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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5

    <315 – 지름길>

     

    “보상 안 봐요?”

     

    싱은 칼집을 집어 들었다.

    티토소가와 달리 워낙 조용히 강의를 듣는 탓에 잊어버리기 쉽지만 싱 또한 브론즈 교수의 안목키우기 강의를 듣는 학생.

    그는 칼집에 칼을 채워 넣고 휘두르거나 칼집에서 칼을 뽑고 휘두르며 변화를 실험했다.

    그리고 유의미한 변화를 감지하였다.

     

    ━━━

    <침묵의 칼집>

    등급 – 레어6급

    설명 – 이사장의 저택 39층에서 60분 이상을 체류하고 층을 돌파한 보상으로 얻은 보상. 이 칼집은 특별한 힘이 깃들어있다.

    효과1 – 칼집에 칼이 머무른 시간에 비례하여 다음 일격의 위력이 상승한다.

    효과2 – 칼집에 칼을 채워 넣고 마법을 사용하지 않은 시간에 비례하여 다음 일격의 속도가 상승한다.

    감정가 – 금화 800매, 80000포인트

    ━━━

     

    그가 직감만으로 감정한 아이템의 효과는 준수하다는 수준을 넘어서 탐이 날 정도로 대단했다.

    하지만 한계도 명백한 아이템이다.

     

    ‘일정수준을 넘어선 충전은 칼을 뽑는 순간의 위력을 견디지 못하고 칼집이 파괴되겠지.’

     

    욕심을 내지 않으면 수차례 일격강화용 보조아이템으로 써먹을 수 있다.

    그러나 사용법을 완전히 달리 한다면 아주 긴 시간에 걸쳐 칼 한 자루의 위력을 끌어올려 1회용 필살검으로 써먹을 수도 있다.

    대신, 어중간한 칼은 출수 시에 동반되는 위력강화를 견디지 못하고 칼의 형상이 먼저 무너질 수 있다.

     

    ‘계륵 같은 칼집이군.’

     

    진가를 발휘하려면 대단한 성능의 칼이 필요하다.

    한 번 잘 써먹어보자고 그런 대단한 칼을 봉인하는 행위는 지속적인 전투력 약화로 이어진다.

    이 칼의 진가를 살리기 위한 조건은 대단히 까다롭다.

     

    아주 오랜 세월에 걸쳐서 칼을 뽑는 것을 억제할 정신력을 지닐 것.

    긴 시간의 인내를 각오할 정도의 강대한 적이나 목표를 지닐 것.

    자잘한 잔챙이들과 일상에서 써먹을 다른 예비용 칼을 지닐 것.

     

    평범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에게는 필요하지 않은 칼집이다.

    그런 인생을 사는 사람에게 주무기 한 자루의 봉인은 상당한 피해를 감수하는 행위다.

    주무기를 봉인하고도 긴 세월을 살아남아 원수의 지척에 도달할 정도라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칼집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의 실력을 갖출지 모른다.

     

    ‘욕심을 부리다가 스스로를 위기에 빠뜨리거나, 욕심에 걸맞은 성장을 이루어 칼집이 필요하지 않게 되는 애물단지 같은 칼집이군.’

     

    딱히 저주받은 장비도 아닌데 자신의 의지로 주무기를 봉인하게 된다는 점에서 더욱 질이 나쁘다.

    악명 높은 재단에서 선뜻 보상으로 내어주는 아이템으로는 꽤나 어울리는 칼집이었다.

     

    “고맙다. 덕분에 살았군.”

    “헤헤. 제가 한 게 뭐가 있다고요. 저야 말 한 마디 건넸을 뿐인데. 싱을 걱정한 건 제가 아니니까 가짜린에게 고마워해야죠!”

    “…”

     

    오크노디의 뒤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싱을 올려다보는 가짜 린.

    여동생의 흉내를 내는 유령에게 싱은 어떤 감정을 품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고맙다.”

     

    유령은 오크노디의 반지 속으로 호다닥 달아났다.

    오크노디의 고깔모자가 킥킥 웃으며 말했다.

