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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7

        

         총 끝자락, 더 나아가서는 권총의 총신을 반으로 갈라버릴 것처럼 살벌할 기세로 유영해온 날이 총구에 닿는다.

         

         연결된 손에도 느껴지는 아찔한 절삭력, 매일 같이 갈고 닦으며 아껴온 도미노의 파트너 한 자루가 단말마에 가까운 비명을 내지른다.

         

         억지로 저항하면 무기가 망가진다. 뒤로 빼기는커녕 이제 와서 뒤늦게 총알을 쏴 봐야 궤도를 틀어막고 있는 카타나에 탄두가 쪼개지며 힘을 잃어버릴게 자명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현란한 건 좋아해도 묘기를 부리는 건 전혀 취향이 아니라고!’

         

         정답은 최대한 힘을 빼고, 방아쇠 고리에 집게 손가락만 가볍게 걸친 채로 흐름을 거역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 한 명의 힘으로 강물을 거슬러 올라갈 수는 있을지언정 그 줄기를 비트는 건 불가능.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감히 순리 같은 걸 얘기할 만큼 그의 배움이 깊은 건 아니었지만 약이 가져다주는 고양감은 퍽 대담한 판단을 내리게 도와주었다.

         

         직접 권총을 휘리릭 돌리는 건 보통 건 스피닝(Gun spinning)이라 불리는 뽐내기 기술이나 트릭 샷의 전조 행동이지만, 이 경우에 사활을 걸고 행하는 느슨한 건 슬링에 가까웠다.

         

         당장 찰나의 순간에 일어나고 있는 일을 인지하고 있는 것과 별개로, 그것에 맞춰서 움직이는 건 전혀 다른 얘기니까.

         

         그렇지만 또 명색이 총잡이(Gunslinger)를 자처하는 입장으로서. 이때다 싶은 순간에 그런 묘기를 실패하는 건 용납할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

         

         마치 잘못 찍힌 오래된 옛날 사진처럼 흐릿한 상이 남더니.

         권총을 지탱하고 있던 손가락 마디와 아귀의 피부가 쫙 까지며 피범벅인 된 도미노의 손이 나타났다.

         

         그리고 헬레나는 분명 쪼개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느껴지는 감각이 헐거워지곤 어느새 귀신에 홀린 것처럼 다시 원래 위치에서 자신을 똑바로 겨누고 있는 총구에 꽤나 감탄했고.

         

         나중에 수리하기가 쉽도록 최대한 깔끔하게 자르려 한 배려는 아무래도 불필요했던 모양이다. 역으로 그걸 이용할 생각을 한 걸 보면.

         

         이쯤에서 헬레나는 주관적이고 사심 가득한 평가를 내렸다.

         기본기가 예상보다 탄탄하며 싸움이 몸에 밴 친구들이다, 또한 용병치고는 근성도 나쁘지 않다.

         

         …다만 실력은 아직 자신이 인정할 정도는 아니니 탈락. 이후 몰래 연락할 수단을 강구한다면야 어쩔 수 없겠지만, 오늘을 포함해 요 근래 며칠 동안은 자기 눈에 뜨인 걸 재수가 없었다 생각하길 바란다.

         

         피잉!!

         

         “아니, 이런 씹. 방금 그걸 노렸…… 끄억!?”

         “여기서 더 빨라지는 건 진짜 존나 반칙인, 데헥!”

         

         총신이 고정되고 방아쇠를 당기기까지 고작해야 몇 밀리 초나 걸린다고.

         

         아까 전의 누군가를 흉내내, 발사된 회심의 탄환을 바람이 들어간 탓에 붕 뜬 상의와 맨 살 사이의 빈 공간으로 받아내어 엉뚱하게 가게 담벼락에 꽂히는 걸 확인한 도미노가 세상 억울한 탄식을 흘린다.

         

         동시에 헬레나 전신은 맹렬하게 반 바퀴 회전, 둘을 동시에 상대하기 위해 흡사 이도류처럼 여태 들고 있던 칼집과 카타나의 위치를 바꿔 넣는다.

         

         반대편에서 날아들던 호레이쇼의 발차기를 긴 다리를 활용해 더 위로부터 겹쳐 짓밟아 자세를 무너트리고선 관자놀이에 칼자루를 한 방.

         그리고 맷집이 훨씬 약해 보이는 도미노에겐 칼집을 몽둥이 삼아 옆구리, 정확히는 끝났다는 경고를 담아 갈비뼈 부근에 매질을 한 대 먹여주었다.

