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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4

     [제국력 100년 1월 1일, 오후 12시 10분. 지브롤터 협곡 최종관문 앞.]

     “…라는 일이 있었습니다.”

     나는 아버지에게 내가 제국에 다녀온 일에 관한 과정을 전부 다 말했다.

     “고생했다.”

     아버지는 가죽장갑을 낀 손으로 내 어깨를 두드렸다.

     평소의 맨손과 달리 검을 잡기 위한 장갑은 그 어느때보다도 무거웠다.

     

     “그리고 앞으로 고생을 더 많이 해야 할 것 같구나. 아직 상황이 정리되지 않은 것도 많은데, 우후죽순으로 계속 상황이 생겨나니.”

     “아버지께서 결정만 내리시면 일사천리로 진행할 수 있습니다.”

     “나의 결정?”

     “예. 앞으로의 모든 결정은 아버지의 선택에 따라 좌우될 겁니다.”

     아버지의 얼굴에 고민이 많아보인다.

     나에게 뭔가를 말하고 싶어하는 눈치지만, 내가 아버지를 빤히 바라보자 아버지는 파르르 눈을 떨다가 그대로 눈을 감았다.

     “나에게 선택을 강요하는구나.”

     “강요가 아니라, 책임입니다. 지브롤터 후작 각하.”

     “너는 언제나 나에게 그런 책임을 요구할 때, 아버지가 아닌 호칭으로 불렀지.”

     아버지는 내 어깨에서 손을 내렸다.

     “제국과 싸우는 길을 선택한다면 어찌 되겠느냐?”

     “수많은 이들이 죽을 것입니다.”

     나는 솔직하게 답했다.

     “이미 세이레네 영지는 뚫렸고, 제국은 비행선을 동원하여 노스트럼 전역을 점령할 것입니다. 단순히 점령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잡초 하나 남기지 않을 대규모 초토화 작전을 펼칠 것입니다.”

     “초토화…?”

     “노스트럼어를 사용하는 모든 자를 죽인다. 노스트럼 왕국의 모든 이들을 죽인다. 말 그대로, 노스트럼의 모든 것을 없애버리려고 하겠죠. 그걸 막아내려고 한다면, 당연히 우리도 저들을 전부 죽일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아래를 가리켰다.

     “이 협곡을 지키며 죽어간 수많은 지브롤터, 그리고 수호자들과 마찬가지로. 카디안 경이 제국 정예병 1만을 죽였던 것처럼, 우리들 모두가 카디안 경이 되어 제국을 상대로 싸워야 할 것입니다.”

     “쉽지 않겠구나.”

     “상대가 그만큼 유능하니까요. 어쩌면….”

     이걸 말하는 게 아버지의 선택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겠지만.

     “피를 흘리며 죽는 지브롤터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말해야 한다.

     “제가 싸우다가 살해당하든, 아니면 동생들이 암살당하든.”

     “그레이.”

     “혹은 어머니가 제국의 그림자에 의해 당하든.”

     “그 지브롤터에는 나 또한 포함되느냐?”

     “어쩌면요.”

     아버지가 죽는다.

     그건 생각하기 쉬운 일이 아니지만,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다.

     “가족의 죽음에 대하여 너무나도 쉽게 말하는구나.”

     “쉽게 말하는 게 아닙니다.”

     “안다. 뭐든지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쉬울 수도 있다는 것을.”

     아버지는 무겁게 고개를 숙였다.

     아래로 찍은 검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며 고뇌에 잠겼다.

     “황제에게 협력하는 길은 어떠하더냐.”

     “가장 쉬운 길이 될 것입니다.”

     “쉽다.”

     “예.”

     매국노의 길.

     이미 내가 걸어봤기에, 누구보다도 더 확실하게 목소리를 높여 말할 수 있는 길이다.

     “지브롤터는 제국의 섭정국이 될 것입니다. 제국의 후작령이 될 것입니다. 다른 가문은 지브롤터에 머리를 조아리게 될 것이며, 우리는 그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게 될 것입니다.”

     “…….”

     “노스트럼 왕가, 노스트럼 왕국이 걱정되시는 모양이겠군요. 그들 중에서도 매국노가 된 이들은 살아남을 것입니다. 물론 그다지 수가 많지 않을 것이며, 이전과 같은 권세는 누리지 못하게 되겠죠.”

     “모르가니아는 어떻게 되는 것이냐.”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가는 법입니다. 카르멘 왕비는 더 이상 왕비라고 할 수 없겠지만, 일어나셔서 기력을 회복하면 변화한 정세에 맞게 재기하시겠죠.”

     “나리아는.”

     아버지가 무거운 목소리로 묻는다.

