먼 곳에서의 비명은 달게 삼키는 어린아이의 편식.

    그래서 더욱 마음에 들었다.

    오크노디의 삶의 방식과 인생관은 이사장의 기대를 충족시켰다.

    이 아이는 흥미롭다.

    꼬리의 보고서를 읽거나 조나의 진술을 듣고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비서실장. 저는 제 딸이 만액용약탕을 먹는 모습을 꼭 이 두 눈으로 지켜보고 싶습니다.”

    “이미 원정대를 조직했습니다. 에소니아 탐험단을 비롯한 정예민간조직을 동원해 엘프들을 국경지대로 유인하고 그 틈에 만년수를 노릴 계획입니다.”

    “작전은 개입하지 않겠습니다. 그저 기한을 준수하십시오. 두 번은 없습니다.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제 시간을 허비하는 것만큼은 용납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지령이다.

    이사장이 비서실장에게 직접 내리는.

    지령을 어긴 자들은 막대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더욱 어려운 지령을 하사받거나.

    지령을 이행함으로써 얻을 이득보다 더한 대가를 자신의 몸으로, 혹은 남은 인생으로 지불하게 된다.

    엄청난 피를 흘릴 것을 각오한 원정이다.

    그 대가를 한 사람의 몸으로 갚는다면 대체 무슨 일을 겪어야만 상환이 가능한 걸까.

    비서실장은 감히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개인에게는 억겁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긴 시간에 걸쳐서 아주 가혹한 상환이 치러질 테니까.

     

    “조나 와이히엠하이. 당신, 아주 무서운 아가씨를 모시게 되었군요.”

    “아가씨는 화풀이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사장님의 시험으로 친구들을 잃을 뻔했습니다.”

    “그 대가로 재단에 자신들을 시험할만한 자격이 있느냐고 되묻기라도 하는 거란 말입니까?”

     

    만찬의 자리를 벗어난 사석.

    층과 층 사이에 존재하는 계단.

    이사장의 눈을 피한 자리에서 비서실장은 오크노디를 직접 가르치고 지켜봐온 집사 조나에게 오늘의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견해를 들었다.

     

    “어느 부녀든 한 번도 싸우지 않는 화목하기만 한 가정은 없습니다. 아가씨에게는 투정을 부릴 이유도 있지 않습니까.”

    “그 이사장의 딸을 자처하더니 정말 리틀 이사장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군요.”

     

    비서실장의 얼굴에 시름이 짙어졌다.

    두 번 투정부리면 재단이 휘청거리겠다고 생각하면서.

    물론 그 또한 아이의 투정에 목숨이 걸린 지령을 수행하게 되어서 샘솟은 엄살일 뿐이었다.

    고작해야 숲에 틀어박혀서 나이 많은 나무나 섬기는 야만적인 아인종의 소굴에 쳐들어가는 일이다.

    재단의 저력은 이 정도로 휘청거리기에는 너무나도 거대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저 도감작이 하고 싶었을 뿐인 무서운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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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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