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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4

       용족의 삶이란 타분한 것이다.

       

       유아기만 해도 백 년에 이르는 종족. 성체로도 수백 년을 살아가며, 어지간한 상해로는 죽지 않는 최강의 종족.

       

       그것이 요르문간드가 속한 종족이었다.

       

       ‘철화의 저주’를 받기 전에도 그녀는 타분한 하루하루를 이어 나갔다.

       

       동굴에서 먹고, 쉬고, 자고. 요르문간드는 소위 말하는 백수였다.

       

       기본 수명이 1천 년을 넘어가다 보니 세상에 미련이 없었다. 의욕도 없었다. 마음속에 품은 큰 뜻도 없었다.

       

       그냥, 적당히 살다가 괜찮은 수컷 찾아서 짝짓기하면 그만 아니던가. 그런 생각을 품었던 시기가 자신에게도 있었다.

       

       그런데 말이다.

       

       “…신령님.”

       

       그런 소리를 듣고 난 뒤부터는, 쉴 날이 없었다.

       

       “신령님이, 정말로, 마왕군에 계셨군요.”

       

       가늘게 진동하는 소리. 눈이 번쩍 뜨였다. 요르문간드는 초점 잃은 눈동자로 정면을 올려다보았다.

       

       희미한 음색이, 차디찬 밤공기를 타고 흘러와 머릿속에 상을 맺었다.

       

       방해석에 투과된 빛처럼 복굴절이 일어났다. 이리저리 꼬이고 편광된 추억의 빛이 요르문간드의 뇌리를 흔들었다.

       

       “이 목소리는….”

       “각하, 각하께서 기르시는 아이입니다.”

       

       부관 서펜트가 속삭였다.

       

       그제야 요르문간드의 입도 어렵사리 떨어졌다.

       

       “……꼬마야.”

       “저는 꼬마가 아니라고 몇 번이고 말했잖아요.”

       

       눈앞에 있는 건 자색 머리칼의 요호족 소녀, 프레이 폰 파스트렌드.

       

       파스트렌드 가문의 정당한 후계자이자, 요르문간드가 이번 대에 그 누구보다도 애지중지 보살폈던 수인족의 희망.

       

       그녀는 지금, 자신이 가르쳐준 방법으로 스태프를 연성하며 울먹였다.

       

       “저는, 믿을 수 없어요. 신령님이 사실은 마수였다는 사실을요.”

       “…….”

       

       척. 스태프가 스태프를 앞으로 세우며 묻는다.

       

       “…대체 왜, 마왕군에 계신 거예요?”

       

       왜냐니.

       

       “그야…….”

       “저는 이런 걸 바라지 않았어요.”

       

       그 말에 입이 다물어진다.

       

       “사실, 신령님이 마수인 건 상관없어요. 그런데 왜 마왕군에 계신 거냐구요. 신령님도 아시잖아요. 전쟁은 나빠요…. 지금도 사람들이 죽고, 먹고 잘 곳이 무너지고, 서로 증오만 커지고 있는데…….”

       

       프레이의 말에서 기교나 함의는 찾아볼 수 없었다. 날것 그대로의 문장이었다. 순수하고 깨끗한 영혼만이 할 수 있는 말.

       

       그것이 가슴에 사무치도록 쓰라렸다. 요르문간드는 양손으로 치맛자락을 꽉 붙잡았다. 어찌나 세게 잡았는지 부우욱, 하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꼬마야.”

       

       겨우 내뱉을 말을 떠올린 요르문간드가 입을 열었다.

       

       “내가 싸우는 건 다 너희를 위해서란다. 여신이 얼마나 잔학무도한지 아느냐?”

       “여기서 왜 갑자기 여신 이야기가 나와요?”

       “우리를 이런 꼴로 만들어 놓고 수수방관했으니까. 잘 생각해 봐라, 꼬마야…….”

       

       요르문간드가 보기에, 여신은 관음에 미친 정신병자였다.

       

       “여신이 세상을 잘 만들었더라면, 우린 차별받지도 않았다. 수인족은 누린내 난다고 욕을 듣지도 않았고, 금안은 마법에 정통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욕을 듣지도 않았어.”

       

       그러니까.

       

       “…이건 성전이란다. 더는 과거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다 뒤엎으려는 거야. 그러니 이해해 주길 바란다…….”

       “이해 못 해요.”

       

       프레이는 고개를 내저었다.

