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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6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각, 제임스 타워.

    정오의 뙤약볕이 창문에서 쏟아져 내리고 있었지만, 현재 제임스가 있는 ‘임시 상황실’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상황실의 천장에는 최신식의 에어컨이 설치되어, 백색 소음처럼 조용한 작동음을 내뿜으며 열기를 쫓아내고 있었다.

    에어컨에서 나오는 찬 기운이 방 안 구석구석까지 퍼져나가, 오히려 살짝 춥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임시 상황실은 꽤 넓은 공간이었다.

    벽면에는 대형 모니터들이 빼곡하게 줄지어 있었고, 그 근처에는 여러 대의 컴퓨터가 놓여 있었다.

    벽을 가득 채운 대형 스크린에는 한반도 지도가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지도 위로 붉은 점들이 깜빡이고 있었는데, 그것은 모두 최근 설명할 수 없는 재난으로 폐허가 된 도시들이었다.

    제임스는 피로에 찌든 얼굴로 의자에 앉아, 수집된 정보들을 꼼꼼히 살펴보고 있었다.

    ‘단서가 없군.’

    제임스의 손에 들린 것은 현재까지 취합된 조사 결과 보고서였지만, 모두 수상한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고 밝히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단서가 없다는 것은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오브젝트인 거겠지.

    역시 회색 사신에게 그 아파트 단지의 존재를 알려줄 수밖에 없겠어.

    ‘세희 연구소와 제임스 연구소 합동으로 야유회를 열면 될까?’

    ‘아니면 이번에도 TV에 수상한 아파트 단지에 대한 이야기를 흘리는 쪽으로 계획을 잡아야 하나.’

    그렇게 마음을 굳히고 현장 조사를 나간 요원들을 불러들이려는 순간, 상황실의 전화가 마구 울리기 시작했다.

    전화를 받은 제임스 연구소 직원이 큰 목소리로 보고를 올렸다.

    “현재 대상 아파트 단지에서 이상 현상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니터 위로 현장 요원이 촬영한 사진이 출력되기 시작했다.

    완공된 아파트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아파트와 검게 흩날리는 정체불명의 먼지들이 찍힌 사진이었다.

    그 전화를 시작으로 온갖 보고가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미니 사신들의 대이동을 관측!”

    “대상 아파트의 주민들이 오브젝트로 변해, 모두 행동을 멈추고 부스러지기 시작함!”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늘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균열을 발견! 회색 사신의 능력으로 보임!”

    제임스는 그 보고를 듣기 전부터, 상황실의 넓은 창문을 통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지평선 끝에서 반대편 지평선 끝까지.

    다섯 줄기의 균열이 하늘을 찢어놓고 있었다.

    그 균열의 규모는 예전의 그것보다 상당히 거대했다.

    그 궤적은 이상하게도 상당히 화가 난 것처럼 거칠고 난폭해 보였다.

    “현장 요원은 지금 즉시 최대한 빠른 속도로 그 장소에서 이탈하도록 지시해. 회색 사신이 나타났다.”

    제임스는 난폭하게 찢긴 하늘에서 눈을 돌리며, 직원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TV를 틀자, 뉴스도 이제서야 속보를 내보내기 시작하고 있었다.

    ***

    내 손 안에는 석고 인형이 전해준 조그마한 인형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인형에서 느껴지는 친숙함을 보면, 노란 사신이 직접 만든 인형인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노란 사신이 만든 다른 인형이나 인형 옷과는 사뭇 다른 점이 있었다.

    우선 신기하게도 오브젝트 같은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무려 내가 자세히 살펴보는데도 전혀 오브젝트 같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노란 사신이 이제까지 만든 것들과는 달리 특별한 능력을 부여받지 않은 듯했다.

    대신 이 인형에는 희미한 연결이 느껴졌다.

    그 연결은 마치 보이지 않는 실로 이어진 것처럼, 언제 어디서든 노란 사신이 이 인형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정말 다행히도, 그 반대도 가능했다.

    지금 노란 사신의 행방이 묘연한 상황에서 이런 인형을 손에 넣다니, 정말 천운이라고 할 수 있었다.

    ‘운이 좋군.’

    나는 부드러운 인형을 꼭 움켜쥐며, 노란 사신이 있는 방향으로 감각을 뻗기 시작했다.

    납치를 당한 걸까, 아니면 단순히 가출한 걸까.

    어느 쪽이든 이 인형을 통해 노란 사신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을 테니까.

    납치당한 상황이면 빠르게 구해줄 수 있을 테니 좋은 일이었다.

