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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6

       

       

       ‘수컷 공룡들을 후천적 암컷으로 만들었다니……?’ 

       

       무슨 말인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아 설명을 부탁하니,

       

       『나는 대동아공영회가 보유한 기술에 접근할 수 있네.』 

       

        우 박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설명을 시작했다.

       

       『그리고, 대동아공영회는 일본의 동맹국 도이츠의 기술도 보유하고 있었지. 기술자료들을 모아놓은 서고에서, 나는 흥미로운 기술을 하나 찾아냈다네.』

       『흥미로운 기술이라면……?』

       『몇년 전 도이츠의 과학자들은 「푸로게스테론」이라는 호루몬을 발견해냈네. 또한 마력가공한 푸로게스테론을 동물 수컷에게 주입하면, 남성성이 도태되고 서서히 암컷으로 변하게 되는 것도 알아냈지.』 

       『허억……』

       『나는 그것을 이용했네. 그래서 이곳의 수컷 공룡은 전부 사실상 암컷이야. 이 연구소 사람들은 내가 한 일이라고는 생각치도 못하고, 그저 자연적인 결함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지. 파충류 중에서는 성전환이 일어나는 종이 꽤 있으니까 말이야.』

       

       ‘정말 대단하구나, 이 사람.’

       

       자신이 개발한 기술에 더불어 자신이 접근할 수 있는 기술까지 활용해서, 대동아공영회의 공룡 개발에 아주 본격적으로 훼방을 놓고 있었다.

       

       ‘우 박사는, 이미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사보타주를 하고 있었구나.’ 

       

       내가 부탁하지 않았어도 이미 나보다 더 치열하게 저항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래서야, 내가 굳이 이곳을 들쑤실 필요도 없었다. 

       

       『정말…… 대단합니다. 존경합니다.』 

       

       내가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하자, 우 박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자네는 치켜세워주고있지만, 내가 보기엔 아직 갈 길이 머네. 안심하기엔 일러. 자네도 말했듯, 생명은 언제나 방법을 찾아낸다고 하지 않았나.』 

       『어…… 제가 그런 말을 하긴 했었죠.』

       

       저번 수원에서 그런 말을 하긴 했었다. 나는 그저 영화 대사를 말한 것 뿐인데 꽤 인상깊게 들었던 것일까. 우 박사는 말을 이었다. 

       

       『생명이 스스로 방법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부리는 사람이 방법을 찾아내고야 말지. 이런 결함투성이인 짐승도 효율적으로 이용할 방법을……』 

       

       그러려나. 

       

       뭐,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우선은 이 정도면 안심이다. 설령 이 공룡들이 암컷끼리 생식하거나 생물학적 한계를 극복한다고 해도, 결국은 애초부터 의도된 결함품.

       

       게다가 우장춘 박사가 앞으로도 애써준다면, 미래의 전쟁에서 이 가짜 공룡이 제대로 쓰일 일은 없을 것이다. 

       

       너무 얘기가 길어지면 의심을 살까 싶어, 나는 슬슬 안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며 우 박사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힘들겠지만 조금만 더 버텨 주십쇼. 조선이 해방되고 이 땅에 대한민국이 세워진 뒤, 당신이 씨 없는 수박을 소개해야 대한민국의 농업이 발전됩니다.』 

       『자네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는군……』 

       

       나는 우 박사에게 몇 마디를 더 말한 뒤에 다시 안으로 들어와, 가마모도 연구소장에게 진심을 담아 말했다.

       

       『우 박사는 정말 훌륭한 박사입니다. 같은 조선인으로서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껄껄! 그런가? 우리도 우 박사에게 아주 기대가 크다네! 종의 합성 연구의 시조가 아닌가.』 

       

       ‘나도 기대가 크다.’

       

       『자아! 견학을 한다면 보여주고 싶은 곳은 얼마든지 있네! 다음은 배양실에 가보겠나? 아니면 사육실? 시술실도 좋지! 여기서는 공룡의 대동맥에 특수 캅셀을 삽입해서—』 

       『아니오. 피곤하군요.』

       

       나는 가마모도 연구소장의 말을 끊고, 짐짓 피곤한 듯 눈을 부볐다.  

       

       내가 하려던 사보타주는, 이미 우장춘 박사가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었으니, 굳이 더 둘러볼 필요는 없었다.

       

       『오늘 이런저런 일이 많았거든요. 죄송하지만 견학은 다음으로 미루고, 우선은 잠을 좀 청하고 싶군요. 혹시 저희가 내일 아침까지 머물 곳이 있겠습니까?』

       

       내가  피곤하다며 자고싶다는 뜻을 밝히니, 연구소장은 금세 풀이 죽어 시무룩해져서는 중얼거렸다. 

       

       『그런가…….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네만……』

       

       가마모도 연구소장은 여전히 아쉬워하며 말했다.

       

       『내빈객 숙소에서 쉬도록 하게. 무로다니 경비조장이 안내해줄 걸세.』 

       

       

       

       ***

       

       

       

       안내받아 도착한 내빈객 숙소는 꽤나 아늑했다. 침대도 여러 개에, 자리마다 선풍기와 냉장고도 있고. 

