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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7

       그다음 날 오후까지 충분히 휴식을 취한 우리는 저녁을 먹은 후, 극장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현재 그곳에서 공연하고 있는 팀이 마지막 회차를 끝내고 내려오는 즉시, 우리 무대를 준비하기 위함이었다.

         

       일반적인 극장은 이전 공연과 다음 공연 사이에 최소 3, 4일 이상 여유를 두는 게 보통이었다. 그러나 역 근처에 설치된 천막 극장들은 그러지 않았다. 기차는 하루에 수백 km를 가고, 정시 정각에 도착하고 출발했다. 시간표만 미리 잘 짜둔다면, 한 공연의 마지막 회차가 끝나고, 바로 다음 날, 새 공연의 첫 회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열차 서커스에 많은 화물 차량이 동원되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짧은 시간 안에 무대를 설치했다 철거하는 것을 반복해야 하니 기자재들을 반조립 상태로 들고 다닐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차였다면 그렇게 부피를 많이 차지하는 방식의 운송은 불가능했겠지만, 기차는 가능했다.

         

       우리가 극장에 도착했을 때는 막 저녁 8시가 넘은 참이었다. 마침 마지막 회차가 끝나고 관객들이 극장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입구 근처에 서 있던 관객들은 마차에서 내리는 우리를 발견하더니 소스라치듯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야! 뭐야, 저거!”

       “괴, 괴물! 괴물이다!”

       “엇, 잠시만! 저기는……거기 아냐?”

       “원더스타인의 괴물 서커스다!”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쏠렸다.

         

       이런 일을 여러 번 겪어 본 단원들은 혹시나 군중들에게 해코지라도 당할까 봐 바싹 긴장했다. 그러나 나는 사람들의 반응이 지난 8개월 동안 겪었던 것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괴물 단원들을 두려운 눈길로 바라보는 것은 여전했으나, 그 눈빛에는 이전과 같은 짙은 혐오나 경멸 대신 호기심이나 흥미로움이 담겨 있었다.

         

       단원들도 비슷한 낌새를 느꼈는지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서 사람들의 눈치를 살폈다. 그때, 엘라가 그들 사이에 끼어들어 소리쳤다.

         

       “너무 가까이 접근하지 말아 주세요! 위험합니다!”

         

       그녀는 랫맨들에게 우몬이 들어있는 우리를 극장 뒤편으로 몰도록 명령했다. 그리고 멍청히 서 있는 괴물 단원들을 닦달해 서둘러 안으로 들어가게 했다. 어쩐지 짜증스러움이 느껴지는 그녀의 태도에 단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말에 따랐다.

         

       천막의 뒤편에는 우리 앞서 공연했던 사람들이 장비를 철거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이렇게 동종업계 사람들을 마주쳤을 때, 그들은 대부분 우리에게 적개심을 표현했다. 그것은 운 좋게 후원자를 얻어 서커스 그랑프리에 참여한 것에 대한 질투심이라 할 수 있었고, 감히 괴물 서커스 따위로 승승장구하고 다니는 것에 대한 반감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떨떠름한 기색을 내비치기는 했어도 노골적으로 못마땅한 표정을 짓거나 깔보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먼저 인사를 걸어오거나 말을 붙여 보려는 사람도 있었다. 불과 1주일 전과 비교해서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다.

         

       그 의문을 풀어준 것은 엘라였다. 몇 시간 뒤, 우리는 공연 준비를 마치고 무대 위에 둘러앉아 유라크네가 준비한 야식을 먹고 있는데, 그녀가 잡지 한 권을 가져와 우리 앞에서 펼쳤다.

         

       “<크리스티앙 가이드>의 12월호에 우리 기사가 실렸어.”

         

       크리스티앙 가이드는 매달 그랑프리 참가자 중에 몇 곳을 선발해서 그 상세한 전력 분석을 특집호로 싣곤 했다. 그런데 이번 달에 선정된 곳 중 하나가 바로 우리였다.

         

       몇몇 단원들이 불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몇 개월 전 저 잡지로부터 받았던 혹평이 기억나기 때문인 듯했다. 그때 가이드는 그들 보고 특이한 외형과 분장에만 의지한, 곡예사라고 말하기 부끄러운 존재들이라고 평했었다.

         

       그들은 혹시나 이번에도 비슷한 내용이 실리지 않았을까 걱정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들의 예상과 달리 이번 기사의 내용은 이전의 것과는 완전히 상반된 것이었다.

         

       “여섯 개의 팔을 이용한 현란한 팔 동작은 간단한 재주도 복잡한 기예로 승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뼈로 이루어진 몸은 근육의 가동 한계에 구애되지 않고 날렵한 움직임을 보인다. ……남들보다 3배는 넓은 몸 덕분에 무게 중심이 견고했다. ……평범한 인간은 흉내조차 불가능한 압도적인 크기의 승모근과 광배근을 이용한 괴력이 인상적이었다.”

         

       엘라의 입에서 그들에 대한 평가가 나올수록 괴물 단원들의 안색이 점점 밝아졌다.

