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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5

   최후의 방주.

   여태까지 이어져 온 세계를 전부 담고 있는 그곳의 환경은 무척이나 특이하다.

     

   멸종된 생물부터 시작해 진화를 멈춘 생물까지.

   못해도 한 개체 이상은 살아가고 있는 곳이 바로 최후의 방주였기 때문이다.

     

   크라슈는 그런 최후의 방주를 두르고 있는 성벽 앞에 섰다.

   라그렌 가문이 관리하는 최후의 방주에는 멀리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그 힘이 느껴졌다.

     

   최후의 방주 자체는 위험하지 않다.

   그러나 최후의 방주가 세계 침식 안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유지 시키기 위해 품은 세계 침식의 힘은 상상 이상으로 거대했다.

     

   「첩자 쪽은 내가 확인하고 있으마. 다녀오거라.」

     

   크라슈는 시즐리의 말을 곱씹으며 최후의 방주 입구 앞에 섰다.

   그쪽은 어련히 알아서 맡겨 놔도 되겠지.

     

   그러면서 크라슈는 옆을 힐끗 보았다.

   그런 그의 옆에는 가방을 점검하고 있는 하링이 서 있었다.

     

   이번 최후의 방주는 하링과 함께 가기로 하였기 때문이었다.

   독왕만큼은 아니어도 재료 관련 지식은 빠삭한 그녀다.

     

   아무리 크라슈라도 처음 보는 재료를 찾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러니 하링이 길잡이 역할로서 제격이었던 것이다.

     

   영혼 포식 저주에 관해서는 이미 도르마 쪽에 연락을 넣어 놓았다.

   그녀가 저주를 구하여 보내줄 때까지는 시간이 남으니 하링은 기꺼이 크라슈를 따라왔다.

     

   “하링, 맨몸으로 가도 괜찮냐?”

     

   용왕족의 육체로 탈바꿈되고, 이그니스까지 지니게 된 크라슈는 더 이상 세계 침식으로 손해를 입을 수 없다.

   하지만 하링은 그렇지 않으니 묻자 하링이 당당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응, 나도 이제 마스터에 들어섰으니까. 마스터부터는 최후의 방주 안에서도 괜찮아.”

     

   하링의 말대로 그녀는 이제 마스터의 힘을 완전히 제 뜻대로 다루고 있었다.

     

   원래도 창공의 세대에 속할 만큼 뛰어난 재능을 가졌던 하링이다.

   그런 그녀는 크라슈와 만난 이후 오직 훈련에만 전념했던 만큼 비약적인 성장을 이뤘다.

     

   지금이라면 라헬른 아카데미 내에서도 최상위권에 속하는 실력자인 게 바로 하링이었다.

     

   “많이 노력했구나.”

     

   그녀의 노력을 다시금 느낀 크라슈가 미소 짓자 하링이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숙였다.

     

   “크, 라슈의 옆에 있고 싶었으니까.”

     

   살짝 기어가는 목소리로 하링이 대답하자 크라슈의 웃음이 쓰게 바뀌었다.

   크라슈 또한 하링의 마음을 모르지 않는다.

     

   그리고 그 마음 때문에 애써 자신과 거리를 두려 했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크라슈에게는 이제는 아내가 있으니까, 자신의 마음이 민폐가 될까 싶어 나온 행동이었다.

     

   ‘차라리 다른 애들처럼 적극적으로 굴었으면 그러려니 했을 테지만.’

     

   크라슈는 자신의 마음을 애써 삭히는 하링이 계속 눈에 밟혔다.

     

   ‘예전에 나와 겹쳐 보여서인가.’

     

   크라슈는 첫사랑이었던 리리나에게 한 번도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못했었다.

     

   그녀의 신분은 직속 하녀.

   크라슈는 가문에서 버려졌던 저주 받이였다.

     

   자신과 연인이 된다면 리리나에게 무슨 피해가 갈지 몰랐다.

   적어도 앞으로 그녀의 삶이 평탄하지 않을 것임은 크라슈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니 크라슈는 자신이 품었던 마음을 삭였었다.

   그것도 리리나가 죽는 그 날까지도 말이다.

