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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6

   최후의 방주.

   약 100만 년 전에 형성되었던 환경 속을 크라슈가 질주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등 뒤에는 하링이 최대한 몸을 딱 달라 붙인 채로 있었다.

     

   처음에는 크라슈의 등에 업힌다는 사실에 부끄러워했던 하링이었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크라슈가 달리는 전속력은 하링이 오러를 이용해 몸을 보호해야할 만큼 빨랐다.

   덕분에 하링은 크라슈의 등 뒤에서 눈도 겨우 뜨고 있었다.

     

   ‘크라슈, 이렇게나 강해졌던 거구나.’

     

   최근에는 크라슈가 싸우는 모습보다는 다쳐 오는 모습을 더 많이 봐온 하링이다.

   그래서인지 하링은 크라슈가 이 정도로 강해졌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하링 또한 훈련을 통해 또래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강해지고 있지만.

   크라슈에게는 한참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었다.

     

   하링의 몸에 힘이 살짝 들어갔다.

   앞으로 얼마나 더 노력해야 크라슈의 옆에 설 수 있을까.

     

   잘은 몰라도 그 노력의 길이 무척이나 험난할 것임을 느꼈다.

     

   동시에 그녀의 머릿속에는 자꾸만 결혼식을 올리던 크라슈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비앙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그 눈은 하링이 크라슈에게서 한 번도 본 적 없던 눈이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크라슈의 눈은 분명 자상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 비앙카와 같은 사랑은 분명 담겨 있지 않았었다.

     

   그 사실이 자꾸만 하링의 마음을 무척이나 쓰라리게 만들었다.

     

   ‘차라리 자각하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이미 자각해버린 이 마음을 하링은 점점 더 억누르는 것이 힘들어졌다.

     

   질투하고 싶지 않다.

   크라슈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다.

   단지, 옆에 있는 것으로 만족하고 싶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욕심은 자꾸만 커져만 갔다.

     

   미움받고 싶지 않다가 아닌 자신도 사랑 받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말이다.

     

   하링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자신이 욕심쟁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욕심이 날이 가면 커져가니 그녀도 갈수록 감당하기 힘들어졌다.

     

   비앙카의 자리를 대신 할 수는 없더라도 자신을 바라봐주는 크라슈의 눈에 애정이 깃들었으면 했다.

     

   그래서 더더욱 훈련에 매달렸던 걸지도 몰랐다.

   그의 곁에 서있다 보면 언젠가 눈길 한 번이라도 줄까 싶어서.

     

   하지만 크라슈가 그런 이가 아니라는 건 하링이 가장 잘 알았다.

     

   ‘나는 어떻게 해야…….’

     

   자꾸만 가슴 속 깊은 곳을 쿡쿡 찔러오는 감정에 하링이 애달픔을 느꼈다.

     

   “하링.”

     

   그 순간 크라슈가 불렀다.

     

   “아, 응!”

     

   자기 마음이 괜히 찔려 놀란 하링이 무심코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크라슈는 앞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기 있는 게 폐주 버섯인 거 같은데?”

     

   크라슈가 가리킨 곳에는 정말로 폐주 버섯이 있었다.

     

   “아, 맞아. 저거야.”

     

   하링의 이야기를 들은 크라슈는 그대로 도약하여 폐주 버섯 앞에 멈춰 섰다.

   그러고는 하링을 내려주자 그녀는 빠르게 채취를 시작했다.

     

   이걸로 내단을 빼내기 위한 마지막 조건은 채웠다.

     

   채취를 마친 하링이 등을 펴고,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거기에는 말없이 어느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크라슈가 있었다.

     

   “……크림슨가든.”

     

   크라슈가 짤막하게 한 이름을 읊조린 순간.

     

   콰광!

     

   어디에서인가 폭발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놀란 하링이 그 방향을 보았다.

   그리고 하링은 무언가 끔찍한 기척이 모여드는 감각을 받았다.

     

   좋지 않다.

   저게 무엇인지 몰라도 좋지 않다.

     

   “크, 크라슈.”

     

   하링이 무심코 크라슈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옷깃을 쥐었다.

