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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6

        

       “아아아.”

         

       찬드라키르티는 이렇게 말했다.

         

       ‘나’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존재한다는 생각에서 모든 해로운 마음이 일어남을 보고.

       ‘나’도 인식의 대상일 뿐임을 알면 고정된 실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리라고.

         

       그렇다면 묻는다.

         

       고정된 실체가 없으며 ‘나’라는 것이 인식의 대상일 뿐이라면.

       과연 ‘나’를 이루고 유지하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의 육체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숨을 쉬는 순간, 눈을 깜빡이는 순간, 가만히 서 있는 순간.

       그 순간순간 끊임없이 세포가 변하고, 죽고, 다시 태어난다.

         

       1초 전의 나와 1초 뒤의 내가 다르니 어찌 고정된 존재라 할 수 있으랴.

         

       고정될 수 있는 것은 시간의 유구한 흐름에도, 외적인 요소에도 변치 않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진정한 불멸(不滅)이라.

         

       그렇다면 끊임없이 변화하는 격랑의 파도 속에서 나를 유지하는 닻은 무엇인가?

       거센 바람에도, 내리쬐는 햇살에도, 몸을 녹이려 드는 폭우에도 나를 나로서 유지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이르기를 이것이 바로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것.

       나를 규정하는 것이라.

       사람을 구성하는 것을 해체하고 해체하는 끝에 남는 것이 바로 마음이라.

         

       “아아아아.”

         

       원영신은 그렇게 빚어지는 것이다.

         

       나의 정신이 세상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음을 깨닫고.

       나의 영혼이 세상 만물과 다르지 않음을 깨닫고.

       그리하여 육체의 구속에서 벗어나 정신과 영혼으로 형체를 빚어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니.

         

       원영신은 걸음을 초월해 먼 곳에 동시에 위치할 수 있게 해주는 기적이로다.

         

       다만 진성은 도(道)를 깨우치지 않았다.

       인간의 태를 벗고 신선으로 거듭나 등선하려 하지 않았으며, 깨달음을 위해 세월을 바쳐 그 끝에 다다르려 하는 것도 아니다.

         

       오직 진성이 원하는 것은 주술.

       주술을 위한 초월을 갈망하였다.

         

       그리하여 진성이 행한 것은 원영신이 아닌 원영신을 흉내 낸 것이라.

         

       때문에 진성의 몸은 에너지가 아닌 다른 것으로 짜 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가장 익숙한 것.

       그를 기생술사라 불리게 만들며 사람들이 그를 꺼리게 했던 이물(異物).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미약한 것들이 바로 그 주인이라.

         

       투둑.

       투두둑.

         

       가장 먼저 만들어지는 것은 머리였다.

       사람의 정신을 상징하는 것은 바로 머리이기 때문이었다.

         

       어디선가 날아온 날벌레들은 사람의 머리와 같은 형상을 만들어내었다. 날벌레 무리는 자기 몸이 뭉개지는 것도 개의치 않은 채 서로에게 온 힘을 다해 달라붙으며 단단하게 자리를 잡았고, 이윽고 그렇게 단단하게 자리 잡은 것은 검은색 해골의 형상을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해골의 형상에 수많은 날벌레가 들러붙으며 피부를 짜 올렸으며, 몸의 색소를 변조시키고 피를 짜내며 사람의 색과 흡사한 색을 빚어내었다.

         

       그렇게 머리가 만들어졌다.

         

       그다음은 목이었다.

       날벌레들은 앞서 해골이 그러했듯 척추를 짜 올리며 길게 늘어졌고, 서로 뭉치고 부풀기를 반복하며 빈 곳을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그 중간에 기묘한 형태로 굳어지면서 성대 모양을 만들어내었는데, 진동에 따라 모양을 이리저리 바꾸는 것이 색만 검을 뿐 사람의 성대 그 자체였다.

         

       그리고 다음은 몸통이었다.

         

       몸통이 만들어내는 것은 복합적이었다.

         

       저 멀리서 날아온 나방과 자그마한 날벌레들이 몸에 들러붙으며 형상을 짜 올렸으며, 발과 다리를 만들어내며 위로 솟구치는 날개 없는 벌레들이 몸을 이루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몸뚱이는 영락없는 껍데기라.

       내장도 없고 형상만 있는 것이 사람의 형상을 흉내를 낸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흐-읍.”

         

       하지만 그러한 ‘흉내’도 곧 사람과 흡사하게 변했으니.

         

       진성이 숨을 들이쉬자 벌레들로 차 있던 몸뚱이의 아래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들이쉰 숨이 퍼지며 몸에 길을 만들었으며, 두 갈래 길로 나뉘어 풍선처럼 부푸는 주머니에 머물렀으니 이것은 폐를 흉내 낸 것이요.

       진성이 숨을 쉬며 생겨난 주먹만 한 덩어리는 미친 듯이 맥동하며 진동을 만들어내었으니 이것이 심장이요.

         

       심장의 움직임에 맞춰 다른 것들이 저절로 뭉치고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형상을 이루니 이것이 오장육부와 참으로 닮았다.

         

       “모양새는 갖춰졌으니 들여다본다 한들 쉽게 들키지는 않을 것이로다.”

         

       이것은 말 그대로 흉내를 낸 것.

       저 오장육부는 그 어떤 기능도 사용할 수 없는 모형이었다.

         

       진성의 원영신은 세포가 아닌 곤충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게 문제는 아니었다.

         

       세포가 영양소를 섭취하고 몸을 유지하는 것.

       벌레가 영양소를 섭취하고 몸을 유지하는 것.

         

       그 크기와 혐오감에 차이가 있을 뿐, 비슷하지 않은가?

         

       진성은 미소를 지으며 허리를 숙여 바닥에 놓인 물병을 들어 올렸다.

