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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5

        

         중간에 낀 십여 명의 용병 무리는 갑자기 뒤에서 튀어나온 새로운 위협의 거인을 경계해야 할지, 아니면 정면에서 몸을 풀다 말고 기다리고 있는 헬레나의 익숙한 주먹 맛을 상기해야 할지 당황한 눈치였다.

         

         그리고 그저 택시에서 먼저 내린 탓에 날파리떼를 일찍 마주치고, 책임감을 가진 채 치우려던 오멘은 본의 아니게 남의 싸움판에 끼어들게 된 걸 깨닫고 눈살을 찌푸렸고.

         

         …물론 타인의 눈에는 그런 섬세한 감정 표현과, 스킨헤드 거한이 개빡친 것처럼 얼굴을 구긴 것에 큰 차이가 없어 보였을 가능성이 더럽게 높았지만!

         

         그 증거로 가게 안에 있던 용병들도 세상에서 제일 구경하기 재밌다는 패싸움의 징조를 감지했는지 모두 술 마시는 척, 흥미진진하게 바깥을 살피느라 바빴다.

         

         하지만 거기에 초를 친 건 의외로 이성적인 생각과 가장 거리가 멀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야야, 오멘! 뭘 오자마자 싸움을 걸고 있어. 우리가 후딱 사람만 찾으러 왔지, 신고식 하러 왔냐? ……이거, 죄송합니다 형님들! 아무래도 저희가 위성 도시에서만 지내다가 이번에 처음 올라온 촌놈들이라!!”

         

         “염병, 이 새끼가 왜 갑자기 답지 않게 웬 촌뜨기 흉내를…!”

         

         갑자기 초장부터 숙이고 들어가려는 호레이쇼의 판단과 처세술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오멘이 확 목소리를 높이려 했지만… 다급한 손짓과 눈짓을 총동원한 만류를 보고 뒷말을 삼켰다.

         

         정말 어지간히도, 그냥 한시라도 빨리 아나스타샤의 소재지를 수소문해서 찾으러 가고 싶은 모양이다. 지레 겁먹고 쪼느니 차라리 시원하게 들이박고 뒈지겠다며, 데어데블이란 닉네임으로 통하는 남자가 저런 모습을 보이다니.

         

         뒤에서 담배를 뻑뻑 피우고 있던 도미노도 이견은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고.

         

         시간과 효율만을 따진다면 옳은 판단이기는 하다.

         한 번만 굽혀주면 추가적으로 시비도 안 생길 것이고, 혹시나 이들이 여기 사장인 슈나이더 맥퀸이라는 남자와 친한 관계일 경우 불거질 문제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으니까.

         

         다만 이제 그 꼴을 삼자 입장에서 바라보는 헬레나에겐 말썽부리기로 유명한 데다가, 직접 사건 현장에서 날뛰는 저거너트 오멘이나 양배추 인간을 치안 유지 출장 도중에 단속하며 벌금 딱지를 뗀 경험도 있으므로 저렇게 자중하는 모습조차 굉장히 생소했다.

         

         저렇게 대화가 통하는 용병이었나 쟤들이?

         혹시 그때의 자신은 공무원 비슷한 경찰 신분이라 일부러 더럽게 비협조적으로 나왔던 건가? …그건 살짝 열 받을지도.

         

         “…크흠! 그래, 뭐. 통행에 방해가 되면 안 되지. 안 되고 말고. 얘들아, 잠깐 길 좀 터드려라! 술집 찾아온 손님이신가 보다!”

         

         아무튼지 간에, 하던 볼일이나마저 보시라며 먼저 자존심을 세워준 전략이 주효했는지 다짜고짜 버러지 소리를 들은 건 착각이나 환청으로 쳐주기로 한 모양이다.

         

         일반적인 길거리 싸움으론 때려죽여도 승산이 없을 것 같은 누군가의 덩치를 존중한 것도 결단에 큰 영향이 있었겠지만은.

         

         주춤주춤 물러난 큐볼네 패거리들.

         거기 사이를 어색하게 웃는 얼굴을 앞세워 비집고 가게 뒷문으로 향하는 자칭 촌뜨기 삼인조.

