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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6

        

         적의? 그게 아니라면 반감?? 딱 잘라 말하기 어려웠다.

         

         구경꾼도 다 술 마시러 들어간 터라 어디 보는 눈도 없겠다 거리낄 것 없다는 듯이 진심을 개방.

         

         갑자기 뭔지도 잘 모르겠고, 이유 또한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명백하게 투쟁심이 응축해서 형상화한 듯한 헬레나의 작열하는 태도에. 셋 중 둘은 기겁하며 자신도 모르게 용병으로서 주무기를 뽑아 들었다.

         

         데어데블은 문신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의 피부에 도배된 녹색 임플란트를 전부 밝게 활성화하며 임전태세로 돌입.

         

         녹턴은 물고 있던 담배를 쭈욱 빨아들여 필터 근처까지 태우며 권총 두 자루를 손끝에 건 채 휘리릭 돌렸다. …떨어진 거리에서 카타나에 겨냥 당했다고 총구를 선뜻 향하긴 뭐했는지 아직 약간 늘어트린 상태였지만은.

         

         “어쩐지…! 너무 얘기가 형편 좋게 잘 풀린다 했어!”

         “워워, 이 언니께선 친절하게 굴다가 갑자기 왜 이러실까?! 그렇게 나오시면 곤란한데! 난 한시라도 빨리 우리 누님한테 달려가고 싶다고!”

         

         “…걔가 왜 네 누님이야? 그. 리. 고!”

         

         쾅!!

         

         한 발자국 강하게.

         앞으로 내딛으면서 한 글자씩 말을 끊어 강조한 헬레나가 빈 칼집으로 주차장 바닥을 내려쳤다.

         

         파스스… 주변에 뿌옇게 치솟는 먼지와 자잘한 균열을 만들며 갈라진 도로 포장이 인상적이라고 할까, 지금부터 일어날 일의 예고편 같아서 오싹하다 해야 할까.

         

         그녀에겐 그들이 구면일지 몰라도, 데어데블 팀에게 그녀는 분명 아나스타샤와 관계는 있어 보이지만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감이 안 오는 상대.

         

         비록 그때 하베스트 플래닛 폐건물에서 쓰러진 세 사람의 의식이 남아있었다 한들, 탄도 방패를 날려서 사람 동강내던 복면 경찰 대장과 눈앞의 칼잡이를 곧장 동일시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오감은 미친듯이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아, 어중간하게 대충 싸우려 들다가는 줄초상 치르게 생겼다고.

         

         “응. 다시 생각해봐도, 약골들을 보낼 마음이 없어졌어. 덤벼, 진지하게.”

         

         사람을 무시하는 눈초리는 아니었다.

         깔보는 기색은 더더욱 없었고, 외려 잘근잘근 밟아서 그대로 돌려보내겠다는 각오가 듬뿍 담겼다면 모를까.

         

         그리고 헬레나가 유달리 열 받은 포인트와 모습을 정확히 본 도미노는 뭔가를 눈치챘다.

         

         타인에게 먼저 넉살 좋은 태도로 다가가는 건 팀장 역할을 맡은 호레이쇼의 큰 장점이기도 했으나, 그런 과시하는 듯한 말투를 당사자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지인에게도 하다가 된통 지랄이 났던 경우와 닮은 분위기가 약간이나마 있다는 걸.

         

         최근엔 지고지순한 순정파 사랑꾼으로 거듭나면서 난잡한 관계를 다 정리했다지만 이 여자 저 여자 후려보려 뺨 맞고 다니던 시절엔 특히나 흔했다.

         

         그렇다는 건… 살짝 조졌는데.

         역시 상대가 만족할 때까지 어울려 줄 수밖에 없나? 다행히 뭐 순서를 정해서 차례차례 덤비라는 말 같은 건 없었으니 적당히 셋이서 번갈아가며 그녀의 체력 소모를 유도하면….

         

         “난 빠지지. 내가 괜히 그녀와 드잡이질을 시작했다간 농담으로 안 끝날 것 같군.”

         

         “……아니, 진심?”

         

         오멘이 돌연, 팔짱을 끼더니 뒤로 슬쩍 물러나버렸다.