     

   그렇게 마음을 삭였던 자신을 알기 때문인지.

   크라슈는 하링만큼은 차마 다른 사람들처럼 대할 수 없었다.

     

   크라슈가 잠시 자기 뒷머리를 긁적였다.

     

   자기를 좋아하는 여자애한테 예전의 자기 모습을 보고 있다니.

   스스로가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하링.”

     

   크라슈가 부르자 눈을 피하고 있던 하링이 고개를 들었다.

   크라슈는 그녀를 마주 보며 말했다.

     

   “내가 늘 말했잖아. 난 널 믿고 있다고.”

     

   크라슈는 그리 말하며 하링에게 웃음 지었다.

     

   “그 말은 늘 옆에 함께 서줘서 고맙다는 말이야.”

     

   그러니까 옆에 서겠다는 말 하나로 죄책감을 느끼지 말라고.

   크라슈는 그렇게 전하였다.

     

   크라슈의 뜻을 알아서인지 하링의 입에 살포시 웃음이 피어났다.

   다른 이들에게는 그리 자주 웃지 않는 하링이지만, 그녀는 크라슈가 무슨 말만 해도 저렇게 웃곤 했었다.

     

   그 사실이 크라슈에게는 더 마음 약해지게 만들었다.

     

   “응, 나 더 열심히 할게.”

     

   열심히 한다는데 초 칠 필요는 없겠지.

     

   “그래.”

     

   크라슈는 그리 말하고 라그렌 가문의 문지기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러자 그는 고개를 숙이더니 이내 최후의 방주 문을 열어 주었다.

     

   크라슈는 안쪽에서 흘러 들어오는 빛과 함께 최후의 방주 문을 지났다.

   그러고는 최후의 방주 입구 앞에 우두커니 서자 곧이어 평범한 평원이 보였다.

     

   원래 세계에서도 어디든 볼 수 있는 평원.

   아무런 위기감도 들지 않는 평원이었다.

     

   찌릿-

     

   그러나 크라슈는 자신의 코끝을 감도는 세계 침식의 향을 진하게 느꼈다.

   아무리 평범해 보이는 평원이어도 이곳은 금역 중 하나인 세계 침식이었다.

     

   ‘평소보다 세계 침식의 힘이 강한 느낌인데.’

     

   크라슈는 이 느낌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최후의 방주 또한 최흉의 씨앗을 품기 시작했다는 소리기 때문이다.

     

   ‘거인의 숲도 그랬던 시기이니 다른 금역이라고 다르지는 않겠지.’

     

   최후의 방주에서 최흉의 씨앗이 만들어질 때 어떤 영향을 끼쳤더라.

   막간에 이르러서는 세계가 워낙 개판이었는지라 크라슈는 정보를 최대한 곱씹어 봐야 했다.

     

   그러는 사이, 하링 또한 문을 넘어왔다.

     

   쿠궁!

     

   뒤이어 성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은 구협지초야. 바로 안내할게.”

     

   하링은 들어오기 전에 열심히 하겠다는 말을 증명하듯 선두에 서서 성큼성큼 걸어갔다.

   고양이의 당찬 발걸음을 본 듯한 기분에 크라슈는 피식 웃곤 하링의 뒤를 따랐다.

     

   ‘최흉의 씨앗 쪽은 차차 떠올리도록 하고.’

     

   지금은 재료 수집이 우선이다.

     

     

   * * *

     

     

   최후의 방주에 들어온 지 일주일째.

   크라슈와 하링은 처음 목표대로 꾸준하게 재료를 모았다.

     

   그리고 그 결과, 고작 일주일이라는 시간 안에 대부분의 재료를 모을 수 있었다.

   하링은 재료로 가득 찬 가방을 잘 동여매었다.

     

   혹시나를 대비해 재료를 예비용으로 넉넉하게 모았다.

   뭐가 됐든 부족할 일은 없을 터였다.

     

   “이제 뭐가 남았다고 했지?”

   “폐주 버섯, 근방에 있으니까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야.”

     

   재료를 워낙 수월하게 찾아서인지 하링의 얼굴은 무척이나 밝았다.

