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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6

       

       

       

       

       

       316화. 아브락사스 ( 6 )

       

       

       

       

       

       예상치 못한 케넬름의 독설에 케니스가 고장 난 인형처럼 우뚝 멈췄다. 

       

       ‘빈 껍데기가 된다니…?’

       

       갈피를 잡지 못하는 케니스를 향해 케넬름이 차갑게 쏘아붙였다. 케니스가 사용하는 별빛의 방식은 굉장히 위험한 방법이었다.

       

       “지금 별빛을 이끌어 낸 이후 불꽃으로 태우려 할 때, 분노와 적개심, 적의 같은 감정을 느꼈을 거예요. 맞죠?”

       

       “네에…”

       

       도대체 이걸 어떻게 눈치챘을까.

       케넬름이 뭔가에 홀린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틀린 방법이라고 말하지는 않겠어요. 분명 그렇게 별빛을 다루는 것도 나름의 방법일 테니까요.”

       

       하지만 비효율적이고 부작용이 있을 것이다.

       

       “지금 그건 용을 잡을 수 있는 검으로 당근이나 써는 꼴이죠. 거기에 당근을 썰 때마다 스스로의 손가락도 계속 베어가면서, 언제 손가락이 잘릴지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는 거예요.”

       

       “그, 그럴 수가…”

       

       케니스가 고개를 푹 숙였다. 나름대로 별빛을 연구하고 훈련하며 최적의 방법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그저 오만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눈에 띄게 기가 죽은 케니스의 어깨를 케넬름이 가만히 토닥였다.

       

       지적하되 절망에 빠지게 하지는 않는다. 케넬름은 그 미묘한 감정선을 다뤄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너무 기죽을 필요는 없어요.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건 잘 알고 있으니. 오히려 이 정도 수준까지 할 수 있다는 건 참 놀라운 일입니다.”

       

       “성녀님…!”

       

       “물론 어디까지나 독학을 기준으로 말한 겁니다. 별빛을 다루는 방식은 투박하고 거칠기 짝이 없어요. 케니스 당신은 배울 게 아주 많아요.”

       

       허투루 하는 말이 아니다.

       

       케넬름이 보기에 케니스는 배워야 하는 게 정말 정말 많았다.

       시간이 부족한 게 아쉬울 정도로.

       

       “당신은 스스로 타고난 혈통과 지금의 몸이 얼마나 굉장한 것인지 알 필요가 있군요.”

       

       “혈통…이요?”

       

       케니스가 되물었다.

       

       몸은 별빛으로 다시금 재구성된 몸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혈통이 뭐가 어떻다는 걸까?

       

       “아.”

       

       케니스에게  말하는 걸 깜빡했다. 

       케넬름이 조금 머쓱하게 케니스를 돌아봤다. 

       

       “아하하… 내가 깜빡하고 말을 안 했군요. 케니스, 당신은 저의 아주 먼 후손이랍니다.”

       

       “아ㅡ 그렇군요. 내가 성녀님의 후손…”

       

       뭐?

       

       놀란 토끼처럼 눈을 커다랗게 뜬 케니스가 크게 소리쳤다.

       

       “예에?!”

       

       내가 성녀님의 후손이라고?

       

       

       

       ***

       

       

       

       케니스가 놀란 가슴을 추스르는 데에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야 그럴 수밖에.

       

       매일매일 성인의 초상화에서 보던 성녀께서 자신의 선조라고 하는데, 어찌 가슴이 벌렁거리지 않고 멀쩡하겠나.

       

       그렇게 케니스의 놀란 감정이 어느 정도 수그러들었을 때, 케넬름은 케니스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

       

       “별빛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계속 흐르고 멈춰있지 않는… 가능성의 덩어리?”

       

       “조금 아쉽지만 나쁘지 않네요. 80점짜리 정답이에요.”

       

       부가적인 설명이 아쉬웠기에 80점이다. 나름대로 핵심적인 요소는 전부 맞췄다.

