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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5

       제 귀를 의심했다.

       

       “그냥 가라고?”

       

       눈살을 찌푸린 요르문간드가 부관에게 눈길을 주었다. 혹시나 자신만 잘못 들은 건 아닌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보이진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모두가 당황하고 있다.

       

       “가세요, 빨리. 생각 바뀌기 전에….”

       

       프레이가 울먹이며 뒤를 돌았다. 요르문간드는 자리를 털고 엉거주춤 일어났다.

       

       입고 있는 사제복이 엉망이었다. 군데군데 찢어져 있는 것은 물론이요, 구멍이 뚫리거나 그을린 곳도 셀 수가 없었다.

       

       체면을 차릴 여유와 기품은 잃어버린 지 오래.

       

       요르문간드와 그 일행은 천천히 움직이면서 적군의 곁을 지나갔다. 백부장은 프레이에게 침까지 튀겨가며 길길이 날뛰었다. 에어리얼이 나서면서 곧 합쭉이가 되긴 했지만, 불만은 숨기지 않는 기색이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저 에어리얼이 자신을 두둔하다니. 믿을 수 없었다.

       

       어쨌거나 지금 해야 할 일은 하나였다.

       

       도망치는 것.

       

       요르문간드는 삐걱거리는 몸을 이끌고 부하들과 함께 협곡을 넘었다.

       

       

       **

       

       

       가장 가까운 전초기지에 도착한 건 정오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게 누구 있느냐!”

       

       군영을 향해 소리치는 부관.

       

       – 게 누구 있느냐!

       

       돌아오는 건 메아리뿐이었다. 막사는 소름 끼칠 정도로 조용했다.

       

       “뭔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여도 그렇게 생각한다.”

       

       요르문간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인원을 적게 배치했다고는 해도 이 정도로 소음이 없을 수가 없다. 필시 무언가 사달이 벌어진 것이야.”

       “혹시 또 매복일까요?”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라!”

       

       살아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줘 놓고 또 복병이라니.

       

       악마조차도 기립박수를 칠 만한 짓 아닌가.

       

       “저기가 수상하구나.”

       

       요르문간드가 대형 천막을 가리키며 피트 기관을 켰다.

       

       “쓰러진 동료가 열둘, 전부 경상이다. 기절한 모양이야.”

       

       특수 차폐가 되어 있는 천막이었기에 그 이상으로 내부를 들여다볼 수는 없었다. 결국 직접 들어가서 확인해야만 했다.

       

       “제가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조심하거라.”

       

       서펜트 부관이 태세를 정비하고는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관은 목이 꺾인 채로 튕겨 나왔다.

       

       “부관!”

       

       요르문간드가 화들짝 놀라 부하들과 함께 다가갔다.

       

       “괜찮느냐!”

       “다, 다행히 치명상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서펜트는 돌아간 목을 다시 꺾어 원래대로 놓았다.

       

       요르문간드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잠시. 오한이 등줄기를 타고 스멀스멀 올라왔다.

       

       “저 안에 누가 있었단 말이냐?”

       “후, 후드를 쓴 소녀가 있었습니다. 머리카락 끝은 검정이었고, 얼굴은 볼 수 없었습니다.”

       “후드를 쓴 소녀?”

       

       서펜트가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이었다.

       

       “예, 예! 저를 한손으로 붙잡아 목을 꺾고 그대로 나, 날려 보냈습니다! 그래 놓곤 민천 혼자 들어오라면서…….”

       “이 몸 보고 혼자 들어오라고 하였다고?”

       

       전투를 예상한 요르문간드는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했다.

       

       신체는 이곳저곳 까져있었고, 용족의 자랑인 등날개는 날 수 없을 정도로 구멍이 숭숭 뚫려있었다.

       

       무엇보다 계속된 기습과 행군으로 인해 마음마저 피폐해진 상태.

       

       “상대방은 강한 모양이로군.”

       

       준비 없이 들어간다면 반드시 패배한다.

       

       “여봐라. 저쪽 보급 창고에서 마력초를 가져오거라.”

       “알겠습니다. 어, 저, 저기. 재고가 남아있질 않습니다!”

       “……한 개비도 없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과연 그렇군. 매복하는 쪽에서 자신들에게 불리할 만한 건 전부 치워버린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뭘 어떻게 하겠는가.”

       

       불렀는데 들어가야지.

       

       “저희도 같이 따라가겠습니다.”

       “여 혼자 가겠다.”

       “지금 혼자 들어가시면 위험합니다!”

