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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7

        

       이름이 불린 새타니는 기쁘다는 듯 씨익 웃었다.

       기다란 머리카락을 아래로 늘어뜨리고 있기 때문인지 그 미소를 보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분명히 입꼬리는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나, 왔어.”

       “얼굴 다른데.”

       “옛날이 더 좋아.”

         

       여러 사람의 입으로 말하는 것처럼 말을 투다다다 쏟아낸 새타니는 천장에서 툭 떨어졌다. 그러더니 진성의 곁으로 다가가 머리카락을 늘어뜨리고 근처에 쭈그려 앉았다.

         

       스르르륵.

         

       새타니가 움직이자 기묘한 소리가 났다.

       늘어진 천으로 바닥을 쓸 때 날 법한 소리였다.

         

       새타니는 계속해서 자라는 기다란 머리카락을 아무렇지도 않게 다루며 진성의 곁으로 다가갔고, 뭔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냄새가 안 나.”

         

       새타니는 사람의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이 기이하다는 듯 진성을 살펴보았다.

       그렇게 쳐다보기를 얼마나 했을까.

         

       새타니는 진성의 원영신을 이루고 있는 것들을 깨달았는지 인상을 와락 찌푸렸고, 진성에게서 슬금슬금 멀어지더니 미끄러지듯 움직여 리세에게 향했다. 그리곤 리세의 어깨에 매달리며 그녀에게 말을 쏟아내었다.

         

       “이상해.”

       “사람 냄새가 안 나.”

       “벌레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내 몸 파먹을 생각만 해.”

       “얼굴도 별로.”

       “옛날이 더 좋아.”

         

       그녀는 진성의 원영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온갖 불만을 리세에게 토로했다.

       그러자 리세는 새타니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손에 신력을 모았다.

       그리곤 그 신력을 검지 손톱으로 움직이고는….

         

       파-앙!

         

       그대로 새타니의 이마를 검지로 튕겼다.

         

       게임에서 진 벌칙으로 때리는 것처럼, 아주 장난스럽고 가벼운 손놀림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 소리는 예사롭지 않았다.

         

       손톱에 모였던 신력은 격투기 선수가 샌드백을 힘껏 후려친 것처럼 육중하고 거대한 소리가 났으며, 충격파 때문에 리세의 머리카락이 흔들거렸다. 그리고 충격파를 정통으로 얻어맞은 새타니는 목이 확 꺾여버림과 함께 그대로 벽까지 날아가 버렸다.

         

       리세는 벽까지 날아갔다가 툭 하면서 바닥에 쓰러진 새타니를 보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신주님을 욕하면 안 된답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어린아이에게 잘못을 일깨워주고 타이르는 말이었다.

         

       하지만 일상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을 법한 말과는 다르게, 리세의 얼굴에는 왠지 모를 싸늘함과 음산함이 감돌고 있었다.

         

       “히익, 잘못태써.”

         

       새타니는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는 리세를 보자 화들짝 놀라며 잘못했다고 빌었다.

       그리곤 리세의 얼굴에서 음산함이 사라지고 평소와 같은 분위기가 감돌 때까지 슬쩍슬쩍 눈치를 보며 가까워지려 하지 않았고, 리세가 괜찮다는 듯 작게 손짓하자 그제야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리세의 딱밤을 경계하는 것일까?

         

       새타니는 리세의 주위에 있으면서도 그녀의 손에 민감하게 반응했으며, 딱밤이 쉽게 닿을 만큼 가까운 곳에는 결코 가까이하려 하지 않았다.

         

       진성은 이러한 리세와 새타니의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럽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그렇지. 본디 무지에서 나오는 칼날이야말로 무정한 법이니. 마땅히 깨닫게 하고 반성케 하는 것이 참으로 보기 좋구나.”

         

       그는 새타니에게 잘못을 일깨워준 리세를 칭찬했다.

       그러자 리세는 쑥스러운 듯 볼을 살짝 붉히며 입가에 손을 올렸다.

         

       “훌륭하구나, 훌륭해.”

         

       진성은 리세를 칭찬하고는 눈알을 굴려서 새타니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새타니는 진성보다는 리세 쪽에 가까워져 있었다.

       자신에게 딱밤을 때렸던 리세보다 진성이 껄끄럽다는 듯 말이다.