       

       “말한 것처럼 별빛은 가능성의 총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얼추 알고 있겠지만, 별빛은 상상하는 모든 것을 구현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힘… 굳이 한계를 따지자면 상상력의 한계가 별빛의 한계라고 할 수 있겠네요.”

       

       케니스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케넬름의 말을 새겨들으려 노력했다. 무려 초대 성녀께서 알려주는 별빛에 대한 지식이다.

       

       그 어디에서 이런 가르침을 받을 수 있겠는가.

       

       “별빛은 계속해서 흐릅니다. 끝없이 흐르죠. 절대로 멈추지 않아요. 아. 혹시 별빛을 억지로 가두려고 해봤나요?”

       

       “어, 아뇨. 해봤는데 잘 안돼서…”

       

       “좋아요. 제가 현역에서 활동할 때 자주 쓰던 기술 중 하나를 알려줄게요.”

       

       케넬름이 케니스의 손을 겹쳐 잡았다. 케넬름 본인의 별빛을 쓰면 지상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짧아지기에, 케니스의 별빛으로 시연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한 손으로 별빛을 이끌고… 별빛이 서로 휘감기도록 유도하는 거예요.”

       

       “어? 에, 으에?”

       

       케넬름의 인도를 따라 움직인 별빛이 서로 휘감기며 구의 형태가 되어 케니스의 손을 뒤흔들었다. 

       

        “굳이 상상한다면 태풍이라고 상상해도 되겠네요. 아무튼 엄청 강력하게 휘몰아치는 힘을 손바닥 안에 가둔다고 생각하고… 계속 압축하면…”

       

       “어어? 서, 성녀님?! 이거 터질 것 같은데요!!”

       

       구체가 점점 작아질수록 별빛은 더욱 강하게 반발하며 터지기 직전의 폭탄처럼 마구 폭주했다. 

       지레 겁이 난 케니스가 떨리는 눈으로 케넬름을 바라봤다.

       

       “조금만 더 참아요! 누를 수 있어요! 눌러! 계속 눌러요! 별빛을 가둔다는 느낌으로!!”

       

       케넬름이 눈을 가늘게 뜨며 별빛의 구체를 바라봤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ㅡ

       지금!

       

       “하늘로 던져요!”

       

       “이야아압!”

       

       케넬름의 지시에 케니스가 기다렸다는 듯 구체를 냅다 하늘로 던졌다.

       

       별빛의 구체는 억눌려 있던 분노를 표출이라도 하듯, 매섭게 상공을 날아갔다. 마치 하늘을 역행하는 유성처럼 보였다고 할까.

       

       그렇게 한참이나 하늘로 솟구치던 구체는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압축된 별빛이 풀려나며 사방으로 흩어지더니ㅡ

       

       콰아아아앙!!

       

       눈부신 폭음을 남기며 화려하게 폭발했다.

       

       “…에…”

       

       “이게 제가 즐겨 쓰던 별빛의 기술 중 하나예요. 쓸 만하죠?”

       

       화려하게 폭발한 별빛의 구체는 반짝이는 별 가루를 비처럼 쏟아냈다. 뭉게뭉게 연기가 피어올라 성도의 상공을 장식한다.

       

       어째서인지 기시감이 느껴진 케니스가 멍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봤다.

       

       ‘이건 도대체…?’

       

       상당히 익숙한 기분.

       오늘도 성도의 상공은 평화로웠다.

       

       케넬름은 매우 흡족한 표정이었다. 설마 첫 시도에 이렇게나 잘 따라올 줄은 몰랐다.

       

       역시 신께서 빚은 육체와 자신의 혈통.

       재능과 육체의 수준이 정말 어마어마하다.

       

       의욕으로 가득 찬 케넬름이 케니스를 보며 힘차게 외쳤다.

       

       “좋아요! 아주 좋았어요! 기세가 팍팍 살아나네요! 이 기세로 몰아쳐서 다른 기술도 열심히 배워보죠!”

       

       “……어, 으에? 더, 더 있어요?”