       

       부하들이 팔다리를 붙잡으며 매달렸다. 요르문간드는 단순 완력으로 그들을 손쉽게 쳐낸 뒤 거리를 두었다.

       

       “충절은 고맙다. 하지만 이 앞은 여 혼자서 처리하고 오겠다.”

       “각하…!”

       “괜찮다. 부관이 살아서 돌아온 것을 보면 모르겠느냐? 상대는 대화가 통하는 존재다.”

       

       천막 안의 소녀는 부관 서펜트를 한 손으로 제압할 실력을 지녔으면서도 죽이지 않았다. 불필요한 살상을 피하려는 것이다.

       

       ‘이 정도로 강하면서, 마법이 아닌 육탄전 위주. 게다가 비살상주의라.’

       

       짚이는 인물이 한 명 있다.

       

       요르문간드는 피식 웃으며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천막 내부는 고요했다. 바닥에 널브러진 부하들의 신음을 제외하고는 적막함 그 자체였다.

       

       천막 내부에는 탁자와 의자 몇 개가 놓여있다. 런웨이처럼 기다란 직사각형 탁자 건너편에서 소녀의 기척이 느껴졌다.  

       

       다리를 꼰 채로 거들먹거리는 소녀.

       

       그녀의 입이 열렸다.

       

       “이제야 오는군.”

       

       익숙한 목소리. 익숙한 어조.

       

       그리고, 익숙한 기척.

       

       “본관이 여기까지 오느라 얼마나 고생했는 줄 아나?”

       “……상천.”

       

       요르문간드의 입가에 고소가 맺혔다.

       

       상대방은 다름 아닌 배신자 에테르였다.

       

       금안족이면서 금안족을 저버리고, 함께 싸웠으면서 전우애를 저버리고, 같은 꿈을 품었으면서 대의를 저버린.

       

       자신의 친척까지 해한, 마왕군의 적.

       

       “대체 무얼 하러 온 것이냐.”

       

       까득.

       

       요르문간드가 이를 갈았다. 그녀의 목소리가 기타줄처럼 미묘하게 떨려들었다.

       

       “여의 친척인 해룡을 죽였다더니, 이젠 여까지 죽일 생각이냐?”

       

       애석하다.

       

       결국 엘프국은 자신을 살려둘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아니.”

       

       에테르는 의자를 뒤로 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과하러 왔다.”

       “……사과?”

       

       그녀가 담담한 표정으로 걸어왔다.

       

       “내가 네 친척을 죽였다. 그날 이후로 쭉, 네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요르문간드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을 쳤다.

       

       “…그것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고?”

       

       뭔가 이상하다.

       

       “군을 배신하고, 지금 와서 다시 돌아오겠다는 소리를 하려는 것이냐?”

       “천만에.”

       

       에테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네가 수인족을 위해 천 년간 헌신하는 동안, 나는 마왕의 길이 옳은지 천 년을 고민했지.”

       

       그리고 겨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마왕이 잘못됐다는 것을.

       

       “그러니까 나는 더 이상 마왕을 따르지 않아. 하지만 당신은 내 동료였으니까. 미안하니까. 그래서 찾아온 것뿐이야.”

       

       에테르는 허리를 90도 꺾어가며 고개를 숙였다.

       

       주변을 둘러보면 머리나 배 따위를 붙잡고 꺽꺽거리는 부하들이 있다.

       

       분명 에테르에게 선공을 가했다가 도리어 당했을 터. 중상이나 죽은 것도 아니었기에 이를 두고 화낼 이유는 없었다.

       

       결국 요르문간드가 화낼 건은 하나. 리바이어던을 해한 것뿐인데.

       

       “민천, 네게 선택지를 줄게. 나를 죽이든가, 돌려보내든가.”

       

       그런 소리를 들으니 이상하리만치 분노가 가라앉고 있었다.

       

       친인척의 복수를 하려면 에테르를 죽이는 것이 가당하다.

       

       그런데 상대방이 이미 죽음을 각오했다면, 죽여도 복수한 꼴이 아니게 된다.

       

       요르문간드는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알고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 복수는 허무하게 끝난다. 원수를 쓰러뜨려도 죽은 자가 살아 돌아오지는 않으니까.

       

       “죽이든 살리든, 네 마음대로 해.”

       “…변명은 하지 않는 건가?”

       “학자는 사실만을 좇는다. 나는 해룡과 싸웠고, 쓰러뜨렸지. 이것 외에는 얘기할 만한 기록이 없어.”

