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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7

       “다 놓아버린 것 같은 표정이네.”

        

       “애초에 잡고 있었던 적도 없어.”

        

       앨리스의 질문에 대답한 자는 벨라였다.

        

       벨라 팬그리폰.

        

       그녀가 있는 곳은 감옥이라기에는 상당히 자유로워 보이는 공간이었다.

        

       벨라가 한 번이라도 황족이었던 이상, 그녀는 앞으로 죽는 순간까지 절대로 홀대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 황족이 죄를 지었건 짓지 않았건, 황족의 자존심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벨라가 머무는 곳은 한 저택이었다.

        

       제도 중심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래도 행정구역상 제도인 곳. 차를 타고 온다면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곳이었지만 주변은 허허벌판이었다. 밤중이면 담 너머에서 들개 우는 소리가 들릴지도 모른다고, 앨리스는 생각했다.

        

       물론 이곳은 저택이긴 했지만, 동시에 벨라를 가두기 위한 감옥이기도 했다. 저택은 언제나 수많은 병사와 기사들이 상주하며 감시하고 있었고, 근처에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군 시설까지 준비해두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벨라가 보인 반응을 보면 굳이 그렇게까지 준비할 필요는 없었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정말로 아무런 대비도 안 할 수는 없었지만. 사람의 속은 누구도 모르는 법이니까.

        

       “네가 먼저 찾아올 줄은 몰랐는데.”

        

       “…….”

        

       “게다가 여기까지 혼자 들어올 줄도 몰랐고.”

        

       벨라의 말에 앨리스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벨라도 그런 앨리스를 보며 어깨를 으쓱해 보이곤, 손에 들고 있던 담뱃대를 빨았다. 후우, 하고 숨을 내쉬자 입술에서부터 열린 창문까지, 길게 연기가 쭉 이어져 나왔다.

        

       “무슨 일이야? 나한테 더 알아낼 거라도 있어?”

        

       “그런 게 있을 거로 생각해?”

        

       “……그렇겠지. 그 장소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검을 휘두를 때조차, 우리 쪽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으니까.”

        

       “실비아한테 들었던 이야기가 그렇게 충격이었어?’

        

       앨리스는 의자를 끌어내 앉으며 말했다.

        

       “충격이었지.”

        

       “그런 걸 받는 사람인 줄 몰랐는데.”

        

       “그러게. 나도 몰랐는데.”

        

       벨라는 천천히 담뱃대를 내려 창틀에 걸쳐놓았다. 담뱃대 끝에 끼워둔 담배는 반쯤 남아서 천천히 타들어 가며 연기를 위로 가늘게 올려보냈다. 그 모습이 마치 향초같이도 느껴졌다.

        

       한동안 그 올라가는 연기를 바라보던 벨라는 몸을 돌려 앨리스가 앉아있는 테이블까지 걸어왔다.

        

       그리고 의자를 꺼내 앨리스와 마주 보고 앉았다.

        

       “그냥 농담 따먹기나 하려고 온 건 아닐 거 아냐. 무슨 이야기를 하러 왔는지 알려주지 않겠어? 솔직히, 네 얼굴은 그렇게 오래 보고 있고 싶은 얼굴은 아니거든.”

        

       “실비아를 불러올 걸 그랬나? 아니면 클레어?”

        

       “…….”

        

       벨라는 앨리스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의자에 몸을 나른하게 기대앉았다.

        

       입고 있는 옷은 얇은 네글리제 하나뿐이다. 바깥에는 해가 중천에 떠 있었지만, 벨라는 굳이 일상복으로 갈아입을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그래, 그 둘 중 하나를 불러오는 게 나았겠다. 너 같은 것 보다는 그 둘이랑 이야기가 더 잘 통하겠는데.”

