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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3

       지상군부터 차례대로 가파른 비탈에 진입했다.

       

       “지세가 험준하니 천천히 들어가도록.”

       

       요르문간드는 앞뒤를 재며 그리 당부했다.

       

       날개가 있는 용족이 마수들을 슬쩍 붙잡고 낮게 날았다. 이렇게 하면 지상군이 굴러떨어지는 걸 예방할 수 있었다.

       

       ‘대열도 잘 유지하고 있고…… 안정적으로 물러나고 있다.’

       

       민천의 군대는 서서히, 그러나 무던히 나아갔다.

       

       이윽고 비탈 하나를 지나자 다른 비탈이 나타났다.

       

       이번 비탈은 머리보다 높은 곳에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던 요르문간드가 큭큭 웃어댔다.

       

       “뭐가 그리 웃기십니까?”

       “여기 지형을 잘 보거라.”

       

       요르문간드가 위에 자리한 벼랑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만약 복병을 두었더라면 여는 이곳에 두었다. 저기 비탈을 따라 돌만 몇 개 굴려도 우리를 궤멸할 수 있겠지.”

       

       피트 기관을 통해 방금 확인했다. 절벽 위에는 복병이 없다. 느껴지는 온기는 산짐승의 것이 전부였다.

       

       요르문간드는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공기 맛을 보았다.

       

       밤공기가 시원하고 좋았다. 가을이 왔다는 증거였다. 이대로라면 전쟁이 끝날 때쯤에는 단풍을 즐기며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좋아.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겠군…….”

       

       그때였다.

       

       “……지금이다!!”

       

       툭.

       

       쿠쿠쿠쿵!

       

       “뭐냐! 무어냐…!”

       

       절벽 아래로 돌무더기가 데구르르 굴러온다. 크기가 큰 건 집채만 했다.

       

       “으아아악!”

       “크르르르!”

       

       금안족과 수인족, 사람과 마수가 뒤섞여 비명을 토해낸다. 돌덩이가 마왕군 병사들의 머리와 척추, 다리를 짓누르고 지나갔다.

       

       요르문간드는 아가리를 떡 벌리며 빠르게 날갯짓했다.

       

       “뛰어라! 빨리!”

       

       가장 가까이에 있는 마수 세 마리를 둘러메고 최고 속도로 날아올랐다.

       

       ‘이건…….’

       

       땅과 흙의 정령왕, 노움의 기운이 느껴진다. 

       

       아니나 다를까. 벼랑 위로 날아오르자 노움의 풍채가 떡하니 보였다. 그는 투석부대와 지계정령을 이끌고 있었다.

       

       요르문간드를 발견한 노움이 삿대질하며 소리쳤다.

       

       “민천이 저기 있다! 잡아라!”

       

       요르문간드는 깜짝 놀랐다. 하마터면 업어낸 마수 하나를 도로 땅에 떨어뜨릴 뻔했다.

       

       “생사는 묻지 않겠다! 어떻게 해서든 떨어뜨려 잡아야 한다!”

       

       하늘 위로 육중한 돌덩이가 여럿 날아왔다. 이번에 들려오는 음색은 노움의 목소리와는 사뭇 달랐다.

       

       펙튼 장군의 목소리였다.

       

       “저, 저 용가리 새끼! 어딜 튀느냐!”

       

       펙튼은 노움을 보조하여 요르문간드를 급습했다. 그가 고함을 한번 지를 때마다 마왕군의 사기가 서서히 깎였다.

       

       그 와중에도 요르문간드는 정신을 차리고 부리나케 도망쳤다. 동료를 셋이나 짊어지고 있다 보니 방향 전환이 힘들었다. 

       

       퍼억!

       

       “크윽……!”

       

       왼쪽 날개에 마력이 담긴 돌창이 꽂힌다. 요르문간드는 신음하며 비틀거렸다.

       

       석기시대에나 썼을 법한 투박한 무기였다. 하지만 정령왕의 마법이 걸려있었다.

       

       반사적으로 이를 악물었다. 혀에서 쇠맛이 났다. 

       

       나이를 하도 먹어서 그런가, 몸이 예전만 하지 않았다. 마수들도 무게가 있었다.