         

         초록 인간은 한 손을 바닥에 댄 채 핑 도는 머리를 부여잡고 끙끙 앓고 있었고, 또 다른 해쓱한 남자는 진탕 뒤틀린 속 때문에 헛구역질이 한창.

         

         와중에 납도한 칼을 정위치에 고쳐 매는 걸로도 모자라, 유유히 구멍 난 옷을 펄럭여 기분 좋게 뺀 땀을 식히는 게 이대일로 싸웠던 여자라면… 굳이 누가 이겼는지 모의전 결과를 객관적으로 판정할 필요도 없어 보였다.

         

         “너네 세력권으로 돌아가. 어차피 하베스트 플래닛은 파라다이스가 주기적으로 뿌리는 용역 일도 많고, 신분 갈등 문제도 심각해서. 구태여 아나스타샤 같은 해커를 찾지 않아도 너희들이 몸으로 뛰며 활약할 의뢰쯤이야 충분히 많잖아?”

         

         거기까지 물 흐르듯이 말한 헬레나가 매몰차게 등을 돌렸다.

         용병 삼인조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기 위해서? 아니, 전혀 그럴 리가.

         

         단지 아까 마사나리의 존재감을 느끼고 황급히 동생네 집에서 떠났던 것처럼, 이번에도 급하게 자리를 바꿀 용무가 생겼을 뿐.

         

         – ……어, 드디어 받았네. 언니? 왜 전화를 걸다 말았어? 공연히 신경 쓰이게. –

         

         “응, 별 거 아니야. 그냥 의뢰 보고만 마치고 다시 플라자로 갈 건데, 혹시 아샤가 필요한 게 있나 해서.”

         

         헬레나는 그렇게 예비 방해꾼을 격파한 다음, 정말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주차장을 나섰다.

         

         구형 시각 추적 모델이라면 몰라도, 뇌파 탐지형 사이버웨어에 ‘실수로 전화를 잘못 걸어서 끊었다.’는 개념이 절대 존재할 수 없음을 몇 분 지나서야 눈치챈 아나스타샤가 다시 걸어온 통화를 받으려고 떠났다는 걸 안다면 호레이쇼는 정말 땅을 치고 서러워하지 않았을까?

         

         “……아오!”

         

         물론 그렇다고 남겨진 그의 멘탈이 멀쩡하냐 묻는다면 글쎄올시다.

         

         고작 한 번 판정승을 거두고 그러는 거냐 반론하기엔 체감한 격차도 그렇고, 더 할 말이 없다는 듯한 쌀쌀맞은 태도라 차마 떠나가는 그녀를 붙잡을 수가 없었던 것도 있고.

         

         덧붙여서 그의 머리에 떠오른 상념도 너무 다양해서 뒤지게 복잡한 상태였다.

         

         가령 ‘뭐지? 진짜 이게 오기 전에 들었던 ‘수도의 벽’ 같은 건가? 그냥 우연히 마주친 그녀의 용병 관계자조차 이렇게나 강하다고?’라든가, ‘묘하게 우리에 대해 아는 느낌인데, 혹시 기억해주고 있었나…?’라든가.

         

         그러나 다른 것보다 ‘아나스타샤를 소개받기엔 좀 약해 빠졌다.’는 소리를 돌려 들은 부분이 제일 충격이 컸다. 용병끼리 어울리는데도 급이 좀 맞아야 한다는 얘기는 들어봤지만 그걸 이렇게 돌려받다니!

         

         심리적으로 긁힌 거나 패배한 것보다도, 아샤 누님의 지인으로부터 ‘나는 사실 아나스타샤 누님에게 어울리지 않는 남자였다!’는 심히 가슴 아픈 평가를 받은 사실이 가장 큰 상처처럼 군 게 그답다면 다웠지만… 진심으로 실연한 것처럼 어버버 하고 있는 건 좀 보기 흉했다.

         

         이제 얼마나 흉했냐면, 여태 외야에 조용히 있던 오멘이 긴 침묵을 깰 정도로.

         

         “…뭐, 그럴 것 같았다. 목소리를 듣고 긴가민가 했는데 역시나 괴물이군.”

         

         “엉? 뭐가??”