        

       다만, 그 두 사람도 벨라와 같은 과거를 겪은 적은 없었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면 실비아는 조금 다를지도 모른다. ‘벨라와 같은’ 과거를 겪어보지는 않았겠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그보다 더한 꼴도 본 적이 있으니까.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는 것은 보통 겪어볼 일 없는 고통일 거다. 그리고 기습당해 배가 갈리거나, 경동맥이 찢어지거나 하는 일도.

        

       그런 광경을 직접 본 적은 없는 벨라였지만, 벨라는 실비아의 그 ‘출신’ 때문에 그녀에게 일종의 동질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실비아가 벨라에 대놓고 살갑게 군 적은 없지만, 벨라는 언제나 실비아에게 살갑게 굴었다. 그 ‘살가움’의 정의가 평범한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앨리스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나를 질투해?”

        

       “세상에서 너를 질투하지 않을 사람은 아마 몇 없을걸.”

        

       “…….”

        

       나도 불행했어, 라는 말을 하기에 앨리스는 벨라보다는 훨씬 나은 과거를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온 건데? 갑자기 자매간에 회포라도 풀고 싶었어? 왜, 정말로 피가 이어졌다는 걸 알고 나니 뭔가 대화라도 하고 싶어?”

        

       “…….”

        

       “……뭐야, 진짜로 그랬던 거야?”

        

       앨리스는 입을 다물고 벨라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조금 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그거 알아? 나도 내가 세상에 혼자라고 생각했던 거.”

        

       숨을 토해내듯, 조금 빠르게 뱉어낸 말에 벨라는 눈을 깜박였다.

        

       “나는…… 너보다 능력이 빼어나지 못하니까. 너뿐만이 아니라, 데미안이나 루카스, 제이든이랑 비교해서도. 검술이면 검술대로, 지식이면 지식대로,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밀렸어. 그리고 당연히 실비아한테도 그랬고.”

        

       앨리스의 눈이 천천히 내려가서 테이블에 잠깐 머물렀다가, 내려가던 속도보다 더 천천히 위로 올라와 벨라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아버지는 차기 황위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물려줄 것처럼 굴었지.”

        

       “하.”

        

       앨리스의 말에 벨라는 어이없다는 듯 웃음소리를 냈다.

        

       “그 사람이?”

        

       “왜, 너희들한테도 아무런 말도 없었어?”

        

       “당연히 그렇지. 결국 그 뒤를 잇는 건…… 팬그리폰이어야, 했으니까.”

        

       “…….”

        

       “그리고 팬그리폰은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을 수도 있어야 해. 단순히 능력이 있다는 걸로 정해지는 게 아니거든. 황제의 자리에 앉을 사람은 공격받을 거리가 없어야 하는 법이야. 그리고 그중에서는 순결도 있고.”

        

       벨라는 잠깐 침묵했다가,

        

       “내가 피가 이어졌다는 걸 몰라서 한 생각이긴 했지만.”

        

       그렇게 덧붙였다.

        

       “나도 마찬가지야. 너희들한테 정말로 피가 섞여 있는 줄은 몰랐거든. 그래서 나는 내가 혼자라고 생각했어.”

        

       “너는—”

        

       벨라는 말을 꺼냈다가, 앨리스의 표정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피식 웃었다.

        

       “하긴, 혼자이긴 했지. 다른 사람들 말도 무시하고, 그 사람이랑 우리가 말하고 있으면 끼어들려고 하고.”

        

       “나를 놀려먹었잖아. 그래서 싫어했던 거고.”

        

       “아~ 그러기도 했지, 맞아. 그랬었어.”

        

       벨라의 시선이 천천히 올라가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천장에 그려진 장식의 수를 세기라도 하려는 듯 집중해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솔직히 재미있었거든. 그리고…… 음, 뭐, 조금 귀엽기도 했고. 쪼그만 게 펄펄 뛰며 화내는 게.”

        

       “나는 정말로 싫었는데.”

        

       “나도 너 싫었어. 너는 다 가졌으니까. 솔직히 조금 화내고 짜증 내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

        

       “언제였더라.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는데, 실비아가 나를 찾아온 적이 있었거든? 그때 그러더라. 너 너무 괴롭히지 말라고.”