       

       아무래도 이런 숨겨진 연구소에 방문할 외부인이라면, 대동아공영회의 어느정도 높은 사람들 뿐일테니 당연하겠지만.

       

       ‘좋아. 좋구나.’

       

       나는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소파에 등을 파묻으며 생각했다. 나를 해하려던 교수들의 음모도 격파했고, 공룡에 대한 사보타주도 이미 우 박사의 손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우 박사가 있으리라고는 예상치도 못했는데, 이 정도면 이미 고춧가루는 충분히 뿌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네에네에! 뎃 군,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돼……?”

       

       가만히 있기가 답답했는지, 침대에 아이까와랑 나란히 엎드려있던 양복자가 고개만 들고 물어왔다. 나는 느긋하게 대꾸했다.

       

       “응. 너희들도 좀 자 둬. 무라사끼 녀석은 벌써 자고 있네.”

       

       무라사끼 녀석은 이미 침대 하나를 점유하고 대자로 누워서 코를 골고 있었다. 하지만, 방 안을 서성거리고 있던 송병오 녀석은 분연히 고개를 들고 외쳤다.

       

       “무라사끼 녀석이야 워낙에 무신경하지마는, 우리가 어찌 그럴 수가 있나! 나가서, 공룡의 혈액이라도 몰래 채취해야지 않겠나?” 

       “비도 오는데 뭘 나가.” 

       “그깟 비가 문젠가! 사보타주는? 미래에 저 공룡이 쓰이는 것은 막아야 할 것이 아닌가!” 

       

       이 녀석들, 조급해하는군. 아무래도 내가 들은 것들과 생각을 공유하고 안심시킬 필요가 있었다. 

       

       “아까도 말했듯이, 저건 공룡의 모습을 어설프게 본딴 짐승일 뿐이야. 그리고 우장춘 박사도 말했어. 협조하는 척 연구를 계속하면서, 실전에서는 영 못써먹을 결함이 있는 짐승으로 만들어왔고, 또 앞으로도 그러겠다고.” 

       “하지만 외형은 공룡일 터인데…… 저게 전장에 투입되면 미국 병정은 크게 당황해서 낭패를 겪지 않겠나?”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미군은 그렇게 나약하지 않아.” 

       

       뭐, 놀라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공룡이라고 놀라는 것도 처음이지, 칼날과 총알이 박히는 짐승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저 거대한 과녁일 뿐이다.

       

       미군을 만나면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나 되겠지. 

       

       물론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공룡을 처음 마주친 초반에는 미군이 크게 당할 수도 있으니, 가능하다면 미국에게 미리 알려줄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커넥션이 없네.’

       

       미국과의 연줄, 그것도 아무 미국인이 아니라 어느정도 적합한 위치에 있는 사람과의 연줄이 필요했는데, 지금의 나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다.

       

       게다가 연줄이 있다고 해도 그냥 말뿐으로는 안 된다. 증거와 함께 건네줘야 할텐데, 그건 아무래도 어려울 것이다. 

       

       ‘아쉽지만 이쯤에서 만족해야지.’ 

       

       나는 분대원들에게 말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어. 그리고 여기서 깽판을 치면 대동아공영회의 신뢰는 잃어버리게 돼. 일단은 놔 두자.” 

       “자네가 그렇다면야, 무어……” 

       “그러니까 다들 자. 내가 깨어 있을게.”

       

       그렇게 말했지만, 침대에 뒹굴거리던 양복자는 칭얼거리며 외쳤다.

       

       “모오-! 그치만, 잠이 안 오는 걸! 밤인데도 더워! 선풍기 틀어도 더워! 네에네에, 류까 쨩! 방 좀 시원하게 히야시 좀 해줘!”

       

       그 말에 이유하가 싸늘한 눈으로 양복자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나를 찾을 것이 아니라, 창문이라도 열면 족하지 않소?”

       

       그러게 말이다. 낮 뿐만 아니라 밤에도 덥다며 이유하를 혹사시킨다면 이유하가 열 명이 있어도 부족할 것이다. 나는 소파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밖에 비 오고 있으니까, 창문 열어두면 좀 나을거야.’

       

       나는 그렇게 말하며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얼굴로 불어오는 거센 강풍에 강제적으로 올백머리가 되어버렸다.

       

       ‘강풍 올백……!’

       

       아니, 뭐야. 얼굴에 묻은 비를 닦으며 창 밖을 내다보니, 섬 밖으로 바닷물이 엄청나게 불어 있었다. 내 옆으로 와서 창 밖을 내다보던 송병오가 외쳤다. 

       

       “쯧! 태풍이 올라오는 모양이군!” 

       “에엣? 태풍 온다는 말 있었다노?” 

       

       양복자가 묻자, 송병오 녀석은 빗물 튄 안경을 닦으며 답했다.

       

       “내 신문에서 천기예보를 꼬박꼬박 확인은 하네! 이번 3999호 태풍은 일본 쪽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별달리 걱정은 안 했네만……” 

       “모오! 언제는 천기예보가 맞는 걸 봤니!” 