       

       “당연하죠. 열 개는 넘을걸요?”

       

       이런 기술이 하나가 아니라고?

       문득 케니스는 두려워졌다.

       

       이런 강력한 기술이 열 개 가까이 있다고? 도대체 신화시대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전사들을 저렇게 끔찍한 강도의 훈련으로 단련시키고, 성녀님은 이런 강력한 기술을 펑펑 쓰고 다녔다니…’

       

       케넬름은 현역 시절에 도대체 무슨 싸움을 하고 있던 걸까.

       너무나 두려워진 케니스였다.

       

       “시간이 없어요! 어서 훈련하죠! 앞으로 배울 게 정말 많아요. 먼저 별빛을 원하는 방향으로 흐르도록 유도할 때는, 물이나 빛이 지나가는 통로를 만드는 느낌으로ㅡ”

       

       “ㅡ… 거기서 별빛을 불꽃으로 태울 때는 감정을 장작처럼 사용하지 말고… 그렇죠. 케니스 당신의 몸은 상상 이상으로 강하고 별빛에 친숙해요. 그걸 강점으로 사용할 줄 아는 게 중요합니다.”

       

       그렇게 지옥 같은 훈련은 딱 5일째 되는 날에 끝이 났다.

       

       “아… 이제 때가 됐네요.”

       

       케넬름은 신체의 끝부터 별빛이 되어 흩어지는 것을 보며 아쉽게 중얼거렸다. 아직 알려줄 것이 많았는데 시간이 야속할 뿐이다.

       

       “케니스. 그동안 배운 것들을 항상 명심해요. 알았죠?”

       

       “네!”

       

       케니스가 다부지게 대답했다. 5일의 짧은 훈련이었지만, 시간의 밀도는 어느 때보다 높았다.

       

       특히 케넬름에게 배운 별빛의 운용법은 굉장한 도움이 됐으니.

       

       5일 전의 케니스와 지금의 케니스 사이에는 고블린과 오우거만큼의 차이가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케니스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케넬름이 고개를 돌려 연병장에 사열한 전사들을 바라봤다.

       

       불과 5일 만에 강철같은 근육이 울룩불룩 올라온 이들이 단단한 눈빛을 발하고 있다. 

       

       “흠… 좋아요. 아주 좋아요. 이제야 좀 병아리 티를 벗은 게 보이네요.”

       

       “””감사합니다!!”””

       

       “그래도 언제나 수련을 게을리하지 말고, 절대 자만하지 말도록 하세요. 특히ㅡ”

       

       고개를 돌려 누군가를 찾던 케넬름이 딱 손가락질했다.

       

       “한스!”

       

       “네엡!”

       

       한스가 부동자세로 우렁차게 외쳤다. 타고난 괴력으로 인해 한스는 훈련의 이점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대신 특별 지도를 받았다.

       

       “오른손에 잠든 것을 무작정 억누르려고 하지 마세요. 꾸준히 명상하고, 대화하려고 노력하세요. 중요한 건 부동심입니다.”

       

       “알겠습니다!”

       

       파스스스ㅡ

       

       케넬름의 몸이 빠르게 별빛으로 흩어지며 날아간다. 어느새 목 아래가 사라진 케넬름은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이들의 모습을 뇌리에 새기려 노력했다.

       

       “부디, 그대들에게 신의 은총이ㅡ”

       

       말이 끝나기도 전에 케넬름은 오색의 별빛이 되어 바람을 타고 흘러갔다.

       

       케넬름이 미처 다 하지 못한 말은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들려줬다.

       

       신께서 당신들을 살피시기를.

       

       남겨진 이들은 오래도록 고개 숙여 묵념하며, 초대 성녀 케넬름을 기렸다.

       

       

       

       ***

       

       

       

       케니스가 케넬름에게 막 훈련받기 시작하던 그때.

       

       “키르르르…좋은 곳.”

       

       회색 괴물은 눈 위에 뚜렷한 흔적을 남기며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든다.

