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17

    세희 연구소 인근, 폐허가 되어버린 아파트 단지.

    헬멧 연구원은 미니 사신 관리 감독을 위해서, 출장을 나온 상태였다.

    “하늘, 정말로 맑네.”

    헬멧 연구원은 조그마한 과자 하나를 황금 사신의 입에 물려주면서 중얼거렸다.

    올려다본 하늘은 유독 맑고 푸르러 눈이 시릴 정도였다.

    새파란 하늘은 마치 깨끗이 씻어낸 유리창처럼 투명하고 깊이가 느껴졌다.

    햇살이 부서져 내리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이고, 새하얀 구름은 폭신폭신 떠다니며 청량한 느낌을 더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 청아한 하늘에는 묘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하늘을 다섯 줄기로 잘라버린 듯한 흔적은 아직도 그 잔상이 남아, 지나가는 구름의 모양을 이리저리 뒤틀어버렸다.

    헬멧 연구원이 그 상흔을 올려보고 있자, 황금 사신은 잘난 척하는 것 같은 표정으로 하늘을 향해 할퀴는 듯한 동작을 하고 있었다.

    ‘엄마 대단해!’

    헬멧 연구원은 황금 사신의 의지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하고 싶은 말은 금세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아마 회색 사신이 멋있었다는 이야기겠지.

    뭐, 실제로도 대단하기도 했고, 여기저기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번에 갈라버린 흔적은 꽤 오래 남아서, 못 본 사람이 없을 정도였으니까.

    황금 사신을 손바닥 위에 두고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자, 회색 사신이 하늘에 새긴 상흔 사이로 눈 부신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형형색색으로 아름다운 빛줄기였다.

    상흔에 남은 공간 왜곡이 빛줄기를 프리즘처럼 뒤틀었는지, 상흔을 뚫고 내려온 햇살은 다양한 색깔로 분리되어 지면에 닿았다.

    햇살이 닿는 지면 쪽으로 시선을 내려보니, 그 형형색색의 빛 아래서는 몇몇 미니 사신들이 자신의 색깔에 맞는 태양 빛 아래에 자리 잡고 있었다.

    ‘빨강!’

    <파랑….>

    마냥 즐거워 보이는 붉은 사신과 주황 사신에게 끌려 나온 푸른 사신, 그리고 태양의 따스함을 즐기는 주황 사신이 보였다.

    그 외에도 다양한 미니 사신들이 형형색색의 빛 아래서 뛰어놀고 있었다.

    그런 미니 사신들을 보면 굉장히 뚜방뚜방한 느낌이 들었지만, 조금만 주변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전혀 다른 느낌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을음 같은 검댕으로 뒤덮인 건물 외벽.

    뼈대만 남은 아파트.

    부서진 유리창.

    그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처참한 아파트 내부.

    게다가 그 위로 쏟아지는 햇살이 기묘한 음영을 만들어 내, 폐허가 마치 괴물의 뼈대처럼 으스스하고 섬뜩한 분위기를 풍겼다.

    다만 그 으스스한 환경은 아파트 단지 외부에 덩그러니 남아있는 아파트에서만 느낄 수 있었다.

    아파트 단지 대부분은 폐허와도 어울리지 않고, 서울과도 어울리지 않는 환경이 자리 잡고 있었으니까.

    은은하게 빛을 뿜어내는 모래로 이루어진, 새하얀 모래밭.

    한때 실종자들이 잔뜩 발견되어서, 화제가 되었던 모래사장이었다.

    묻혀있던 모든 생존자를 구조해서 한산해진 모래사장에는, 황금 사신들이 잔뜩 널브러져 있었다.

    조금씩 통통해진 황금 사신들이었다.

    ‘댖지….’

    황금 사신들이 무슨 잘못을 한 건지, 회색 사신에게 포획당한 황금 사신들은 모두 저렇게 변해버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었을까?”

    헬멧 연구원이 황금 사신을 내려다보며 물었지만, 황금 사신은 어디론가 사라진 상태였다.

    ‘앙대!’

    시선을 돌려 찾아보니, 어느새 근처에 나타난 회색 사신이 헬멧 연구원의 애착 사신을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자, 회색 사신은 무심한 표정으로 황금 사신을 헬멧 연구원의 손바닥 위에 놓고는 사라져 버렸다.

    ‘댖지가 돼버렸어….’

    황금 사신은 손바닥 위에 대자로 뻗어서, 우울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

    잿빛 소녀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는 끝없는 길을 기어가고 있었다.

    목적지는 알 수 없었지만, 오른손에 조그마한 인형을 움켜쥐고 계속 나아갔다.

    자신이 석고 인형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아 버린 소녀는 팔다리가 깨지고 부서져도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몸이 부서질 때마다 점점 의식이 멀어져만 갔다.

    ‘이대로라면 금방이라도 의식을 잃을 것만 같아….’ 

    하지만 그녀에겐 반드시 해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녀의 미니 사신 친구, 노란 사신을 구해내는 것이었다.

    그 일념 하나로 소녀는 꿋꿋이 의식의 끈을 붙잡았다.

    의식을 억지로 붙잡으려 할 때마다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고통이 밀려왔지만, 소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소녀는 회색 사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행이야….’ 

    죽기 전에, 인형을 전해줄 수 있어서….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라서 왜 인형을 전해줘야 하는지는 잊어버렸지만, 그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인 것만은 분명히 알았다.

    그렇게 소녀는 마음 가득 안심하며, 죽음을 받아들였다.

    ‘….’