       

       “신령님. 신령님은 이미 졌어요. 동료들도 많이 잃으셨고, 신령님의 몸도 상하셨잖아요. 그러니까…….”

       “투항하라고?”

       “네.”

       

       프레이가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눈길에는 자그마한 희망이 엿보였다.

       

       만약 ‘민천’이 카우렐리아에 항복한다면. 해서 마왕군을 빠져나와 준다면.

       

       그러면 ‘신령님’으로 돌아올 수 있다. 에테르처럼 싸울 일이 사라진다. 프레이는 어머니와도 같은 존재와 싸우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요르문간드는 이를 악물고 주먹을 위로 올렸다.

       

       “…여는 전군을 이끄는 귀중한 몸이다. 여의 뒤로 수십만 군세가 있으니, 쉽게 항복하거나 죽어선 아니 될 것이다.”

       

       조금 전까진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가 기르던 옛 제자라면, 탈출할 구멍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요량으로 공격 자세를 취한 것이다.

       

       “신령님……!”

       

       프레이의 눈동자가 땡그랗게 넓어졌다.

       

       배신이라도 당한 것처럼 소녀의 동공이 확장됐다. 눈매가 파들파들 떨렸다. 귀와 꼬리는 비를 맞은 것처럼 축 늘어졌다.

       

       이윽고 눈에 이슬이 차올랐다.

       

       “신령님, 제발……!”

       “역시 협상은 결렬이군. 이봐 꼬맹이! 넌 이제 빠져있어!”

       

       백부장이 프레이를 뒤로 잡아당겼다.

       

       “아앗, 잠깐만요!”

       “위험하니까 뒤로 가 있으라고!”

       

       프레이는 바둥거리며 저항했다.

       

       힘겨루기는 요호족 꼬맹이의 승리였다. 백부장은 뒤로 넘어지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이, 이 수인족 꼬맹이가 감히…!”

       

       백부장이 벌떡 일어나 손찌검을 하려던 찰나.

       

       “그만하시죠.”

       

       절제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엘프 하나가 두 사람 사이로 끼어들었다.

       

       훤칠한 키에 다부진 몸을 지닌 엘프 청년이었다. 요르문간드도 그의 목소리를 듣고는 팔을 슬쩍 내리며 상황을 살폈다.

       

       “넌 누구냐?”

       “3군단의 버멜 호르데 중위입니다.”

       

       버멜이 어깨에 찍힌 중위 계급장을 보여주며 말했다. 군복에 먼지 하나 묻지 않은 것이 오늘 새로 받은 것 같았다.

       

       “…자네는 어디서 나타났나?”

       “방금 공간이동진으로 옮겨왔습니다.”

       “중위치곤 젊어 보이는군. 꾸며낸 말 아닌가?”

       “사실 부임한 지 몇 시간 되지 않았습니다. 현장 지휘관께서 공로를 인정해 주셨기에 수 계급을 특진했습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백부장은 100명을 통솔하는 자. 즉, 중대장이다. 대위에 해당하는 계급이었다.

       

       반면에 버멜은 승진했다고는 하나 아직 중위였다. 안타깝게도 상대에게 존대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용건은?”

       “적어도 저 아이가 혼자 싸우도록 하게 해 주십시오.”

       

       백부장은 어이가 없어 웃었다. 냉기가 가득한 조소였다.

       

       “애꿏은 꼬맹이 하나 죽일 일 있나?”

       “프레이는 죽지 않을 겁니다.”

       “자네가 뭔데 그걸 장담하나?”

       

       백부장이 버멜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버멜은 작게 한숨을 쉬며 마력을 방출했다. 그러자 그의 등 뒤로 새뜻한 기운이 올라왔다.

       

       은은한 연녹빛의 광휘가 피어오른다. 그 사이로 대정령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

       “정령왕 에어리얼 님의 가호를 받아, 저 소녀가 절대로 죽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인세에 현현한 바람의 정령왕을 본 백부장은 입을 떡 벌렸다. 요르문간드도 정령왕의 기운을 눈치채고는 가드를 높이 올렸다.

       

       ‘과연, 이제야 알겠군.’

       

       피트 기관과 정찰이 있었음에도 매복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저 엘프 청년이 공간도약으로 우릴 농락했겠다.’

       

       화가 치밀었지만 동시에 웃음도 나왔다. 백 명이 넘는 사람을 순간이동하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마법이었기 때문이다.

