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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5

       나는 그리폰에 관한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이것저것 시켜도 내 말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해 원하는 대로 행동한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이 사건을 겪어보니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리폰은 법국의 인간들을 싫어한다.

        

       사실 그냥 싫어하는 수준이 아니라 혐오한다고 해도 나는 전혀 놀라지 않을 거다. 지금 그리폰이 가족이나 친구 없이 혼자인 이유가 바로 법국 때문이었으니까.

        

       게다가 말을 듣지 않으려는 그리폰을 거의 죽기 직전까지 학대하여 약화하고 마법을 걸어 억지로 움직이기까지 했으니까.

        

       역설적으로 그게 그리폰이 나를 따르게 된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했지만.

        

       아무튼, 독수리 눈을 가진 그리폰이 빛이 비친 성검을 알아보지 못했을 리가 없다.

        

       법국 사람 특유의 몸짓이나 검법 같은 것도 알아봤을 거고.

        

       그런 상황에서 이 정도로 살려두었다는 것은 그만큼 자제심을 발휘했다는 거겠지.

        

       “골치 아프게 되었네.”

        

       앨리스는 머리를 부여잡고 말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자지 않고 기다리고 있던 앨리스는, 자기 아버지와 남매가 열차에서 내리는 것을 착잡하게 바라보다가, 그 뒤에 딸려 나오는 법국의 패잔병들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그 뒤에 나오는 시체들을 보고는 할 말을 잃었고.

        

       급하게 나와 앨리스, 레오와 검성을 데리고 알현실로 와 이야기를 들은 후에 보인 반응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 외에도 법국의 스파이가 있을까?”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국은 넓으니까요.”

        

       제국은 바다 너머에도 국토를 가진 나라다. 중앙의 행정력이 아무리 막강하다고 하더라고 구석구석 그 행정력을 직접 행사하는 것은 무리다.

        

       게다가 일단 제국에는 종교의 자유가 있긴 했고.

        

       다만 제국에선 여신교보다 건국 신화가 더 널리 퍼져있었다. 물론 여신교처럼 체계적인 종교라고 볼 수는 없었지만, 사람들의 사고 기저에 깔린 믿음은 그렇게 쉽게 깨지는 것은 아니다.

        

       마치 무신론자에게 포교를 시도하는 것과 같다고 해야 하나. 게다가 제국민 눈에는 언제나 그 건국 신화의 증거가 눈앞에 있었다.

        

       초대 황제 팬그리폰이 결국 여신 아래로 들어갔다는 이야기, 그리고 여신에 대적했다는 이야기는 빠져있더라도, 그 혼돈 속에서 태어나 그리폰 무리의 왕이 되어 강대한 국가를 만들었다는 이야기. 제국은 그 이야기에 너무나도 확실한 증거가 되어주었다.

        

       여신교를 믿으라는 것은 그 자존심에 도전하는 것이다.

        

       물론 종교는 그런 마음조차도 뚫고 들어오는 것이지만, 제국 자체에서도 뒤로 손을 써둔 바가 있었고, 제국 내에 세워지는 교회에도 은근히 압박을 행사해 크지 못하도록 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런 상황 때문에라도 법국은 제국에 더 열심히 스파이를 찔러넣으려고 했던 것인지 모르겠다.

        

       “벨부르만큼 수가 많지는 않을 겁니다.”

        

       “그게 위로가 되지는 않는데.”

        

       앨리스는 한숨을 푹 쉬었다.

        

       “차라리 그대로 둘까? 어차피 법국은 거의 사라진 거나 다름없고, 재건한다고 해도 그들이 믿던 법국은 아니잖아. 힘도 다 잃어버렸으니 차라리 그냥 포기하고 자기 위장 신분대로 적응해 살 생각을 하지 않을까…… 라고 하는 것도 말이 안 되기는 하네, 응.”

        

       앨리스는 혼자 도피하다가, 혼자 이해했다.

        

       그렇지 않다는 증거가 바로 우리가 열차에 태워 데리고 온 그들이었다.

        

       종교적 열망이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확실하다고 할만한 증거나 기적이 없던 내 세상에서도 맹목적인 믿음 하나로 사람을 죽이고 건물을 폭파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이쪽 세계에서는 더하리라. 심지어 그 기적의 증거를 가지고 있다가 잃어버린 이들이라면.

        

       “영주들과 협력하는 수밖에는 없겠죠.”

        

       “…….”

        

       앨리스는 눈을 감고 한숨을 푹 쉬었다.

        

       “그…… 자리 비켜줄까?”

        

       이야기를 듣던 클레어가 조심스럽게 우리 두 사람에게 물었다.

        

       매우 정치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다소 불편했던 모양이다.

        

       그건 레오도 마찬가지였다. 학기 초처럼 얼굴이 파랗게 변하는 일은 없었지만, 여전히 이런 일에 어쩌다가 끼어버리는 것을 바라지는 않는 모양이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앨리스의 대답에 클레어와 레오는 조금 당황했다.

        

       좋은 의미로건, 나쁜 의미로건, 앨리스는 철인이 아니었다. 적어도 전 황제인 아서 팬그리폰처럼 국가를 한 손에 틀어쥐고 다른 한 손에 검을 들어 정적의 목을 쳐버릴 수 있는 성격은 아니라는 것이다.