       

       외진 곳이고, 인간이 접근하기 힘들 정도로 높았으며, 쳐들어오는 적을 먼저 알아차리기에 용이하다.

       

       그야말로 천혜의 요새나 다름없는 곳.

       

       울컥울컥.

       

       적당히 평평한 곳을 찾은 회색 괴물이 몸을 파르르 떨더니, 이윽고 입에서 새까만 구정물을 한참이나 토했다.

       

       하얀 설원에 먹물처럼 찍힌 구정물은 살아있는 생물처럼 스스로 꿈틀거리며 영역을 넓혔다.

       

       “키르르르르…”

       

       회색 괴물은 이를 만족스럽게 바라봤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알아서 둥지가 확장될 것이다. 둥지가 해결됐으니 이제 남은 것은 먹이.

       

       “사냥…! 먹이… 성장한, 다.”

       

       회색 괴물의 부정형 몸통이 꾸물거리더니 거대한 앞발이 튀어나와 허공을 거칠게 긁었다. 발톱 모양으로 찢어지며 균열이 열렸다.

       

       “…키륵.”

       

       어째서인지 균열을 앞에 두고 잠시 고민하던 회색 괴물이 자신의 몸을 꿀렁이며 흔들었다.

       

       물이 든 자루처럼 출렁이던 몸에 돌연 쩍! 세로선이 그어지더니, 회색 괴물은 정확히 이등분되어 양옆으로 갈라졌다.

       

       크기가 조금 작아진 회색 괴물 두 마리가 서로를 마주 봤다. 

       

       회색 괴물은 생각했다. 끝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 지성의 끝자락을 천천히 넓혔다.

       

       지금 만들어 낸 또 하나의 회색 괴물은 조금 넓어진 지성의 산출물이다.

       

       지성과 약간의 힘 손실을 대가로 만들어 낸 일종의 분신체.

       

       사냥해라, 도망쳐라, 숨어라 같은 간단한 지시를 하나씩만 수행할 수 있는 분신이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

       

       말을 할 수 없는 분신체가 먹이를 사냥하기 위해 균열을 넘어 사라졌다.

       

       분신체는 따로 균열을 여닫는 능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분신이 귀환할 때까지 균열을 열여놔야 했다.

       

       “케… 니, 키르르륵ㅡ!! 스… 니, 닉…! ”

       

       또 시작이다.

       내부의 핵이 회색 괴물의 의지에 저항하며 요동쳤다.

       

       분신체를 만들며 힘을 나눈 까닭일까, 유난히 핵의 저항을 억누르기 버거웠다.

       

       회색 괴물은 고통에 겨워 한참이나 파르르 몸을 떨며 저항을 억누르는 것에 집중했다. 분신을 만들기로 한 결정이 조금 섣불렀던 모양.

       

       쉬지 않고 저항하는 핵을 완전히 부술 수는 없었다. 핵은 자신을 이루는 중심.

       완전히 망가뜨리면 자신의 구성이 무너진다.

       

       “키르륵. 핵의 저항, 누른다…”

       

       먹이는 분신이 잡아 올 것이니, 자신은 핵을 억누르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판단한 회색 괴물이 적당히 넓게 퍼진 둥지 위에 누웠다.

       

       점액질이 스르륵 움직이며 회색 괴물의 몸을 칭칭 덮었다. 그리하여 순백의 설원 위에는 까만 점액에 뒤덮인 거대한 고체가 탄생하게 됐다.

       

       그리고 설원은 고요하게 침묵했다.

       

       거세게 불어오는 눈보라는 시간이 멈추지 않고 흐르고 있다는 유일한 지표였다.

       

       그렇게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을까?

       

       다각… 다각…

       

       매서운 바람이 산맥 사이를 휘감는 설산의 어딘가에서, 문득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다각… 다각…

       

       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제법 많은 숫자의 말발굽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한 주의 끝, 금요일입니다…!! 여러분 모두 즐겁고 힘찬 주말이 되시기 바랍니다…!!!

    다음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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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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