   그러자 크라슈는 바로 그녀를 감쌌다.

     

   “괜찮아. 문제 없어.”

     

   그것 하나만으로 하링은 불안감이 빠르게 해소됐다.

     

   “지금 바로 입구로 갈 거야. 위치 알려줄 수 있겠어?”

     

   크라슈는 이번에도 하링에게 업히라고 등을 보였다.

   하링도 위급 상황임을 눈치채고, 아까와 같은 반응 없이 바로 크라슈의 등 뒤에 업혔다.

     

   “응, 길은 다 외우고 있어.”

   “중간에 길이 바뀌어도 당황하지 말고, 계속 알려줘.”

     

   길이 바뀔 수도 있다.

   그 말을 들은 하링의 얼굴도 따라 굳었다.

     

   금역이 바뀐다는 것은 곧 금역에서 무언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소리와 같았다.

   정말 심상치 않은 사태가 터졌음을 하링도 눈치챈 것이었다.

     

   하링을 업은 크라슈는 바로 엑셀을 발동시키며 질주하기 시작했다.

   하링은 크라슈를 꽉 끌어안은 채 최대한 반동을 견뎌냈다.

     

   크라슈의 달리는 속도가 아까보다도 훨씬 빨라졌기 때문이었다.

     

   하링은 바람 탓에 감기려는 눈을 애써 떴다.

   크라슈에게 길안내를 해야했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콰과과과광!

     

   아까전에 울려퍼지던 소리가 훨씬 더 커다랗게 들려왔다.

   동시에 주변이 거세게 흔들렸다.

     

   하링이 그 방향을 본 순간 그녀는 넋놓듯 두 눈을 멍하니 떴다.

     

   그곳에는 산 위에서 새까만 연기가 솟아 오르고 있었다.

   동시에 산에서 분출된 용암이 넘쳐 흐르며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나갔다.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자연재해가 그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콰과광!

     

   하지만 자연재해는 거기서 그칠 줄을 몰랐다.

     

   저 하늘 위, 내려친 번개와 함께 폭풍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끝없이 쏟아지는 폭풍우는 순식간에 강물을 불리며 홍수로 변해갔다.

     

   또다른 곳에서는 용오름이 발생했다.

   용오름은 바닥에 있는 것들을 전부 바람의 힘으로 끌어 올려 모든 걸 찢어 발겼다.

     

   눈에 보이는 모든 장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자연재해가 발생하고 있었다.

   이러한 광경은 하링의 난생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순간 세상이 멸망한 건가.

   그런 착각이 들 만큼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휘몰아치고 있었다.

     

   “최후의 방주에 심어진 최흉의 씨앗이 폭주를 시작해서다.”

     

   그런 자연재해를 바라보며 크라슈가 하링에게 말을 전했다.

   그러자 하링은 당혹스러운 눈으로 크라슈를 봤다.

     

   크라슈는 이 사태를 이미 짐작하기라도 했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가끔 보면 크라슈는 다른 이들은 알 수 없는 일들을 무척이나 많이 알고 있었다.

   지금도 이 상황이 익숙하기라도 한 듯 크라슈의 눈에 당혹감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하링은 왜인지 이 의문을 입에 담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이 말을 담는 순간 크라슈가 멀리 떠나버릴 듯한 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링이 그런 기분에 휩싸인 채 크라슈를 보는 중.

   달려 나가는 크라슈는 인상을 와락 일그러트리고 있었다.

     

   크림슨가든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최흉의 씨앗이 폭주할 건 어느 정도 예상했다.

     

   하지만 크림슨가든과 크라슈는 그 사태를 예견하고 있었고, 실제로 그것을 막기 위해 시즐리 쪽에 정보를 전했다.

     

   ‘그리고 시즐리는 그 정보를 토대로 첩자를 쫓고 있었고.’

     

   그런데 그렇게 정보를 전했음에도 최후의 방주가 끝내 폭주했다.

     

   그 말이 가리키는 게 무엇인가.

     

   ‘무언가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터졌다.’

     

   그것도 독왕이 상주하고 있는 라그렌에 말이다.