        

       “실비아가 그랬어?”

        

       “그랬지. 뭐 대단한 말을 했던 건 아니야. 그냥 그러지 말라고 한마디 하고 돌아가 버렸으니까. 어쩌면 실비아는 그때 너한테서 뭔가 봤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사실은 자기야말로 진짜로 혼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고.”

        

       앨리스는 벨라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생각하기 나름, 이라고 하고 싶은 거야?”

        

       “아니, 그건 아냐. 그렇게 말하기엔 네가 겪은 일이 너무 많으니까.”

        

       벨라는 눈을 다시 내려서 앨리스를 멀거니 바라보았다.

        

       “그래서, 정말로 자매간에 회포나 풀자고 이렇게 왔다고?”

        

       “그래.”

        

       “나는 단둘이 이야기하자고 하길래 엄청나게 중요한 내용일 줄 알았는데.”

        

       “중요한 이야기잖아.”

        

       “……그거 알아? 이렇게 단둘이 있으면, 내가 달려들어서 너를 죽여버려도 아무도 막지 못한다는 거.”

        

       “그래서 죽일 거야?”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앨리스를 똑같이 바라보다가, 벨라는 하, 하고 짧게 소리 내 웃었다.

        

       “너는 너구나. 어릴 때랑 지금이랑 하나도 안 바뀌었어. 아니, 뭐, 조금 당당해지기는 했나?”

        

       “부자연스러운 당당함이 자연스러운 당당함으로 바뀐 거지.”

        

       “그래서, 이렇게 회포를 푼 다음에는, 나를 자유롭게 풀어주기라도 하려고?”

        

       “풀어주면 어쩔 건데?”

        

       “글쎄, 얼마 전까지 아버지라고 부르던 사람을 죽여볼까 생각하는데, 어때?”

        

       “그럼 한동안은 풀어주기 힘들겠네.”

        

       앨리스의 말을 듣고, 벨라는 눈을 크게 떴다.

        

       “정말로 풀어주려고?”

        

       “아무래도 정치적인 압박이 심해서.”

        

       앨리스는 한숨을 푹 쉬었다.

        

       “너희가 왕국에 있을 때는 반드시 제국으로 데려와야 한다는 압박이 심했고, 데리고 와서 가둬놨더니 풀어줘야 한다는 압박이 심해졌거든. ‘결국 제국에 잘못한 게 뭐냐’는 말에는 어떻게 대답할 수가 없더라. 그 계획도 결국 전 세계에 공표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아버지의 계획이 실패했다면 법국의 계획이 성공했을 거라는 말이니까.”

        

       앨리스는 입을 멍하니 벌린 벨라를 가만히 바라보면서 말했다.

        

       “당연히 지금 당장은 아니야. 적어도 몇 년 뒤의 이야기고, 풀어준다고 해도 형식적으로만 풀어줄 거야. 아마 돌아다닐 수 있는 곳은 이 근방 뿐일 거고, 잘하면 제도 도심지까지는 가능할지도 모르겠지. 무엇보다, 우선 너희가 지은 ‘죄’를 확실하게 형상화하는 게 우선이고.”

        

       “…….”

        

       벨라는 앨리스를 멍하니 바라보다 말했다.

        

       “왜 그 사람을 먼저 찾아가지 않고 나한테 이런 말을 하는 거야?”

        

       “아버지한테 이런 말을 전해주면 어쩌자는 건데? 그 사람이면 내 이야기를 듣자마자 다음 계획을 짜기 시작할걸.”

        

       “……그것도 그렇네.”

        

       벨라는 앨리스를 빤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결국 너나 나나 같은 사람한테서 태어난 건 맞나보네.”

        

       “그렇다니까, 정말. 왜 몰랐는지 모를 지경이야.”

        

       앨리스는 투덜거리듯 대답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도 최대한 빨리 써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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