         

       ‘어린아이를 재료로 만든 귀신이라 그런지 본능에 충실하구나.’

         

       본래 사람은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본능에 충실한 법.

       귀신 역시 마찬가지다.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자아가 순식간에 고갈되어 본능에 사로잡히게 되며, 자아가 고갈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교육받은 이성과 지성이 충만한 나이 많은 귀신에 비해서는 본능에 휘둘리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그 본능에 휘둘리기 쉬운 점을 이용해 그들을 이용하려 하는 자들도 많았지만 말이다.

         

       지역이나 다루는 이에 따라 그 명칭은 조금 달랐지만, 무당이 사용하는 명칭이 가장 유명했다.

         

       동자귀(童子鬼), 동자신(童子神), 태자귀(太子鬼), 태주(太主), 새타니 같은 명칭 말이다.

         

       이 어린 귀신의 특징으로는 비슷한 귀신보다 강한 영력을 다룰 수 있으며, 본능이 발달해서 그런지 육감이나 직감을 통해 점을 보는 무당에게 가장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으며, 원하는 것이 단순해 쉽게 다룰 수 있다는 것에 있었다.

         

       다만 본능에 충실하다는 것은 그만큼 변수가 많다는 이야기도 되었다.

       무언가 하나에 꽂혀서 들어줄 수 없는 것을 계속 요구한다거나, 본능에 너무 사로잡힌 나머지 자아가 손쉽게 망가지거나, 자신을 부리려는 무당에게 해코지를 입히는 등의 일을 많이 저질렀다.

         

       게다가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면 바로 어리다는 것 자체였다.

         

       무당이 다루는 명칭이 가장 유명해진 것에는 이유가 있는 법.

         

       강령술사나 빙의술사는 어린 귀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죽은 아이를 귀신으로 부리기는 싫다는 인간적인 이유가 아니었다.

         

       다뤄봤자 큰 이득이 없기 때문이었다.

         

       어린 귀신?

       비교적 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나 굳이 그뿐이다.

         

       다른 귀신보다 강하다?

       리스크가 적고 리턴이 더 크다?

         

       그게 뭔 상관인가.

         

       강령술사로서는 어린 귀신을 힘겹게 다루는 것보다는, 그냥 악령이나 악귀 하나 잡아다가 주물에 봉인시켜놓고 사용하면 그만인데.

       태자귀니 동자신이니 거창하게 부르고 있다고 해도 그래봤자 귀신이다.

       악령도 악귀도 되지 못한 귀신.

         

       대주술사 수준이 되면 대악령과 대악귀도 부릴 수 있는데, 고작 어린 귀신 따위가 눈에 들어오겠는가.

       게다가 경지가 낮을 때도 마찬가지다.

       굳이 어린 귀신을 고를 필요가 없었다.

         

       다른 귀신에 비해 강해봤자 뭐하겠는가.

       통제가 힘든데.

         

       법도 치안도 애매하던 예전과 달리, 사고라도 한 번 터지면 능력자니, 경찰이니 군인이니 하는 사람들이 잔뜩 몰려와서 감옥으로 끌고 가는 것이 바로 현대다.

       그런 현대에서 통제가 안 되는,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르는 귀신을 부리고 다닌다?

         

       그런 미친 리스크를 짊어질 이유가 없다.

         

       그러니 강령술사들은 어린 귀신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빙의술사 입장에서도 마찬가지.

         

       빙의술사는 귀신을 제 몸에 받아들여서 주술을 부리는 주술사였다.

       강령술사가 악령과 악귀를 부리고 주물에 저장해서 사용한다면, 빙의술사는 아예 자기 몸을 귀신이 머무는 집으로 제공해서 저장해놓고 사용하는 것이다.

       주물이라는 매개체 없이 자기 몸을 이용해서 바로바로 그들의 힘을 사용할 수 있으니, 그 위력 하나는 꽤 볼만했다.

         

       검사의 영혼을 팔에 저장해놓고 검술을 부리거나, 귀에 똑똑한 귀신을 봉인해놓고 필요할 때마다 조언을 듣는다거나, 얼굴에 수많은 영혼에서 뜯어낸 머리통을 합쳐서 1초에도 수십 번이나 얼굴을 계속해서 바꾸게 만들어 신분을 숨길 수도 있다.

       그뿐이 아니다.