     

   하링을 생각해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지만, 크라슈는 지금 확신하고 있다.

   라그렌이 위험하다.

     

   [ 내 눈도 막혔다. ]

     

   크림슨가든도 라그렌 쪽 상황을 제대로 살피지 못해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에벨아스크가 급히 시체를 보내보고 있긴 하지만.

   산세가 험한 라그렌에 시체를 보내는 것은 어찌 되었든 시간이 걸렸다.

     

   결국 크라슈가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콰광!

     

   그 순간 크라슈도 어느새 자연 재해에 발을 들였다.

   아까 전 멀리서 보이던 폭풍우가 어느새 크라슈 쪽에도 도달했기 때문이었다.

     

   크라슈의 발목이 빗물에 잠기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궁!

     

   동시에 저 멀리서 불어난 홍수가 몰아쳐 왔다.

     

   콰과광!

     

   하늘에서는 낙뢰가 작렬하며 터져 나왔다.

   최후의 방주는 지금까지 세계에 있었던 모든 자연재해를 재현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직은 괜찮다.

   하지만 곧 크라슈는 곧 쩌적하고 무언가 얼어붙는 소리를 들었다.

     

   크라슈가 고개를 번쩍 든 순간 하늘에서 내리던 빗물이 얼어붙는 광경이 보였다.

   동시에 발목이 잠길 만큼 차올랐던 빗물 또한 얼어붙는 것이 보였다.

     

   한순간에 온도가 급감하며 빙하기가 들이닥친 것이다.

     

   빙하기가 크라슈를 바짝 조여오기 시작했다.

   크라슈 혼자라면 모를까, 지금 크라슈는 하링을 업은 상태다.

     

   “하링, 더 꽉 잡아!”

     

   크라슈가 소리를 내지르며 멸화침식의 힘을 끌어 올렸다.

     

   그러고는 하링이 더 꽉 끌어안음을 확인한 즉시 크라슈가 전력을 다해 달렸다.

     

   콰아아아앙!

     

   주변을 초토화 시키며 질주해나간 크라슈가 순식간에 그 장소에서 멀어졌다.

     

   빙하기조차 크라슈를 채 쫓지 못하고, 거기서 그친 순간 크라슈의 눈에 어느덧 성벽이 보였다.

     

   갑작스러운 자연재해 탓인지 성벽도 이리저리 난리도 아니었다.

     

   하지만 크라슈는 그보다도 성벽 위에서 느껴지는 새까만 기척을 느꼈다.

   크라슈는 기척을 느낀 즉시 그것이 무엇인지 눈치챘다.

     

   세계 침식자다.

   익시온 새끼들이 확실했다.

     

   “아주 기회 잡았다. 이거지.”

     

   이쪽이 최후의 방주에 들어간 것을 알고 냉큼 틈을 노린 거겠지.

     

   그러나 이쪽을 얕봐도 너무 얕봤다.

   크라슈 또한 그런 건 늘 상정해 두고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 거 하나하나 다 위험하다고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으면 세상은 지킬 수도 없으니까.

     

   그리고 이쪽은 익시온은 알지 못하는 폭탄 목걸이 하나가 걸려 있다.

   익시온 놈들을 쑥대밭으로 날려버릴 폭탄을 말이다.

     

   ‘사상 최강의 보험이다.’

     

   그러나 이것은 최후의 수단.

   익시온 놈들을 확실히 청소해버릴 수 있는 확신이 있을 때 꺼내야 하는 마지막 수였다.

     

   그러니 할 수 있는 한 스스로 힘으로 최대로 맞서야 했다.

     

   “하링, 인비저블을 걸 수 있겠어?”

     

   크라슈가 지닌 수 중에 하나.

   오래전 하링과 함께 호흡을 맞춰 봤던 크라슈가 하링에게 물었다.

     

   하링은 머리카락이 다 날리는 모습으로 애써 크라슈의 등에 붙어 말했다.

     

   “할수으이쓰어!”

     

   이런 상황에도 순간 웃음이 터질 뻔한 크라슈가 겨우 참았다.