       

       “각하, 절 버리고 먼저 탈출하십시오!”

       “저희는 군에 없어도 됩니다. 하지만 각하는 진지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제발 자기를 버려달라고 독촉하는 부하들.

       

       “헛소리!”

       

       요르문간드가 소리치며 날개에 박힌 돌창을 뽑아냈다. 구멍이 난 곳 사이로 스파크가 튀었다. 정신이 아찔해지는 기분이었다.

       

       ‘1천년 만에 유효타를 먹었군….’

       

       상처. 아픔. 저릿함.

       

       오랜만이라 그런지 생경한 감각이었다.

       

       ‘이 정도로 징징거릴 체면은 아니다.’

       

       요르문간드는 날개에 힘을 보탰다. 등줄기가 끊어질 것만 같았다. 기립근이 쭈뼛 세워지며 중추신경을 톡톡 자극한다.

       

       그럴수록 미친 듯이 도망쳤다.

       

       그리고 기적이 벌어졌다.

       

       돌 하나 안 맞고 노움의 부대에서 탈출한 것이다.

       

       “이, 이 정도면 되겠지…….”

       

       요르문간드는 적당한 터를 찾아 그곳에 내렸다. 창에 맞은 날개가 욱신거렸다. 그녀는 입고 있는 사제복을 찢어 대충 응급처치했다.

       

       “여, 역시 굉장하십니다.”

       

       지세를 살피고 있자니 부하들이 찬탄하며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칭찬은 됐노라. 그보다 말이네…. 이곳까지 따라온 부하가 얼마나 되는가?”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 1천 명이 조금 넘습니다.”

       “일, 일천?”

       

       눈앞이 아찔해지는 기분이었다.

       

       “전력의 8할을 잃었단 말인가!”

       

       정신이 아득해졌다.

       

       요르문간드는 손에 얼굴을 묻으며 흐느꼈다.

       

       “금쪽같던 동지들! 신세계를 보지 못하고 헛되게 눈만 감았구나…! 이게 다 내가 모자란 탓이다…!”

       

       이런 민천의 모습은 처음 본다.

       

       도리어 부하들이 당황하며 그녀를 말렸다.

       

       “진정하시지요. 지금은 일단 도망치는 것부터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그, 그래. 그렇지. 부관의 말이 옳다.”

       

       요르문간드는 겨우 심호흡했다.

       

       일단 1천이라도 살려서 돌려보내는 게 우선이었다.

       

       마왕군은 다시 한번 주변 지형을 훑었다.

       

       “여기가 어디인지 알겠느냐?”

       “협곡이로군요. 양쪽 벼랑의 높이가 족히 수십 미터는 되는 듯합니다. 정확한 지명은 모르겠습니다.”

       

       적적한 기운이 감도는 장소였다. 협곡의 폭은 좁지 않았다. 1천 명이 대열을 맞추어 행군하기엔 괜찮은 장소였다.

       

       단 하나, 매복만 없다면 말이다.

       

       이번에는 더더욱 주의에 주의를 기울였다. 피트 기관으로 반경 수백 미터를 점검하고, 척후를 보내 벼랑 위에 복병이 있나 없나 살피게 했다.

       

       “근처에 개울이 하나 흐르는 것 말고는 아무런 특이사항이 없습니다. 또한 복병은 없는 것 같습니다.”

       “여도 그리 판단하던 참이었다.”

       

       그럼 그렇지. 있을 리가 없었다.

       

       협곡 자체가 워낙 험준해서 복병을 배치하다가 사람이 여럿 죽을 판이었다.

       

       게다가 마왕군은 본래 이곳을 지날 계획이 없었다. 후퇴하는 사람도 자기들이 후퇴할 경로를 모르는데, 상대편이 어떻게 알고 매복한단 말인가?

       

       “가자.”

       

       요르문간드는 옅게 코웃음을 치며 몸을 일으켰다.

       

       협곡에 들어서고 나서도 신중했다. 요르문간드는 계속 위쪽을 올려다보았다. 쥐새끼 한 마리 안 보였다.

       

       ‘정말로 매복이 없군. 그래,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우리 경로를 예측할 리가 없지. 회귀라도 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야.’