   크라슈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이 된 것이 기뻤던 탓이다.

     

   “고마워. 하링, 네 덕분이다.”

     

   그러니 크라슈도 적극적으로 하링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응, 히히.”

     

   하링은 조금 쑥스러워졌는지 조금 걸음이 빨라졌다.

   그러니 두꺼운 나무뿌리를 급하게 뛰어내리다가 발을 헛디뎠다.

     

   “하링!”

     

   크라슈가 급히 잡아 주려는 순간 하링의 몸이 한 바퀴 회전함과 함께 바닥에 착 착지했다.

   고양이와도 같은 착지 실력이었다.

   

   

   

   

     

   문제없이 착지한 하링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자신을 붙잡아 주려다 멈칫한 크라슈를 보고는 ‘아’ 하고 소리를 내었다.

     

   크라슈가 받아줄 기회였는데 저 스스로 던졌기 때문이었다.

     

   욕심을 내지 않으려고 해도 이런 쪽은 은근히 욕심을 숨기지 못한 하링이 살짝 침울해졌다.

   그것을 본 크라슈는 어이없이 웃더니 그대로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안 다쳐서 다행이다.”

     

   하긴, 하링 정도 되는 실력자가 발을 헛디뎌 다치는 것도 우스운 이야기긴 했다.

   하링은 크라슈의 쓰다듬에 기쁜 듯 살포시 웃었다.

     

   [ 뭐, 썸이라도 타느냐? ]

     

   그 순간 크림슨가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늘 시비 거는 그녀다웠다.

     

   그것을 본 크라슈는 의아함을 보였다.

   한동안 조용하더니 웬일로 말을 걸어왔기 때문이었다.

     

   “하링, 잠시만.”

   “응.”

     

   하링을 잠시 대기하게 둔 크라슈는 그녀와 조금 떨어진 장소에 섰다.

   그러고는 주머니를 뒤져 시체 쥐를 꺼내 들었다.

     

   “크림슨가든, 한동안 뭐하고 있었기에. 조용히 있었냐.”

     

   에벨아스크도 그렇고, 크림슨가든도 그렇고.

   두 사람은 한동안 계속 침묵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크라슈가 물음을 던지자 크림슨가든 쪽에서 대답이 들어왔다.

     

   [ 익시온 놈들 쪽에 파고들고 있었다. 최근 들어 놈들이 여러 곳에서 판지고 있었으니까. 확장 세력을 펼칠 때가 기회였다. ]

   “찍찍.”

     

   크라슈는 그 말을 듣고, 상황을 이해했다.

   에벨아스크 쪽도 반응을 보이는 걸 보아하니 크림슨가든과 함께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두 사람이 왜 지금까지 이걸 바로 알리지 않았는지도 눈치챘다.

   어차피 파고들 때까지는 크게 달라질 게 없으니 상황을 보고 알리기로 하였다.

     

   “나한테 이걸 알렸다는 건.”

   [ 그래, 익시온 내부로 아는 세계 침식자 한 명을 넣었다. 거래 조건으로 넣은 놈이니 연관성도 잡지 못할 거다. ]

     

   저쪽에 아벨라가 있는 걸 주의해준 거겠지.

     

   크림슨가든의 선택은 믿어도 된다.

   이런 쪽에서는 크림슨가든의 판단이 더 빠르기 때문이다.

     

   [ 시그린 에파니아, 그 여자가 아벨라라는 녀석과 손을 잡았다. ]

     

   크라슈의 얼굴이 굳었다.

   시그린이 아벨라와 손을 잡았다.

     

   “그렇다면 이번 첩자 건은.”

   [ 그래, 익시온과 손을 잡고 벌인 거다. ]

   “……미쳐 버려서 다 던져 버린 줄 알았더니. 기어코, 그쪽까지 손을 댔다 이건가.”

     

   크라슈는 시그린이 정말 나락까지 떨어졌음을 눈치챘다.

     

   ‘하다못해 현상 유지만 했었어도 괜찮았을 텐데.’

     

   자신과 똑같이 회귀했을지도 모르는 저주 받이가 계획한 모든 일을 망치고, 득세하니.