     

   의지에 찬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나니 덕분에 힘이 샘솟는다.

     

   “반동 조심해.”

     

   크라슈가 하링의 하체를 감싸던 손 하나를 풀고, 우뢰성을 뽑아 들었다.

     

   그러고는 몸 전체에서 멸화침식을 화려하게 태우기 시작했다.

     

   어느 놈이 기어들어 왔는지는 몰라도.

   똑똑히 알려주마.

     

   이쪽을 건드리면 엿 된다는 걸 말이다.

     

   크라슈가 도약과 함께 모습이 흩뜨려졌다.

   곧이어 순식간에 성벽까지 도달한 크라슈가 순식간에 바닥을 향해 발을 뻗었다.

     

   콰앙!

     

   발에 담긴 힘이 어찌나 강했는지 땅이 거칠게 흔들렸다.

   하지만 그러한 흔들림에도 하링의 인비저블 덕분에 아무도 그곳에 크라슈가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순식간에 하늘로 솟구친 크라슈가 끝내 성벽을 넘어선 순간.

     

   성벽 위에 새까만 형체가 보였다.

   그 형체는 성벽의 위에 앉은 채 하늘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놈의 모습은 보아하니 다른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세계 침식의 힘을 둘러 공간을 왜곡시켰나.’

     

   하링의 인비저블과 같이 몸을 숨기는 수단을 지닌 놈이었다.

     

   그러나 크라슈에게는 어림도 없는 이야기였다.

   세계 침식을 다루지 않는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겠지만, 세계 침식을 다루는 크라슈에게는 뻔히 보였으니까.

     

   “멍청한 인간 놈들, 보이는 게 없으니 우왕좌왕하는 꼴이 우습기 그지없구나.”

     

   거리가 가까워지자 놈의 목소리가 들렸다.

     

   크라슈는 놈의 정체를 바로 꿰뚫어 보았다.

     

   귀문(鬼門), 아돈.

   드라드 족으로 카멜레온과 비슷하게 생긴 놈이다.

     

   특징은 극도의 인간 혐오주의자.

     

   회귀 전 과거.

   놈이 머물던 거처에서 발견된 유골만 하여도 수백 구 가까이 되었으며 근방에서 일어난 인간 납치 사건은 대부분 저놈이 관련되어 있었다.

     

   세계 침식자 중에서도 가장 악질 중의 악질.

   지금도 아돈은 현상금이 걸려 있는 세계 침식자였다.

     

   크라슈의 두 눈이 거세게 타올랐다.

   크라슈의 검에 자비 없는 불길이 타올랐다.

     

   오히려 운이 좋았다.

   아돈은 실력에 비해 도주하는 것이 특출난 놈으로 세계 침식자 전문인 락테아의 눈까지 피한 놈이니까.

     

   그러니 크라슈는 힘을 쏟아 부움과 함께 백염으로 타오른 검을 전력을 다해 내질렀다.

     

   퍼걱!

     

   “크헥?!”

     

   순식간에 크라슈의 검이 아돈의 심장을 꿰뚫었다.

   아돈의 두 눈이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본 듯 크라슈를 돌아보았다.

     

   설마하니 자신을 꿰뚫어 본 이가 있다고 생각도 못 했을뿐더러.

   크라슈가 등 뒤에서 나타날 때까지 아무런 기척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투명화를 쓸 수 있는 놈이 투명화를 쓸 수 있는 상대에게 죽는 운명.

   그 기구한 운명을 고하듯 크라슈의 눈은 차갑게 식었다.

     

   “남 비웃으면서 자기 운명 같은 줄은 모르네.”

   “이, 인간 따위가…….”

     

   아돈이 입에서 핏물을 뚝뚝 흘리며 두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그 눈빛에 크라슈는 비웃음을 흘려줄 뿐이었다.

     

   “아쉽게도 인간이랑 멀어져서.”

     

   놈의 말이 채 마치기도 전에 검에서 시작된 불길이 순식간에 아돈을 집어삼켰다.

     

   아득바득 세계를 넘어와 지금까지 살아온 범죄자의 말로는 참으로 허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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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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