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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4

   0층이라는 문구가 확실히 짜증나게 만들긴 한 모양이네.

   

   아서는 한 대만 때리고 싶다 그러고. 조이는 굳이 그렇게 해야 했느냐며 투덜거리고. 프레이는 사악하다면서 입술을 삐죽 내밀고.

   

   페이비는. 음. 얘는 별 반응이 없더라.

   

   이상한 일은 아니지. 내가 뭘 하건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게 페이비인데 겨우 던전이 조금 더 길어진 거 가지고 화를 내겠어?

   

   영애님께서 만든 던전을 더 오래 공략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그리 놀랍진 않았을 거야.

   

   이쯤 되면 다들 알겠지만 0층이라는 문구를 집어넣은 건 지극히 의도적인 장치였다.

   

   앞의 네 방을 공략하고 온 거니까 다섯 번째 방이라거나 5층 같은 문구를 사용해도 괜찮은데 굳이 0층이라고 적어둔 이유가 뭐겠어.

   

   당연히 짜증나게 만들기 위한 거지.

   

   여태까지 내가 한 고생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단 생각이 들면 누구라도 열이 받지 않겠어?

   

   이제 그 상태에서 던전을 공략하다 자신들이 해왔던 여러 고민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면 화가 났던 만큼 기쁨을 느끼게 되겠지.

   

   흐흥. 그 풍경을 상상해 보니 절로 웃음이 나오네.

   

   이 두 눈으로 그 순간을 보지 못한다는 게 아쉬울 정도야.

   

   <여아야.>

   

   내가 목표한 바가 이루어졌다는 것에 기뻐하면서 기숙사로 돌아가던 중 할배가 갑자기 날 불렀다.

   

   ‘네?’

   <진심으로 꿀밤을 맞아 줄 생각이었느냐?>

   ‘3왕자님한테 말이죠? 네. 그럴 생각이었는데요.’

   

   어차피 아서 그 녀석이 전력으로 후려치더라도 그리 아프지 않을 것 같았으니까.

   

   감상을 듣는 대가로 그 정도쯤이야 내어 줄 수 있지.

   

   정작 판이 깔아주니 아서가 쫄아 버려서 꿀밤을 맞을 일이 사라져 버렸지만.

   

   내가 속이 그리 넓은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 정도로 보복을 할 사람도 아닌데 말야.

   

   아서의 머릿 속 내 이미지는 대체 얼마나 악독한 사람인걸까.

   

   <하아아.>

   

   그 부분이 의아해 고갤 갸웃거렸더니 할배가 답답하다는 티가 팍팍 나는 한숨을 내뱉었다.

   

   <여아야. 그대는 행동하기 전에 그대의 행동이 미칠 여파를 생각하고 움직이는 버릇을 들이거라.>

   ‘…네? 갑자기 무슨 이야기에요?’

   

   내가 뭐 잘못한 게 있나?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그리 문제 될 행동은 안 한 것 같은데?

   

   아 설마 그건가?

   

   ‘할아버지. 아서한테 꿀밤 맞아도 제가 다치진 않을 것 같은데요.’

   

   걔가 강해진 건 사실이지만 그래봐야 나한테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니까.

   

   아서가 오러를 둘러도 신성으로 막아내기만 하면 아무런 피해도 없을 걸?

   

   오히려 아서의 손이 다치지 않을까를 걱정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런 의미가!… 하아. 됐다. 네게 무슨 잘못이 있겠느냐. 굳이 따지자면 이건 베네딕 그 녀석의 잘못일 테니.>

   

   베네딕 잘못이라고요? 뭐가요?

   

   할배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할배는 내 물음에 하나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할아버지! 꼬맹이 취급하는 거 진짜 짜증나거든요?!’

   

   어린 너는 몰라도 된다는 듯한 그 태도 당하는 입장에서는 진짜 거슬린다고요!

   

   뒷말을 감추는 할배의 어투에 짜증이 나서 한 소리를 해보았지만 할배는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꼬맹이니까 꼬맹이 취급을 하지.>

   ‘네? 제 어디가 꼬맹이 같은데요!’

   <그래. 겉이고 속이고 어린 네가 꼬맹이가 아니면 무어냐.>

   

   겉…모습은 분명 꼬맹이 같지만 속은 아니거든요?! 좋게 말할 때 정정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저도 가만있지 않을 거라고요!

   

   <이리 쉽게 발끈하니까 꼬맹이라 부르는 거다. 욘석아.>

   

   *

   

   루시를 도발했던 루엘이 얼빠여우 핥핥 형에 처해져 스스로의 행동을 후회하게 된 다음 날.

   

   아서 일행이 네 번째 방을 돌파한 게 기폭제가 된 듯 선두에 속해 있던 이들이 하나 둘 저마다의 방식으로 네 번째 방을 돌파하기 시작했다.

   

   여러 케이스 중에 제일 황당한 것은 루흐비의 둘째 공자 파티였는데 이들은 벽을 부수려다 힘조절에 실패해 팀킬을 하는 것으로 네 번째 방을 통과했다.

