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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4

       어젯밤, 원더스타인이 치료 방법을 제시했을 때, 레이나는 자신이 뭔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닐까 귀를 의심했다.

         

       “제가 유, 유치원생처럼 옷을 입어야 한다고요?”

         

       가면을 쓴 덕에 그녀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원더스타인은 그녀의 귀가 새빨갛게 물든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꾹 참으며 차분한 목소리로 퀘스트의 내용을 설명했다.

         

       “네. 앞서 말했듯이 4살의 그림자를 5살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그만한 미끼를 던져줘야 합니다. 레이나 양의 경우는 그게 ‘유치원 생활’이지요.”

         

       어처구니없게 들리긴 했지만 퀘스트의 내용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아니, 이렇게 퀘스트가 떴다는 것 자체가 그녀의 ‘그림자’가 그 조건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는 증거였다. 단원 퀘스트는 단원의 욕망이나 바람에 반응을 감지해서 나오는 것이었으니까.

         

       “그, 그냥 옷만 입으면 되는 건 아니죠……?”

       “물론이죠. 일단 그걸 입고……밖에 나가서, 또래랑 놀기도 하고, 선생님이랑 수업도 하고, 소풍도 가는 등 여러 가지를 시도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당연히 가면을 벗은 채로 말이죠.”

         

       마지막 문장이 그녀의 수치심을 크게 끌어올렸다. 그녀는 좌우로 고개를 붕붕 저으며 버럭 소리쳤다.

         

       “마, 말도 안 돼요! 아, 아니, 그 말대로 제, 제가 치료된다고 해도……본말전도 아닌가요……? 어린애처럼 구는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들키면 안 되니까 치료하자는 건데…….”

         

       원더스타인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미소를 지으며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보였다. 그것은 손바닥만 한 크기의 빳빳한 종이들이 묶인 수표책 같은 것이었다.

         

       “이것을 사용하면 됩니다.”

         

       레이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어제도 본 적 있었다.

       배역 이름표. 종이에 대상의 이름을 적은 다음 몸에 붙이면 그 대상으로 인식되는 마도구였다.

         

       “이걸로 레이나 양을 사람들에게 5살로 인식시키는 겁니다.”

         

       그녀는 어제 우몬이 사람들 사이로 당당히 섞여 들어가는 것을 봤었다. 그녀는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되물었다.

         

       “하지만……정말 괜찮은 건가요? 중간에 마법이 풀린다든지 하는 일은…….”

       “시간제한은 있죠. 이름표 1장에 12시간의 효력을 유지합니다. 그리고 효력 역시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이 이름표는 사람의 감각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인식을 왜곡시킬 뿐이죠. 즉, 이름표를 붙인 대상과 이름표에 적힌 대상 사이에 모순점이 많이 보일수록 인식 장애가 깨질 확률이 높습니다. 특히 그 대상을 자세히 관찰하거나 그 대상을 평소에 잘 아는 사람이 보면 그 확률이 더 올라가고요. 그러니까 들키지 않기 위해서는 레이나 양이 적극적으로……해당 나이대의 아이처럼 굴어주셔야 합니다.”

         

       그녀는 8살 때부터 대중 앞에 서는 연습을 했다. 지몬은 그녀에게 언제나 냉정한 표정을 짓고, 오만하게 시선을 깔고 걸으며, 차갑고 가라앉은 투로 말하도록 교육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말에 따라 그렇게 10년 동안 살아왔다.

         

       괴물 서커스단에 들어온 이후로도 그녀의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단원들에게는 그나마 부드럽게 말하는 편이었지만, 외부인이 있을 때는 여전히 고고하고 쌀쌀맞은 태도를 고수했다.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곳에서 즐겁게 웃는다거나 밝은 톤으로 떠드는 것은 왠지 모르게 민망했다.

         

       그런데 지금 원더스타인은 요구하는 것을 그 이상이었다.

       어린애 같은 차림을 하고 어린애 같은 행동을 하며 어린애 같은 말투를 쓰라니?

       그녀의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올랐다.

         

       “으으…….”

         

       어차피 가면을 벗는 순간, 그녀의 몸을 지배하는 것은 그림자였다. 그냥 눈 딱 감고 덤비면, 그림자가 알아서 몸을 움직일 것이다.

         

       그러나 레이나는 그것을 남 일처럼 여길 수 없었다. 그녀와 그림자는 기억과 감정을 모두 공유했다. 가면을 벗었을 때의 자신은 굳이 비유하자면 술에 취해서 통제가 안 되는 상태와 비슷했다.