       그리곤 미친 듯이 물을 몸에 주입하기 시작했다.

         

       그의 입으로 들어간 물은 마치 오랫동안 가물어 쩍쩍 갈라진 논에 물을 대는 것처럼 순식간에 사라졌고, 인간의 몸에 흐르는 피 대신에 그의 몸을 타고 흘렀다. 진성은 자신의 원영신에 물이 차고 흐르자 그것이 피처럼 보일 수 있도록 벌레들을 조작해 색소를 뿜어내어 붉게 물들였다.

         

       별다른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일반적인 신체를 흉내를 내기 위함이었다.

         

       사람 몸에 구멍이 뚫렸는데 투명한 물이 줄줄 흘러나온다면 누가 봐도 수상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물길을 따라서 벌레들에게 영양분을 공급하려는 의도 또한 있었다.

         

       ‘되었다.’

         

       진성은 원영신이 나름 그럴듯하게 만들어졌음에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터엉-!

         

       그는 손에 들고 있는 물병을 들어 쓰레기통에 집어넣고 준비된 의상과 가면을 착용했다.

         

       터엉.

       터어엉.

         

       그리고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움직여 천천히 철제 계단을 올랐다.

         

         

         

         

       

        * * *

         

         

         

       터엉-

       터어엉-!

         

       철제 계단 위에서 발을 구르는 그 기묘한 소리.

       사람을 묘하게 불안하게 만드는 소리는 별장에 퍼져나갔다.

         

       별장이 워낙 넓은지라 전체에 퍼져나가지는 못했지만, 지하실의 문을 뚫고 그 근처에 퍼져나가기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이러한 소리를 들으며 여자 한 명이 무릎을 꿇은 채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귀가하는 남편을 맞이하는 아내처럼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있었는데, 얌전하고 청순해 보이는 모습이 이러한 느낌을 더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지하실의 앞에 촛불 몇 개만 켜져 있어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는 점, 그리고 화려한 무녀복을 입고 있다는 점 때문에 묘하게 두려운 분위기를 풍기기도 했다.

         

       영화에서 나오는 재앙신을 모시는 무녀 같은 느낌이 바로 이러할까.

         

       터엉.

       찰칵.

         

       이윽고 철제 계단을 밟는 소리가 멈추고 문이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열렸을 때, 그녀는 자신이 기다리고 있는 이를 맞이하였다.

         

       “오셨습니까, 신주님.”

       “그래, 나의 무녀, 리세여. 내가 왔느니라.”

         

       무녀복을 입고 있는 여성, 리세가 맞이한 것은 바로 박진성의 원영신이었다.

       그는 신사의 신관이 입고 있을 법한 옷을 걸치고 있었는데, 하얀색의 옷감 대신 고급스러워 보이는 붉은색의 비단을 아낌없이 사용해 만들어서 그런지 화려하다고 느끼게 하였다. 그리고 얼굴에는 여우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진성은 자기 얼굴을 리세에게 보여주려는 것인지 그것을 슬쩍 들어 올렸다.

         

       여우 가면 아래에 있는 것은 박진성의 얼굴과 흡사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본래 육체와는 그 얼굴이 조금 달랐다.

       영양 섭취가 좋지 않은 것인지 꽤 홀쭉한 얼굴이었으며, 눈 아래에는 그늘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눈의 크기나 눈꼬리 역시 조금씩 차이가 있어, 본래의 박진성과는 전혀 다른 인상을 주었다.

         

       냉담하고 사나워 보이는 인상.

         

       박진성의 얼굴이 토끼와 닮아 사람을 방심하게 만드는 것이었다면, 그가 만든 원영신은 늑대를 떠올리게 했다.

         

       “얼굴이 조금 다르네요….”

       “그러하다.”

         

       리세는 진성의 얼굴이 낯설다는 듯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본래 부드러운 것과 단단한 것, 따스한 것과 차가운 것은 쓰임새에 따라 달리 쓰여야 하는 것. 지금 상황에서는 이러한 인상이 더 효과적이니라.”

       “그렇군요….”

         

       리세는 진성의 말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불만을 품은 이들을 설득하는 것보다는, 위압감과 공포로 찍어눌러 불만을 토해내지 못하게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때도 있는 법이니.”

         

       이는 백 마디의 충고보다 한 가닥의 차가운 칼바람이 외투를 입게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니라.

         

       진성은 그렇게 설명했다.

         

       리세는 그런 진성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갑자기 귀를 한 번 쫑긋 움직였다.

         

       스르륵.

       타다닥.

         

       그녀가 귀를 쫑긋거리는 것과 동시에 저 너머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다리를 질질 끄는 듯한 소리.

       혹은 손바닥과 다리를 이용해서 바닥을 있는 힘껏 쳐대며 오는 듯한 소리.

         

       왠지 모르게 사람의 심령을 제압하고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소리였다.

         

       그 소리는 점차 그들에게 가까워졌고, 이윽고 그들이 위치한 방문의 앞에 다다라서야 멈췄다.

         

       끼이익-

         

       그리고 발소리가 멈춘 대신 문소리가 그 자리를 메우게 되었다.

       나무로 된 문은 소름 끼치는 마찰음을 내면서 천천히 움직였고, 그렇게 만들어진 문틈 사이로 어린아이의 것으로 보이는 손발이 나타났다.

         

       손발은 천장에 딱 달라붙은 채 길게 늘어졌다.

       그리고 문의 틈새를 점점 벌리며 머리를, 몸을 쑤셔 박으며 모습을 드러내었고, 타다닥거리는 소리와 함께 천장을 네발로 기어서 그들에게 다가왔다.

         

       리세는 그 기묘한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이름 하나를 입에 담았다.

         

       “새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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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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