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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4

        

       일본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설령 자신들의 잘못임을 알아챘더라도, 모든 정황이 그들을 가리킨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냄새가 나는 것에는 뚜껑을 덮어야 하는 법.

         

       일본은 오랜 세월 동안 자신에게 불리한 것에는 눈을 감고 귀를 닫고 살았으며, 앞으로도 그러하리라.

         

       그렇다면 한국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일본이 눈 가리고 아웅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확고한 증거를 찾아내는 것. 그리고 그것을 눈앞에 들이대는 대신 전 세계에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서 해자를 메우는 식으로 일본을 공격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증거를 볼모로 삼아 거래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가장 좋은 것은 세 번째, 주물로 인해 발생한 일일 경우였다.

         

       “일제 강점기와 연관이 되어 있으니 기를 쓰고 회수하려고 할 테고….”

         

       “알려지는 것도 그리 탐탁지 않아 하겠지요. 우민화 정책이 성공해서 제국 시절에 무슨 짓을 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일 테니까요.”

         

       “기가 막히더군요. 외교관에서 근무하는 작자가 자기 나라 역사도 제대로 모르고 있더라니까요? 듣기로는 사학부를 나왔다고 했는데, 거기서도 제대로 된 역사를 가르쳐주지 않는다니 참….”

         

       “뭐 그런 족속들이니 협상이 더 쉬워질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겠지요. 자기들이 가르치는 거랑 다른 내용을 외국, 그것도 자기네들이 그렇게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유럽 애들이 떠들면 얼마나 창피하겠습니까.”

         

       일본은 탈아입구(脱亜入欧)를 내세운 이후 유럽을 동경하고, 아시아를 천하게 여겼다.

       이러한 기조는 정한론(征韓論)의 대두와 조선의 점령, 조선의 식민지화와 내선일체(内鮮一体) 정책을 통한 민족말살정책을 통해 더더욱 심해졌고.

       그리고 중국과 싸워서 이긴 후부터는 이러한 기조가 정점에 다다랐으며, 러시아를 이기고 독일과 동맹을 맺은 시점에서는 자기네들이 유럽에 있는 열강에 뒤지지 않는 거대한 제국이라고 여겼다.

         

       지금은 그 시절부터 몇십 년이나 흘렀지만 이러한 기조는 아직도 남아있어서, 일본은 자신들이 아시아로 분류되고 있기는 하지만 유럽 쪽에 가깝다고 생각하며, 다른 아시아 국가들을 멸시하는 발언을 심심찮게 내뱉고는 했다.

         

       그 대표적인 발언이 바로 자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시아 국가인 대한민국과 중국을 ‘그 아시아 국가’ 같은 표현을 사용해서 부르는 것이었다.

       자신 역시 아시아 국가라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하고 있다면 나오기 힘든 발언이기도 했다.

         

       이러한 일본의 태도는 다른 나라에 분노를 일으키기 충분한 것이었지만….

       지금은 역으로 그들의 목을 위협하는 칼이 될 수도 있었다.

         

       이러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에게 있어 가장 두려운 것은, 동경하는 대상에게 경멸 어린 시선으로 보여지는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게 세 번째 경우면 좋은 거기는 한데, 그게 우리 뜻대로 되겠습니까?”

         

       “그렇지요. 뭐 주물이 발견되고, 증거가 가득 쌓이면 좋은 일이기는 한데…. 아무런 증거가 남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당장 뭐, 제물로 쓴 걸 우리한테 갖다버렸다고 친다면…. 거기 무슨 제물이 있겠습니까?”

         

       “잠깐만요. 제물을 그냥 쓰지는 않았을 거 아닙니까. 뭐 재료가 있고 그럴 거 아닙니까?”

         

       “재료라고 해도….”

         

       하지만 유럽에 일본이 한 짓을 퍼뜨리겠다느니, 미국에 퍼뜨리겠다느니 하는 것은 그저 탁상에서 떠드는 공론에 불과한 것이다.

       실제로 그것을 가능하게 하려면 ‘증거’가 필요했다.

         

       하지만 희망 사항과 현실은 항상 다른 법.

       그들이 원하는 대로 증거가 나오지 않을 가능성도 존재했으며, 그 경우에는 일본을 압박하기 위해서 다른 방법을 사용해야만 했다.

         

       “흐음…. 재료라.”

         

       그리고 고위공무원들이 생각해낸 또 다른 압박을 위한 ‘증거’는 바로 재료였다.

         

       괴물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을 재료 말이다.

         

       주술로 탄생한 것이면 제물이 있고 의식이 있었을 텐데, 어떻게든 거기서 일본의 흔적을 찾아낼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다만 그들은 그 이상은 생각해낼 수가 없었다.

         

       그들이 주술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니고, 주술을 사용할 수도 있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전문가가 아니었다.

         

       고위공무원들이 주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은 ‘입문은 쉬운데 대가가 상상을 초월하는 이능력’, ‘제물과 대가를 바쳐서 힘을 발휘하는 능력’, ‘여러모로 쓸만한데 전문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을 찾기 힘든 능력’ 정도에 그쳤을 뿐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아무리 의혹을 내세운다고 해도, 아무리 의문을 가진다고 해도 제자리걸음일 수밖에 없었다.

         

       “재료 하니까 생각나서 하는 말인데, 지금 이 괴물들이 전국으로 퍼져나가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그렇다면 이 주물이 어떻게 이동했는지를 잘 살펴보면, 어떻게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누군가가 괴물이 어떻게 전국으로 퍼졌는지 의문을 품어도.