   

   이 모습을 본 던전학 교수 제슬은 이 놈들을 정말 졸업시켜도 되는 것일까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지만 이건 그리 중요한 정보는 아닐 것이다.

   

   네 번째 방을 돌파한 후 지하실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가 던전 1층에 도달한 이들은 이전의 방과 던전이 전혀 다른 형태란 걸 깨닫게 되었다.

   

   앞전의 방은 던전 공략보다는 기믹을 파악하는 실력을 평가했지만 던전은 달랐다.

   

   던전 내부의 길을 파악하는 능력.

   

   그 안에 도사리는 수많은 마물을 상대하는 능력.

   

   거기에 더해 던전 내에 설치되어 있는 수많은 함정에 대처하는 능력까지.

   

   저택의 지하 던전은 기믹 파악 능력에 더해 던전 공략의 능력을 시험하는 장소였던 것이다.

   

   보통이라면 이러한 변화로 인해 이득을 보는 건 고학년의 파티일 수밖에 없었다.

   

   던전 공략 경험이 많은 고학년들은 저학년에 비해 여러 기본기가 뛰어난 게 정상이니 말이다.

   

   허나 이번 기말 시험 같은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다.

   

   학년이 올라감에 따라 급격하게 던전 공략의 난이도가 올랐기에 저학년이고 고학년이고 지랄 맞은 던전을 만들었다며 욕지거리를 내뱉는 판이었으니까.

   

   오죽했으면 던전학 시험에 도전하는 이들 사이에서 학년에 따른 패널티가 너무 심하지 않으냐는 이야기가 돌았겠는가.

   

   이 논의에 박차를 가한 것이 아서 일행의 1층 돌파였다.

   

   그들이 선두 그룹의 여러 쟁쟁한 이름을 제치고 1학년이 기록을 갱신하는 건 이상하지 않으냐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루흐비의 둘째공자나 2왕자 저하도 1층에서 고생하고 있는데 1학년들이 1층을 클리어하다니.”

   “아무리 파티의 면면이 뛰어나다지만 이건.”

   “알른 영애도 1학년이니까. 거기에 이점을 준거겠지.”

   “이래서야 결말은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인가.”

   

   1층을 공략하며 처참한 실패를 겪은 이들을 기점으로 스멀스멀 목소리가 커져나가던 중.

   

   이를 진압한 것은 세실의 파티였다.

   

   무서운 속도로 아서 파티를 추격한 세실 파티가 먼저 2층을 공략하는 것으로 선두를 탈환한 것이다.

   

   “웃기는 군. 네 놈들의 실력이 부족한 걸 던전의 탓으로 돌리지 마라.”

   

   패널티가 있음에도 선두에 서다니 대단하다며 아부하러 온 이들에게 세실이 내뱉은 이 말로 학년 간의 차별이란 단어는 어느 정도 사그라들었다.

   

   더욱이 이 논란이 이어지지 못하게 만든 것은 선두를 달리는 이들이 대부분 2학년이나 3학년이라는 점이었다.

   

   그 안에서 열띈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은 오롯이 아서의 파티와 애버리의 파티 뿐.

   

   이 둘을 제외한 다른 1학년들은 선두는커녕 0층에 도달한 이조차 흔치 않았다.

   

   “그저 저 분들이 뛰어날 뿐인 건가.”

   

   이 의견이 정설로 치부 받으며 학년 차별이란 단어를 내뱉는 이들은 병신 취급을 받게 되었고 그렇게 억지로 만들어진 논란은 완전히 사그라 들었다.

   

   이것 말고도 던전학 시험을 치르는 이들 사이에서 한 가지 사건이 더 생겨났다.

   

   “으아아아! 진짜!”

   “꿀밤 마렵다! 설교 마렵다!”

   “이래서 힌트 보기 싫었던 건데!”

   “루시 알르으으은!”

   

   두 번째로 지급된 힌트를 본 이들이 루시 알른을 향한 복수를 다짐하며 규합되기 시작한 것이다.

   

   던전학 시험의 성적이고 나발이고 힌트를 작성했을 루시 알른에게 본 때를 보여주고 말겠단 목표 아래에 모여든 이들은 기꺼이 서로가 던전을 공략한 방법을 공유하며 던전의 끝을 보기 위해 노력했다.

   

   부정행위로 인해 탈락되는 이들이 생겨났음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는 그 광기는 저들의 분노가 얼마나 거대한 것인지는 알려주는 듯 했다.

   

   그렇게 수많은 이야기가 튀어나오던 기말고사 3일차를 지나 4일차에 도달했을 때 많은 이들이 선두 경쟁에서 탈락했다.

   

   대부분은 체력의 문제였다.

   

   3일 동안 죽어라 던전 공략을 함과 동시에 다른 기말 시험의 준비까지 해야 했던 것이 이들이다.

   

   하루 이틀도 끝날 줄 알았던 고행이 3일이 넘게 이어짐에 따라 탈진 직전까지 몰린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경쟁을 포기해야만 했다.

