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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5

     제국과의 전쟁이 일어날 거라고 상정하지 않았기에, 지브롤터에는 상상 이상으로 많은 수의 그림자가 들어와 있다.

     당장 바르셀로나 총독부만 하더라도, 행정관 중 300명이 제국 출신의 그림자다.

     

     이런 상황에서 제국을 상대로 적대하는 것이 옳은가-라고 묻는다면, 아버지가 그렇게 선택했으니 그런 위험을 감수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할 수밖에.

     ‘이참에 잘 됐어.’

     그림자는 회색이다.

     좀 더 짙은 쪽에 붙을지, 아니면 그림자에서 빠져나와 황금빛으로 빛나는 태양의 아래로 나올지는 본인의 선택이다.

     그래서 나는 가장 먼저 걱정될 사람을 찾아 나섰다.

     누아르.

     어느덧 이제, 17살에 이른 나의 동생.

     아카데미에서 부학생회장으로서 나름 일찍 여러 경험을 쌓고, 내가 제국의 황제를 죽이기 위한 행보를 위해 정치적인 희생양을 강요했던 동생.

     나와 같은 희생은 아니었다.

     그저 지금까지 지브롤터가 그래왔던 것처럼 노스트럼의 수호자로서, 어려서부터 ‘지브롤터는 그래야 한다’라고 보고 배웠던 것처럼 행동하라고 했을 뿐이다.

     그것이 누아르에게는 삶의 양식에 대한 강요가 되었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나는 그게 누아르에게 있어 다른 삶보다도 더 훌륭한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삶으로 이끌어나가기 위해 나는 누아르의 곁에 제국에서 온 화이트들을 붙였다.

     웬즈데이를 필두로 화이트들.

     그들은 ‘제국의 편에 서는 지브롤터’를 위해 일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런 부분에 상관없이 순수한 의미에서 ‘지브롤터’를 위해 일하는 걸까.

     여차하면 벤다.

     “형! 괜찮아?! 다친 곳은….”

     후작성으로 돌아온 나는 바로 누아르를 찾았다.

     “괜찮아. 어머니는?”

     “동생들이랑 같이 방에 있어. 내가 안으로 드나드는 인원을 통제하고 있고.”

     누아르는 어머니의 방의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가.”

     안에 멘테 경이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누아르가 이 방의 입구를 지키고 있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나도 ‘위험하니까 얌전히 닥치고 안으로 들어가라’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잘했다.”

     누아르도 17살이다.

     앞으로 조금만 더 나아간다면, 마스터에 이를 경지.

     

     ‘그런 게 아니더라도 이미 존중받아 마땅한 상급 기사지.’

     나이라거나 동생이라거나 그런 걸 떠나서, 17살에 소드 마스터를 목전에 둔 천재 검사라면 이미 백작에 준하는 직위를 가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어쩌면 다른 이들보다 가장 객관적으로 누아르를 보지 못하는 사람이 나일지도 모르겠다.

     “누아르. 네가 지금 당장 할 일이 있다.”

     “말해. 뭔데?”

     “입구는 내가 지키고 있을테니, 너는 사람들을 모아와.”

     복도를 지키는 메이드나 가솔들은 긴장한 채 우리를 바라보고 있고, 일부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은 이들 또한 나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긴가민가하는가 보네.’

     다행히 그림자들은 본격적으로 움직이지 않았고, 아직

    확실한 명령이 떨어지지 않은 듯 눈치를 보고 있었다.

     “누아르. 화이트들을 모아와. 지금 당장.”

     “…알겠어. 잠시만.”

     누아르는 내 말에 바로 자리를 떠났다.

     원래라면 아카데미 졸업식을 준비해야 하거나 할 때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모든 화이트들은 모두 후작성에 있다.

     “너희는 나를 따라오고, 너희는 보육원에 가서 당장 다른 애들을 불러와. …웬즈데이는 내가 데리러 간다.”

     누아르는 복도에서 함께 서 있던 기사 중 일부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들은 보육원에서부터 누아르를 지키던 이들이었고, 어느새 누아르의 지시에 완벽한 기사가 되어 누아르의 명령에 어떤 의문도 품지 않고 그대로 움직였다.

     ‘쟤들은 누아르 옆에 붙여둬야겠네.’

     일단 눈으로 훑어봐도 전부 문제는 없다.

     방 안에 있는 레타르 때문인지 에단 세자르 또한 누아르의 옆에 있는 만큼, 적어도 누아르가 남자를 상대로 위험에 빠지는 일은 어지간하면 없을 것이다.

     누아르의 약점은 여자니까.

     

     누아르가 자리를 떠난 사이.

     똑똑똑.

     

     “멘테 경, 들리십니까?”

     [예.]

     방 안, 멘테 경이 답했다.

     “누아르를 잠시 데리고 ‘확인’을 해야 하니, 그때까지 잠시 잘 부탁드립니다.”