         

         아슬아슬하지만 그냥 무난하게 서로 더 엮이지 않고 넘어가는 분위기가 만들어졌고, 누가 실수라도 하지 않는 이상 먼저 선을 넘으려는 사람도 없어서 그렇게 데면데면하게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 어느 멍청이가 자기도 모르게 엄청난 말실수를 하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쓸데없이 얘기가 끊겼지만… 하여간 그래서. 헬레나! 내가 무릎 꿇고 빌기라도 하면 그 아샤인지~ 아냐인지 네가 싸고도는 귀여운 아가씨를 만나볼 수 있…… 크겍!?!”

         

         “이 씹 맨들 머리 새끼가 뒤질라고 너 같은 게 왜 우리 누님을 넘봐?!”

         

         빠각!!

         미처 말리거나 어떻게 반응할 틈조차 없이 큐볼의 턱주가리가 돌아간다. 누구의? 호레이쇼의 깔끔한 라이트 훅에 의해.

         

         오늘만 벌써 두 번째. 그래도 나름 닉네임만으로도 통하는 용병답게 괜찮은 신체 개조율을 보유한 걸 자랑해볼 새도 없이 기습당해서 의식 불명에 빠진 횟수만 늘어나는 건 어째 자업자득일까.

         

         습관성 탈구의 조짐이라도 보이는 건지 아까 전보다 훨씬 크게 어긋나고, 더욱 심한 뇌진탕 증상과 함께 그가 눈을 까뒤집고 넘어지자… 대장의 복수라며 부하들이 단체로 달려드는 건 당연한 수순 아니겠나?

         

         “씨발, 이런 미친 새끼가?”

         “이 얼치기 놈들이 돌았나!!”

         

         “데어데블! 이 멍청이가!! 나보고는 조용히 좀 넘어가자더니…!”

         “아니, 너답지 않게 왜 비논리적으로 화를 내고 그러냐~ 저 새끼가 남의 면전에다 시비 걸은 게 내 탓이야? 존나 너무하네!!”

         “저는 얘들이랑은 전혀 모르는 사이…. 아이고 이런, 변명을 들어줄 생각들이 없으신가 보네.”

         

         추락하는 것엔 날개가 있다 했거늘, 날아다니고… 지면에 처박히는 건 어째 다 사람이었다.

         

         휘익! 하는 구경꾼들의 휘파람 소리, 주먹질과 발길질 얼굴과 배로 퍽퍽 잘도 받아내는 타격음, ‘으어아아악….’이니 ‘끄아아앗~’하는 개성 넘치는 메아리와 비명까지.

         

         오멘이야 파리를 잡듯 솥뚜껑 같은 손바닥을 적당히 조절해가며 휘두르고 있었고, 원래도 실전하게 격투하는 걸 마다하지 않는 호레이쇼는 쓸데없는 후유증 같은 게 남아서 깊은 원한이 되지 않도록 정교하게 골라 패는 중이었고.

         

         정말 마지못해 휘말려 들어간 척 힘을 보태고 있는 도미노도 사실 둘과 함께 다닌 경력뿐인지라, 막싸움이라면 이골이 난 프로답게 정확하게 끙끙거리며 물러날 핑계를 각자의 몸에다 새겨주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가볍게. 그렇지만 체면을 걸고 남자의 싸움을 하고 있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터프하게 주먹을 맞아가며 몇 대 교환하는 건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 땀내투성이 난투는… 생각보다 금방 싱겁게 끝났다.

         

         적어도 그들이 느끼기에는 엄청 시답잖은 말싸움이 발단이었던 것도 있고, 굳이 등을 떠밀거나 노력한다 한들 그걸 평가해줄 대장이 절찬리에 기절한 상태였으니, 부하들의 포기가 빠른 것도 그렇게 신기한 일도 아니리라.

         

         “아으… 뼈 쪽을 잘못 맞았어. 존나 얼얼해….”

         “진짜 씨부레, 왤케 무식하게 힘만 센 놈들이 많아? 나도 근밀도부터 싹 뜯어고치던가 해야지 원….”

         

         아무래도 페일 에일 바가 새로 생긴 술집 겸 용병 관련 사업장이다 보니 여태 적당한 경력만 있어도 중견 용병 대접을 받으며 지냈었는데.

         

         어째 헬레나부터 시작해서 새로 오는 인간들이 하나같이 다 심상치 않은 뉴 페이스만 오는 참담한 현실에, 그나마 멀쩡한 큐볼 패거리들은 각자 투덜거리며 패잔병 동료를 업고 물러났다.