       

       요르문간드가 시선을 거두었다. 고개가 뻣뻣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궤주하는 자들의 표정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추레했다.

       

       ‘기분을 띄워줄 필요가 있겠군.’

       

       마침 협곡도 절반 정도 지났겠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린 요르문간드가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지금입니다!”

       

       쐐애액!

       

       협곡 양쪽에서 얼음의 창이 부닥쳤다.

       

       “……!”

       

       이젠 뭐냐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

       

       “크아아악!”

       

       하늘에선 창, 바닥에선 고드름이 올라왔다. 고드름의 끝부분은 절삭기의 날보다도 날카로웠다.

       

       단단한 마수들의 장갑이 무차별하게 뚫려 나갔다. 요르문간드도 예외는 아니었다. 팔이며 다리며, 날개는 처칠한 부분의 반대쪽을 맞았다.

       

       “……허억.”

       

       머리가 아찔하다. 모든 감각이 흐릿하다. 심장에 해당하는 기관이 쿵쿵 뛰었다.

       

       여기저기서 듣고 싶지 않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젠 동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아니, 알고 싶지도 않았다.

       

       “고룡 요르문간드.”

       

       온후한 목소리에, 그렇지 못한 어조.

       

       물과 얼음의 정령왕 시큐엘. 그녀가 빙결로 다듬어진 베틀을 다루며 벼랑 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용족으로서 중립을 지키지 못하고 끝내 고명함을 잃었더랬죠. 여신님께서 창연해 하실 일입니다.”

       “저, 저것이.”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숨이 턱, 하고 막혀왔다.

       

       다행히 마력초 한 개비가 남아있다. 요르문간드는 고개를 내리깔았다. 손가락을 부싯돌 삼아 첨단에 불씨를 옮겼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당신 같은 분이 왜 마왕의 곁에 있는 거죠? 혼자서도 그의 군세에 맞설 수 있다고 들었는데…….”

       “…그거야, 전성기 때의 이야기지.”

       

       잔재주를 써서 담배를 뒤로 숨겼다. 때마침 공격이 멈추었다.

       

       요르문간드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금안을 위한 세상을, 여는 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에게 머리를 숙였지. 용족으로서의 자존심? 대의 앞에서는 알량한 것이야.”

       “그 세상의 끝이 파멸밖에 없다는 걸 모르시나요?”

       “……알게 무어냐.”

        

       요르문간드의 손이 자신의 눈을 가리킨다.

       

       “대전쟁에 참여하여 패배했다는 이유만으로 여신의 저주를 받았다. 이제 이 눈은 고치려고 해도 고칠 수 없게 되었어….”

       “…….”

       “신세계를 보고 싶다는 소망이 잘못되었나? 그래, 잘못되었겠지. 여신 눈에는. 그래서 여가 빛을 잃은 것 아니겠나?”

       

       시큐엘이 말을 멈추었다. 그녀가 조용히 손을 들어 올렸다가, 다시 내렸다.

       

       공격 신호.

       

       요르문간드는 마력을 머금고 진창이 된 몸으로 협곡을 내달렸다.

       

       상체를 숙이고 무릎을 굽혔다. 추진력에 각력을 더하여 나아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진흙을 박차고 위로 튀어 올랐다.

       

       “──!!”

       

       엉망이 된 날개를 퍼덕이며 최대한 몸을 공중에 띄운다. 수십 미터 높이가 되는 거리를 명멸하듯 도약한다.

       

       다리는 접었다. 허리를 비틀었다. 어깨뼈는 탈구될 정도로 뒤로 뺐다. 

       

       일점 타격을 위한 준비 자세였다.

       

       “이, 이런…!”

       

       시큐엘의 눈동자가 화등잔처럼 커졌다. 설마 이런 몸으로 수십 미터 벼랑을 단번에 올라올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생각할 틈도, 피할 틈도 없었다. 요르문간드의 신형이 시큐엘의 코앞으로 다가왔다.

       

       “가증스러운 정령년아, 이거나 처먹거라─!!”

       

       [삼중항(三重項) ─ 초식(初式)]

       

       마법을 사용하지 못했던 금안족의 한을 담은 비기.

