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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6

     지브롤터성 내부의 핵심 그림자는 전부 정리했다.

     이는 내가 신경 쓸 그림자의 경우고, 아직 지브롤터라는 ‘영지’안에는 제국의 그림자가 남아있다.

     애초에 제국 그림자 뿐만 아니라, 제국인도 넘쳐나는 게 현실.

     “누아르. 네 화이트들이 지브롤터 사람인 이상, 지브롤터 사람으로서 모범을 보여야겠지?”

     “형, 뭘 시키려고?”

     “내가 했던 것처럼, 다른 그림자들을 정리하라고 전해. 갈 사람이 지금 떠나지 않고 몰래 지브롤터에 남아서 배신하려고 하는 움직임을 보인다면, 즉시 내 앞으로 끌려와서 목이 잘리거나 그 자리에서 즉결처형을 당할 거라고.”

     

     화이트들은 내게 직접 사상검증을 당했다.

     본인들이 당했기에, 다른 이들에게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전파할 수 있다.

     “지브롤터 성에서 정리된 이들을 바르셀로나로 파견하고, 또 거기에서 추려진 이들을 지브롤터 영지 전체로 퍼뜨려.”

     여러 단계에 걸쳐, 조직적으로 그림자를 관리하기 위한 방식.

     “가장 위에 웬즈데이와 화이트가 있고, 그 아래에 바르셀로나 행정관이 있을 거고, 그들이 다시 그림자들을 다루도록 하는 거다. 알겠지?”

     군대에서 만인장이 천인장을, 천인장이 백인장을, 백인장이 십장을, 십장이 나머지 병사를 관리하는 체계가 괜히 존재하는 게 아니다.

     “편성 단위는…웬즈데이에게 맡기지. 제국식으로 하든 노스트럼식으로 하든, 그건 신경 쓰지 않겠다. 익숙한 방향으로 처리하라고 해.”

     제국은 사단이나 여단과 같은 체계가 잡혀있어서 노스트럼 왕국보다는 더욱더 체계적이기는 하지만-

     ‘체계와 형식을 잘 잡는 걸로 전쟁에서 이겼다면, 제국은 이미 100년 전에 승리했겠지.’

     제국이 협곡 너머의 대륙에서 유일한 제국이된 제국력 원년.

     협곡 너머에서 ‘테르시안 제국’ 이외의 다른 모든 제국을 없애버리고, 군소왕국들만 남겨둔 시점.

     이미 제국의 군사체계는 그 때 개혁이 일어났고, 그 체계는 100년에 걸쳐 그 형태를 유지해오고 있었다.

     선대 황제가 그 체계를 이용해 다른 모든 왕국들을 점령했다고 한다면, 지금의 합스베르크 황제는 군대에 마도공학을 접목하여 마도과학화를 이루어낸 셈.

     그러나 그런 체계보다도 더 중요한 건 무력, 힘이다.

     황제와 지브롤터 사이에서 선택을 내리지 못하는 이들도 지브롤터의 힘을 보면 결정을 확실하게 내릴 수 있을 터.

     “지브롤터 내부는 맡긴다. 나는 바로 전장으로 갈 테니까, 혹시나 뭔가 급하게 이야기를 나눌 부분이 있으면 이걸로 연락하고.”

     나는 누아르에게 후작성 창고에 있던 통신용 수정구를 건넸다.

     “어지간한 건 웬즈데이를 통해서 처리하면 될 거다. 너는 웬즈데이의 입이 되면 돼.”

     “기사들에게 웬즈데이의 명령을 그대로 옮기면 된다는 거지? 알겠어.”

     누아르는 충분한 무력을 가지고 있지만, 첩보조직을 다루는 방향은 웬즈데이가 훨씬 낫다.

     “누아르.”

     나는 누아르의 어깨에 다시금 손을 올렸다.

     “부디, 나를 실망시키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당연한 말을.”

     누아르는 물러서지 않고,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언제 형 실망시킨 적 있어?”

     “…….”

     단언하자면.

     “없지.”

     이번에는, 누아르는 나를 한 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다.

     아, 뭐.

     ‘7살 때는 누구나 실수할 수 있지.’

     어른이 된 이들도 실수를 하는데, 7살에 가문의 시종을 믿고 화장실을 갔던 것 정도는 딱히 실수도 아니다.

     잘못이 있다면 패닉룸에서 장기간 머무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화장실 같은 내부 설비를 갖춰놓지 않은 게 잘못이었지.

     “집안 단속을 부탁하마. 혹시나 나한테 연락이 안 된다면, 즉시 협곡에 계신 아버지를 부르고.”

     “물론.”