       악령을 혀에 봉인시켜 사람을 현혹하고 다닐 수도 있고, 악귀를 사지에 봉인시켜서 무인과 같은 신체 능력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놀라운 능력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의 전제가 필요했다.

         

       완벽하게 통제할 것.

         

       통제하지 못한다면 빙의술사는 죽거나, 죽는 것보다 못한 꼴이 되어버린다.

       악령에게 홀려서 파멸하는 다른 사람들은 별 게 아니라고 생각될 정도로 끔찍한 꼴을 볼 수도 있다.

       사지에 봉인시켜놓은 악귀들이 봉인을 풀어내면서 빙의술사의 사지를 산채로 뜯어낼 수도 있고, 악령이 무서운 환각을 시도 때도 없이 보게 해서 미치게 만들 수도 있고, 몸을 쇠약하게 만들어서 끔찍한 고통 속에서 시름시름 앓다가 죽게 만들 수도 있다.

       봉인된 신체를 마음대로 움직여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힐 수도 있고, 자신을 죽일 수도 있다.

         

       생각해보라.

       왼손이, 오른손이 자기 멋대로 움직여서 자기 목을 졸라서 죽이는 장면을.

         

       끔찍하고 두렵지 않은가.

         

       그렇기에 빙의술사는 자기 몸에 깃든 존재를 통제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통제하지 못하면 끔찍한 꼴을 보게 될 테니까.

       그리고 그렇게 끔찍한 꼴을 보게 되면, 자신의 목표를 이루지 못할 테니까 말이다.

         

       생과 사에 대한 탐구도, 죽음의 본질에 관한 연구도, 인간의 존재에 대한 고찰도, 영혼의 비밀에 풀어내는 것도,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에서 거닐면서 얻으려는 깨달음도.

         

       그 모든 것이 전부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그렇기에 빙의술사는 어린 귀신을 좋아하지 않는다.

         

       통제하기가 힘들었으니까.

         

       적어도 처음은 통제하기 편할지 몰라도, 마지막에 반드시 사달을 일으켰으니까.

         

       본래 본능에서 비롯되는 욕망은 처음에는 단순하다.

         

       맛있는 것을 많이 먹기를 원한다.

       편안하게 길게 자기를 원한다.

       재미있고 흥미 있기를 원한다.

         

       하지만 이러한 욕망에 시간이 지나고 학습이 더해지며 경험이 더해지게 되면 점차 복합적으로 변해간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원하는 형식으로 많이 먹기를 원한다.

       내가 좋아하는 곳에서 편안하고 길게 머물기를 원한다.

       내가 원하는 재미와 흥미를 원한다.

         

       자아가 끼어들고, 경험이 더해지고, 주관이 더해진다.

         

       그렇게 복합적으로 변해가는 욕망은 점차 통제하기 어려워지게 된다.

         

       태자귀 역시 마찬가지.

         

       외부의 도움 덕분에 자아의 풍화가 늦춰지거나 멈추고, 그 대신 경험이 쌓이고 쌓이며 욕망이 더해지게 되는 것이다. 그 욕망은 태자귀를 다루는 이들이 혀를 내두를 만큼 복잡해지고 들어주기 힘든 것으로 변하며, 경험이 쌓였으되 본능에 휘둘리는 태자귀는 욕망을 들어주지 않는 ‘미운 사람’에게 해코지하거나 짓궂은 장난을 친다.

         

       그리고 이 시점이 바로, 무당들이 태자귀를 버리고 다른 귀신을 찾는 시점이다.

         

       주술사는 이러한 어린 귀신의 습성을 잘 알고 있었다.

       경험이, 기록이 모두 저렇다고 말해주고 있었는데 어찌 모르겠는가.

       그러니 그들은 무당처럼 어린아이 귀신을 이리저리 구슬리고 다루다가 버리는 대신에, 아예 처음부터 연관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예외가 있는 법.

         

       이러한 리스크가 있음에도 어린 귀신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있었다.

         

       “자아. 가자꾸나.”

         

       그 이유는 여러 가지였지만, 그것을 크게 묶어보자면….

         

       아마 그 나름의 쓰임새가 있기 때문이리라.

         

         

         

        * * *

         

         

         

       음산한 분위기의 별장이 있었다.

       그곳에는 음산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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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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