     “형.”

     “…벌써 다녀왔냐?”

     “멀리 있지 않았으니까. 아, 혹시 안에 이야기할 일이 있었어? 잠깐 기다릴까?”

     

     누아르의 뒤로 화이트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서 있다.

     오직 단 한 명, 웬즈데이만이 눈을 감은 채 파르르 떨며 가장 앞에서 좌우를 훑는다.

     

     저 눈빛.

     저 자세.

     제국 그림자들 특유의 눈빛이며, 많은 노스트럼의 귀족들을 죽인 암살자의 그것이지만-

     ‘다행이네.’

     지난 수년 동안 누아르가 올바른 청년으로 자라는 과정에서 보인 성실함이 빛을 발하는 걸까.

     웬즈데이는 여차하면 칼을 휘두를 기세.

     그 칼이 겨눠지는 방향은 누아르나 내가 아닌, 자기 동료이자 이복 자매인 그림자들.

     ‘살벌하기도 하고.’

     그리고 그런 살벌함은 다른 그림자들에게서도 어느정도 엿보이고 있다.

     “누아르.”

     “응, 형.”

     “따로 확약을 받거나 혈서를 쓰라고 할 것까지도 없겠다.”

     나는 누아르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렸다.

     “…뭐야, 왜 그래? 그렇게 심각한 일이야?”

     “응?”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 건데. 형이 이렇게까지….”

     “이게.”

     나는 누아르의 이마를 향해 가볍게 손을 뻗었으나-

     “어쭈.”

     누아르는 바로 고개를 옆으로 피했고, 내 손가락은 허공을 두드리기만 할 뿐이었다.

     “심각하게 분위기 잡아놓고 뭐 하자는 건데?”

     “여차하면 배신자들을 베어버릴까 심각하게 분위기 잡고 있었는데, 다행히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아서.”

     “뭐?”

     “너희들, 다 따라와.”

     나는 누아르와 화이트들을 데리고 다른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기는….”

     “식당이지.”

     후작성의 식당.

     10년 전. 아버지가 이곳에서 매국하기로 결정하며 잔을 든 날, 이곳에서 몇몇 이들이 죽었다.

     “아버지께서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을 죽이기로 결정하신 날, 이곳에서는 메이드 여럿이 죽었다.”

     화이트들의 표정이 굳는다.

     그와 동시에, 누아르는 눈을 질끈 감으면서도 자신의 허리에 찬 검에 손을 올린다.

     누아르 또한 알고 있다. 짐작하고 있다.

     내가 이곳에 왜 저들을 데리고 왔는지.

     “아버지께서는 매국노도 아닌, 수호자도 아닌, 제3의 길을 선택하셨다.”

     “제 3의 길…?”

     “지브롤터가 오직 지브롤터로 우뚝 설 수 있는 길. 아, 오해는 하지 마. 지브롤터 왕국을 세우겠다거나 하는 건 아니야. 그저 가장 단순하게 생각하자면, ‘전쟁만큼은 안 된다’라고 결정하신 거지.”

     나는 미리 준비해 온 검을 뽑았다.

     “현재, 제국은 노스트럼을 멸망시키려고 하고 있다. 지브롤터는 제국을 상대로 전쟁을 치를 수도 있고, 당연히 내부에 첩자가 있어서는 안 되겠지.”

     나는 식당 바닥에 검을 꽂았다.

     “지금까지 지브롤터를 위해 일한 공로를 생각하여, 떠날 기회를 주마. 10초. 10초를 헤아릴 동안 떠나지 않는다면 제국이 아닌 지브롤터의 그림자가 될 것이며, 제국의 그림자로 살기를 결정한다면 누아르를 봐서라도 얌전히 떠나는 걸 허락하마.”

     “…….”

     검에 손을 올린 누아르의 눈이 떨린다.

     거의 소꿉친구처럼, 혹은 미래를 약속한 연인처럼 지내왔던 이들을 향해 내가 복종 혹은 이별을 강요하고 있는 것에 당황하기 때문.

     동시에 현 상황에서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기에, 누아르는 그저 검만 움켜쥔 채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그레이 도련님께서는 제국의 황제와도 칼을 맞댈 생각이십니까?”

     웬즈데이가 앞으로 나섰다.

     “황제 폐하가 적이 된다고 하더라도 싸우실 생각이십니까?”

     “이미, 한 번 칼질을 하고 왔다.”

     “…네?”

     비장한 각오로 나선 웬즈데이를 비롯한 화이트들이 당황한다.

     “죽일 각오로 검을 휘둘렀는데, 아쉽게 눈앞을 스쳤지.”

     실력이 부족한 건 맞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 것.

     “무력이 부족하지는 않다. 지브롤터에는 아버지가 계시니까.”

     “…그렇다면.”