       

       [구안와사(口眼喎斜)]

       

       몸을 어뢰처럼 내리꽂았다. 어찌나 빨랐는지 굉음이 터지며 충격파가 생겼다. 

       

       “…앗!”

       

       그 속도는 정령왕의 심안으로도 쫓을 수 없었다.

       

       뻐어어억!!

       

       “수군!”

       “수구우운─!!”

       

       요르문간드의 주먹이 안면으로 향하려나 싶더니, 궤도를 비틀어 명치에 작렬한다. 시큐엘은 토막 난 숨결을 내뱉으며 나동그라졌다.

       

       “수군이시여! 괜찮으십니까…!”

       

       시큐엘은 30미터 가까이 날아갔다. 그마저도 나무에 맞아 튕겨 나온 것이다. 모든 정령이 아연실색하며 그녀에게 날아갔다.

       

       ‘지금이 기회다.’

       

       요르문간드는 남은 병사를 수습하여 협곡을 빠져나왔다.

       

       “…현황, 보고하라.”

       “살아남은 자, 스물여덟입니다.”

       “…….”

       

       야심차게 꾸려낸 습격대가 대부분 사라지고 말았다. 

       

       울 기운도, 화낼 힘도 없었다. 요르문간드는 한숨을 뱉어내며 지친 몸을 이끌었다.

       

       “대체, 왜.”

       

       어쩌다 이런 꼴이 되었는가.

       

       ‘비탈을 넘을 때도, 협곡을 넘었을 때도 똑같았다. 처음 감지했을 때 열원은 없었어. 분명 그곳에는 복병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딱 들어서자마자 매복이 생겼으니.

       

       ‘하늘에서 떨어지기라도 했단 말인가? 아니면 땅에서 솟아올랐던가….’

       

       분명히 5초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복병이 생기다니. 없는 귀신도 곡할 노릇이었다.

       

       고민해봤자 나오는 답은 없었다.

       

       어느덧 어스름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시간에 맞추어 해님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민천은 지친 패잔병을 데리고 산을 마저 넘었다.

       

       돌창에 맞은 날개가 욱신거린다.

       

       빙창에 관통당한 팔뚝이 아릿하다.

       

       밤송이를 삼킨 것처럼 목이 따끔거린다.

       

       “각하, 저쪽에 누군가가 있습니다.”

       “……우군인가?”

       

       힘없이 그리 물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거라.”

       

       동물형 마수는 협곡에서 모두 죽었다. 남은 건 소수의 수인과 금안족뿐.

       

       “만약 적군이라면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 그러고 보니 더는 마력초도 없구나. 이제 여는 한낱 맹인 계집아이에 불과하니….”

       

       금안족은 마력초가 없으면 무력하고, 그나마 남은 수인도 전부 마력 탈진 증세를 보이고 있다.

       

       심지어 이곳도 절벽이었다. 괜히 카우렐리아의 서부 지역을 천험의 요새라고 부르는 게 아니었다.

       

       ‘이번에는 폭도 좁구나.’

       

       외나무다리.

       

       도망칠 곳은 없다.

       

       생살여탈권을 저 앞의 존재들이 쥐고 있는 셈이다.

       

       이윽고 정찰을 보낸 부관이 멋쩍게 돌아왔다.

       

       “우군이더냐?”

       “저, 그…….”

       “됐다.”

       

       요르문간드가 고개를 내저었다.

       

       “우군이라면 바로 달려와서 여의 용태를 살폈겠지. 안다. 어떤 놈인진 몰라도, 운 좋게 여를 쓰러뜨리는 영예를 안게 되는군.”

       

       요르문간드는 부관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걸어갔다. 아까와는 달리 걸음걸이가 평안했다. 남은 부하들이 오열했다.

       

       죽음을 각오한 고대룡이, 마지막으로 피트 기관을 사용해 본다.

       

       열원은 수백 개였다.

       

       가까이 있는 것이 하나, 멀리 있는 것이 나머지. 특히 뒤쪽에 있는 것들은 살의와 패기가 그들먹했다.

       

       반면에.

       

       “……신령님.”

       

       가까이 있는 열원은 어디선가 품어 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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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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