   시그린은 결국 스스로 버티지 못하고 무너진 것이었다.

     

   물론 거기에 크라슈가 꾸준하게 자극한 바도 있었다.

   시그린은 원래도 정신적으로 그렇게 온전하지 못한 이였으니까.

     

   황실이라는 곳에 갇혀 황제가 되지 못한다면 끝이라는 압박감 속에서 자라났던 그녀는.

   이미 오래전부터 마음속 깊은 곳에서 금이 가고 있었다.

     

   ‘아서는 분명 시그린이 제국을 멸망시키고, 그 뒤로도 황제라 칭하며 약탈을 벌였다고 했었어.’

     

   크라슈는 시그린의 제국을 향한 집착을 알고 있다.

   그리고 가질 수 없다면 누구도 가질 수 없게 부숴버리는 그 고약한 심보 또한 알고 있다.

     

   ‘황제는 시즐리와 나 사이에서 나온 자식을 황제로 만들고자 은근히 일을 진행 시키고 있었다.’

     

   당연히 시그린도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이번에 시그린이 넣어놨다는 첩자.’

     

   이건 그녀가 제국을 차지하기 위함이 아니라 제국을 부숴버리기 위함일지도 몰랐다.

   크라슈가 이를 아득 부딪쳤다.

     

   “크림슨가든, 지금 바깥 상황은?”

   [ 제국도 손 놓고 있지는 않다. 라그렌 쪽은 이미 첩자를 특정하는 데 성공했고, 지금 쫓고 있다. 문제는 놈이 지금 도망치고 있는 방향이다. ]

     

   크라슈가 눈을 와락 찌푸렸다.

     

   “설마.”

   [ 최후의 방주 쪽이다. ]

     

   특정 당한 첩자가 최후의 방주로 도망치고 있다.

   그것을 들은 크라슈가 갑자기 번뜩 생각이 들었다.

     

   “……크림슨가든, 제국에 있던 첩자들이 향하는 방향 지금 당장 알아봐 줘. 그리고 시즐리에게도 그걸 전해줘. 그 녀석이라면 황가와도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이 있을 거야.”

   [ ……모두 금역으로 향할 거라 생각하는 거냐? ]

     

   크림슨가든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눈치챘다.

   제국은 수많은 금역을 관리하고 있다.

     

   그리고 세계 침식자들에게는 세계 침식을 폭주시키는 방법이 있다.

     

   왜냐하면 아벨라가 크림슨가든의 세계 침식 폭주 기술을 직접 연구했었으니까.

     

   “썩을, 이 미치광이들이.”

     

   크라슈가 욕지거리와 함께 몸을 돌렸다.

     

   “하링! 상황이 급박해졌어. 빨리 재료 구하고, 바로 입구로 가야 해!”

   “어? 아, 알았어!”

     

   하링이 서두르고자 뛰려는 순간 크라슈가 그녀의 앞에 달려왔다.

     

   “업혀.”

     

   하링이 커다란 눈을 깜빡였다.

   그녀의 눈은 마치, 자기가 무슨 말을 들었는지 이해 못한 표정이었다.

     

   “달릴 테니까 업혀! 지금은 그게 더 빠르니까.”

     

   하링이 달리는 속도는 절대 느린 게 아니지만, 크라슈에게는 엑셀이 있다.

   당연하지만 하링보다는 크라슈가 달리는 것이 훨씬 빨랐다.

     

   그 사실을 알아서인지 잠시 머뭇거렸던 하링도 이내 눈을 질끈 감더니 크라슈의 등에 업혔다.

   하지만 자세가 조금 어정쩡했다.

     

   “꽉 잡아.”

     

   크라슈가 경고해주자 하링이 심호흡하더니 크라슈의 목에 팔을 두르며 제대로 업혔다.

     

   순간 제비꽃 향이 크라슈의 코끝을 간질였다.

   하링의 향기였다.

     

   크라슈는 잡념을 지우고, 바로 바닥을 박차 달렸다.

     

   금역의 폭주.

   익시온이 제국의 멸망을 향한 박차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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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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