   

   이 대표격이 바로 애버리의 파티였다.

   

   여러 고학년 사이에서 눈에 띄는 성적을 보이며 1학년의 자존심 중 하나라 평가 받던 이들이었지만 결국 이 파티는 토비 한 사람의 능력에 기대 높은 곳에 올랐을 뿐인 파티다.

   

   다른 선두 그룹의 속도에 따라가기에는 능력도 체력도 부족할 수밖에 없던 이 파티는 결국 애버리 럼리가 도저히 이렇게는 못 살겠다며 휴식을 선언함에 따라 경쟁에서 탈락했다.

   

   이외에도 많은 이들이 각자의 이유에 따라 경쟁을 포기했고 4일차가 끝나갈 무렵엔 최초 공략자가 이 세 파티 중에 나올거라는 게 정설로 여겨졌다.

   

   최초부터 주목 받았던 각 학년 최강의 파티들.

   

   1학년의 아서 파티.

   

   2학년의 세실 파티.

   

   3학년의 쿠르텐 파티.

   

   수많은 이들이 포기하는 와중에도 서로 선두를 가로챘다 빼앗겼다를 반복하며 치열하게 경쟁을 이어나가던 이들은 4일차가 끝나기 전 던전의 4층을 돌파하며 대개의 수험자들에게서 혹시 모른다는 희망을 앗아가 버렸다.

   

   아카데미 기말 시험의 5일차.

   

   기말 시험이 끝날 때까지 3일 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 다가 왔을 때 사람들이 던전학 시험을 대하는 태도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뉘어졌다.

   

   “어차피 끝까지 가지도 못할 거 낙제만 피하자.”

   “다른 시험 치르는 것도 바빠 죽겠는데 언제까지고 시간 낭비할 순 없어.”

   “하. 씨발. 그냥 난 때려칠랜다.”

   

   낙제를 피할 만큼 혹은 적당한 성적을 거둘 만큼만 공략하고 던전을 외면해버린 이들.

   

   “그래도 여태 열심히 했는데 끝은 봐야지.”

   “루시 알른이 비웃게 내버려 둘 순 없어.”

   “몇 층에 도달해야 상위권에 들 수 있으려나.”

   

   여태까지 들인 것이 아까워서건, 루시에게 본 때를 보여주기 위해서건, 높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건 끝까지 던전을 공략하기로 마음먹은 이들.

   

   “루시 알른. 그 개 년. 지가 이 던전 공략해보긴 했을까?”

   “해봤겠냐. 그냥 사람들 괴롭히려고 어렵게 만들고 낄낄대고 있겠지.”

   “난 제작도 안 했을 것 같은데.”

   “하아. 일 년 전까지만 해도 그냥 썅년이었는데.”

   “아. 진짜 좆같아.”

   “그 년 하나 때문에 왜 내가 낙제를 당해야 하는 건데.”

   “힌트도 씨발 지 같은 것만 주고.”

   

   다른 모든 걸 포기하고 던전학 시험에 몰두했음에도 경쟁에서 밀려나버린 패배자들.

   

   기말 시험도 망치고 최초 공략의 보상도 거머쥘 수 없게 된 이들은 이미 어떤 수를 써도 낙제를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도달했다.

   

   누군가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너희들이 멍청한 선택을 한 게 잘못 아니냐는 이야기를 했겠지만 비슷비슷한 멍청이들끼리 뭉친 이들에게선 자정작용이 일어날 수 없었다.

   

   그 뿐일까?

   

   멍청이와 멍청이가 더해진 탓인지 더 멍청한 생각을 하게 된 이들은 브레이크도 잃어버린 채 병신 같은 계획을 짜는 지경에 이르렀다.

   

   “야. 이렇게 된 거 루시 알른 그 년한테 굴욕이나 줄까?”

   “어떻게?”

   “지가 만든 던전이니까 지가 공략해보라고 하는 거야.”

   “…그 년 다른 건 몰라도 던전 공략은 잘 하잖아.”

   “병신아. 지금 선두에 세 파티들이 하루 종일 5층에 도전하고 있는데 못 깨고 있는 거 보면 모르냐? 애초에 깨게 해줄 생각이 없는 거잖아.”

   “하긴. 그 파티에 속한 분들이 어떤 분들인데 아직까지 공략 못 한 거 보면 신기하네.”

   “어쩌면 보상 준비도 안 한 거 아냐?”

   “그럼 진짜 썅년인데?”

   “뭐 어때. 확인만 해보는 거야. 절차만 잘 따르면 우리한테 해 될 것도 없을 걸?”

   “그래. 공략하면 하는 거고. 못 하면 대박인 거지.”

   

   루시 알른이 자신들을 좆 되게 만들었다고 믿는 멍청이들은 자신들의 굳어버린 머리로 루시에게 굴욕을 주기 위한 계획을 짰고.

   

   그 계획은 분명 누구보다도 루시 알른 본인이 가장 환영할 법한 계획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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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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