     웬즈데이가 치마를 가볍게 툭툭 덜고는,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는다.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하십시오.”

     “웨, 웬즈데이!”

     누아르는 당황하고, 웬즈데이는 빤히 나를 바라본다.

     자기 목숨을 내어놓겠다는 제스쳐인 동시에, 뒤에 있는 다른 자매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허벅지 아래로 손을 뻗는다.

     10초가 지난 순간.

     “…….”

     기적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내가 막연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까.

     웬즈데이를 비롯한 화이트 모두가, 누아르를 향해 무릎을 꿇고 있었다.

     “너희들….”

     “아, 그만, 그만. 이렇게까지 노스트럼스러운 행동으로 어필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만두라고.”

     누아르가 뭉클한 듯 눈을 깜빡였고, 나는 바로 손을 한 번 크게 흔들고는 검을 다시 찔러넣었다.

     “그리고 너희들 모두 품에 숨겨놓은 무기 뽑으려는 것도 그만두고.”

     “…….”

     웬즈데이가 무안한 듯 허벅지 안으로부터 손을 빼낸다.

     다른 이들 또한 저마다 자기 무기를 숨겨둔 곳에서 손을 빼내고, 동시에 자매들을 보며 약간 아쉽다는 듯 혀를 차기도 한다.

     “뭐야. 누구 배신이라도 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그런 표정은.”

     “그야,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웬즈데이가 볼을 부풀리며 몸을 일으켰다.

     “일주일이 아니라 매일이 될 좋은 기회였는데.”

     “…….”

     조금, 아니 많이 살벌하기 그지없지만.

     “누아르.”

     “어, 응?”

     “열심히 해라. 어머니의 피를 이어받은 너라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거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나는 어리둥절해하는 누아르의 어깨를 두드렸다.

     “네가 선택한…아니 네가 선택할 길이다.”

     비록 상황은 내가 만들어줬지만, 제국 그림자들이 그 황제가 아닌 누아르 지브롤터를 선택하게 만든 건 지난 시간 동안 누아르가 정말 열심히 반듯한 이로 살아왔기 때문.

     전통적인 지브롤터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런 전통적인 지브롤터 또한 어쩌면 지난 500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프레임이 아닐까.

     “역시, 새로운 시대의 지브롤터에 어울리는 건 너다.”

     “…불안하게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죽으려고?”

     “여차하면 죽기를 각오해야지.”

     당연한 말이지만.

     “남을 죽일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내가 죽지 않기를 바라는 건 불합리한 거 아니겠어.”

     언제나, 나는 죽음을 각오하고 있다.

     * * *

     지브롤터 가문, 그중 지브롤터의 가족 중에서 가장 불안했던 요소에 대한 판단이 정리된 지금.

     이제 나는 나 자신을 향한 결백을 증명해야 한다.

     “아스타시아 폰 테르시안 황녀.”

     나는 안다.

     “제국의 황녀로서, 이번 전쟁에 대해서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아스타시아는 죄가 없다는 것을.

     “예.”

     하지만 다른 이들은 그렇지 않다.

     “저는 약혼을 한 순간부터, 테르시안이 아닌 아스타시아 지브롤터로서 살기로 정했으니까요.”

     내가 누아르의 화이트들을 보고 그 지브롤터를 향한 충성 맹세를 확인했던 것처럼, 다른 이들 또한 아스타시아의 출신에 따른 불신을 해소해야만 한다.

     “좋습니다.”

     그 말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불안감에 죽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아스타시아 황녀는 아무런 죄가 없으니, 기사들은 아스타시아를 향해 불신하지 말라. 이상.”

     “…그걸로 된 건가요?”

     기사들을 향해 명령을 내린 나를 상대로, 오히려 아스타시아가 반문한다.

     “뭔가, 막 좀 더, 엄숙하고 막 그런…?”

     “제가 믿겠다고 하는데, 기사들이 감히 불신할 수 있겠습니까? 책임은 제가 전적으로 질 것입니다.”

     내가 웬즈데이를 비롯한 화이트들을 의심하지 않을 것처럼, 이제 누구도 아스타시아를 의심하지 못할 것이다.

     “아스타시아를 의심하는 자야말로 우리 지브롤터의 내분을 일으키려는 세작. 그자에게는 확실하게 보여주도록 하죠.”

     그런 자가 있다면, 그 누구보다도 가장 먼저 보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왜 제국이 500년 동안 그 야만스럽고 흉악하다고 하는 노스트럼 따위를 정복하지 못했던 건지.”

     소드 마스터가 무엇인지.

     “아스타시아.”

     “네.”

     “세이레네 백작령을 되찾으러 가려고 합니다. 따라오시겠습니까?”

     “…그곳이 전장이라고 하더라도.”

     아스타시아는 자신의 두 손을 앞으로 뻗으며, 수갑을 차는 시늉을 했다.

     “당신의 곁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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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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