         

         안에 있던 손님들은 박수 및 환호와 함께 들어와서 술이나 빨고 잊으라며 창문을 닫았고 말이다.

         

         이제 남은 건… 승리 자체는 꽤 개운하지만, 다시 곱씹어봐도 남의 싸움을 대신해준 것 같아서 미묘한 기분의 하베스트 플래닛 삼인방과 손도 안 대고 철거머리를 치운 누군가뿐.

         

         “으햐… 그래도 옛날 생각나고 재밌지 않았냐? 가끔은 이런 것도 재밌… 왁?! 뭐야 이 쿨한 누님은?”

         “……처음부터 이 떨거지들 건너편에 서있었다. 눈 돌아간 네놈이야 제대로 못 봤겠지만.”

         

         “흐응….”

         

         한 손은 허리춤에 얹고 다른 쪽은 초조하게 늘어트린 헬레나가 어딘가 탐탁치 않은 신음을 흘렸다.

         

         초록머리 데어데블의 발작 버튼이 눌린 시점, 말하는 본새, 그리고 예에에에전에 쓰러진 이 녀석들을 대신 감싸듯 총구 앞으로 나섰던 동생의 모습을 떠올리면… 정확한 사연은 몰라도 여기까지 애써 찾아온 이유는 얼추 알 만하다.

         

         아니, 사실 모르는 척하기가 더 어렵지. 눈치가 아무리 없어도 정황 증거가 이렇게 명확한 판에야.

         

         ……얘는 그런 무서운 일을 자기랑 같이 겪어놓고도 잘도 이렇게 인맥을 여기저기 만들며 다닌다고, 헬레나는 내심 감탄했다.

         

         사람의 본성이라는 게 얼마나 추악할지 모르는데 너무 안일한 게 아닌가 걱정되어서 가슴 쪽이 막 싱숭생숭하기도 했고.

         

         “너희들, 아나스타샤를 찾아왔어? 동명이인일 확률은 한없이 적다고 생각하지만… 예전에 같이 일했던 검은 머리에 약간 작고 좀 많이 귀여운 네트워크 전문가로.”

         

         “아? 뭐야, 우리 구면인가? 아니면 혹시 여기 관계자야 멋진 누님? 제대로 이름도 안 댔는데 어떻게 귀신같이 맞추셨대?”

         

         “저 여자. 목소리가, 왠지 기억이 나는데….”

         

         석연치 않은 것처럼 고개를 갸웃하는 오멘은 잠시 제쳐두고, 헬레나는 한숨을 내쉬며 툭 하고 던진 말로 우선 그들의 주의를 끌었다.

         

         어쩌겠나? 저 멀리서 동생 찾아온 손님이라는데. 마음대로 재단할 권리가 있는 것도 아니니 일단 그녀에게 연락해서 허락을 구하고 잠깐의 길안내 정도는 도맡아서 해줄 수 있는 노릇이다.

         

         게다가 마침 괴상한 에나마 요원 때문에 본의 아니게 급한 용무가 생겼다 핑계까지 대며 일찍 떠났던 참이지 않나?

         

         괜히 헷갈리게 해서 미안하지만 이대로 다시 돌아가서 그들과 아나스타샤의 상담만 참관하고 하룻밤… 아니, 예고했던 대로 자매간의 교분을 다지며 며칠 묵고 가면 된다.

         

         정말 그렇다고만 생각했는데….

         

         “…그럼 기다려봐. 금방 연락만 하고, 어디까지나 본인이 오케이 한다면야 한 번 만나보게 다리 정도는 놔줄 수 있는 사이니까.”

         

         “아니, 농담 없이 진짜로?? 자기 소개도 똑바로 안 한 것 같은데… 우리 혹시 그만큼 유명해졌나?”

         

         호레이쇼의 호들갑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치고.

         

         말을 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거슬거슬한 느낌이 헬레나는 도무지 가시질 않았다.

         머리속에 뿌연 안개, 기묘한 노이즈가 낀 것처럼 자신의 상태를 명확하게 진단하기가 어려웠다.

         

         어차피 아샤는 특별히 팀을 짤 마음도 아직 없다 했고, 무엇보다 전투와 안전 확보를 상정하여 만들어둔 제로도 잔뜩 있는 것 같았으니. 하베스트 플래닛에서 용병 랭킹 순위권을 다투던 데어데블 팀이 찾아와 열심히 구애를 한다 한들 그녀가 수락할 리가 없었다.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따진다면 물론 그렇겠지만… 무른 부분이 분명한 동생에 한해서. 정말, 그럴 리가 없나?