         

         “아나스타샤 누님과 만났던 쥐 잡이 작전 때, 막판에 끼어들어서 배신자 용병 새끼들을 전부 때려죽인 경찰이 있지 않았나? 그 누님의 언니였다고 탐정이 건네 준 자료에 있더군. 이름은 헬레나 발렌타인. 실종이니, MIA 처리됬다느니 하는 추측성 조사 결과도 있었는데… 그 부분은 다 틀렸고.”

         

         하필 걸려도 당사자의 가족에게 걸려서 자기네 꼴만 우습게 되었다며, 운이 너무 없었다는 투로 툴툴거리는 오멘.

         

         사태가 심각해질 가능성을 고려해 싸움을 자제한 것도 틀림없이 있었지만.

         추측성이 짙고 사람 찾는 용건이 있다 한들, 예전에 목숨 빚을 졌을지도 모르는 상대에게 덤벼들 만큼 정말 그는 양식미가 부족하진 않았다는 거다.

         

         그걸 먼저 친구들에게 공유했다면 참 좋았겠으나, 또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함부로 풀지 않았다는 게 특유의 골 때리는 성격이 아닐까?

         

         하지만 이 셋 중에서 제일 성격이 괴짜 같은 건 역시 개성이 넘쳐도 지나치게 넘치는 어느 양배추였으니.

         

         “…그러니까, 방금 그 누님이 실은 아샤 누님의 언니니까. 어… 간단하게 정리해서 왕누님이란 소리지?”

         

         “데어데블 너 이 자식, 대체 무슨 미친 소리를 하려고 도입부를 그 따위로….”

         

         “그럼 언젠가 결혼을 허락받으려면 어차피 넘어야 하는 벽이라는 뜻이구만! 야, 나 더 분발해야겠어!!”

         

         “”…….””

         

         오멘과 도미노, 둘이 동시에 한숨을 내쉬거나 말거나 적어도 호레이쇼는 흘러 넘치는 생기는 되찾았다.

         

         어디로 오면 찾을 수 있는지는 알았으니 오늘은 이만 됐다. 이 참에 아예 외지에서 전지 훈련도 하고 이름값도 높인다는 느낌으로 현지 의뢰나 좀 한 번 털어 보다가 돌아가자며, 언제 주저 앉아있었냐는 듯이 무릎을 훌훌 털고 일어나기까지 했으니까.

         

         하여간 당사자인 아나스타샤가 없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기엔 어마어마하게 꼬였고, 그것도 엮인 누군가가 일부러 말해주지 않는 이상 영영 알 수 없는 일련의 다툼들은 그래도 어찌저찌 무사히 마무리되었다는 얘기다.

         

         그녀도 모르는 사이에 묘한 라이벌 관계도와 일부 관계자들의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잇따라 낳으며.

         

         

         

         

         

         “저기, 스틸볼 대장. 그냥 날 잡고 성형 수술이라도 시원하게 함 조지시면 연애 사업이 훨씬 수월하게 풀리지 않겠슴까…?”

         

         “떽! 시끄러 임마!! 일 한 번 나갈 때 드는 필수 경비도 그렇고, 여기저기 찔러줄 크레딧까지 계산하면 먹고 죽을 돈도 없어! 그리고 내가 뭐 어때서! 지금도 나 좋다는 여자 여기저기 많은 거 몰라?!”

         

         “……예, 물론 알죠.”

         

         ‘그건 시발 술자리에 끼는 업소 여자들의 립 서비스잖아요….’라는 슬픈 말을 부하는 굳이 덧붙이지 않았다.

         

         큐볼 본인조차 일단 질러놓고도 그건 너무 개소리 농도가 짙은 추잡한 우기기였다 생각했는지 황급히 대화 주제를 돌렸으니.

         

         “아무튼! 나처럼 너희들도 평소부터 밑에 애들 인맥 관리 잘 좀 해 놔라. 으이? 건수 생겼다고 혼자 다 처먹을라 들지 말고. 이 바닥 일이 기업들이 던져주는 큰 건수가 최고처럼 보이기는 해도, 다 따지고 보면 밑바닥 놈들이 엮인 문제가 대부분이라 우리처럼 할렘가 해결사 포지션을 꽉 쥐고 있는 게 최고라니까??”

         

         큐볼과 같은 테이블을 둘러싼 부하들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던, 보통 술 취했을 때나 나오던. 그의 팀을 책임지고 있는 용병론 레퍼토리가 웬일로 맨정신에 더 가까울 때 등장한 건 다름이 아니었다.