       

       이리도 우직하게 나오니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럼, 사양 않고 결정하겠다.”

       

       요르문간드는 허리를 낮추고 팔을 뒤로 뺐다.

       

       그녀는 눈을 부릅떴고, 반대로 에테르가 눈을 감았다. 에테르는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뻣뻣이 든 채로 기다렸다.

       

       쐐애액!

       

       요르문간드의 팔뚝이 허공을 갈라냈다.

       

       미약하게나마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

       “…….”

       

       잠시간의 침묵.

       

       두 여인의 머리카락이 붕 떴다가 내려앉았다. 

       

       요르문간드의 주먹은 에테르의 오른쪽 귓불을 스쳐 지나간 채였다.

       

       “왜, 죽일 것처럼 굴더니.”

       “……모, 못 하겠다.”

       

       여전히.

       

       요르문간드는 그녀를 동료로 생각하고 있었다.

       

       

       **

       

       

       “사, 상천 각하를 뵙습니다.”

       

       막사로 들어온 요르문간드의 부하들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됐다. 이젠 상천도 뭣도 아니야.”

       “…….”

       

       아무도 말을 잇지 못했다.

       

       분명히, 상천 에테르는 마왕군을 배신했다. 교활한 엘프 놈들 편에 붙어선 동족을 말살하기 위한 마도를 개발하고 있다 들었다.

       

       그런데 왜.

       

       민천의 상처를 치료해 주고 있단 말인가.

       

       “…윽.”

       “가만히 좀 있어라. 잘못하면 덧난다.”

       

       에테르는 철판과 베어링 따위를 가져와 요르문간드의 등날개를 고쳤다.

       

       길라흐의 즉석 치료에 비하면 한참이고 모자란 수준이었지만, 워낙 박학다식했는지라 상처를 처치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용접을 마친 에테르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녀는 서펜트를 비롯한 부하들을 보며 신신당부했다.

       

       “너희들, 전쟁이 끝날 때까지 고룡을 잘 모셔라. 민천은 만나기 힘든 상관이니까.”

       “저희도 알고 있습니다.”

       

       서펜트는 그리 대답하면서도 의아함을 숨기지 못했다.

       

       “미안하지만 자리를 다시 비워주겠나?”

       

       무언가 물어보려던 찰나. 요르문간드가 손을 휘적거리며 축객령을 내렸다.

       

       “알겠습니다.”

       

       막사에 있던 마수들이 우르르 빠져나갔다.

       

       “상천, 아니. 에테르. 자네가 아까 전에 한 말 말일세…….”

       “투항하라는 말 말인가?”

       “그렇네.”

       

       요르문간드가 에테르를 죽이지 않기로 결정한 시점에서, 에테르는 조심스레 항복을 권유했다.

       

       하지만.

       

       “자네 뜻은 알겠지만, 여는 여신이 더욱 증오스러워. 우리 종족을 이렇게 만들고 방치한 저 여신이. 그래서, 여는 동조할 수 없네.”

       

       거절해야 한다.

       

       “마음은 이미 자네에게 가 있네. 그래도 의리는 저버리지 못하지.”

       

       먼 옛날, 마왕과 약속했다.

       

       금안을 바꾸고, 수인족을 풍요롭게 하고, 여신과 정령족을 토벌하여 새로운 시대를 열자고.

       

       1천 년 동안 겪었던 설움을, 배로 갚아서.

       

       이번에는 우리가 저들을 노예처럼 부려먹는 세상을 만들어 보자고.

       

       “현재로선 파르켈수스가, 금안의 희망이야….”

       

       비록 요르문간드는 인간과 엘프를 노예로 만드는 것까진 내키지 않았지만, 암울한 연 세태 아래에선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러니까 여는… 마음은 자네에게 투항해도, 몸은 투항하지 않겠노라.”

       

       그것이 고심 끝에 요르문간드가 내린 대답이었다.

       

       요르문간드가 씁쓸하게 웃으며 슬며시 눈을 떴다.

       

       “알겠나? 오늘은 보내주지만, 다음에 전장에서 만나면 우리는 다시 적…….”

       “요르무.”

       

       손과 손이 교차했다.

       

       에테르는 회전의자를 뒤로 돌려 요르문간드의 손을 맞잡았다. 요르문간드가 눈을 슴벅거리며 눈동자를 사방팔방 굴렸다.

       

       에테르가 힙겹게 입을 열었다.

       

       “내가 죽으면, 네가 남은 이들을 잘 보살펴 줘.”

       

       보이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입가에선 붉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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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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