         

         깐깐한 면모가 아무리 강해도, 다혈질 인간 전차의 대명사로 하도 명성이 드높은 탓에 닉네임조차 없이 그냥 이름 두 글자만으로 고유 명사처럼 통하는 녀석이 이런 시비에 걸려놓고도 모른 척을?

         

         말하는 투로 보건대 싸워 봤자 투여할 영양제만큼의 이득이 없다거나, 진심으로 치고 박으면 서로가 위험할 것 같으니 자기가 사리겠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는 것 같기는 했는데… 정말로?

         

         그러고 보니 평소에 관심 없는 척하던 것치곤 따로 탐정을 고용할 만큼 아나스타샤를 모시고 싶어하던 게 오멘이니까 뭔가를 그녀의 행적에 관한 걸 더 알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도미노의 머리속을 뒤늦게 스쳐 지나갔지만 깨달음이 약간 늦었다.

         

         지금은 입으로 떠드는 것보다 몸으로 증명하는 게 먼저였으니.

         

         “빠질 사람은 빠지고, 둘 남은 걸로 알면 되지 그럼?”

         “…?”

         

         어라? 어째 한기가 풀풀 날리는 목소리가 아까보다 묘하게 가까이서 들리는 것 같은.

         

         “미친!? 으왁!!”

         

         살짝 밑으로 내려갔던 고개를 들고 시선을 바로 하자 어느새 바로 앞까지 닥쳐온 뭉툭한 칼집 끄트머리가.

         

         다급하게 머리를 뒤로 꺾듯 젖히자, 콧잔등에 화끈한 느낌을 남기며 헬레나의 ‘인사’가 빗나갔다.

         

         어떻게, 그 충격만으로도 쌍코피가 팍 터진 걸 보면 과연 빗나갔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기는 했는데 아무튼!

         

         잘만하면 곧 아나스타샤와 재회할 수 있다는 사실에 정신이 팔렸는지, 아직도 말발로 어떻게 상황을 넘길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있던 호레이쇼의 두 눈이 휘둥그레 떠진다.

         

         한 번의 가벼운 도약만으로 멀리서 간신히 인사나 나누던 거리를 순식간에 좁혀 그와 도미노의 사이를 가르고 들어온 모양인데.

         아무리 보기 좋은 늘씬한 다리를 가지셨다지만 이건 그래도 너무 각력과 밸런스 감각이 뛰어나신 게 아닌지.

         

         파지직—!! 쩌엉!!

         

         한 줄기 섬광이 되어 내달린 데어데블 호레이쇼가 자기 쪽으로 휘둘러진 카타나 날과 맞부딪혔다.

         

         다구리를 놓는 건 영 폼이 안 산다든가, 여기까지 나와서 그런 걸로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다든가, 배부른 투정을 부릴 틈 따위는 없었다.

         

         찢어지는 것보다 감싼 내용물이 파열되는 편이 더 잦다는 신소재로 만들어진, 팔뚝까지 보호하는 전투 장갑은 물론 그 밑에 있는 재생 피부와 강화 내골격마저 찌르르 울리는 마당에 그런 여유가 있을 리가!

         

         “성깔이 좀 까칠하신 거 아냐?? 언제는 당사자 허락만 있으면 연결시켜 준다더니 왜 갑자기 인증 제도를 도입해!”

         

         “원래는 안 그랬는데… 이젠 적어도 한 가지에 관해서는 까다롭더라도 그렇게 욕심부리며 살려고…!!”

         

         스스로의 내면을 돌아보는 건 물론이고, 미리 준비 운동까지 끝내고 왔겠다. 상쾌하기 그지없게 대답하는 헬레나야 스트레스를 풀 듯 몹시 즐거워 보였지만… 날벼락을 맞은 두 사람은 식은땀을 줄줄 흘리느라 바빴다.

         

         치사하고 뭐고 따질 겨를이 어딨나?

         

         그녀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자 일단 흩날리는 머리카락이라도 붙잡으려고 뻗은 손아귀가, 부웅! 하고 어이없게 허공을 가른다.