     아무래도.

     구 지브롤터 백작령, 순수한 의미에서의 지브롤터는 믿고 전장으로 향할 수 있을 것 같다.

     “가급적이면 세이레네 쪽으로 내려올 생각은 하지 말고.”

     “…응? 왜?”

     “나중에 결과가 나오면 알려주도록 하마.”

     나는 누아르의 어깨를 한 번 꾹 누른 뒤, 바로 영주성 밖으로 빠져나갔다.

     영주성 밖, 지브롤터 성에 새롭게 생긴 시설 중 하나-주차장.

     “가실까요, 도련님?”

     “예, 따라오시죠.”

     나는 기사와도 같은 제복 차림의 아스타시아와 함께, 황금으로 빛나는 마도자동선에 올랐다.

     구구구.

     바퀴가 굴러간다.

     비행선이 아닌 일반 마도자동선으로서, 철도를 따라 그대로 세이레네를 향해 남하한다.

     핏물이 짙게 흐르는 전장을 향해.

     * * *

     [제국력 1월 1일, 오후 9시. 세이레네 백작령 경계.]

     어둠이 짙게 깔린 늦은 밤.

     성 밖 농가의 소작농들은 하나둘 촛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 시각, 철도를 따라 달리는 세이레네 백작령으로 향하는 길에는 풀벌레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뿌우우ㅡㅡㅡ

     멀리서 뿔피리 소리가 울린다.

     철도의 전방, 간이역에 정박해있는 일반 마도자동선을 향해 속도를 늦추며 간이역에 그대로 들어간다.

     “지브롤터 제2 기사단, 카를로스가 도련님께 보고드립니다.”

     “상황은?”

     “…….”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세이레네 백작령에 관한 모든 관리를 맡고 있던 카를로스 경은 창백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것이….”

     뜸들이는 건 아니다. 

     그저 차마 말로 할 수 없는, 평소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끔찍한 일들이 현실에 일어났기에 말문이 막혔을 뿐.

     “전멸했습니다.”

     전멸.

     쉽게 언급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난민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제국은…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조리 쏘아 죽이고 있습니다.”

     “…….”

     “제국군으로부터 도망쳐 온 이들의 말이라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만, 머스킷의 마탄에 몸이 부서진 채로 도망쳐온 이들이 수 백이 넘습니다.”

     황제가 미쳤다.

     노스트럼 사람 입장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너무나도 끔찍한 상황이 세이레네 백작령에서 펼쳐지고 있다.

     “현재 임시로 병력을 차출하여 임시 거주구역을 만들었으나, 약 20% 가량은 저희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이탈하여 북쪽으로 도망치고 있습니다.”

     “지브롤터 성으로?”

     “…예.”

     세이레네 백작령 근교에 있던 이들이 제국군의 총을 피해 지브롤터로 도망쳐온다.

     아마도 지금쯤 아침부터 급하게 도망친 이들이 성에 일부 도착하지 않았을까.

     “나머지 80%는 움직일 수 있고?”

     “예. 다행히.”

     “그렇다면 됐다. 마도자동선을 통해 걸음이 느린 약자부터 태운 다음, 그들을 전부 렘버리로 보내는 게 좋겠어.”

     “렘버리….”

     카를로스 경은 잠시 침을 꿀꺽 삼켰다.

     “그곳은 노스트럼이 아닙니까.”

     “그렇지. 노스트럼이지.”

     지브롤터와 노스트럼.

     구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으면서도, 현재 상황은 둘을 구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노스트럼은….”

     “짧게 요약하자면, 나리아 여왕께서 왕위에 오르셨지.”

     지브롤터도 지브롤터지만, 노스트럼도 현재의 상황을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나리아 여왕이 20살이 되자마자 살해하려고 했다.”

     나리아는 세인트 지오의 암살미수를 온 나라에 전파했다.

     “20살이 되는 해에 죽여서 왕위 계승자를 없앤 다음, 아이를 새로 낳은 뒤 20년 동안 또 집권을 하려고 했다.”

     “그건….”

     “참으로 무능왕 다운 처사지.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을 희망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에게 제대로 오물을 투척해대는 권력자의 추잡한 야욕. 그것을 나리아 여왕이 지브롤터의 도움을 받아 멋지게 이겨냈다.”

     “……왜 설득력이 있는 걸까요?”

     “무능왕이 머저리같은 짓을 하다가 죽은 거니까.”

     “…….”

     카를로스 경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 있겠지만, 납득할 수 없어도 납득할 수밖에 없다.

     “자신을 죽이려고 한 아버지를 쓰러뜨리고 왕위에 오른 여왕이라….”