       이번 달의 가이드는 철저하게 그들을 한 명의 곡예사로 보고 그들의 실력을 분석했다. 레카체프 서커스 학교의 시험에서 그들의 실력을 객관적인 수치로 보인 것이 효과를 발휘한 듯했다.

         

       괴물 단원들은 엘라의 손에서 잡지를 빼앗아 자기네들끼리 몇 번이나 돌려보며 희희낙락했다. 그동안 우리가 기자들의 주목을 많이 받긴 했지만, 괴물 단원들 개개인에 집중한 기사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들이 즐거워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우리는 그들에게 환호와 갈채를 보내주었다. 심지어 서커스단 안에서 삐딱한 태도를 자주 취하는 도스빌과 미키 역시 그들을 축하해줄 정도였다.

         

       그러나 정작 기사를 읽은 엘라의 표정이 그렇게 좋지 않았다. 기뻐하는 것 같았지만, 어딘가 어색했다.

         

       휴식을 마친 단원들이 예행연습에 들어갔을 때, 나는 그녀의 옆으로 슬쩍 다가가 그에 대해 질문했다. 그녀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런 평가가 꼭 우리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은 아니야.”

       “꼭 유리하지 않다고요? 그게 무슨 말이죠?”

       “지금 우리 공연이 몇 퍼센트쯤 왔다고 생각해?”

         

       나는 그것이 이번 일이랑 무슨 상관인가 의문이었지만, 두어 달 전에 들었던 정보를 토대로 나름대로 추측한 값을 던져 보았다.

         

       “음, 한 65%?”

       “정확히 67%야.”

       “많이 올랐군요. 장미 풍차 카바레의 시험을 마쳤을 때가 50% 후반쯤이었죠? 5개월 만에 10%가 올랐으니……남은 21개월이면 33%를 채울 수 있을까요?”

         

       내 기대를 담은 질문에 그녀는 단호한 태도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대로라면 100%에 도달하는 건 불가능해. 평생.”

       “어째서입니까?”

         

       그녀는 열심히 연습에 매진하는 단원들을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괴물 서커스의 주제는 바로 ‘공포’야. 그건 보통 ‘미지’에서 나오지. 내가 처음 언급했던 100%라는 수치는 관객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들을 딱 마주쳤을 때의 심정을 말한 거야.”

         

       나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아차렸다.

         

       “우리의 명성이 문제군요.”

       “응. 이제 우리 서커스단은 나름대로 이름이 알려지게 됐어. 그리고 그건 역으로 우리 공연의 점수를 깎아 먹는 일이 돼. 우리가 유명해지면 유명해질수록 적혈귀가 혹시나 철창을 부수고 관객들을 습격할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을 관객들은 점점 느끼기 힘들겠지. 사회자가 괴물 단원들에게 위협받는 ‘상정 외의 사태’도 이제 사람들은 그게 지난 수십, 수백 번의 공연에서 반복된 일이라는 것을 알고서 공연을 보게 될 거고.”

         

       그녀의 분석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한 가지의 의구심이 들었다.

         

       “루디니의 탈출 쇼는 재밌었지 않았나요? 비슷한 패턴이었는데도 말이죠.”

         

       나는 장미 풍차 카바레에서 봤던 거구의 늙은 마술사를 떠올렸다. 탈출 마술을 전문으로 하는 그도 매번 비슷한 레퍼토리를 반복했다. 그러나 그의 쇼는 사람들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었다. 실제로 우리는 그의 쇼를 며칠 연속이나 봤는데도 그렇게 질린다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래. 그분의 마술도 늘 비슷한 편이지. 복잡한 잠금장치 속에 갇혀서 위태위태한 순간을 연출하다가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탈출하는 것. 긴장, 갈등, 그리고 해소. 그것을 최고의 연기력과 기술로 매번 다른 소재로 연출하는 것 말이지. 하지만 원 패턴이라도 그분의 마술은 그야말로 황금의 원 패턴이야. 우리의 쇼는 같은 원 패턴이라도 달라. 고정된 캐릭터의 서사에 의존하고 있으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군요.”

         

       나는 그녀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게임 방송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자주 나오던 이야기였다.

         

       어려운 조작과 공략법으로 적을 돌파하는 게임이 주는 재미와 연출과 서사를 감상하는 게임이 주는 재미는 달랐다.

         

       전자는 알고 봐도 재밌지만, 후자는 알고 보면 재미가 반감했다. 전자는 반복할 때마다 매번 다른 긴장감을 느꼈지만, 후자는 반복하면 지루함을 느꼈다.

         

       “이번에 실린 기사가 그 방점을 찍었군요.”

       “……맞아. 우리 단원들을 한 명의 곡예사로 평가해준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대신 그들이 가진 캐릭터의 힘이 약해져 버렸어. 이대로라면 남은 20개월 동안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명성과 연기력 사이에 길항작용이 벌어져서 결국……70% 정도에 수렴할 거야.”

         

       그것은 처음 기대했던 수준에 한참 못 미치는 수치였다.

         

       “혹시 해결책은 있습니까?”

       “응. 바로 ‘막간극’을 도입하는 거야.”