     “나리아 여왕은 어찌되는 것이냐.”

     “환상과 현실을 혼동하지 마십시오, 아버지.”

     “…….”

     “나리아는 당신의 딸이 아니며, 제 여동생도 아닙니다.”

     나리아는 지브롤터가 아니다.

     “설령 지브롤터였던 적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건 우리의 세계가 아닙니다.”

     “…….”

     “노스트럼의 멸망에 대한 대죄는 모두 나리아가 짊어지게 될 것입니다. 망국의 여왕이 되어 백성들에게 핍박을 받으며,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나리아라는 이름을 드러내지도 못하는 떠돌이가 되겠죠.”

     지브롤터가 나리아를 외면했을 때의 이야기.

     지브롤터는 그 어느 때보다도 물질적 풍요를 누릴 것이며, 멸망한 노스트럼의 난민들에 대해서는 검을 휘두르는 대신 머스킷을 쏘는 것으로 대답하면 된다.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노가 될 뿐입니다.”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어떠한 선택을 내리시든, 저는 아버지의 선택을 따를 것입니다.”

     “너라면 어떤 선택을 내렸을까.”

     “글쎄요. 만일이라는 게 의미가 있습니까?”

     나는 아버지에게 선택을 강요했다.

     

     “저는 답할 수 없습니다. 저는 이미 마음 속으로 하나의 답을 정했기에.”

     아버지는 두 길 중 하나를 정할 수 있지만, 이미 나에게는 처음부터 하나의 길 말고는 다른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답이 나의 선택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일치할 것입니다. 아버지를 존중하며, 아버지의 선택에 맞게 모든 행동을 취할 것입니다.”

     아버지가 어느 길을 걷든, 그 길의 끝에 있는 목적지는 하나 뿐이다.

     “아버지가 어느 길을 걷든, 제 곁에서 손을 잡고 걸어가는 사람이 한 명 있으면 됩니다.”

     황제를 죽인다.

     “아스타시아.”

     

     나의 공주를 위하여.

     아버지는 길을 선택하고 가족을 그 길로 이끌어나가지만, 나는 어떠한 길로 가든 ‘황제의 죽음’이라는 결말에 도달하면 되기에.

     “그러니 결정은 아버지의 몫입니다.”

     “…….”

     “결정은 늦어질 수 없습니다. 지금 당장 정하지 않으면, 모든 게 늦게 되겠죠.”

     “결정을 내리면, 더 이상 번복은 할 수 없겠지.”

     “할 수는 있죠. 간단합니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나리아가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20살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20살에 시간의 끝으로 가서 황금룡에게 기적을 요구하면 될 겁니다.”

     “…….”

     한 번 내린 결정은 되돌릴 수 없지만, 10살이라는 시점으로 되돌아갈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아버지께서 이번 결정에 대해 후회하신다면, 10살로 돌아가시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만일 그렇게 하신다면, 일단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의 목부터 날려버리고 생각을 하시면 되겠죠.”

     “……세인트 지오의 세상에서, 나리아는 내 딸이 아니었지. 너와 누아르, 레타르, 그리고 모두가 다시 내 자식으로 태어날까?”

     “그 또한 저는 모릅니다. 순서가 바뀔 수도 있고, 아예 안 태어날 수도 있고, 전혀 다른 아이가 태어날 수도 있는 거죠.”

     아버지가 잠시 질끈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눈을 뜬다.

     “그레이.”

     “예, 아버지.”

     “네가 고생을 좀 많이 해줘야겠다. 나만큼, 아니 나 이상으로.”

     아버지는 결정을 내렸다.

     “검을 들어라. 그레이. 우리는 노스트럼을 지키기 위함이 아닌,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해 검을 들 것이다.”

     매국노의 길. 

     수호자의 길.

     “제국의 편에 서서 부와 권력을 누리기 위함이 아니다. 500년 역사 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협곡을 지키는 사냥개가 되기 위함이 아니다.”

     그 어느 쪽도 아닌.

     그 어느 쪽이라고도 할 수 있는.

     “지브롤터는 지브롤터만의 길을 걷겠다.”

     제 3의 길.

     “방향은 네게 맡기마.”

     “…제일 어렵고 힘든 일을 걸으려고 하시는 군요.”

     “그 길의 가장 앞에서 폭풍에 맞서는 건 내가 될 것이다. 너는 그 길을 걷기 위해, 모두를 이끌 방법을 짜내면 된다.”

     “검도 휘두르게 하실 거 아닙니까.”

     “그렇지.”

     아버지가 눈을 감으며 피식 웃었다.

     “나는 검을 휘두를테니, 너는 펜도 움직이거라.”