     “그리고 그 여왕은 지금 아주 심각한 문제에 당면했지. 제국의 침공. 마치 거짓된 황금에서의 상황이 재현되는 듯한 현실.”

     “도련님. 그.”

     “알아.”

     나는 카를로스 경의 시선이 닿은 난민 밀집구역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레이 지브롤터가 제국을 자꾸만 노스트럼으로 끌어들이는 바람에 이 전쟁이 일어난 거다. 그런 말을 하고 있겠지.”

     “죄송합니다. 저들은….”

     “알아. 어떤 이들은 가족을 잃고, 어떤 이들은 재산과 고향을 전부 내던지고 도망쳐왔어. 당연히 원망할 대상이 필요할텐데, 당장 생각나는 건 이전부터 매국노라고 욕을 먹던 사람 정도거든.”

     익숙해서 딱히 문제는 없다.

     ‘진짜 매국노라고 욕 먹었던 시절도 있었는데 뭘.’

     나는 괜찮다.

     하지만 가족은 아니다.

     저들이 지브롤터가 동정과 자비를 베풀어 성 안으로 들여보내줬는데도 지브롤터를 향해 구시렁거린다면 즉시 처리할 터.

     “우리를 원망한다면, 우리를 원망하지 않게 하는 게 제일이겠지.”

     그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마침 난민들을 받아갈 분들이 오시는군.”

     저기, 비룡을 타고 하늘을 날아오는 이들에게 맡기는 게 제일이다.

     “그레이!!”

     넓은 공터에 착지한 비룡으로부터 금발을 묶은 여인, 나리아가 나를 향해 달려왔다.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여왕 전하.”

     “도대체…하아. 제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저도 모르겠습니다.”

     나도 뭐라고 판단을 하기가 어렵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이건 제가 아는 합스베르크 황제의 깔끔한 방식과는 결이 다른 방식이라는 겁니다.”

     “…….”

     “여왕 전하. 그런 생각 종종 하지 않습니까? 내가 왕이라면. 내가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의 자리에 있었다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는 건가?”

     나리아의 뒤로, 중무장한 검은 갑옷의 윈체스터 대공이 나리아를 지키듯 다가왔다.

     “자네가 합스베르크 황제였다면 이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초토화 작전은 펼쳤을 겁니다. 전부 죽이기로 마음먹은 순간 이상, 노스트럼을 전부 죽인다는 건 전쟁의 최우선 과제니까요.”

     “…그런 것 치고는 너무 느리다?”

     “예.”

     군사를 다루는 만큼, 윈체스터 대공이 바로 내가 말하고 싶은 바를 눈치챘다.

      

     “만일 저였다면, 지금쯤 왕도 톨레도까지 진격했을 겁니다.”

     “…….”

     “세이레네 백작령을 점거하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고, 후발대에게 백작령 정리를 맡긴 다음 선발대는 그대로 이 노스트럼 전역에 깔린 철도를 이용해 다른 영지로 진격시켰겠죠.”

     지브롤터가 급하게 협곡의 철도를 끊어버렸던 건 적의 신속한 진격을 막기 위함이었다.

     협곡의 문을 닫을 수 없었어도, 철도는 무조건 박살을 내놓았을 것이다.

     나는 보았다.

     지브롤터를 넘어선 제국이 얼마나 빠르게 노스트럼 전역을 장악했는지.

     전쟁이 1개월만에 끝난 건 1개월 동안 수성을 해서 그랬던 거지, 제국의 군대가 왕도에 1개월만에 도착했다는 말은 아니니까.

     “물론 마냥 느리게 움직이지는 않겠지만-”

     “도련님, 저기!”

     카를로스 경의 외침에, 저 멀리서 불빛이 반짝였다.

     

     “…미친듯이 빠르지는 않지만, 긴장을 놓으면 바로 당하는 정도.”

     노스트럼의 땅에 깔린 철도를 따라, 제국군의 마도자동선이 천천히 달려오고 있다.

     “이것 참.”

     우리가 있는 간이역을 향해.

     ‘시험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

     마치, 우리가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지 시험을 하는 것처럼 제국은 움직이고 있다.

     “저건….”

     “보지 마십시오, 여왕 전하.”

     그러면서도 동시에, 너무나도 착실하게 전쟁을 하고 있다.

     “눈 버립니다.”

     천천히 다가오는 마도자동선의 앞.

     마치 죄수를 묶어둔 것처럼, 익숙해보이는 누군가가 전신이 벗겨진 채 선수에 묶여있었다.

     “하여튼.”

     세이레네 백작의 시신이.

     ‘시체팔이 하나는 정말이지,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하는 사람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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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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