    삶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잿빛 소녀는 천천히 꿈속에서 깨어났다.

    눈앞이 흐릿했지만, 점점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병실 천장이 보였다.

    ‘살았어?’

    그 순간, 어리둥절한 소녀의 안면으로 말랑말랑한 조그마한 무언가가 뛰어들었다.

    ‘인간…!’

    잿빛 소녀의 애착 사신, 노란 사신이었다.

    노란 사신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소녀의 얼굴에 달라붙어 있었다.

    “내가 살았구나.”

    잿빛 소녀는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잘 움직이지 않는 손을 움직여, 노란 사신을 토닥거렸다.

    노란 사신도 그 앙상한 손을 꼭 붙잡고 자기 얼굴에 마구 비볐다.

    이제 모든 것이 괜찮을 것만 같았다.

    잿빛 소녀는 작게 웃으며, 천천히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잠들기 직전, 눈앞에 언니가 웃어주고 있었던 것만 같았다.

    ***

    세희 연구소 깊숙한 곳, 안락한 격리실.

    나는 푹신한 침대 위에 누워, 뒹굴뒹굴하고 있었다.

    양손을 천장으로 쭉 뻗고 잼잼.

    하지만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

    ‘능력이 안 생겼네.’

    이번에 잡은 하얀 녀석이 상당히 강해서 기대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능력이 생길 기미가 없었다.

    하얀 녀석의 능력이 전부 내 능력의 하위 호환이라 그런 건가?

    양손에서 만들어 내는 붉은 불꽃이나 시간 역행 같은 건 나도 직접 쓰고 싶었는데, 조금 아쉬웠다.

    게다가 마지막에 사용한 검은 헤일로의 섬광!

    그건 정말 대단했다.

    물론 진짜 헤일로에 비할 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능력 무효화의 헤일로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막기가 상당히 곤란했겠지.

    그리고 이번 사건에서는 배울만한 점이 상당히 많았다.

    소위 말하는 ‘해로운 오브젝트’에 대해서 깊은 생각을 하게 했다.

    해로운 오브젝트를 감지하는 감각에 빈틈이 있었다니.

    인간을 절대로 죽이지 않고, 납치하는 오브젝트에게서는 뭔가 꺼림칙한 느낌은 들어도 ‘해로운 오브젝트’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붉은 외신에게 정신 오염되거나, 인간을 죽였거나, 인간을 죽일 생각이면, 해롭다고 느껴지는 구조였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게다가 황금 사신들은 확실히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사건이었다.

    눈코입이 없는 부서져 가는 석고 인형이 발을 질질 끌면서 걸어 다니는 아파트 단지.

    게다가 건물에는 뼈대만 남은 상태에서 검은 곰팡이 같은 가루가 시야를 가릴 정도로 흩날리는데, 수상하지 않다고?

    솔직히 그냥 직접 찍어서 올려도 공포 영화의 한 장면이라고 할만한 광경이었다.

    뭐, 이번에 황금 사신들을 ‘댖지’ 형에 처했으니 점점 괜찮아지겠지.

    내 침대 위에는 ‘댖지’ 황금 사신들이 귀여운 뱃살을 하늘로 한 채, 잔뜩 널브러져 있었다.

    콕콕.

    나는 그런 황금 사신의 뱃살을 돌아가면서 마구 찌르며, 그 감촉을 즐기고 있었다.

    ‘완성…!’

    말랑말랑한 황금 사신들을 모아서 침대를 만들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들 때쯤, 노란 사신이 인형 옷이 완성되었다고 알려주었다.

    내가 노란 사신에게 만들라고 한 티라노 인형 옷이었다.

    노란 사신은 마치 인형 옷을 시연하는 것처럼 인형 옷을 입고 나타났는데, 그 모습을 본 황금 사신들이 자리에서 마구 일어나기 시작했다.

    ‘귀여워!’

    ‘멋있어!’

    ‘나도!’

    그야말로 황금 사신들에게 대인기!

    하지만 내가 기대하던 인형 옷은 아니었다.

    나는 진짜 같은 티라노 인형 옷을 원했건만!

    노란 사신은 내가 실망한 것 같은 표정을 짓자, ‘후흐흐’ 하고 웃으면서 공룡 머리를 푹 눌러썼다.

    ‘!!!’

    그러자 인형 옷에서 정신 오염이 발생하더니, 진짜 티라노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손바닥만 한 리얼 티라노였다!

    이제 하얀 아귀를 잔뜩 잡아서 트리케라톱스로 깎아서 풀어놓기만 하면 공룡 시대 놀이를 할 수 있겠어!

    히히.

    나는 아귀를 잡아먹기 위해 뛰어다니는 미니 사신들과 구슬픈 울음소리를 내며 우는 하얀 아귀들을 생각하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

    미니 사신 정원 깊숙한 곳, 우유 빙수 설원.

    전설의 푸딩을 찾는 황금 사신은 줄어들었지만, 맛있는 빙수와 설탕 과일로 언제나 미니 사신들이 돌아다니는 설원에서 한 가지 소문이 떠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새하얀 유령이 있대!’

    ‘피처럼 붉은 흔적 무늬가 있는 유령이래!’

    ‘쫓아가도 어느새 사라져 버려!’

    ‘하얀 보자기처럼 생긴 유령!’

    우유 빙수 설원에서 무시무시한 유령이 돌아다닌다는 소문이었다.

    그 소문은 호기심 많은 황금 사신을 다시 한번 우유 빙수 설원으로 향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다음화 보기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