     

    “놀래켰네.”

     

    어렵군.

    여동생이라는 건 예나 지금이나.

    다음 층으로 걸음을 옮기려던 싱의 발이 한 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멈추어 섰다.

     

    -오라버니. 저는 오라버니만 곁에 있으면 만족해요.

     

    싱은 손에 든 칼집을 내려다보았다.

    왠지 모르게 오늘은 더 이상 칼을 휘두르고 싶지 않아졌다.

     

    “이후에 특별한 일정이라도 있나?”

    “놀다가 밥 먹고 자기요!”

    “도와주지.”

     

    먼저 층을 올라간 아이린이나 용사, 즈앙 등에게는 뒤처지는 신세가 되었지만 더 이상 초조함이나 열등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만큼은 올라서지 않은 것이 정답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 *

     

     

    생각 철회다.

    오크노디를 따라나선 건 아주 멍청한 짓이었다.

     

    “싱은 어때요? 공략은 역시 히든공략이 맛있죠?”

    “놀다가 밥 먹고 잔다고 하지 않았나?”

    “지금 놀고 있잖아요!”

     

    오크노디의 놀이는 낙차가 심하다.

    숨바꼭질부터 모래성만들기처럼 얌전한 놀이를 할 때도 있지만 가끔 이딴 게 놀이? 싶은 짓도 스스럼없이 저지른다.

     

    ━━━

    이사장의 저택

    B1F – 폐기물의 층

    ━━━

     

    파손되고 파괴된 물질들이 버려지는 층.

    그런 잡동사니가 막무가내로 몰려드는 쓰레기장에서 뛰논다.

    위생은 둘째 치고 위험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기긱. 기기긱.

    관절이 뒤틀린 목각인형이 팔다리를 뒤집으며 바닥을 기어온다.

    후우웅. 후웅.

    천장의 일부에 매달린 트랩이 제멋대로 허공을 활개 치며 회전했다.

    그밖에 온갖 층에서 나온 폐기물들에 휩싸인 이곳에서 오크노디는 달려드는 것들을 쓰러뜨려가며 겁도 없이 잡동사니들을 뒤적거렸다.

     

    “어이. 소매에 더러운 것이 묻는다.”

    “괜찮아요! 집사도 메이드도 있는걸요.”

    “더럽혀도 상관없다는 전제인거냐.”

    “칼도 피를 보기 위해 있잖아요? 옷도 더럽혀지기 위해 있는 거라구요!”

    “그 당당한 주장을 네 집사와 메이드에게도 들려주고 싶군.”

     

    그래서 이 쓰레기장에는 무슨 용건이 있는 걸까.

    더럽고 위험하고 수상한 장소에.

    아이가 호기심으로 놀기에 좋은 장소는 아니다.

    이곳은 아카데미의 여러 시설과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위험한 환경을 조성하여 성장치를 끌어올리기 위한 시설에는 언제나 <교관>들이 대기하고 있다.

    유사시에는 언제라도 개입할 수 있도록.

    이곳은 다르다.

    집사도 메이드도 지하에 내려온 시점에서 감시의 눈이 완전히 끊겼다.

    더럽고 천한 시설이라서가 아니라 출입이 금지될 정도로 위험한 시설이기 때문이다.

     

    “싱은 생각해본 적 있어요? 훈련의 탑은 뭘 위해서 존재하는지.”

    “침입자의 실력을 시험하고 평가하기 위해서겠지.”

    “뭐 때문에요?”

    “재단의 입맛에 맞는 실력자를 길러내려고.”

    “여기, 원래는 재단이 장악한 시설이 아니에요!”

     

    생각이 많아지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재단이 만든 탑이 아니다.

    탑이 먼저 있었고 재단이 나중에 관여하였다.

    역시 이곳은 저택이 아니다.

    이사장과 집사들이 워낙 뻔뻔하고 당당하게 행세하고 있어서 이런 곳에서도 용케 사람이 사는군 싶었지만 전부 눈속임이었다.