        

       앨리스가 황제가 되면, 황권의 일부를 포기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절대왕정이 몇 세대 가지 못해 무너지는 것은 능력이 안 되면서 그 권력을 포기하지 않으려 하기에 생기는 일이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고 기술이 발전하다 보면 평민들도 최소한의 교육을 받게 될 것이고, 그러면 그때까지 자신들이 얼마나 잘못된 처지에 있었는지도 알게 될 거다.

        

       그 상황에서 특권을 무조건 틀어쥐고만 있으려고 한다면 우리에게 겨누어지는 것은 칼뿐이다.

        

       차라리 이미지가 좋을 때 그 이미지를 확실하게 가져가는 것이 이치에 맞다.

        

       클레어와 레오는 정통 황제파인 그레이스 가의 아이들. 앨리스는 아마 평생 이 아이들과 인연을 유지하려 애쓸 것이다.

        

       뭐, 단순히 그레이스 가의 아이들이라는 것 외에도 친구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아, 나는 배려해주지 않아도 괜찮다. 이야기가 꽤 재미있구나.”

        

       그리고 클레어와 레오로부터 다소 떨어져 있던 검성은 그렇게 말했다. ……어차피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하지만 벌써 영주들과 교섭을 시작하면, 황제가 되기도 전부터 너무 비굴하게 보일 가능성이 있어.”

        

       황제는 협상에서 절대로 물러나지 않았다. 적이 늘어나는 것을 신경 쓰지 않은 채 막강한 군사력과 황실의 예산을 바탕으로 귀족들의 ‘협력’을 얻어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보낸 이들에게 곧장 유화책을 써버린다고 해서 그들은 절대로 고마워하지 않는다.

        

       만만하게 보겠지.

        

       하지만 그것 외에는 방법이—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복잡해지려는 생각을, 검성이 딱 잘라버렸다.

        

       “어차피 본인들이 기대던 힘도 제대로 쓰지 못하게 되어버린 녀석들이 아니냐.”

        

       ……검성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별로 알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렇다면 할 일은 딱 하나 아니겠느냐?”

        

       검성은 입가에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직접 찾아서 족쳐버리면 그만인 일을.”

        

       뭔가 재미있는 일을 찾았다는 것 같은 흉포한 미소였다.

        

       “……스승님. 스승님께서 상대하시기에는 조금 재미가 없는 상대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상대가 여럿이지 않으냐. 그런데 그 상대들이 전부 나름대로 철저하게 훈련받은 이들이고, 만약 만나게 된다면 나를 죽일 듯이 달려들 것도 확실하다. 우리 쪽에서는 생포하건 죽이건 큰 문제가 없지만, 저쪽에서는 잡히면 오히려 고통스러워질 것을 알고 있으니.”

        

       그건…… 그렇긴 한데.

        

       그런데 오늘 잡았던 놈들은 막상 전력 차가 드러나니까 살려달라고 빌었— 아, 맞다. 상대가 그리폰이었지.

        

       갑자기 몸을 잡혀서 저 높은 곳까지 올라갔다가 그대로 떨어지는 것은 조금…… 끔찍하게 들리긴 했다. 게다가 그러고 안 죽으면 그리폰이 한 번 더 잡아서 던졌다는 증언도 있었고.

        

       “아직은 어디 있는지 알지도 못하고—”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찾을 생각이겠지?”

        

       “…….”

        

       나는 입을 다물었다.

        

       “사람들 앞에 당당하게 나서는 이들은 오늘과 같은 일을 저지르지 못할 거다. 그런 녀석들은 너희들이 나누었던 대화처럼 그냥 자기 신분이 진짜라고 생각하며 살아갈 놈들이니 굳이 건드릴 필요가 없다. 반면에, 법국으로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생각하는 놈들은 반드시 오늘처럼 문제를 일으킬 거다.”

        

       검성은 느긋하게 설명했다.

        

       “지금 법국은 벨부르가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고, 제국민과 벨부르인의 왕래도 그 사건 이후로 제한되는 중이지. 국경 검문도 훨씬 까다로워졌고. 결국 돌아가려면 몰래 가는 수밖에 없는데, 연락책은 죄다 끊어졌을 거다. 제일 위가 사라져버렸으니까. 결국 할 수 있는 일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어떻게든 국경을 넘는 것이다. 하지만 제국은 ‘그냥 걸어서’ 탈출하기에는 ‘너무’ 넓다. 어떤 탈출을 생각해도 고달프겠지.”

        

       거기에 제국군은 정예로 유명했고, 그 사건의 여파가 아직 가시지 않은 지금은 영주들도 꽤 예민해진 상태였다.

        

       영지에서 영지로 넘어가는 것은 미국에서 주에서 주로 넘어가는 것보다 훨씬 까다롭다. 영주들이 황제에게 개기지 못하는 거지, 다른 영주에게까지 벌벌 떨면서 기지는 않는다.

        

       게다가 자기 권력이 멀쩡하려면 당연히 남의 권위도 어느 정도 보호해줘야 하는 귀족의 특성상, 국경을 넘기위해 제국을 가로지르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훨씬 까다로울 거다.

        

       “그러니 너희들이 할 일은 간단하다. 혹시 치안에 문제가 생긴 영지가 있는지 알아보고, 어떻게 도움을 줄지 넌지시 떠보는 거다. 상대가 수락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소수 정예로 가서 얼른 해치우고 돌아오면 되는 일 아니냐?”

        

       “…….”

        

       검성의 그 시원시원한 결론에, 알현실에 있던 모두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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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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