         

       그래서 그녀는 항상 가면을 다시 쓸 때마다 어젯밤의 주사를 다 기억하는 사람처럼 부끄러움에 몸부림쳐야 했다. 벌거벗은 몸으로 단장님에게 찰싹 달라붙어서 어린애처럼 애교를 부리던 일과 그의 손길에 절정으로 치달았던 일을 모두 본인이 직접 한 것처럼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단장님과 둘이서 그러는 것도 부끄러웠는데, 대낮에……길거리에서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앞에서……어린애 흉내를 낸다?

         

       그녀의 심장이 마구 쿵쾅거렸다. 그런 건 도저히 무리였다. 아무리 마도구의 힘이 있다지만, 100% 들킬 것이다.

         

       그렇게 될 바에……그냥 지금처럼 살면 안 되는 걸까? 가면을 벗기 전에 밧줄로 전신을 결박한다거나 목줄을 단단히 매는 식으로 대비만 하면, 그림자는 충분히 통제할 수 있었다.

         

       그녀의 전신이 두려움을 떨려오는 그때, 부드럽고 따뜻한 손길이 그녀의 몸을 감쌌다.

         

       “분명히 잘 될 겁니다. 용기를 내세요, 레이나 양.”

       “단장님…….”

         

       그를 바라보는 레이나는 입술을 달싹거렸다. 원더스타인은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짐작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하면 당장은 편하겠지. 하지만 평생 이렇게 살 수 없다는 걸 알잖니, 우리 딸. 그림자를 계속 묶어두는 건 너 자신에게도 못 할 짓이야.”

       “……아빠.”

         

       그의 말이 맞았다. 강제적인 구속이 계속될수록 그녀의 그림자는 원더스타인을 향한 원망과 증오를 차츰 쌓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림자가 느낀 감정은 페르소나를 쓴 그녀에게도 공유가 됐다. 아마 자신은 그 감정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할 것이다.

         

       “아빠를 믿고 따라와 보겠니?”

       “네.”

         

       레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가면을 쓰고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의 품에 안겨, 그의 미소를 바라보는 일에, 그녀가 얼마나 바보같이 헤실거릴 수 있는지 그에게 들켰을지도 몰랐다.

         

       그것은 자신을 구해준 은인에 대한 감사의 마음에서 나온 것도, 가족 놀이에 어울려 주는 아빠를 향한 딸의 마음에서 나온 것도 아니었다.

         

       ‘당신 참 치사한 사람이에요, 단장님.’

         

       냉정하게 확률과 득실을 따져야 할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가 이런 식으로 다가온다면,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었다.

         

       “아빠 말대로 해볼게요.”

         

       그녀는 그의 가슴에 머리를 기댔다. 그리고 한 손으로 그의 복근을 짚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의 단단한 등 근육을 꼭 쥐었다. 어쩌면 자신은 이 관계를 영원히 누리고 싶었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다음날, 그녀는 사람들 앞에 가면을 벗고 나서게 됐다. 그러나 아무리 용기를 내보려고 해도 그녀는 도저히 얼굴을 들 수 없었다.

         

       보통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어린애들이 입는 옷을 입고, 두 다리를 다 드러낸 채 밝은 대낮에 거리에 서는 것은.

         

       “하아, 하아.”

         

       레이나는 거친 심호흡을 내뱉었다. 그녀가 서 있는 곳은 숙소 근처의 작은 상점가로 그녀가 골목에서 나온 지 불과 1분이 지나지 않았는데 십수 명의 사람이 지나갔다.

         

       그녀의 ‘그림자’도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 서는 것은 처음이었다. 아무리 뻔뻔한 그녀라도 원더스타인과 둘이 있을 때처럼 천방지축처럼 굴지 못했다. 그녀는 자꾸 주변 눈치를 살폈다.

         

       ‘들킬 거야. 들킬 거야. 분명 들킬 거야…….’

         

       사람 한 명, 혹은 두세 명의 무리가 지나칠 때마다 그녀의 머릿속은 새하얗게 변했다. 행여나 그들의 시선이 자신 쪽으로 향할라치면 몸이 딱딱하게 굳어서 미동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나 걱정과 달리 그들은 아무런 내색도 없이 그녀를 지나쳤다.

         

       만약, 그녀가 평소에 입던 옷을 입고 서 있었다면, 그들은 위화감을 느꼈을지도 몰랐다. 그것은 5살짜리가 입기에 지나치게 어른스러운 옷이었으니까.

         

       그러나 지금 그녀는 유치원생 옷을 입고 있었고, 행인들은 5살짜리에 걸맞은 복장을 한 그녀를 보고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5살’과 ‘유치원복’이라는 상식적인 코드만 맞으면 정상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종종 그녀의 큰 키와 성숙한 몸매를 보고 시선이 고정되는 사람도 있었지만, 금방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시선을 뗐다. 감히 어린애를 보고 불건전한 생각을 품었다는 것에 스스로 당황한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금방 의심을 풀고 다시는 같은 발상을 떠올리지 않으려 애쓰며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그녀의 옆에 같은 복장을 한 루엘로가 있는 것도 인지를 왜곡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것은 군복을 입은 장교의 뒤를 따라 사복을 입은 빡빡머리 젊은이가 따라가고 있다면, 그를 군인으로 인식하는 것과 비슷했다. 진짜 어린애인 그녀가 함께함으로써 인식 장애를 강화하는 것이다.