         

       막간극. 그것은 다음 장면을 위해 무대를 정비하는 동안 관객들에게 제공하는 짧은 여흥을 의미했다. 간단한 춤이나 노래, 혹은 만담이나 촌극을 곁들이는 곳도 있었고, 사회자가 관객들과 소통하거나 제휴 업체의 상품을 광고하는 곳도 있었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 시간에 주로 소통을 택했었다. 미노바의 입담이면 그 시간 동안 관객들의 집중력을 충분히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걸로는 한계가 있어. 춤, 노래, 만담, 촌극. 말랑말랑한 계열이면 뭐든 좋아. 그걸 막간에 끼워 넣음으로써 본 공연의 긴장감을 좀 더 높일 수 있을 거야.”

         

       나는 그녀의 의견에 동의했다. 현재 우리 쇼는 너무 공포 일색이었다. 나는 단원들이 각자 맡은 보스 스테이지에 맞는 극본을 제공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우리 쇼는 보스전만 모아 둔 거라고 할 수 있었다.

         

       그것은 그것대로 강렬했지만, 스테이지 간 거리가 주는 완급이 사라진 게 아쉬웠다. 원작에서는 주인공들끼리 농담 따먹기도 하고 즐거운 분위기를 연출하다가 갑자기 잔인한 장면이 등장하면서 긴장감을 주는 일이 많았는데, 여기서는 그런 게 없었다.

         

       확실히 원작의 그런 호흡을 대체해줄 막간극이 있다면, 각 괴물 공연이 주는 인상이 좀 더 강렬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우리에게 막간극을 담당할 곡예사가 없다는 것이다.

         

       “혹시 레이나 양을 쓸 생각은 아니죠? 그녀는 무대에 오르지 않겠다고 했잖아요.”

       “알고 있어.”

       “엘라 양이 오르는 것도 안 됩니다. 부단장 일과 같이했다간 체력이 못 버틸 거예요.”

       “흥. 나 생각해주는 척하긴.”

         

       그녀는 나를 흘겨보며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단장인 당신이나 부단장인 내가 막간에서 까불대면 본 공연의 긴장감을 죽일 수도 있어. 대외적으로 어디까지나 우리가 ‘괴물 조련’을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까. 나는 막간극을 전문적으로 할 사람들을 뽑자고 말하는 거야. 이제 조금 있으면 새해잖아? 내년이 되면 또 추가로 곡예사를 몇 명 더 영입할 수 있어. 그때 인원을 좀 더 보강해보자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의 명성이 바닥일 때는 몰라도 지금이라면 유능한 곡예사들을 보충할 수 있었다.

         

       “이 해결책. 이미 다 생각해뒀던 거죠?”

       “응. 이달 호 잡지를 봤을 때부터.”

       “흐음, 그러면 왜 그렇게 울적하게 있었던 건가요?”

         

       내 질문에 그녀는 잠시 나를 흘끗 바라봤다가 말했다.

         

       “단원들이 업계에서 인정받았다는 건 좋은 일이잖아. 하지만 나는 순수하게 기뻐할 수 없으니까.”

         

       나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들었다. 그녀는 내게서 벗어나기 위해 서커스 그랑프리 본선에 올라가야 했다. 그래서 그것에 방해되는 일은 거부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분명 기사를 봤을 때, 그녀도 단원들의 일을 축하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머릿속으로는 그들을 어떻게 더 무섭고 꺼림칙하게 보일 수 있는가 고민해야 했을 것이다. 그녀는 그런 자신에게 자괴감이 온 것일 것이다.

         

       나는 그녀를 혼자 있게 두고 천막 밖으로 나갔다. 어느새 새벽이 물러나고 아침이 다가오고 있었다. 앞으로 4시간만 있으면 이 역에서의 첫 회차가 시작됐다. 오늘부터 그렇게 3일 연속으로 공연하고, 하루를 쉰 다음, 또 다음 역으로 이동할 것이다.

         

       삐에엑.

       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밤 사냥을 나갔던 호크가 돌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행동과 울음소리가 어딘가 이상했다. 그는 무언가를 경고하고 있었다.

         

       쿵.

       육중한 무언가가 극장의 후원에 내려앉았다. 새벽 내도록 일하고 바닥에 누워 쉬고 있던 랫맨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눈을 떴다.

         

       나는 갑작스럽게 울타리를 넘어온 그 존재를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그것은 짐승의 가죽을 뒤집어쓴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그 정체는 분명 사람이었다.

         

       그는 처음 보는 외형은 하고 있었지만, 진화 연구소는 내가 이전에 그와 한 번 접촉한 적이 있음을 알려왔다. 그것을 보고 나는 그가 누군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당신은……?”

       “교주님을 뵙습니다!”

         

       벤 설리반. 원더랜드에서 내 휘하로 거둬들였던 부두교의 마도사가 내게 부복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새우냥 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레이나의 1차 치료를 쓰고 나니 뭔가 현자 타임 비슷한 것이 왔었네요. 거의 5, 6화를 거기에 쏟다 보니…다음 진행에 대한 의욕이 안 솟는 것이…좀 과하게 자극적이었던 같습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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