    만약 가출이었다면?

    그에 맞는 즐거운 ‘장난’을 칠 수 있을 테니까 정말 정말 재밌는 일이었다.

    ‘찾았다.’

    나는 노란 사신과 이어진 연결을 더듬어 간 끝에, 노란 사신의 위치를 확정할 수 있었다.

    공허로 가득한 공간의 틈새, 노란 사신은 그곳에 있었다.

    노란 사신은 제1 검 인형 옷을 입는다고 해도 공허에 닿을 수 없으니까, 납치가 확실하네.

    나는 오른손에 장작을 천천히 밀어 넣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손아귀가 점점 검게 물들었다.

    ‘감히 우리 아이를 납치하다니!’

    나는 그런 분노를 담아, 한계까지 장작을 밀어 넣은 오른손을 휘둘렀다.

    촤아악.

    지평선 끝에서 다른 지평선 끝까지.

    손가락 모양의 다섯 줄기의 상흔이 하늘에 새겨졌다.

    찢긴 공간 너머로는 검은색 공허가 넘실거렸고, 대규모 공간 절단의 여파로 아파트 단지를 가리고 있던 거짓의 장막도 찢겨 나갔다.

    행인으로 위장하고 있던 수많은 석고 인형이 그대로 행동을 멈추고 넘어져 버렸다.

    퍼석. 퍼석.

    바닥에 쓰러진 석고가 부스러지는 소리가 마구 울려 퍼졌다.

    깔끔하고 세련돼 보이던 아파트 단지는 완전히 폐허로 변해버렸다.

    아름다운 연못과 분수는 썩은 물로 가득 찼고, 향기로운 꽃 대신 쓰레기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리고 그 섬뜩한 변화를 본 사람들의 비명도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모든 사소한 일들을 무시한 채, 공간 너머로 손을 뻗어 노란 사신을 집어 들었다.

    잠든 것처럼 눈을 감은 노란 사신.

    평소의 노란 사신과는 달리, 잠이든 노란 사신은 자연스러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눈을 감고 있으니, 조금 황금 사신 같기도 하네.’

    통통 뱃살만 빼고.

    나는 눈으로 상처가 있는지 살펴보면서, 뱃살을 손가락으로 꾹꾹 찔렀다.

    뱃살의 말랑한 정도를 보니, 다친 곳은 없어 보여.

    나는 멀쩡해 보이는 노란 사신을 미니 사신 정원에 던져넣고, 곧바로 노란 사신을 납치한 원흉이 있는 곳으로 순간 이동했다.

    마치 미니 사신 정원처럼 느껴지는 닫힌 공간.

    그곳에는 이질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오브젝트가 있었다.

    녹색 옥인이랑 꽤 비슷한 느낌을 풍기는 녀석이었다.

    굉장히 오래된 인간, 그리고 오브젝트가 되어버린 인간.

    다만 저 녀석은 옥인과 달리 대략 10% 정도는 아직 인간이었다.

    검게 물든 헤일로.

    하얀색 로브.

    로브 아래에서 흘러내리는 붉은색.

    검게 물든 피부.

    그리고 마치 ‘옛 신’처럼 흘러내리는 검은색.

    나랑 전혀 닮지 않았는데, 보면 볼수록 나와 애매하게 비슷한 분위기라서 기분 나쁘게 만드는 모습이었다.

    ***

    오래된 자가 하얀 모래사장을 자신의 내부에 모두 집어넣은 순간, 공간 그 자체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의 육체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중앙 건물이 반으로 잘리고, 그 틈으로 하늘을 가르는 난폭한 궤적이 보였다.

    그 궤적은 오래된 자가 아주 오래전에 봤던 ‘신’이 남긴 흔적과 굉장히 비슷한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깜박깜박.

    그로 인해 공간 자체가 불안정해져서, 오래된 자의 인지가 불안정하게 점멸하기 시작했다.

    마치 망가진 형광등처럼.

    그리고 마지막 어둠이 찾아오고 다시 밝아지는 순간, 그리고 반으로 갈라졌던 건물이 다시 달라붙은 순간.

    마치 유령처럼, 그리고 아주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회색 사신’이 그의 앞에 나타나 있었다.

    [그런가. 나는 실패했는가.]

    남자는 자신의 앞에 갑자기 나타난 회색 사신을 바라보며, 이질적인 목소리를 흘렸다.

    단 1분이라도 시간이 더 있었다면, 흔적을 지우고 도망갈 수 있었을 것이다.

    이상하군.