         

         곰곰이 따져보자 이유는 간단했다. 전투 경찰의 일원으로서 같이 사이좋게 근무하던 시절이라면 모를까, 그들은 이미 한차례 아나스타샤와 팀을 짰던 전적이 있는, 경력만 따진다면 자신보다 훨씬 베테랑 선배들.

         

         따라서 또 동생이 규칙에 예외를 두고, 오늘 자신과 나들이를 나갔던 것처럼 같이 동업하게 될 가능성도 있는 경쟁 상대들인 것이다.

         

         거기까지 인정하고 나니, 만약 자신이 없는 장소에서 그런 식으로 일이 풀려버리는 걸 생각하면 용납할 수 없다고 여겨져서 스스로 안내를 자처하게 되었다는 것마저 자연스럽게 알아채게 되었고.

         

         “하.”

         

         그 순간, 헬레나는 뭔가를 깨달았다.

         심장 근처가 욱신거리고 두근거린 건 온전히 아나스타샤에 대한 걱정만으로 그런 게 아니었다는 걸. 세상 누구나 품고 살아가는 검은 점이 조금씩 그 크기를 키워 나가고 있었다는 것을.

         

         누군가를 처음으로 좋아한다는 건 생전 최초로 날붙이나 오토바이 따위가 아닌 살아있는 사람에게 소유욕이라는 갈증을 느낀다는 것과 동일.

         

         한때 친구라 믿었던 앤이 울부짖으며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남기고 간 상흔의 정체, 어쩔 수 없이 인간이라면 가지는 원초적인 죄악 중에 하나.

         

         아, 이게 바로 지저분한 질투라는 거구나.

         

         채앵—!!

         

         “진짜 미안한데. 하베스트 플래닛에서 온 말썽꾸러기 우리 애송이 친구들?”

         

         신호음이 한두 번 채 울리기도 전에 걸고 있던 전화는 아무렇지도 않게 끊어버렸다.

         

         통화를 좀 하겠다는 명목으로 등을 보인 채 뒤돌아 있던 자세에서. 약간이라도 흐느적거리기는커녕 앞에 놓인 게 초합금 차단벽이라 하더라도 일격에 베어버릴 것처럼 뽑아진 칼날이, 곧게 삼인방을 향해 겨누어지며 헬레나의 얼굴도 다시 정면을 향해 고정되었다.

         

         정의감이나 의무감 같은 걸로 타오르는 불길이 아닌 순전한 욕망의 업화가 두 눈에 일렁인다.

         

         가혹하게 평가한다면 그 원동력은 좀 탁해졌을지언정, 거기에 깃든 생기만은 유달리 밝고 선명하게 보는 이를 홀려버릴 듯 빛나고 있었으니.

         

         아까 제 할 말만 내뱉고 홀연히 사라진 기업 끄나풀과의 교전으로 달궈진 몸도 애매한 불완전 연소 상태였겠다.

         

         헬레나의 마지막 기억 속에서 그들 셋은 대규모 작전이 끝나고 구급차에 실려가던 환자 신세. 아나스타샤가 시간을 벌고, 자기가 혹시나 해서 끼어들지 않았다면

         

         그때 예상치 못한 배신을 당했다 쳐도, 동생 옆에 서는 걸 마냥 두고 보기엔 불안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니까… 간단한 시험을 보게 해야겠지?

         

         …설령 시험관이 통과시켜줄 의향이 전혀 없는 합격률 0%의 테스트라 하더라도.

         

         “다시 생각해보니까, 못 미더운 인간들을 쫄래쫄래 데려가기엔 아무래도 내가 면목이 없어서 말이야. 어디 잠깐, 실력들 좀 볼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자아 성찰 완료로, 한층 뜨거워진 헬레나의 재출격??

    다음 연재분으로 현 에피소드 본편은 이제 마지막입니다!
    아무래도 우리 주인공의 분량이 거의 없는 후반부인지라 최대한 빠르게 진행하고 연참하려고 노력했는데도 일자가 많이 지나갔네요. 죄송합니다.

    항상 재밌게 읽어주시고, 바쁘신 와중에도 추천 및 댓글 남겨주고 가셔서 영광입니다. 정말 큰 힘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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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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