     “펜, 도.”

     “원래 가장 뛰어난 지도자는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하는 법이지. 그레이, 네가 나보다 검을 잘 다루느냐?”

     “…….”

     아버지가 가볍게 검의 손잡이를 손등으로 노크하듯 두드렸다.

     “아니요.”

     “그렇다면 결론이 나왔군.”

     “후작이자 가주로서 내려야 하는 결정은….”

     “네 결정이 곧 나의 결정이다. 방향은 내가 정했으니, 나머지는 너의 몫이다.”

     “…예. 알겠습니다.”

     결정이 났다.

     “명령을.”

     나는 지브롤터의 기사들이 그러하듯, 아버지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회귀 전.

     아마 아카데미에 들어가기 전에, 나는 아버지의 서재에서 이런 상황을 겪었던 적이 있었던 것 같다.

     -네가 아카데미에 가서 협력자들을 만드는 것이다. 여인들의 마음을 훔쳐, 그들이 지브롤터에 협력하게 해라.

     그 때의 아버지는 내게 똑같이 가주의 검을 어깨에 두드리며, 내가 난봉꾼이자 매국을 위한 정치적 중심이 되라고 명령했다.

     “그레이 지브롤터.”

     하지만.

     “검을 들어라.”

     이번은, 아니다.

     “지브롤터를 위하여.”

     “…예.”

     아버지가 검을 거둔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킨 뒤, 가볍게 호흡을 골랐다.

     “협곡에 계시겠습니까, 아니면 제가 협곡에 있을까요?”

     “내가 후작성으로 가는 것보다 네가 후작성으로 가서 일을 처리하는 게 더 유능할 테니, 네게 맡기도록 하마.”

     “클레이돌 후작이 협곡을 향해 공성을 하지도 않을 텐데, 시작부터 너무하시는 거 아닙니까?”

     “나보다 더 많은 적을 상대할 수 있느냐?”

     “더럽고 치사해서 그냥 가겠습니다.”

     어쩔 수 없다.

     나는 매국노 시절에도 그랬지만, 아버지의 명령이 어떠하든 따르지 않는 그런 불효자는 아니니까.

     “그러면 협곡으로 가겠습니다. 병력을 보낼테니, 아버지께서는 최소한의 병력으로 협곡을 지킬 준비를 하십시오.”

     “최소한?”

     “예. 대규모로 인원을 동원할 일이 곧…아니 지금 바로 시작해야 하니까요.”

     나는 협곡의 좌우를 가리켰다.

     “협곡 내부에 있는, 노스트럼 내부에 있는 제국인부터 처리할 것입니다.”

     “…….”

     현재.

     협곡은 개발 중이다.

     그것이 나의 주도로 이루어진 개발이며, 협곡의 좌우로 생각 이상의 수많은 제국인들이 들어와 협곡을 파헤치고 있다.

     “정확히는 포로로 잡는다, 그런 표현이 더 옳겠군요.”

     “이미 그들은….”

     “아니요. 모든 제국인들이 적이 된 건 아닙니다.”

     나는 손가락을 가볍게 비비며 가루를 뿌리는 시늉을 했다.

     “제국의 그림자들은 긴급상황에서도 자기 역할을 하려고 하겠지만, 황금을 캐내고 협곡을 개발하며 황금룡의 유산을 찾으러 온 제국인들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졸지에 적국 한복판에 떨어진 거나 마찬가지거든요.”

     “…….”

     “그리고 중요한 건, 그림자들은 아직 확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브롤터가 매국의 잔을 들지, 아니면 수호의 검을 들지.”

     “…그러고보니, 클레이돌 후작이 말했지. 노스트럼으로 가는 길을 열어달라고.”

     “예. 다행히, 지금 당장은 그림자들이 작정하고 움직이지 못합니다.”

     나는 가볍게 내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자기들이 함부로 지브롤터에 생채기를 냈다가, 그걸로 인해 지브롤터가 제국을 상대로 검을 휘두르기로 결정했다고 하면 그 날로 그 자는 황제가 제일 먼저 죽일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브롤터까지 오는 동안 황제가 결정을 내린 게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황제도 세이레네 백작가를 점령한 단계에서 선택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아마 황제의 마지막 배려일 겁니다. 우리가 지브롤터 내부의 그림자들을 지워낼 시간을 준 것은.”

     “배려인 건가.”

     “최소한의 양심이죠.”

     우리의 선택을.

     “여러모로 혼란을 잠재워야 할 일이 많기는 합니다만, 제일 먼저 가야할 곳이 있겠군요.”

     정확히는 먼저 찾아봐야 할 사람.

     “누아르,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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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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