    그의 계산에 따르면 아무리 회색 사신이 전력으로 자신을 찾는다고 해도, 이렇게 빨리 찾아올 수는 없었을 터.

    하지만 그의 시선이 회색 사신의 손에 들린 인형에 닿자, 그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너무 들떠있었군. 철저하지 못했어.’

    이제 회색 사신의 노랗게 타오르는 눈이 남자를 명확히 포착하고 있었다.

    저 눈에 포착된 이상, 이제 더 이상 도망갈 수 없겠지.

    아무리 도망쳐 봐야 소용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신에 닿지 못하고, 스러질 운명일지라도.

    신의 영역에 얼마나 도달했는지.

    신을 모방한 능력이 어디까지 도달했는지.

    그리고 ‘열화된 신’을 뛰어넘을 수 있었을지, 부딪쳐 보겠다.

    ***

    오래된 자가 손을 휘두르자, ‘옛 신’이 휘두르던 것과 한없이 닮은 불꽃이 그의 양손에서 피어올랐다.

    그의 양손에서 시작된 피처럼 붉은 불길이 공간 전체를 태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빨갛게 타오르는 불꽃을 멀뚱히 구경하던 ‘회색 사신’의 몸에도 불꽃이 달라붙었다.

    퍼석.

    그 순간 회색 사신의 한쪽 팔이 마른 진흙처럼 변해 떨어지더니, 재로 변해버렸다.

    회색 사신은 신기한 묘기를 본 것 같은 표정을 짓더니, 순식간에 팔을 재생하고 박수를 한번 쳤다.

    ‘혁명!’

    박수 소리와 함께 허공에서 붉은 사신들이 마구마구 솟아나기 시작하더니, 남자가 만들어 낸 불꽃을 모두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 오래된 자는 손을 앞으로 내밀고 꽉 움켜쥐었다.

    그러자 공간이 우그러들면서 검은색 점을 만들어 냈다.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검은 점.

    회색 사신은 검은 점을 보더니, 약간 놀란 표정으로 똑같이 허공을 움켜쥐었다.

    뀩.

    그 순간, 공간이 찌그러지면서 커다란 검은색 구체가 나타나, 모든 것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천장과 바닥, 공간을 이루던 무언가, 그리고 그가 만든 검은색 점마저도 삼켜버렸다.

    그리고 오래된 자는 자신의 모든 능력을 펼쳐내기 시작했다.

    확률 조작.

    시간 역행.

    공간 절단.

    공간 지배.

    하지만 그 어떤 것도 회색 사신에게 닿지 않았다.

    유일하게 가능성이 있었던 것은 시간 역행이었지만, 새싹 사신의 등장과 함께 무력화 되어버렸다.

    [역시 나는 닿지 못했는가. 그렇다면….]

    오래된 자는 마지막으로 미완성된 헤일로에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부서진 헤일로는 불길한 검은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그 빛이 강해지면 질수록, 점점 온전한 헤일로의 형상을 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헤일로가 완전한 형상을 이루는 순간, 검은색 섬광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마치 회색 사신의 ‘눈’처럼 모든 것을 없애버리는 검은 섬광이었다.

    섬광이 공간을 가득 채운 순간, 그 검은빛의 격류 속에서 티끌만 한 하얀 빛이 희미하게 반짝였다.

    그리고 그 하얀 빛은 마치 종이를 태우는 화염처럼, 점점 검은색 섬광을 살라 먹으며 그 크기를 키우기 시작했다.

    하얀색 불꽃이 검은색을 잡아먹으며, 마치 꽃잎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그렇게 섬광이 전부 사라지자, 눈부신 하얀색 불꽃이 공간 전체를 휘감기 시작했다.

    마치 순백의 눈보라가 광활한 우주를 뒤덮은 듯, 하얀 불꽃은 끝없이 일렁이며 주변을 밝혔다.

    그 압도적인 광채 속에서 불꽃들은 마치 생명체처럼 꿈틀거리며 역동적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그 눈부신 하얀 불꽃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회색 사신이 존재감을 드러내며 오연하게 서 있었다.

    검게 물든 피부.

    빨갛게 갈라진 균열.

    머리 위에 환하게 빛나는 헤일로.

    그에게 그 모습은 굉장히 불안정해 보였지만, ‘옛 신’의 모습과 굉장히 비슷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오래된 자가 있던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아, 그래. 저 힘을. 저런 신의 힘을 가지고 싶었다.]

    대신 이질적이지만, 약간의 선망을 담은 목소리가 그 자리에 잠시 머물렀다가 사라져 버렸다.

    등록된 마지막 회차입니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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