     

    “이런 외딴 곳에서 재단이 장악하기 이전부터 존재하는 훈련시설이라… 적어도 근 시일 내에 누군가, 혹은 어떤 조직이 만든 시설은 아니군.”

     

    이런 외진 곳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려 들 정도로 여유가 있는 국가나 조직은 없다.

    지금은 냉전시대.

    당장은 평화가 유지되고 있지만 언제 그 평화가 끝날지 알 수 없으니까.

     

    “여긴 용사가 성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시설이에요!”

    “뭐?”

     

    옛 시대의 유산이리라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과거로 돌아간다고?

    당황하는 그에게 오크노디가 잡동사니를 보여주었다.

     

    “잘 보세요. 여기에 마나석이 박혀있죠?”

     

    부러진 무구에 박힌 마나석 조각.

    그 파편이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줄어들더니 허공에 녹아 사라졌다.

     

    “마나융해현상이에요. 여기 폐기물의 층은 각 층에서 버려진 폐기물들을 융해해서 자원으로 다시 바꾸고 재조립하는 거죠!”

    “겁도 없군. 이 정도 융해력이라면 사람이 지닌 마나도 서서히 줄어들 텐데?”

    “괜찮아요. 저 마나 많으니까!”

     

    니만 괜찮으면 다냐고.

    뭐 나도 마나는 많지만.

    싱은 슬슬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이해되었다.

     

    “마나융해. 아카데미에서도 이와 관련된 언급은 들어본 적이 없다. 이것이 용사육성시대의 고대기술력을 상징하는 증거냐?”

    “넹!”

    “여기까지는 그렇다고 치지. 그래서 네 ‘파파’가 이 시설을 점거한 이유는 뭐지? 너는 이 위험한 지하에서 뭘 얻으려고 하는 것이고?”

    “플레이어가 찾는 일은 하나밖에 없잖아요. 성장의 지름길!”

    “…?”

    “생각해봐요. 재단이 시설을 점거했다면 학생들이 이용하는 것보다 훨씬 높은 층에서도 공략을 하고 있겠죠?”

    “그렇겠지. 조나라는 집사의 강함만 해도 교수클래스에 필적하니까.”

    “그럼 그만한 강자가 쓰러뜨린 층의 시험도구도 박살이 났겠죠?”

     

    싸하다.

    이 대화의 흐름은 아주 위험한 냄새를 풍긴다.

    질문을 한 것을 후회하며 싱이 말을 끊으려고 했지만 오크노디가 볼에 바람을 빵빵하게 채우고 도토리를 잔뜩 머금은 다람쥐 같은 얼굴을 만들었다.

    어쩔 수 없군.

    휘말릴 대로 휘말렸음을 순순히 인정하며 포기하자 오크노디가 다시 방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즉, 폐기물의 층에서 나온 폐기물 중에 고층폐기물을 찾으면 재밌는 트리거가 열려요.”

     

    평범한 목각인형보다 수백 배는 더 위험하게 생겨먹은 마갑.

    주먹으로 통통 두드리면 금속음이 퍼져 나오는 제 키보다 커다란 전신갑옷을 끄집어 올린 오크노디.

    그녀가 갑옷을 들고 당당하게 앞장섰다.

     

    “자, 내려가요!”

    “이 밑에는 또 뭐가 있지?”

    “폐기물을 모았으면 버릴 것은 버리고 재활용할 것은 재활용해야죠?”

     

    ━━━

    이사장의 저택

    B2F – 재활용의 층

    ━━━

     

    수백 개의 거대한 라인을 따라 다양한 설비가 가동하는 시설.

    오크노디는 라인 하나에 마갑을 올리고 그 안에 자기가 쏙 들어갔다.

     

    “싱도 들어와요! 둘이 들어가도 충분히 자리가 남는걸요.”

    “…그 갑옷, 안에 들어가면 설마……”

     

    오크노디가 해맑게 웃으며 긍정했다.

     

    “69층의 <리빙아머의 층>으로 운송돼요!”

     

    교관급의 강함을 지닌 일반집사조차 50층에 그치는 탑에서 단숨에 69층으로 직행할 수 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숏컷의 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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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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