         

       그렇게 몇 분 동안 행인들을 보내고 나자 레이나는 이제 배역 이름표의 효과를 믿을 수 있었다.

         

       “삼손이라고 부르면 돼?”

         

       레이나는 자신과 같은 복장을 한 친구를 보며 해맑게 말을 걸었다. 알맹이는 다른 존재라고 해도 친숙한 루엘로의 얼굴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반가웠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싸늘했다.

         

       “이봐, 넌 지금 5살이지 않나? 나랑 맞먹으려 들면 안 되지. 난 6살이니까.”

       “어, 어어?”

         

       그녀는 평소 그녀가 알던 그 귀여운 막내가 아니었다. 사람을 쏘아보는 눈초리는 사나웠으며, 입에서 나오는 말은 거칠었다. 루엘로의 얼굴이 이렇게 반항적인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을 레이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정 날 부르고 싶으면 언니라고 불러야지.”

       “으, 으응. 어, 언니…….”

         

       레이나는 어딘가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녀의 위세에 눌려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삼손은 그런 그녀를 보며 피식 웃었다. 창조주에게 대강 사정을 듣기는 했으나, 그 고고한 레이나가 정말로 어린애처럼 구는 모습을 보니 믿기지 않았다. 오늘 하루 그녀의 치료에 협력하는 대가로 외출을 허가받은 그였기에, 그는 정말 그녀를 5살짜리 동생처럼 대해주었다.

         

       “착하구나, 레이나는.”

         

       루엘로의 작은 손이 고개를 숙인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순간, 레이나의 전신은 전율했다.

         

       “아…….”

         

       그녀가 느낀 것은 행복감이었다. 가면을 벗고 그림자로서 자유를 누리게 됐지만, 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것은 단장님뿐이었다. 그분 앞에서는 얼마든지 어린애처럼 굴 수 있었지만, 그래도 어차피 그분은 원래 자신보다 연장자였고, 그전부터 아빠 놀이에 어울려 주었기 때문에, 자신이 정말로 어려졌다는 기분이 크게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공공연한 장소에서 6살짜리에게 동생 취급을 받으니 자신이 정말로 4살로 돌아온 것이 체감됐다. 고개를 든 그녀는 아까보다 한결 편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고, 그것은 그녀를 지켜보던 원더스타인조차 혹 자신에게도 이름표의 효과가 미치는 것은 아닐까 의심했을 정도로 진짜 어린애처럼 천진해 보였다.

         

       “헤헷, 언니 좋다. 언니도 레이나랑 나오니까 좋아?”

       “그래. 오랜만의 외출이라 즐겁네.”

         

       루엘로는 차가운 표정을 지은 채 나른한 시선으로 세상을 둘러보며 조소했다. 레이나는 그런 삼손의 모습에 감탄했다.

         

       아무리 그림자라고 하더라도 기억과 판단력이 있는 상황에서 자신보다 한참 어린애를 진짜 언니로 대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한마디로 몰입이 깨지는 것이다. 하지만 삼손의 태도는 그녀가 정말 언니로 여겨도 이상 없을 정도로 충분히 성숙했다.

         

       그녀에게 더 어린애 취급받고 싶은 욕망이 레이나의 마음속에 끓어올랐다.

         

       원더스타인은 자신의 예상대로 삼손이 제 역할을 해주는 것 같아 만족했다.

         

       “자, 그럼 어린이 여러분, 인사도 모두 나누었으니 출발해 볼까요?”

       “네, 아빠!”

         

       레이나가 큰소리로 씩씩하게 외쳤다. 원더스타인은 그런 그녀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레이나, 집에서는 아빠지만, 여기서는 선생님이라 불러야지. 여기는 ‘유치원’이니까.”

         

       유치원! 5살 때 그렇게나 들어가고 싶어 했던 그곳!

       4살의 그림자는 신이 나서 소리쳤다.

         

       “네! 선생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낮잠돌고래 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주변에 웹소설을 쓰고 있다고 말합니다.

    어떤 내용이냐고 물으면 저는 19세기에 괴물 서커스라고 기형인간들을 사고 팔며 전시해서 돈을 받는 게 유행이었는데, 그곳의 단장이 되어 세상으로부터 소외 받는 단원들을 이끌고 함께 세계를 유람하며 공연을 준비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이야기라고 설명합니다…. 정확히 그런 내용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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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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