         

       “글쎄요. 주술이니까 뭐 어떤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겠습니까?”

         

       “요괴라고 불린 것들이니까…. 사람 홀려서 자기 주물 거기다가 갖다 놓게 만들었을 수도 있고….”

         

       “강을 따라서 갔을 수도 있는 거고, 아니면 뭐 어디 차 같은 곳에 스스로 매달려서 갔을 수도 있겠죠.”

         

       “아니 주물(呪物)에 무슨 발이라도 달렸답니까?”

         

       “거 다른 나라 주술사들 보면 악령이나 악귀 가지고 주물도 만들고, 인형도 걸어 다니게 하고 그러던데 안 될 게 뭡니까?”

         

       그것은 ‘주술인데 어떻게든 됐겠지 뭐.’라는 결론으로 귀결될 뿐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이 할 수 있는 선택지는 단 한 가지.

         

       “박진성 주술사가 그, 나이가 젊기는 해도 거 지식은 풍부해 보입니다. 말한 추측들이 전부 일리가 있어 보여요.”

         

       “아 뭐 인생 경험이야 부족하기야 하겠지만 이능이라는 게 나이만 먹는다고 대단해지는 게 아니잖습니까. 경험에 걸맞지 않게 경지가 높을 수도 있겠지요.”

         

       “다른 이능도 아니고 주술이면 뭐…. 보이는 게 다가 아닐 테니까요.”

         

       “그래요. 한 번 믿고 일을 맡겨봅시다.”

         

       박진성을 믿고 일을 맡겨보는 것뿐이었다.

         

       유일한 선택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로서는 이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여겼다.

         

       젊은 나이이지만 주술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 해박해 보이고, 지금까지 주술 관련 사건에 도움을 주었던 ‘비전문가’와는 달리 현직 ‘주술사’였으며, 이양훈이라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보증까지 하고 있었다.

         

       게다가 생각해보면 젊은 나이라는 것도 크게 흠은 아니었다.

         

       젊고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으니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좋아 보였고, 경험이 적고 사람을 많이 상대해보지 않았을 테니 자신들 입맛대로 다루기도 편할 테니까.

         

       그들이 사용할 수 있는 무기는 많았다.

         

       애국심.

       돈.

       권력.

       명예.

       귀한 주술 재료.

       정보.

       …

       …

       …

         

       고위공무원들은 확신했다.

         

       박진성이라는 주술사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것을 목표로 살아가는지는 알 수 없으나.

       피가 끓는 젊음을 가지고 있는 이상 반드시 정부에게 호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 호감에 얽매인 채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 * *

         

         

       정부는 박진성을 속단하였다.

         

       그가 제 한 몸을 위하여.

       자신의 이득을 위하여 움직인다고 여겼다.

         

       그리고 이러한 정부의 추측은 틀리지는 않았다.

         

       “리세. 어찌 되어가고 있느냐?”

         

       다만 그들의 생각과는 다른 것을 원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진성은 어두컴컴한 최상층에서 핸드폰을 켜놓은 채 영상통화를 하고 있었고, 그 너머에는 무녀복을 입고 있는 여성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여성은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진성을 바라보고 있었으며, 머리 위에는 여우 귀가 쫑긋쫑긋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저 뒤편에서는 커다란 붓 같은 것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는데, 아마 리세가 내놓은 꼬리로 보였다.

         

       리세는.

       일본의 무녀는 박진성을 환영하고 있었다.

         

       [ 신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분위기가 끓고 있습니다. ]

         

       리세는 미소를 지으며 진성의 물음에 답해주었다.

         

       [ 과격한 모습을 보이던 사람들은 이를 기회로 여기고 있으며, 자신의 인맥을 이용해 언론에 온갖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

         

       리세는 그렇게 말하며 태블릿을 들어 화면에 비춰주었다.

         

       『 한국, 마침내 천벌을 받다. 』

       『 한국에 아마테라스오오카미의 저주가 내렸다. 』

       『 익명의 한국인 “이번의 사건은 한국인의 부도덕함 때문에 일어난 재앙…. 마땅히 한국 정부는 자신들의 잘못에 사죄해야 할 것.” 』

       『 스즈키 교수 “이번 일은 한국의 과도한 도시개발정책 때문에 벌어진 일. 자연을 소중히 여기는 일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

         

       그녀가 보여준 태블릿에는 온갖 기사가 올라와 있었다.

       한국을 주제로 하는 온갖 기사들 말이다.

         

       기사들은 하나같이 한국에 재앙이 내린 것을 고소하게 여기고 있었으며, 기사에 달린 댓글들은 한국인들이 제 주제도 모르고 건방지게 행동해서 신께서 노해서 벌을 내린 것이라며 떠들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한국에는 지속해서 재앙이 일어날 것이라는 기사, 한국 땅은 이미 저주받았다는 기사, 한국이 망하게 된다면 상위 1%의 인재만을 이민으로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절대 일본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기사에, 일본은 세계평화에 이바지할 것이나 망한 한국인을 난민으로 받을 생각은 별로 없다는 기사까지….

         

       그야말로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혐오의 축제가 말이다.

         

       “본디 제집에 내리지 않는 재앙은 구경하는 맛이 있는 법. 하물며 눈엣가시로 여기고 있던 집에 재앙이 닥쳤는데 기뻐하지 않을 도리가 있겠느냐.”

         

       [ 네에. 그래서 그런지 지금 다른 의원들도 분위기가 끓고 있다고 해요. ]

         

       리세는 태블릿을 치우고 진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진성은 리세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그래. 잘 되어가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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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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