         

         금일 본의 아니게, 하루만에 두 번이나 체면을 왕창 구기게 된 큐볼이 위신을 조금이라도 회복할 거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육탄전이 절대 장기인 타입은 아니라곤 하고, 한 번은 사람 껄끄러워하기로 유명한 헬레나에게 지분거리다 당했으니 명예의 훈장인 셈 칠 수도 있겠지만.

         

         근방에서 처음 보는 신참들, 그것도 네오 헤이븐에 막 왔다고 소개한 외지인한테 먹힌 추태를 보였으니 그 부분을 내심 엄청 신경 쓰는 도중이랄까.

         

         사실 뭐 계약을 잘못해서 속은 것도 아니오, 길 좀 터주다가 굽히고 들어오는 척하는 상대에게 코앞에서 풀 스윙을 맞은 만큼 대부분은 어쩔 수 없는 재난이었다며 웃어넘기는 분위기이긴 했어도 그는 내심 엄청 신경 쓰고 있었다.

         

         왜? 그야… 이 업계는 얕보이면 자칫 말라 죽으니까.

         

         상충하는 의뢰인 밑에서 일하는 상황도 아닐진대 만만해 보인다고 갑자기 다른 용병 배때기를 쑤시는 또라이는 드물어도, 일단 밥그릇부터 털어가고 보는 새끼는 수두룩하다.

         

         그러니 패거리를 끌어 모으고 몸집을 키운다. 수입을 늘려서 나와바리를 한층 확고히 다진다.

         

         …비록 오늘만 해도, 살벌할 눈초리로 노려보는 ‘늑대’ 때문에, 차마 페일 에일 바에 더 붙어있기 뭐해서 다른 인근 술집으로 부하들과 피난 와 값싼 맥주나 빠는 신세지만. 언젠가는… 아니, 조만간 닉네임 석자를 크게 날릴 기회가 찾아오리라 믿으면서.

         

         “뭐, 잔소리는 이만 됐고. 마시고 죽자 새끼들아! 아깐 욕봤다 시발!!”

         

         그러니까 그런 큐볼이 자기 부하 패거리들과 스트레스 해소 겸 한잔하려는 타이밍에.

         

         때마침 자신을 흠모해서 찾아왔다는 뉴 페이스가, 그것도 아까 그 망나니 같은 삼총사와 다르게 싹수가 괜찮아 보이는 친구가 있다면 약간 관대한 태도를 보여주는 것도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으리라.

         

         “어! 어어?? 혹시… 할렘가의 카리스마로 이름 높으신 스틸볼 형님 아니십니까??”

         

         “으잉? 뭐다냐 넌? 아니, 애당초 누군데??”

         

         피부에 여러모로 안 좋을 것 같은 통짜 방독면을, 머리통에 기꺼이 뒤집어쓴 남자는 얼핏 괴한처럼 보였다.

         

         허나 피하 임플란트를 주요 부위에 여럿 박은 흔적은 고평가할 만했어도.

         생각보다 앳된 목소리, 왜인지 목에 대롱대롱 걸고 있는 다용도 소프트웨어 터치 패드, 평균 신장 언저리에 간신히 미치는 키 등등이 위압감을 조성하기 보단… 뭐라할까?

         

         큐볼 자신이 꽤 열심히 밀고 있던 수식어를 예습해온 것도 그렇고, 어딘가 이런 미묘한 서열이 있는 사조직에 몸담는 게 익숙해 보이기도 하고.

         

         두서없이 잘라 말하자면 딱 데리고 굴리기 좋아 보이는… 특급 신병?

         

       

       

         “평소에 약간 운명처럼 스틸볼 형님의 팀에 들어갈 기회를 꼭 좀 얻고 싶어하던… 킴(Kim)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실례가 아니라면 용병단에 말단부터라도 시작해볼 자리가 좀 있을까요. 형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역시 연예인이야. 얼굴 한 번 보겠다는 사람이 이렇게 많아!

    이걸로 토끼는 어디 있나 에피소드 본편 연재분이 다 올라갔습니다!
    내일 예고 드렸던 예비군 휴재 때문에 오늘 안 맞춰 놓으면 이제 흐름이 이상해져서 조금 억지로 다듬어서 가져와 봤습니다.
    정기 휴일 이후에는 곁들이 외전이 2~3편 연재될 예정이며, 에피소드 사이 휴재 날짜는 외전까지 공개가 모두 끝난 후에 공지하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 큰 영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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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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