         

         다급하게 주먹이라도 쥐고 후려갈기는 방향으로 노선을 틀었지만 억지를 부린 탓에 효과는 미미하달까.

         

         오히려 그렇게 나오는 상대는 많이 상대해 봤다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팔꿈치로 찍어 누르듯 받아낸 그녀의 대응 탓에 손가락만 얼얼하게 짓눌렸으니.

         

         임플란트를 얼마나 많이 박았는지 개조율을 자랑하는 경연 대회라면 모를까, 무지막지한 신체 능력 증폭 효율을 자랑하는 헬레나에게 호레이쇼는 상성이 나빠도 너무 나빴다.

         

         …더럽게 불쌍한 표현이지만 일종의 하위 호환이 되어버린 격투가의 애환이 느껴진다 하면 이해가 좀 빠르려나.

         

         빠각!

         

         “아으악!? 거 진짜 존나 너무하네!! 힘싸움이 그렇게 강하면 테크닉이라도 좀 모자라셔야 하는 거 아니오! 안 그래도 칼침 한 번 막을 때마다 뼈가 부러지는 것 같은데 가만히라도 계셔 주시지!”

         

         “노력이나 시도는 가상한데, 칭얼거리는 실력만 가지곤 그 애한테 아무 도움이 안 돼. 일부러 짐덩어리 노릇을 할려고 찾는 건 아닐 거 아냐?”

         

         “이것 참, 그렇게 못난 편은 아닌데 우리가!”

         

         남자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논담을 두드린 틈을 타서 탕, 타당탕!! 리드미컬하게 울리는 총성과 함께 쌍권총에서 뿜어진 탄환 세례가 날아들었지만 모조리 칼집과 날이 선명한 호선을 그리며 빗겨 쳐냈다.

         

         그래, 도미노의 사정이라고 별로 호레이쇼보다 나을 게 전혀 없었다.

         

         각자 무기는 뽑아 들었어도 그 테두리는 어디까지나 시험, 전력으로 살인하러 달려드는 게 아닌 실력 테스트.

         

         하지만 진짜 응급 처치론 위험할 수도 있는 급소를 제외하고 정교하게 팔다리만 노리고 있어서 역으로 조금 공격 패턴이 뻔해지기는 했어도 무려 총알이다. 총알.

         

         참격이 닿을까 말까 하는 아슬아슬한 간격을 유지한 채로, 지근 거리를 맴돌며 온갖 각도에서 다채롭게 퍼붓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처리할 문제가 아니란 말이다 시발!

         

         “젠, 장. 스으읍…!!”

         

         야박한 오멘은 친구들이 두들겨 맞는데도 모르쇠로 일관.

         평소라면 든든한 전위 겸 중위로 앞뒤를 오가며 적을 틀어막아야 할 데어데블은 드물게 기량 차이가 나서 발 묶기조차 급급한 상태.

         

         이대로는 안 된다.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는 구도에 균열(Crack)을 만들 변수가 필요하다는 각오로 꺼낸 꽤 지독한 전투 마약 흡입기를 입에 문 그가 한 모금 들이마시자마자.

         

         괘씸한 생각은 진작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혹은 가진 한 수가 있으면 어디 보여보라는 듯이 헬레나의 매서운 칼질이 짓쳐 들었다.

         

         삐이이———!!

         

         혈관을 타고 폭주하는 화학 물질의 향연, 네트워크의 심연으로 다이브한 해커만큼은 아니더라도, 그의 미친듯이 가속된 체감 시간 속에서 대기를 가르는 카타나가 연주하는 소음은 마치 이명처럼 음절이 하나하나가 엉망진창 찢어져 있었다.

         

         하지만 모든 사물이 말도 안 되게 느리게 느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원심력의 가속까지 최대로 받은 그 서늘한 칼날은 숫제 소리와 비슷한 속도로 목표물을 쪼개기 위해 접근 중.

         

         총을 붙들고 있는 팔 자체를 절단하는 걸 노리는 게 아닌 무기만 망가트리는 걸 노리는 모양새다.

         

         …맞다. 제약을 걸고 싸우고 있는 건 그녀도 똑같다. 그렇다면… 파고들 허점도 아마 똑같이 존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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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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