       

       이래서야 아침 일찍 동검도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게 되었다. 양복자가 나에게 물었다. 

       

       “요요 센세한테 말해둬야 하지 않을까시라?” 

       “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에 동검도로 돌아갈 수 있었더라면 굳이 요까이찌 교수에게 연락할 필요는 없었겠지만, 이렇게 되었으니 미리 연락은 해 둬야지. 

       

       “전화라도 해야겠다. 상황실 좀 갔다 올게.”

       

       그렇게 말하고 숙소에서 나와 상황실로 들어가니, 꾸벅꾸벅 졸고 있던 가마모도 연구소장이 나를 보고 물었다. 

       

       『음? 무슨 일인가?』

       『전화기를 좀 쓸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날씨가 이래서 내일 아침에는 동검도로 못 돌아갈 것 같군요. 동검도에서 저희를 기다리고 있을 요까이찌 선생에게 연락을 취하려고 합니다.』

       『그것도 그렇군. 자, 전화라면 마음껏 쓰게나.』 

       『감사합니다. 혹시, 동검도 숙소의 연락처가……』

       『전화기 옆에 붙어있을 걸세.』

       

       나는 상황실 벽에 걸린 전화기로 다가갔다. 과연, 전화기 옆에는 인근 대동아공영회 시설들의 전화번호가 기재되어 있었다. 

       

       ‘동검도 대동아엽사재단 방문객 숙소…… 이거군.’

       

       나는 수화기를 들고 다이얼을 돌렸다. 하지만,

       

       ‘엥?’

       

       아무런 신호도, 뚜우- 하는 대기음도 들리지 않았다. 이러면 전화 받는 쪽 문제는 아닌데. 나는 가마모도 연구소장에게 말했다.

       

       『전화가 안 되는데요.』

       『뭐?』

       

       다가와서 전화기를 확인해보는 가마모도 연구소장. 전화기를 몇 번 달그락거리더니 얼굴이 일그러진다. 

       

       『젠장, 강풍 때문에 전화선이 끊어진 모양이야…… 네도리! 네도리는 어디에 있나! 기술자란 녀석이……!』

        

       가마모도 연구소장의 말에, 상황실에 있던 연구원 한 명이 대답했다. 

       

       『네도리 녀석, 식량 창고에 간다고 한 뒤로 보이지 않습니다만…… 뭐어, 식량 창고나 자신의 숙소에서 잠이라도 자고 있겠죠.』 

       『당장 찾아서 불러 와!』 

       『예!』

       

       네도리라면, 그 뚱뚱한 기술자 말인가. 아무래도 금방 고쳐질 것 같지는 않았기에, 나는 상황실의 빈 의자 하나에 앉아 생각했다. 

       

       태풍에 전화선이 끊어지다니. 뭐, 이거야 21세기의 군대에서도 종종 있는 일이었지만 그 때를 위해서 우천시에는 통신병이나 가설병이 항상 대기하고 있었다. 한밤중에 구시렁거리면서 전화선 고치러 가는 모습을 종종 봤었지.

       

       네도리라는 사람, 어쩐지 게을러보인다 싶더니 직무태만이었던 건가. 나는 의자에 등을 기대어 앉은 채 생각했다.

       

       ‘내가 이런 말을 할 입장은 아니지만, 대동아공영회는 사람을 좀 가려받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연구원 한 명이 뛰어들어오며 보고했다. 

       

       『식량 창고나 숙소를 찾아봤지만, 네도리는 없었습니다! 그, 그리고 연구소 앞에 주차되어있던 화물자동차 한 대도 사라졌습니다!』

       『뭐라고! 그렇다면, 놈이 자동차를 타고—』 

       

       그리고 연구소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른 연구원 하나도 헐레벌떡 들어오며 외쳤다. 

       

       『소장! 사라졌습니다!』 

       『네도리가 사라졌다는 것은 이미 들었네!』 

       『아, 아닙니다!』 

       

       연구원은 얼굴이 사색이 된 채로 외쳤다. 

       

       『종란보관실에 있던 공룡란이, 수십 개나 사라졌습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3999호 태풍은 실제 역사에서는 1939년 7월 6일 즈음에 한반도를 찾아온 태풍이지만, 작중에서는 조금 늦춰서 7월 12일에 온 것으로 설정했습니다.

    몇몇 독자분들의 기대(?)와는 달리, 작중에서 그 날짜의 실제 기상현상까지 완벽하게 고증해내지는 못합니다…….

    해당 날짜의 신문 천기예보를 뒤져보며 참고하기는 하지만, 작중 전개에 맞추기 위해 일부러 날씨를 바꿀 때가 많아용……

    (고증 틀렸다고 혼내지 말아주세요…… 오들오들……)

    오늘은 여기까지!!! 이번화까지는 아무래도 지루한 설명이 많아서 한번에 연참으로 올렸습니다만, 다음화부터는 본격적으로 액션이 나올 것입니닷……!

    그럼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맛난 저녁 드세용!!!!!!!!!!

    다음화 보기


           


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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