       

       일개 엘프가 어떻게 바람의 정령왕을 꼬셨지?

       

       이립도 안 된 나이에 어떻게 저런 마법을 익힐 수 있었지?

       

       그리고 왜, 자신을 지금까지 살려두었지?

       

       요르문간드가 느낀 분노는 곧 궁금증으로 바뀌었다. 그녀는 저 버멜이라는 청년에게 호기심을 느끼고 있었다.

       

       “프레이.”

       “어, 응….”

       

       프레이는 훌쩍이며 앞으로 나섰다. 뒤에 선 마도사들이 멀뚱거리며 그것을 쳐다보기만 했다.

       

       백부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번 매복 작전을 3군단과 정령왕이 공동 기획했다는 사실까지만 알았을 뿐이다. 버멜 호르데라는 청년이 에어리얼과 계약하고 있었을 줄은 전혀 몰랐다.

       

       “신령님, 신령님이 이 길을 지나가시겠다면….”

       

       프레이가 스태프 끝을 겨눈다. 그녀의 손이 파르르 흔들리고 있었다.

       

       그 이상의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오냐.”

       

       요르문간드는 망가진 몸을 이끌고 땅을 박찼다. 프레이도 같은 시각에 튀어나갔다.

       

       두 사람은 수십 합을 겨루었다. 마력초가 없었던 요르문간드는 맨손으로 박투를 벌였고, 처음에는 꽤 선전했다.

       

       그러나 프레이를 상대로는 생채기 하나 내지 못했다. 반대로 프레이는 요르문간드에게 연격을 먹이며 끝까지 버텼다.

       

       “…….”

       

       승부가 났다.

       

       자그마한 체구의 소녀가 고명한 용족을 눕히고, 그 위에 앉았다. 그녀의 스태프는 요르문간드를 영거리에서 조준한 채였다.

       

       뚝, 뚝.

       

       민천의 이마 위로 가랑비가 내린다.

       

       “……봐주면 어떡해요.”

       

       요르문간드는 눈동자를 굴렸다. 끝까지 따라온 부하 20여 명이 칙칙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제 다 죽는구나 싶었다.

       

       “…봐주지 않았다.”

       “거짓말.”

       “꼬마야. 내가 거짓을 고하겠느냐?”

       “선의의 거짓말은 가끔 해도 된다고 신령님이 말했잖아요.”

       “마수에게 선의가 어디 있겠느냐.”

       

       요르문간드의 등날개는 반절 이상 사라진 뒤였다. 뿔도 다 깎여서 밑동만 남은 채였다. 또한 얼굴에는 그을음이 그득했다.

       

       “보다시피 몸이 이 지경이다. 마법도 쓸 수 없지. 아… 여신아. 어째서 여를 금안으로 만들어 이런 꼬마에게 지게 했느뇨.”

       

       프레이가 이를 악물었다. 빠드득, 하고 송곳니가 서로 부딪히며 긁히는 소리가 났다.

       

       조준하고 있던 대전차포를 홱 던져버린 프레이. 그녀가 앙증맞은 주먹으로 요르문간드의 가슴팍을 내리쳤다.

       

       “신령님 바보! 멍청이! 에테르! 완전 바보야아아─!!”

       

       팍! 팍! 팍!

       

       “내가! 모를 줄! 알았어요? 어! 신령님 주먹 전부 비껴가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았냐고요!!”

       

       팍팍팍팍팍팍!

       

       “아프다 이것아…! 죽일 거면 빨리 죽이거라!”

       “아프긴 뭐가 아파!! 고폭탄에 맞아도 끄떡 없으면서─!!”

       

       이리 찢기고 저리 찢긴 사제복 위로 폭우가 쏟아졌다. 염분을 함유한 장대비였다. 요르문간드는 그 자리에서 목석처럼 굳었다.

       

       프레이가 앉은 자리에서 폴짝 내려왔다.

       

       “제가 이겼으니까 제 마음대로 해도 되는 거죠?”

       “……그러거라.”

       

       프레이는 요르문간드를 일으켜 세웠다. 때에 맞추어 버멜이 백부장에게 부탁을 가장한 지시를 내렸다.

       

       어느덧 산맥 위로 해가 올라오고 있었다. 해님 사이로 백여 명의 마도사들이 천천히 비켜섰다.

       

       “가세요…….”

       

       프레이가 절벽 너머를 가리키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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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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